쿡스투어 -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음식기행
앤서니 보뎅 지음, 장성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방송용 분장으로 떡칠이 된 채 주방에 돌아오면 보란 듯이 놀리기도 했다.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담당 편집자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완벽한 한끼‘를 찾는 거예요.
14-15쪽

 

 나는 먹방을 좋아한다. 요즘 방송가에 난무하는 ‘자극적인 음식들을 많이 그리고 과감하게 먹는’ 방송 말고. 최불암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나 방랑식객 임지호가 출연하는 ‘식사하셨어요’ 혹은 그의 요리 다큐들이 좋다. 이런 방송들을 보면서 나는 이끼나 나뭇가지도 먹을 수 있다는 데에 놀라고 심지어 그것이 맛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두 번 놀란다. 하지만 단순히 놀라움만 주는 건 아니다. 청국장 같이 푸근하고 담담한 최불암의 목소리에 실려 한국의 각종 요리들의 배경과 문화가 전달되고, 사람에게 요리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정이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산소라고 여기는 요리사(임지호)가 만들어내는 요리를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사람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서 감동을 받는다. 먹방이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색채는 전혀 다르지만 나는 앤서니 보댕의 요리방랑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먹방들과 비슷한 빛을 발견했다. 직업 요리사의 삶도 좋아하고 방송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이 끼 많은 요리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국을 다니며 ‘완벽한 한 끼’를 찾겠다니. 책의 서두에 있는, 그의 고단하고 다사다난했던 여정의 단초이자 이 책의 시발점이 된 저 구상을 읽은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요리사가 마음에 들었다. 끼니로서의 요리가 아닌, 문화로서의 요리를 발견하려는 꿈. 이 꿈에 구미가 당기고 흥미가 생긴다면 누구나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거다.

 

 아, 한 가지 조심스러운 점은 있다. 여정을 선사하는 화자 그러니까 저자의 입은 생각보다 거칠다. 마치 밥집 주방이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거친 것처럼. 성적인 농담이 즐비하고 과격한 단어나 표현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러니 포르투갈로 찾아간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기 시작했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냥 적응해버리면 된다. 저 거친 입담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냐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만약 입담이 얌전하고 신사적인 인물이 이 여정에 나섰다면 아마 이 방송은 실패했을 것이며, 책도 당연히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앤서니 보댕 정도의 입담이기에 이런 장면들이 이렇게 생생하고도 구성지다.

 

 (러시아에서 사우나와 얼음수영을 체험하게 된 저자) 허둥지둥 다리에 수영복을 꿰었다. 평소 같았으면 푸드 네트워크 시청자들 앞에서 불알을 덜렁거릴 생각에 변태적인 기쁨을 느꼈을 테지만, 추위에 쪼그라들어 잣만 해진 불알을 보여 주긴 싫었다. 나는 바깥문을 열고 미끄러운 발판을 맨발로 총총 뛰어 호숫가에 이르렀고, 얼음 낀 계단을 내려간 다음, 얼어붙은 호수에 몸을 던졌다.
 충격적이었다거나 숨이 턱 막혔다, 굉장히 주웠다, 뭐 이 따위 표현은 그 경험을 묘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건 ‘투명한 화물 열차에 들이받히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와 원자 하나하나가 미친 듯 날뛰었다. 불알 두 쪽은 빗장뼈 근처 어딘가를 향해 솟구쳐 올랐고, 뇌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으며, 두 눈알은 눈구멍에서 뛰쳐나오려고 기를 썼다.
160쪽

 

 ㅋㅋㅋ 저 뒤에 자기가 물에서 나오면서 비명을 질렀는데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누가 자동차 배터리로 고양이를 고문하는 줄 알았을 거라는 둥 썰을 풀다가, 눈 덮인 얼음장 위로 풀썩 누웠는데 춥기는커녕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는 체험담이 이어진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얼음수영을 체험하는 것처럼 쿡쿡거리며 웃다가 이내 ‘나도 하고 싶다’고 떠올렸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15번의 에피소드 전체가 결국 저것으로 귀결된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가고 싶다, 나도 먹고 싶다’. 저자는 단순히 ‘완벽한 한 끼’ 그러니까 요리 그 자체만을 전달해주는 일에서 나아가 그가 경험한 현지의 공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의 체험이 얼마나 흥미진진한가에 이내 동화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온갖 벌레들이 들끓고 변기가 역류하는 험한 숙소에서 뒹구는 체험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들게 되고 만다.

 

 책의 제일 마지막, 그가 쓴 마지막 에피소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서인도제도의 어느 해변에서 아내와 함께 밥을 먹는다. 요리가 나오는데 30분 이상이 걸려도 재촉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맥주, 모래, 파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완벽은 돼지고기를 굽는 시간이 몇 분이냐거나 어느 재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데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보다. 저자는 세상을 두루 돌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글을 마치고, 나는 책을 덮으며 그의 경험담으로부터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기뻐하며 읽기를 마쳤다.

 

 하아... 그래서... 내 휴가는 어디로 가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이나는 클라스 : 국가.법.리더.역사 편 - 불통不通의 시대, 교양을 넘어 생존을 위한 질문을 던져라 차이나는 클라스 1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방송 프로그램을 지면으로 옮겨 출간한 책을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는, [명견만리]나 [사랑하면 보인다]등 이미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어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영상의 내용이 활자로 옮겨진 상태를 좋아한다. 이미 영상으로 제작되어 다시보기 등의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여러 번 볼 수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또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책으로 보려 하느냐고? 일단은 내가 활자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두 번째는 영상이 아닌 책이라는 매체만의 장점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영상은 되게 쉽다. 쉬워서 좋다. 가만히 눈만 뜨고 있으면 알아서 머릿속으로 내용이 전달된다. 화선지에 먹물 스며들 듯이, 영상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건 얼마나 편안한가. 하지만 영상은 책갈피가 안 된다. 나는 영상과 비교해서 책이 우월한 부분이란 책갈피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고 싶은 문장은 빨간색, 새로운 연상과 사고를 이끌어주는 내용에는 파란색, 마음을 오래도록 두드리는 감동적인 부분에는 초록색. 나는 인덱스 스티커 없이는 책을 읽을수가 없다. 머리가 좋지 않으니 일단 눈에 띄는 건 마음에 드는 대로 일단 다 붙여놓고 본다. 그리고 꼭 필요할 때 찾아본다. 머리에 담아두는 게 제일 좋겠지만, 용량과 기능이 딸리니 손품을 팔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유익한 방송 프로그램일수록 책으로 출간되는 걸 반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정보를 많이 주는 영상 아니, 책일수록 인덱스 스티커가 많이 붙는다. 스티커를 좌르륵 달아놓고 날개처럼 나부끼는 스티커를 쓰다듬으며 즐거워한다. 아, 이런 변태가.....

 

 [차이나는 클라스]가 출간되었을 때 나는 그래서 너무 반가웠다. ‘국가, 법, 리더, 역사’를 주제의 방송 내용을 엮은 이번 [차이나는 클라스]는 도입부부터 손석희 사장의 추천사를 던지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 추천의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배부른 책이라니. 책 내용이야 방송으로 이미 입증되었으니 두말할 것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꼼꼼하게 잘 만들었음을 잘 느낀 부분은 편집 상태였다. 다양한 질문과 그에 대한 전문가 답변으로 구성된 방송을 지면으로 옮기기 위하여 편집팀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고민의 결과는 깔끔하고 가독성 높은 편집 디자인으로 잘 나타나 있다. [차이나는 클라스]가 촬영한 내용은 흥미로운 질문들이긴 하지만 쉬운 질문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이것을 책으로 옮겼을 때 더 어렵게 느껴지거나 복잡하거나 혹은 따분하거나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영상 이상으로 책이 재미있게 읽힌다. 밑줄을 긋거나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을 함께 메모해가며 읽다보면 내가 [차이나는 클라스]의 시청자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한 패널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차이나는 클라스] 방영이 벌써 1년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제작진 뿐만 아니라 일개 시청자 그리고 독자에 불과한 나의 소망 역시 앞으로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정치 뿐만 아니라 종교, 성, 인권 등 방송에서 다루기 까다롭고 첨예한 질문들도 다양하게 다루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내용이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어 나의 서재를 채워주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는 [로스트 인 더스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Hell or Hign Water]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서부, 주인공은 빚더미에 올라 마지막 남은 재산마저 은행에 차압 당하기 일보 직전인 형제 둘이다. 영화를 전개하는 내내, 감독은 꿈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 남아 있지 않은 가난한 서부의 거리를 낱낱이 훑어 보여준다. 일자리가 줄어 실업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즐비하고 시장성이 없어 도심에는 그 어떤 상점도 더 이상 들어서지 않는다. 거리에 광고판은 비어 있거나 그나마 대출광고가 걸려 있는 게 전부다. 마치 미래라는 것이 통째로 먼지가 되어 햇살 아래 사라져버리는 듯한 풍경에 자본주의라는 덫 속에서 몰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잘 담겨 있다.

 

 [베어타운]의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이 그의 작품 속에서 조명하는 세계도 이와 비슷하다. 어느 변두리, 자본이 바짝 마른 빈곤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마을 만큼이나 초라하고 건조한 사람들이거나. 둘 다 이거나, 그렇다.
 [베어타운]의 표지가 아이 동화책처럼 서정적이고 예뻐서 나는 잠시 이 작가의 특징을 잊었다. 큰곰자리가 은박으로 수놓인 서늘한 밤을 그린 표지 속에 ‘베어타운’이라는 동화 같은 이름의 마을을 아기자기하게 꾸려가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 같다. 하지만 버젓이 책 뒷표지에는 소설 도입부의 두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은 저것이 전부다. 한 십대 청소년은 우발적으로 총을 들지 않았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했고 숲속을 수시로 탐색하며 자신의 동선을 면밀히 살펴두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받아들이고 책임질 생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이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입장과 처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작가는 500쪽에 이르는 긴 분량을 아낌없이 썼다. 특히 ‘베어타운’이라는 마을의 처지와 상황을 그리는 데에 공을 들였다. 저자가 묘사하는 베어타운의 모습을 머리로 그리는 동안 기이한 체험을 했다. 술에 취한 거인이 눈밭에다 오줌으로 자기 이름을 갈기려던 것처럼 생긴 ‘베어타운’에 데이빗 맥킨지 감독이 [Hell or Hign Water]에서 보여준 후덥지근한 변두리 마을의 모습이 겹치는 것이다. 상점가들이 늘어선 골목의 길이는 매년 짧아지고 일자리 역시 매년 줄어 일거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영화와 책 모두에서 놀랍도록 비슷하다.


 하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은 책의 인물들이 은행을 터는 대신 아이스하키에 몰입하도록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흥망성쇠의 키가 되는 아이스하키에 광적으로 매달렸고, 전국대회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온 마을 사람들의 꿈을 겹겹이 덧입고 경기에 나갔다. 저자는 아이스하키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선수와 또 다른 선수, 선수와 감독, 그리고 선수의 가족, 구단과 재단 등 다양한 인물과 관계를 섬세하게 그렸다. 이야기 속의 한 감독(다비드)은 하키가 진행되는 경기장과 경기장 밖의 세계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스포츠의 격렬한 충돌은 경기장 밖의 세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야기 속 몇몇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 하키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하키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읽힌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책의 재미가 있다.

 

 나는 사람의 속성 중 하나가 ‘연대’라고 생각한다. 이 연대성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공동체를 만든다. 이 연대성이 국가를 만들었고, 이 속성이 최근 이룬 대단한 성과 중 하나로 촛불시위가 있다. 하지만 이 속성은 때로 사람의 눈을 가리우고 양심의 감각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연대성에 지나치게 무게를 둔 나머지 나보다 공동체를 더 먼저 생각하자는 인식은 얼핏 고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인식이 아름다울 수 있는 영역은 팀의 이익이 개인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까지다. 연대성에 눈이 멀면 공동체 속 대부분의 개인들은 양심이라는 촛불을 교묘히 끄고 비틀리고 왜곡된 자기최면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공동체가 개인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가? ‘우리 모두’라는 명분을 칼날처럼 개인의 목에 들이대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내 왔는가? 얼마나 많은 개인이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명예 살인을 당해왔는가?

 

 프레드릭 배크만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 참담한 비극을 포착하여 ‘베어타운’으로 옮겼다. 하지만 현실 그대로는 아니다. 상처투성이 결말로 치닫는 게 대부분인 이 현실적 비극은 저자의 필력에 힘을 얻어 희망을 덧입는다. 저자가 빚어낸 지혜롭고 강단 있는 주인공, 그러니까 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간 한 십대 청소년으로 인하여 이 비극은 가슴 아픈 사건으로 남겨지는 대신 새로운 미래의 시발점으로 승화한다.


 이 지점이야말로 독자들이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인물과 사건이 그려져 때로는 고구마 같은 전개에 가슴이 턱턱 막히지만 그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의 끝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 모두가 꿈꾸는 희망과 미래가 있다. 그래서 독자는 그의 작품을 기대하고 기대한 만큼 즐거워하며 읽는 게 아닐까.

 

 [베어타운]의 결말 부분에 저자는 이미 다음 작품의 예고편을 실어둔 것 같다. 사건의 주인공들은 십년 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다시 마주치고 저자는 그들 중 누구는 죽고 누구는 어떠어떠하더라,는 문장 몇 줄을 함께 넣어두었다. 아마 저자의 다음 작품은 이들의 이야기가 아닐는지.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관중석에 앉아 있는 어떤 여자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식 없는 대답을 접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전에 최정상급 크로스컨트리 선수였다. 스키를 타고 장거리 코스를 달리는 데 십대를 모조리 바쳤다.
349쪽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더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몇 날 밤이 찾아오고 소문이 번지자 베어타운에서는 어느 누구도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마야’라고 쓰지 않고 ‘M’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아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걸레’라고 한다.
3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고기 식용 금지 청원이 이슈가 되면서 이를 다룬 기사의 댓글도 갑론을박으로 와글와글했다. 개고기 식용을 혐오한다는 어느 사람의 말에 누군가 또 댓글을 달았다. ‘개고기 식용을 혐오한다는 말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적을 자유가 있다면 나 역시 한 마디 남기겠다. 개고기 식용 혐오를 혐오한다. 혐오할 자유가 있다면 혐오를 혐오할 자유가 있다.’

 

 도덕이라는 과목을 수업 시간에 배울 때부터 나에게 참으로 어려웠던 몇 가지 개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유’다. 무엇을 자유라고 할 것인가. 이 의문은 자유의 본질적 성격, 자유의 범위, 자유의 기능 등등을 모두 포괄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20년이 넘게 고민해왔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자유는 개인의 고유한 권리이며 절대적인 것이라고 썼다. 이 자유의 범위와 역할을 결정하는 두 가지 축으로 효용과 해악을 들었다. 개인의 효용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하여 (개인과 전체의 효용을 위하여)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이 행사하려는 자유가 타자에 해악을 미칠 경우 그의 자유는 간섭받을 수밖에. (사실 이 부분이 내가 가진 고민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해악과 효용을 가르는 기준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야 하는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국가, 사회, 여론 등이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고 억압하는 일 즉, 개인의 자유를 훼방하는 권력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경계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간섭하고 사회가 시민에게 간섭하고 여론이 개인에게 간섭하는 갖가지 경우와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게 날을 세운다. 이 부분은 국가와 종교의 권력이 막강했던 1800년대라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국가, 사회, 여론이 삼위일체가 되어 개인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그 시도의 힘은 강력하고 성공률도 더 높아진 듯하다. 그 시대에는 없었던 ‘언론’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개인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에 대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의거하여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동의냐 반대냐를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려면 자유를 사용하는 개인 본인과 그 개인과 함께 공존하는 수많은 개인들, 그 개인으로 구성된 집단까지 고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아마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독자들이 그런 고도의 성숙함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구성원 전체가 자유의 개념, 역할, 범위 그리고 범위를 결정짓는 척도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될 수 있는가? 혹은 그래도 되는가?

 

 나는 이 책이 그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보다도 지금 시대, 우리 사회에 가장 간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표지에 ‘서울대 필독서’ 뭐 이런 거가 적혀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학교에서 이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번 읽어도 그 재미와 유익함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성찰을 주는 아주 희소한 책.

 

여담으로, 이런 책을 써줘서 참 고맙다. 저자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이 그렇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단지 경험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반드시 토론이 있어야 한다.
​토론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틀린 의견들과 실천들은 사실과 근거에 의해 점차 밀려난다.
​하지만 사실들과 근거들이 인간의 지성에 어떤 효과를 미치기 위해서는 지성 앞에 호출되어야 한다.
​사실들이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말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들이 지닌 의미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필요하다.
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노트 Moon Note - 이니굿즈 고급 양장노트
별 편집부 지음 / 별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통령의 얼굴로 표지를 삼은....... 자서전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은 그림책이 발간된 적이 있다. 당시에 현존 인물의 서사를 담은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던 나는 잘됐다 싶어 그 그림책을 구입하여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아동용 그림책으로서가 아니라, 위인전 성격의 그림책으로는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 개인 그러니까 문재인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콘텐츠를 소장하게 된 건 두 번째다.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을 표지로 삼은, 문 노트라고 불리는 이 상품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얻었다.

 딱히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한 콘텐츠나 상품에 큰 애착이 있거나 관심도 없는데 올해에 연이어 이런 상품들과 연을 맺다니. 기이한 해다.

 

 

문 노트는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기려서 제작된 상품이라고 한다.
표지는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봉황 두 마리와 가운데 무궁화 문양이 금박으로 인쇄되어 있다.
'중국에서 용을 쓰기 때문에 우리는 용을 쓰지 못하고 봉황을 써 왔다'는 어느 학자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나라 수장의 상징에 봉황이 들어간다는 게 참 좋다. 용은 어딘가 품격이 덜하다. 뱀의 비늘을 닮은 몸통도 그렇고 황소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부리부리하기만 한 눈도 별로다.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봉황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궁화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세계 국화들을 주르륵 늘어놓은 책이나 포스터를 보면서 왜 우리나라는 볼품도 없이 무궁화야? 라고 철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무궁화를 다시 보니 얼마나 예쁜지. 이것이 격조다!를 보여주는 꽃 중에 최고가 아닌가 싶다.
 
뒷표지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
‘In a democracy, the people get the government they deserve.‘
 살아가면서 이 말을 이토록 공감하게 되는 날이 올줄이야........ 백 년도 더 전에 저 멀리 프랑스에서 등장한 말인데 2018년 한반도 한가운데에서 이 말의 무게를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 어디 국민과 정부에만 적용되는 원리이랴. 가정에도, 배우자 간에도, 업무 파트너 간에도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런 특이점이 있는 이 노트는 180로 펼쳐져서 필기가 용이하다든지, 중간중간 도비라 마다 헌법을 넣었다든지.
이런 몇 가지 특징이 있다. 

- 리앤프리 서평단 활동으로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