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1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효은 옮김 / 별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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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마 저 정도 나이였던 것 같다. 7월에서 8월로 이어지는 이 휴가철이 되면 아빠와 엄마는 우리 남매를 데리고 온양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아직 입에 익지 않아서 내가 항상 ‘진주 할머니’라고 불렀던 증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셨던 그 집. 오래된 마당 만큼이나 오래된 기와, 오래된 대문. 모든 게 다 오래되어서 집 전체가 마치 할머니 같았던 그 집 마루에는 진주 할머니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듯한 책들이 있었다. 그 집에서 보았던 책들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책이 두 권인데, 하나는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콜라’, 또 다른 하나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다.

 

 한여름, 마룻바닥의 서늘함은 누워본 사람만 안다. 윤이 나는 나무의 면과 그 틈새에 앉은 먼지, 나무의 배꼽을 옮겨다놓은 듯 수줍게 들어앉은 옹이의 그 오돌도돌한 촉감. 매미가 진하게 울고 잠자리 서너 마리가 마당에 걸어놓은 빨래 사이를 노다닐 때, 나는 그 마루에서 ‘어린 왕자’를 읽었다. 도도한 꽃이나 똑똑한 여우를 어디가면 만날 수 있나. 어른들 말대로 착한 아이한테만 나타나는 것들인가. 그렇게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는 정말 문자 그대로 어린 왕자였다. 나에게도 나만의 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조금 더 커서, 그 책이 어린이 권장도서라는 걸 어느 안내문 따위에서 보고 알게 된 나이에 읽은 어린 왕자는 영 재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그때의 나는 이미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라 내면 혹은 이면이라는 걸 너무 과도하게 교육 받고 있었다.

 ‘어린 왕자’가 달리 읽히기 시작한 건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였다. 어차피 언젠가 인연이 다하면 작별하는 것이 인간사인데 왜 관계에 힘을 써야 하는가? ‘어린 왕자’는 그 질문에 해답을 준 작품이었다.

 

 별글 클래식으로, 상큼한 레몬색 옷을 입은 [어린 왕자]를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었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에 모두 만났던 어린 왕자. 너는 여전히 이렇게 상큼하고 맑은데 나는 나이가 들어버렸구나. 이제는 어린 왕자를 만난 화자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버리고 말다니.

 

 워낙에 좋은 작품이고, 언제 읽어도 훌륭한 소설이다. 그러니 이렇게 가벼운 페이퍼백으로, 가독성 좋은 내지 디자인으로 책이 나오면 당연히 손이 가고, 읽은 작품이라도 한 번 더 읽고 싶기 마련이다. 별글 클래식의 깔끔한 표지가 예쁘기도 하지만, 표지부터 내지까지 전체적으로 무게가 가벼워서 오가는 길 위에서 빠르게 읽기에 최적화되어 좋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왕자 덕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시골집의 냄새를 다시 기억해 냈다. 여러모로 반갑고 고마운 작품이다.

"이제 갈게...."
어린 왕자가 작별을 고했다.
"안녕.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 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기억해두려고 되뇌었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해진 건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 쓴 시간 때문이야."
여우의 당부가 이어졌다.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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