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
밥 버먼 지음, 김종명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사물들을 측정하고 분류하는 데 집착하는 동물이다. 속도와 관련해서는 매우 분명한 한계 지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속도의 궁극적인 최저점이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것도 정지된 것보다 느리게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있기 어렵다는 점이다.
60쪽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저 구절과 마주했다. 그 어떤 것도 단정하거나 딱 잘라 말하지 않는 과학자 밥 버먼(세상에나, 제목이 ‘모든 것의 속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의 속도’라고 쓴 데에서부터 이 책의 화법이 드러난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상태에 대해 ‘절대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거의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고 말해도 될까?


 이 부분을 읽으며 헤라클레이토스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영원히 변화하고 있으며 매순간 동일한 것은 없다고 세계를 바라보았던 그는 이런 내용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어제의 강물은 흘러가버려서 없고 나도 어제의 내가 아니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 아니라 나도 흐른다. 매순간 동일한 나는 없다.”
 과학서적을 읽을 때마다 어떤 지점에서 자주 느꼈던 그것. 데자뷰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시감을 또 한 번 느끼게 하는 부분이 역시 이 책에도 있었다. 과학과 철학은 통하는구나!

 

 태풍에 부서진 집을 수리하게 된 김에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 엉뚱한 과학자는 여행에서 관찰한 것들, 그 관찰이 남긴 다양한 결과들을 책으로 썼다. 원서의 제목은 그냥 ZOOM이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좀더 친절하다.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한국에 들어온 이 과학서적은 그 이름부터 아주 흥미롭다. 흔히 속도라고 하면 이동하는 것, 달리는 것 따위가 내는 속도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기발하고 재미난 칼럼으로 유명한 저자 밥 버먼이 고작 그런 평범한 속도에 대한 책을 썼을리 만무하다. 책은 말그대로 지구상에 음, 아니 우주 속에서 움직이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속도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당연히 사람이나 치타 등의 달리는 속도도 언급하긴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일 뿐. 봄이 오는 속도, 화학반응 속도, 유성이 떨어질 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룬다. 책의 주제가 속도이다보니 책이 다루는 범주를 지정하려면 어떤 것들이 속도를 가지고 있는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속도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당연히 만들어내는 수치다. 그런데 이 글의 가장 처음에 언급한바 ‘거의 모든 것이 움직이는 상태’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것이 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빛은 달리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와... 이렇게 써 놓고 보니까 [코스모스]를 읽으며 우주의 먼지 밖에 안 되는 나 자신을 실감하던 그 때로 돌아간 듯 하네.

 

 하지만 이 속도라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거의 모든 것의 상태가 변동하듯, 속도라는 것 역시 변동하는 것 아닌가. 무엇을 기준해서 측정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움직이느냐에 따라.

 

 “실제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힘이 원거리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둘 다 이 대답이 아무것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주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입자와 포톤, 물질과 에너지는 각자가 가진 정보를 우주 전체에 시간지연 없이 즉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빛의 속도는 더 이상 속도의 한계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서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동시성을 이용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입자의 행동 정보를 전달하는 것의 확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동시성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는 질량을 가진 어떤 것도 움직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포톤과 같은 존재가 무한대의 속도로 정보가 전달되는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무한대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놀라운 발견은 철학이나 형이상학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398-399쪽

 

이 책에서 가장 달콤살벌흥미진진한 부분은 이 책의 맨 뒤에 있다. 질량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전달하는데 심지어 속도가 없는 물질이 있다니! 속도가 없다는 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 이 끝에서 여길 탁!하고 치면 우주 저 끝에서도 같은 자리가 탁!하고 타격을 받는다는 말씀. 오와, 나는 그저 속도에 대한 저자의 썰이 재미있어서 읽기 시작했을 뿐이데, 다중우주론보다 더 신박한 내용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철학서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과학서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되었다. 모든 것은 움직이기 마련이다.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고, 이제 나는 철학과 과학이 궁극적으로 밝히는 섭리라는 것은 결국 통한다는 사실을 어제보다 더욱 확신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든 과학적 이론은 관찰에 기초한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이라는 한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우주에 대해 우리가 수립한 이론의 수준이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적은 관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니 아기들이 걸음마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덧붙인다. 과학자들도 과학의 끝, 세계의 끝 아니, 우주의 끝을 알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실존의 본질이란 결국 원자니, 속도니 하는 물리적인 것들보다는 저자도 인용한, 그리고 이 책의 결말로 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다는 데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우리는 단지 영원한 존재의 일부일 뿐이다.”

 

 아, 엉뚱하게 과학서를 읽은 후 감상을 남기면서 헤라클레이토스니 아리스토텔레스니 하는 고대 철학자들을 자꾸 언급하게 되네. 그만큼 이 과학서가 철학의 많은 부분과 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단순히 물리나 자연과학적 소양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자연스럽게 향하고 있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수준 높은 과학서여서 더위를 잊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겨울이 되면 한 번 더 읽어봐야지. 그만큼 재미있고 다시 읽을만한 좋은 책이다. 
 

인간은 사물들을 측정하고 분류하는 데 집착하는 동물이다. 속도와 관련해서는 매우 분명한 한계 지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속도의 궁극적인 최저점이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것도 정지된 것보다 느리게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있기 어렵다는 점이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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