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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레오는 이제 모든 게 잘 풀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나빠졌다. 레오는 열두 살이고 올해 여름에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에는 비교를 불허하는 장점이 있다. 진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봄에 열린 그 회의에서 투표 결과 페테르 안데르손의 잔류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자 케빈의 아버지는 아들의 소속 팀을 당장 베어타운에서 헤드로 바꿨다. 코치와 후원사와 청소년팀의 우수한 선수들을 거의 모두 설득해 함께 데려갔다. 삼 주 전에 케빈의 가족이 느닷없이 마을을 떠나자 모든 게 또다시 뒤집어졌지만 묘하게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레오가 뭘 기대했을까? 모든 사람이 문득 케빈의 유죄를 깨닫고 사과할 거라고? 후원사와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베어타운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럴 일은 없었다.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31쪽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대개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한다.
283쪽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건 워낙 쉽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증오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불공평한 싸움이다.
593쪽
예전에 프레드릭 베크만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는 사람 내면의 복잡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작가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사람의 복잡성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 반대다. 그는 사람의 참을 수 없는 단순함에 한없이 한없이 집중하고 주목한다.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 아주 단순하다. 우리 대 당신들의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베어타운과 헤드의 사람들만이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스포츠광들만이 이런 대립과 반목에 환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저런 대립과 반목의 구도 속에서 흘러가기 때문에, 절대 저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누구나 생애를 마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포츠광이 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갈등에 동조하고, 편을 가르고, 상대편에 무자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기도 한 동시에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팀의 스타플레이어가 상대 팀에게는 악몽을 선사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 [베어타운]보다 후속작인 [우리 대 당신들[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여기에 더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과 반목이 많이 그려져서일까...? 엔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일까?
작가에게 궁금하다. 어쩜 그렇게 워킹맘의 마음을 아주 저 바닥, 생각의 뿌리, 그 고뇌의 근원까지 샅샅이 한 올 한 올 알고 있는지. 워킹맘의 한이 잠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양인가? 미라의 심정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진짜... 이건 소설이 아니라 리얼 르포, 생생 다큐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워킹맘인 미라에게 딸 마야가 한 이야기(314쪽)를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꿈을 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의 현재, 실체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맨 끝 페이지에서 글자는 끝나고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지만, 알고 싶다.
벤이는 그래서 어디로 가서 어떤 삶을 개척하는지, 케빈은 결국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는 또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싸매게 되는지, 마야가 쓴 곡의 가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이 담지 못한 저들의 미래를 혼자 그려보면서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인지 실감한다.
한 세계를 만들어 독자에게 던져놓고, 책장이 모두 넘어간 후에도 내내 그 세계 속에서 독자가 여행하도록 만드는 작가라니, 정말... 최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대개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한다. 283쪽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건 워낙 쉽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증오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불공평한 싸움이다. 5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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