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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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소유하되 소유되지 않는 상태. 가지되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

 사랑하되 갇히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게 정리했다.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20년 가까이 내 안에 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내가 간직해 온 물음에 답을 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고 많은 저자가 그러하듯이.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라 더 넓고 깊은, 저 물음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많은 생각들을 낳게 할 거라는 것을.

 

 책 끝에는 저자의 말이 실려 있는데 다 읽은 후에 나는, 저자의 말을 먼저 읽고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할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랬다면 저자가 하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보다 더 잘 듣고, 깊이 읽고 농밀한 그의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들을 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을텐데. 저자의 말을 읽고 나서 책 군데군데를 다시 펼쳐보니 내가 놓친 부분들이 많았구나, 싶었다.

 

 노예의 삶에 존재할 수 없는 단어는 아마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 중 존재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 바로 저 두 가지 단어일터다. 자유와 사랑.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자유, 자신의 혈육을 사랑하는 자유조차 없었던 노예들에게는 물질 뿐만 아니라 감정을 소유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흑인은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짙은 사랑을 하는 것은 노예에게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어떤 흑인은 아무 대가없이 타자의 몸을 먹이고 그들의 영혼까지도 씻기고 먹이며 사랑했건만 그 사랑을 받은 흑인들은 사랑이 아닌 것에 사로잡혀 이웃을 죽는 데에 내어주었다. 사랑하기에 자식을, 그들의 삶을 소유하려 했던 어떤 흑인은 그 자식으로부터 저주를 받기도 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혹한 벌을 받기도 했다.

 

 ‘노예제’ 시대의 흑인 특히 흑인 여성의 삶을 조망하며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이 참혹한 태풍의 눈 그러니까 이 회오리의 중심축은 ‘노예제’가 아니다. 자유와 소유, 사랑과 저주. 동전의 앞뒤처럼 꼭 붙어 다니는 이 가치들이 사람들의 삶을 어떤 모양으로 빚고 깎고 주무르는지. 토니 모리슨은 노예제 시대 속에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융합하며, 기이하고 역동적인 곡선을 그리는 자유와 사랑을 포착해냈다.

 

 어느날 불현 듯 나타난 ‘빌러비드’가 진짜로 세서의 딸인지, 아니면 어쩌다 다른 영혼에게 몸을 빼앗긴 다른 동네 처녀인지 혹은 환상인지 어쩐지는, 이 책의 끝에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녀가 나타났으므로 결국 세서는 분명한 속죄의 기회를 얻고, 덴버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만의 것, 자기만의 사랑(을 줄 사람)을 얻었다.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라든지, 상처의 치유라든지 그런 것은 모두 유령 같은, 별 의미 없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의 끝에서 그렇게 느꼈다. 등 전체에 딱딱한 줄기와 가지를 새기고 평생 사라지지 않을 나무를 심어 넣은 기억이, 내 스스로 자녀의 목을 자르게 만든 공포가 치유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것들은 치유되지 않는다. 그 위에 다른 것들이 켜켜이 덮여, 시간이 흐르매 옛날의 어떤 일로 잊혀지고 말 뿐이다.

그래서 지금, 상처투성이 일지라도 다들 살아간다. 과거의 상처위에 얹을, 조금이라도 나은 어떤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스위트홈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오고 아가 유령이 깃든 집에서 꾸역꾸역 버텨내는 모든 일들은 단지 오늘에, 어제 갖지 못했던 자유, 어제 포기했던 사랑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공포로부터 자유롭고 나 자신을 향한 혐오로부터 풀려나는 일을, 어제 못했기에 오늘 해보려는 것이다. 


 노예제는 이미 오래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더 참혹한 노예제는 아직 우리의 정신 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409쪽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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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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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이제 모든 게 잘 풀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나빠졌다. 레오는 열두 살이고 올해 여름에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에는 비교를 불허하는 장점이 있다. 진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봄에 열린 그 회의에서 투표 결과 페테르 안데르손의 잔류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자 케빈의 아버지는 아들의 소속 팀을 당장 베어타운에서 헤드로 바꿨다. 코치와 후원사와 청소년팀의 우수한 선수들을 거의 모두 설득해 함께 데려갔다. 삼 주 전에 케빈의 가족이 느닷없이 마을을 떠나자 모든 게 또다시 뒤집어졌지만 묘하게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레오가 뭘 기대했을까? 모든 사람이 문득 케빈의 유죄를 깨닫고 사과할 거라고? 후원사와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베어타운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럴 일은 없었다.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31쪽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대개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한다.
 283쪽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건 워낙 쉽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증오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불공평한 싸움이다.
593쪽

 

 


 예전에 프레드릭 베크만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는 사람 내면의 복잡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작가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사람의 복잡성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 반대다. 그는 사람의 참을 수 없는 단순함에 한없이 한없이 집중하고 주목한다.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 아주 단순하다. 우리 대 당신들의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베어타운과 헤드의 사람들만이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스포츠광들만이 이런 대립과 반목에 환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저런 대립과 반목의 구도 속에서 흘러가기 때문에, 절대 저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누구나 생애를 마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포츠광이 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갈등에 동조하고, 편을 가르고, 상대편에 무자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기도 한 동시에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팀의 스타플레이어가 상대 팀에게는 악몽을 선사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 [베어타운]보다 후속작인 [우리 대 당신들[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여기에 더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과 반목이 많이 그려져서일까...? 엔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일까?

 


작가에게 궁금하다. 어쩜 그렇게 워킹맘의 마음을 아주 저 바닥, 생각의 뿌리, 그 고뇌의 근원까지 샅샅이 한 올 한 올 알고 있는지. 워킹맘의 한이 잠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양인가? 미라의 심정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진짜... 이건 소설이 아니라 리얼 르포, 생생 다큐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워킹맘인 미라에게 딸 마야가 한 이야기(314쪽)를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꿈을 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의 현재, 실체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맨 끝 페이지에서 글자는 끝나고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지만, 알고 싶다.

벤이는 그래서 어디로 가서 어떤 삶을 개척하는지, 케빈은 결국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는 또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싸매게 되는지, 마야가 쓴 곡의 가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이 담지 못한 저들의 미래를 혼자 그려보면서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인지 실감한다.

한 세계를 만들어 독자에게 던져놓고, 책장이 모두 넘어간 후에도 내내 그 세계 속에서 독자가 여행하도록 만드는 작가라니, 정말... 최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대개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한다.
283쪽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건 워낙 쉽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증오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불공평한 싸움이다.
5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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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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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겨레신문> 금요 섹션의 서울&에 연재된 기사를 다듬어 엮어 낸 것이다. 연재된 기사의 주제는 서울에 존재하는 문화 유산. 특히, 서울 곳곳에 존재하는 오래된 가게, 생활 공간들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이런 가게들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몰랐다가 이번에, 이 책을 계기로 처음 알았다) 


 반세기 이상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점이나 공간들은 그 자체로 문화재가 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단 몇 년 사이에 가게가 열었다가 문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인 이 서울에서 반 세기를 넘어 100년을 바라보는 가게들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더구나 서울은 1900년대에 지구 전체에서 손꼽을 정도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사건들을 온몸으로 겪어온 도시 아닌가. 이런 난리 속에서 가게를 유지한다는 것은 특별한 신념과 남다른 지혜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운이 좋기도 해야 하겠지만.

 

 특별한 가게들을 취재한 만큼 저자가 취재 결과를 미화할 법도 하건만, 기사의 내용은 솔직하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후예들의 뜻이 서로 맞지 않아 각각 분점을 낸 가게에 대해서도, 자본주의의 냉혹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꺼져가는 촛불이 된 가게의 형편에 대해서도 저자는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가게들의 현재를 가감없이 짚어보며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잘되면 잘되고 있는 대로,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봐야 할지를 넌지시 이야기한다. 


 구하산방의 주인장이 남긴 당부들이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장인들의 탁월한 기술이 어떤 면에서 예술이 되는지, 이 예술을 보존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치명적인 어려움이 닥치는지를 토로한 그의 인터뷰 내용은 아마 당분간 서울과 한국의 오래된 유산들을 대할 때마다 머리에 떠오를 것 같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 가게들 중에 진심으로 이 가게와 이 장인 만큼은 꼭 정책적인 혹은 제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곳은 인장가게-인예랑으로 장인 황보근 님의 신기어린 기술과 곧고 기품있는 신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더 안타깝다.)

 

 기사를 엮어 가는 저자의 명민하고 수려한 문장과 표현 덕분에 책을 읽는 재미가 더했다.
‘조금은 유치한 필치이지만, 자기가 만든 커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철철 넘치는 어느 커피 사랑 알바의 멘트가 구약의 ’계시‘처럼 남아 있다.(195쪽)’라든지 ‘마룻바닥은 걸을 때마다 피아노 페달을 밟은 듯 삐걱삐걱 소리를 내 고풍스러운 목조건물의 풍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251쪽)’, ‘오늘도 숱한 양서들이 파지가 되는 치욕을 겪으며 사라져가겠지만, 변변한 간판조차 달지 않은 지하상가의 헌책방에는 강물이 흐르듯 책이 흐르고 있다.(39쪽)’ 같은 글들이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각 가게들의 매력에 충분히 젖어들도록 이끈다.

 

 책을 다 읽고 내가 작성한 리스트는 여기에 실린 백년 식당들의 이름과 위치다. 추탕집 용금옥은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연탄집은 친구들과, 라 칸티나는 엄니를 모시고 꼭 가봐야지. 
 

도장 일에서 시작해 전각 예술과 서예로 예술 영역을 확장해 간 그는 "손과 머리와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예술은 아름답다"는 존 러스킨의 말을 좋아한다. "손으로 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는 기술이나 기능에 불과하지요. 손기술에다 그 분야의 지식(머리)과 사랑(마음)이 더해질 때 예술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125쪽


홍익문고 창업 60주년 기념 달력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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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 실제로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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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를 읽을 때 내가 가장 주의하는 것은 저자의 사관史觀이다.

 
 역사는 금으로 된 조형물이 아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형상을 하지 않는다. 역사는 만화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로 어떻게 기울이냐에 따라, 통을 어느 속도로 돌리느냐에 따라 만화경 속은 천차만별의 모양을 보여준다. 역사서에 어떤 모양의 역사를 담는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저자다. 희빈 장씨에 대하여 누군가는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여성상이라고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조정을 어지럽힌 사특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당시에 비단결같이 고운 명성을 받았던 인물이나 사건이 현대에 와서는 정말 파렴치하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도 심심치 않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작가의 사관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어떤 사관은 옳고, 어떤 사관은 틀렸다는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사관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이치에 맞고 논증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으면 때로 너무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생각 속에 내가 그대로 노출되어, 과거와 현재의 줄다리기에서 헛다리를 짚을 수 있으니까.

 

 신병주 교수는 그런 면에서 아주 안전한 저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준 그의 사관은 정치적이거나 편파적이지 않고, 다만 차분하고 이치와 도리에 맞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가 쓴 역사서를 주저 없이 읽을 수 있다.
 [참모로 산다는 것]이라는 그의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름을 처음 듣거나 잘 모르는 인물들이다. 조선이 세워진 초기부터 당파로 얼룩진 중기, 후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에 조선을 살다간 많은 참모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나는 이 책의 주제부터가 매우 시사적이라고 생각한다. 1인자, 최고 존엄이나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나보다. 이제 우리는 눈을 돌린다. 1인자 아래에서 그를 보좌하고 때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2인자들에게로, 최고 존엄이 단 하나의 존귀자가 될 수 있도록 그 아래 사사건건 모든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그들에게로 스포트라이트가 옮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바라보는 참모들이 단순히 권력자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2인자가 아니라 ‘참모’다. 그렇기에 경제 전문가인 김신국도 등장하고 외교 전략가였던 이덕형도 등장한다. 나라의 명맥이 끊기려는 찰나에 실리론으로 국가 명맥의 등불이 된 최명길 같은 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제목에는 참모라고 썼지만, 나는 이 인물들을 현재형 리더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저런 리더들이 나서야 하는 때, 저런 리더들이 등장해야 한국이 이 험난한 세태 속에서 조금이라도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인물들의 지혜와 특유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이 책의 장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빼놓으면 안되는 부분이 저자의 창의적인 서술이다. 특히 꼭지 제목이나 소제목들이 정말 재밌다. 내용을 읽을수록 진짜 제목 잘 지었구나, 감탄한다. ‘연산군의 창의적인 악행’은 보자마자 푸핫 하면서 웃었던 부분이다.

 내용도 좋고, 만듦새도 좋은 책은 다 읽고 난 후에도 감동을 준다.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장르를 떠나서 그렇다. [참모로 산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잠시 두었다가 참모의 지혜를 잊었을 때 다시 읽고 감동을 얻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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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원칙 - 최고의 기업에서 배우는 인재경영 전략
신현만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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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팀이 있다. 두 개 팀의 구성원은 비슷하다. 개개인의 스펙도 비슷하다. 두 팀 간에 결정적 차이가 나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 ‘분위기’다. 


 전에 어느 사장님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람 관리는 분위기 장사’라고. 팀 내의 분위기를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그 팀이 능력 좋고 일 잘하는 공동체가 되는가 하면, 정 반대로 일도 못하고 사람 간에 사이도 안 좋은 이상한 집단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경험한 바, 나 역시 수많은 공동체에 속해 있고 그 중, 업무상 집단이나 그룹으로 묶인 많은 조직을 거쳐오고 보니, 저 ‘분위기’라는 말에 매우 수긍하게 된다. ‘나’라는 인물은 똑같은데 어느 집단에서 나는 수완도 좋고 배려도 있는 믿을만한 팀원이었던 적도 있고, 또 다른 집단 속에서 나는 성격도 괴팍한데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영 같이 일하기 껄끄러운 팀원이었던 적도 있다.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나에게 낯선 이야기를 들었던 여러 번의 경험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분위기’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아주 경시되기 쉽다는 사실과 ‘분위기’의 역학을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이다.

 

 성과를 내고 결과가 좋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되려 반대다. 분위기가 좋았다가도 좋은 실적을 내고 나서 이상한 분위기로 변질되기 쉽다. 사람이란 욕심이 있고 개개인의 생각은 마치 우주에 서로 떨어져 있는 행성 만큼이나 제각각이고 피차 간에 거리도 멀다. 별처럼 저멀리 떨어져 있는 팀원들의 사이를 밀도 높은 공기로 빽빽하게 메꾸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분위기. 이 분위기가 우주를 생물이 번창하는 꽉찬 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아무것도 살수 없는 무의 세계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가, 이 분위기 경영이라는 것은. 즉 다른 말로 사람 사이, 사람 관계, 사람 간에 그 보이지 않는 공기들을 일으켜 바람을 만들고 구름을 빚는다는 것은.

 

 [사장의 원칙]은 저자가 관찰하고 분석한 ‘사람 경영’의 노하우를 이 책에 담았다. 조직에도 윈, 개인에게도 윈, 윈윈이 되는 직원으로 가득찬 조직(회사). 꿈만 갖지만 실제로 구글이라든지 저런 로망이 현실화된 조직은 생각보다 많다.
 성공적인 사람 경영을 하고 있는 조직들이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직원을 찾고, 조직 문화와 질서를 창조해가는지를 탐구하는 일은 매우 재미있다. 내가 지금은 사장이 아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사장’의 위치를 단순히 어느 기업의 경영자로 놓지 말고 여러 조직의 수장으로 치환하여 보면 재미는 배가 된다.

 

  [사장의 원칙]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분위기가 좋은 기업(분위기만 좋은 기업 말고...)과 조직이 그 안에서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구성원들을 대하는지 알게 된다. 여기서 읽힌 것은 자연스럽게 ‘내가 속한 조직에 적용해본다면?’하는 구상으로 이어진다. 사장(혹은 리더)이 그에게 속한 구성원으로부터 성과를 일방적으로 뽑아먹는 게 아니라, 오롯이 한 공동체가 되어 장기적으로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가도록 구상하도록 비전과 노하우를 제시하는 책이다.

 

 

혁신은 기본적으로 다르게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각으로 보면 문제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오랫동안 한 부서에 머물러 있다면 그의 업무 성과가 나쁘지 않더라도 자리를 교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럴 경우 단기적으로는 조직 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혁신의 효과가 커질 것입니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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