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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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겨레신문> 금요 섹션의 서울&에 연재된 기사를 다듬어 엮어 낸 것이다. 연재된 기사의 주제는 서울에 존재하는 문화 유산. 특히, 서울 곳곳에 존재하는 오래된 가게, 생활 공간들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이런 가게들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몰랐다가 이번에, 이 책을 계기로 처음 알았다) 


 반세기 이상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점이나 공간들은 그 자체로 문화재가 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단 몇 년 사이에 가게가 열었다가 문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인 이 서울에서 반 세기를 넘어 100년을 바라보는 가게들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더구나 서울은 1900년대에 지구 전체에서 손꼽을 정도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사건들을 온몸으로 겪어온 도시 아닌가. 이런 난리 속에서 가게를 유지한다는 것은 특별한 신념과 남다른 지혜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운이 좋기도 해야 하겠지만.

 

 특별한 가게들을 취재한 만큼 저자가 취재 결과를 미화할 법도 하건만, 기사의 내용은 솔직하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후예들의 뜻이 서로 맞지 않아 각각 분점을 낸 가게에 대해서도, 자본주의의 냉혹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꺼져가는 촛불이 된 가게의 형편에 대해서도 저자는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가게들의 현재를 가감없이 짚어보며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잘되면 잘되고 있는 대로,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봐야 할지를 넌지시 이야기한다. 


 구하산방의 주인장이 남긴 당부들이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장인들의 탁월한 기술이 어떤 면에서 예술이 되는지, 이 예술을 보존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치명적인 어려움이 닥치는지를 토로한 그의 인터뷰 내용은 아마 당분간 서울과 한국의 오래된 유산들을 대할 때마다 머리에 떠오를 것 같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 가게들 중에 진심으로 이 가게와 이 장인 만큼은 꼭 정책적인 혹은 제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곳은 인장가게-인예랑으로 장인 황보근 님의 신기어린 기술과 곧고 기품있는 신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더 안타깝다.)

 

 기사를 엮어 가는 저자의 명민하고 수려한 문장과 표현 덕분에 책을 읽는 재미가 더했다.
‘조금은 유치한 필치이지만, 자기가 만든 커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철철 넘치는 어느 커피 사랑 알바의 멘트가 구약의 ’계시‘처럼 남아 있다.(195쪽)’라든지 ‘마룻바닥은 걸을 때마다 피아노 페달을 밟은 듯 삐걱삐걱 소리를 내 고풍스러운 목조건물의 풍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251쪽)’, ‘오늘도 숱한 양서들이 파지가 되는 치욕을 겪으며 사라져가겠지만, 변변한 간판조차 달지 않은 지하상가의 헌책방에는 강물이 흐르듯 책이 흐르고 있다.(39쪽)’ 같은 글들이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각 가게들의 매력에 충분히 젖어들도록 이끈다.

 

 책을 다 읽고 내가 작성한 리스트는 여기에 실린 백년 식당들의 이름과 위치다. 추탕집 용금옥은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연탄집은 친구들과, 라 칸티나는 엄니를 모시고 꼭 가봐야지. 
 

도장 일에서 시작해 전각 예술과 서예로 예술 영역을 확장해 간 그는 "손과 머리와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예술은 아름답다"는 존 러스킨의 말을 좋아한다. "손으로 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는 기술이나 기능에 불과하지요. 손기술에다 그 분야의 지식(머리)과 사랑(마음)이 더해질 때 예술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125쪽


홍익문고 창업 60주년 기념 달력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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