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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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소유하되 소유되지 않는 상태. 가지되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

 사랑하되 갇히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게 정리했다.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20년 가까이 내 안에 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내가 간직해 온 물음에 답을 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고 많은 저자가 그러하듯이.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라 더 넓고 깊은, 저 물음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많은 생각들을 낳게 할 거라는 것을.

 

 책 끝에는 저자의 말이 실려 있는데 다 읽은 후에 나는, 저자의 말을 먼저 읽고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할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랬다면 저자가 하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보다 더 잘 듣고, 깊이 읽고 농밀한 그의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들을 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을텐데. 저자의 말을 읽고 나서 책 군데군데를 다시 펼쳐보니 내가 놓친 부분들이 많았구나, 싶었다.

 

 노예의 삶에 존재할 수 없는 단어는 아마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 중 존재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 바로 저 두 가지 단어일터다. 자유와 사랑.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자유, 자신의 혈육을 사랑하는 자유조차 없었던 노예들에게는 물질 뿐만 아니라 감정을 소유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흑인은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짙은 사랑을 하는 것은 노예에게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어떤 흑인은 아무 대가없이 타자의 몸을 먹이고 그들의 영혼까지도 씻기고 먹이며 사랑했건만 그 사랑을 받은 흑인들은 사랑이 아닌 것에 사로잡혀 이웃을 죽는 데에 내어주었다. 사랑하기에 자식을, 그들의 삶을 소유하려 했던 어떤 흑인은 그 자식으로부터 저주를 받기도 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혹한 벌을 받기도 했다.

 

 ‘노예제’ 시대의 흑인 특히 흑인 여성의 삶을 조망하며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이 참혹한 태풍의 눈 그러니까 이 회오리의 중심축은 ‘노예제’가 아니다. 자유와 소유, 사랑과 저주. 동전의 앞뒤처럼 꼭 붙어 다니는 이 가치들이 사람들의 삶을 어떤 모양으로 빚고 깎고 주무르는지. 토니 모리슨은 노예제 시대 속에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융합하며, 기이하고 역동적인 곡선을 그리는 자유와 사랑을 포착해냈다.

 

 어느날 불현 듯 나타난 ‘빌러비드’가 진짜로 세서의 딸인지, 아니면 어쩌다 다른 영혼에게 몸을 빼앗긴 다른 동네 처녀인지 혹은 환상인지 어쩐지는, 이 책의 끝에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녀가 나타났으므로 결국 세서는 분명한 속죄의 기회를 얻고, 덴버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만의 것, 자기만의 사랑(을 줄 사람)을 얻었다.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라든지, 상처의 치유라든지 그런 것은 모두 유령 같은, 별 의미 없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의 끝에서 그렇게 느꼈다. 등 전체에 딱딱한 줄기와 가지를 새기고 평생 사라지지 않을 나무를 심어 넣은 기억이, 내 스스로 자녀의 목을 자르게 만든 공포가 치유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것들은 치유되지 않는다. 그 위에 다른 것들이 켜켜이 덮여, 시간이 흐르매 옛날의 어떤 일로 잊혀지고 말 뿐이다.

그래서 지금, 상처투성이 일지라도 다들 살아간다. 과거의 상처위에 얹을, 조금이라도 나은 어떤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스위트홈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오고 아가 유령이 깃든 집에서 꾸역꾸역 버텨내는 모든 일들은 단지 오늘에, 어제 갖지 못했던 자유, 어제 포기했던 사랑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공포로부터 자유롭고 나 자신을 향한 혐오로부터 풀려나는 일을, 어제 못했기에 오늘 해보려는 것이다. 


 노예제는 이미 오래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더 참혹한 노예제는 아직 우리의 정신 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409쪽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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