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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 실제로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서를 읽을 때 내가 가장 주의하는 것은 저자의 사관史觀이다.
역사는 금으로 된 조형물이 아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형상을 하지 않는다. 역사는 만화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로 어떻게 기울이냐에 따라, 통을 어느 속도로 돌리느냐에 따라 만화경 속은 천차만별의 모양을 보여준다. 역사서에 어떤 모양의 역사를 담는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저자다. 희빈 장씨에 대하여 누군가는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여성상이라고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조정을 어지럽힌 사특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당시에 비단결같이 고운 명성을 받았던 인물이나 사건이 현대에 와서는 정말 파렴치하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도 심심치 않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작가의 사관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어떤 사관은 옳고, 어떤 사관은 틀렸다는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사관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이치에 맞고 논증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으면 때로 너무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생각 속에 내가 그대로 노출되어, 과거와 현재의 줄다리기에서 헛다리를 짚을 수 있으니까.
신병주 교수는 그런 면에서 아주 안전한 저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준 그의 사관은 정치적이거나 편파적이지 않고, 다만 차분하고 이치와 도리에 맞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가 쓴 역사서를 주저 없이 읽을 수 있다.
[참모로 산다는 것]이라는 그의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름을 처음 듣거나 잘 모르는 인물들이다. 조선이 세워진 초기부터 당파로 얼룩진 중기, 후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에 조선을 살다간 많은 참모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나는 이 책의 주제부터가 매우 시사적이라고 생각한다. 1인자, 최고 존엄이나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나보다. 이제 우리는 눈을 돌린다. 1인자 아래에서 그를 보좌하고 때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2인자들에게로, 최고 존엄이 단 하나의 존귀자가 될 수 있도록 그 아래 사사건건 모든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그들에게로 스포트라이트가 옮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바라보는 참모들이 단순히 권력자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2인자가 아니라 ‘참모’다. 그렇기에 경제 전문가인 김신국도 등장하고 외교 전략가였던 이덕형도 등장한다. 나라의 명맥이 끊기려는 찰나에 실리론으로 국가 명맥의 등불이 된 최명길 같은 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제목에는 참모라고 썼지만, 나는 이 인물들을 현재형 리더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저런 리더들이 나서야 하는 때, 저런 리더들이 등장해야 한국이 이 험난한 세태 속에서 조금이라도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인물들의 지혜와 특유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이 책의 장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빼놓으면 안되는 부분이 저자의 창의적인 서술이다. 특히 꼭지 제목이나 소제목들이 정말 재밌다. 내용을 읽을수록 진짜 제목 잘 지었구나, 감탄한다. ‘연산군의 창의적인 악행’은 보자마자 푸핫 하면서 웃었던 부분이다.
내용도 좋고, 만듦새도 좋은 책은 다 읽고 난 후에도 감동을 준다.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장르를 떠나서 그렇다. [참모로 산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잠시 두었다가 참모의 지혜를 잊었을 때 다시 읽고 감동을 얻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