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고양이는 없다 -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 3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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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를 믹서기에 넣어 잔인하게 죽인 동영상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이 시끌시끌했었다.

그 동영상을 올린 이는 어린 학생이었다고 했고 출처는 외국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동영상을 제작한 그 끔찍한 몰인성에 치를 떨었고 아무리 외국이라고 한들 우리나라 아이들의 정서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가 들었다.



어쩌면 그럴수도 있다. 어차피 동물인데, 뭐 어떠랴. 통점이 없다고는 하지만 낙지도 산채로 토막내어 잡아먹고 남자아이들은 장난처럼 잠자리 날개를 뜯거나 하지 않느냐고. 어쩌면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어떤 존재라도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그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인지해야만 인간인 것이다.

호흡이 있어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 생명 자체에 대한 존엄을 잃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인간일 수 없다.

인간부터가 그 존엄을 인정받을 때에야 비로소 존재하는 동물 아니던가.



이용한 작가의 <명랑하라 고양이>가 우수교양도서로선정되었을 때, 그 소식이 나는 그래서 기뻤다.

나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뒤지는 초라한 고양이의 뒷모습에서, 그 날쌔지만 조심스러운 몸짓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일깨울수 있기를 바랐다. 따라 읽기만 해도 아련한 애틋함이 느껴지는 제목과 길고양이들을 지켜보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빚은 이 책을 읽기만 해도 고양이는 물론 거리의 생명들이 한결 애처롭고 애틋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고마운 책, 이용한 작가의 길 고양이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 이 책, <나쁜 고양이는 없다>라고 한다. 보송보송한 눈망울로 지그시 상대를 응시하는 영민한 고양이가 표지에 올라 있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에피소드 하나 하나를 읽을 때마다 눈물 지었다. 애완동물이라곤 소라게나 거북이 같은 것들이 전부였고 지금도 그리 고양이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나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사진 속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거리의 생물들을, 생명이기 때문에 따스하게 바라보는 법을 되새겼다.



얼마 전 마을 버스 정류장 앞에 누가 참치캔 하나를 따 놓은채 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건너편에 있던 나는 왜 저걸 저기다 놓고 갔을까 싶어 지켜보았다. 그리고 풀숲을 헤치며 배가 볼록한 암코양이가 나타나 참치캔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무거운 어미고양이의 심정까지 헤아렸을 이름 모를 그 사람이 존경스러웠다.



이제 날이 더욱 추워지고 겨울이 오면 아마 <나쁜 고양이는 없다> 의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내 머릿속에 떠오를터다. 얼지마, 죽지마, 봄이 올거야.... 거친 바람 속에서, 더 거친 사람들의 매몰찬 응대 속에 새끼를 잃고, 어미를 잃었던 고양이들을 책 속에서 끄집어 내겠지. 고양이들에게 들려주었던, 고양이들이 저희들끼리 위로했을지도 모를 그 말이 길고양이의 꽁무니를 볼때마다 내 마음속에 떠오를터다. 아마도 나 역시 마을버스 정류장 앞 가게에서 참치캔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을에 태어나 세찬 겨울 추위에 몸서리칠 새끼 고양이들을 위해서. 새끼들을 돌보느라 겨울 추위조차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는 어미 고양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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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을 만드는 김주원의 DSLR 사진 강의 좋은 사진을 만드는 김주원의 사진 강의
김주원 지음 / 한빛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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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을 장만한 지 어언 1년이건만, 아직도 나는 요 앙큼한 사진기를 데리고 씨름 중이다. 카메라를 구입하기 전에는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사진의 달인이 되고 말테다, 단단히 작정하고 있었건만 언제 그런 다짐을 했었냐는 듯 카메라는 고이 가방에서 잠을 자기 일쑤다. 아.. 더 이상 이럴수는 없다. 멋진 사진을 매일같이 블로그에 올리는 이웃님들의 반짝이는 포스팅에 자극받아 결국 본격적인 사진 입문에 돌입! 믿을만한 파트너 [좋은 사진을 만드는 김주원의 DSLR 사진강의] 를 부여잡고 거침없이 열공 해야지.













이미 몇 권의 사진 관련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사진가 김주원은 여러 관공서 및 업체들에 출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에는 스페인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경력도 탄탄하신 데 심지어 훈남! 프로필 사진보고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지더만요. ㅎㅎ) 책에 소개된 그의 소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2008~2010 네이버 사진 부문 파워 블로거'라고 적힌 부분이었다. 사진가들만을 위한 사진가가 아니라 대중을 위한 사진가, 대중과 소통하는 사진가라는 인상이 강하게 와 닿았다. 그가 출간한 책 [좋은 사진을 만드는 김주원의 DSLR 사진강의]를 내 카메라 공부의 파트너로 삼은 것은 그래서였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의 온기가 어려있는 거의 사진이 좋았을 뿐 아니라 블로그라는 공간을 잘 알고 있고 끊임없이 대중과 만남을 가지는 그의 책은 '블로그를 위한 사진이 필요한', '이야기기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기본적인 카메라 기능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출발하는 것은 이 부류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카메라의 각종 기능을 알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습관'이다. 피사체를 둘러싸고 있는 빛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사진 속에 담을 것인지, 풍경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이야기를 포착해 낼 것인지, 셔터를 누르기 전에 어떤 준비를 갖추어두어야 하는지 등 사진가 김주원이 말하고 있는 것은 카메라 자체가 아니라 사진을 만들어가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내용은 피사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거기에 담아내는 '이야기', 순간을 포착하는 노하우와 감각적인 구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꽤 두꺼운 이 책이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김주원 작가의 멋진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가의 자세에 대한 쏠쏠한 조언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원 작가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찍은 사진을 편집하고 구성하는 데에도 노하우 전수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짐작되는 이 부분은 (내가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멋진 사진을 찍는 것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주어야 가장 효과적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부분이다. 또한 심은식, 권오철, 이상현 등 동료 사진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실어 다양한 사진 감각을 예시로 보여준 내용도 상당히 좋았다.















사진작가 김주원, 그는 정말 그의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그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풍경들을 누비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체득한 '좋은 사진을 찍는 습관'이 실려 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동기 부여에 충분한 멋진 사진들을 감상하며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굳이 사진을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도 한번쯤 읽어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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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필날 - 오늘은 나의 꽃을 위해 당신의 가슴이 필요한 날입니다
손명찬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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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모를 쓴 하얀 얼굴의 남자는 종이처럼 나풀거리며 꽃 한송이를 공손히 들고 날아갑니다.



누구의 가슴으로 가는 걸까요?





가을이면 어김없이 가을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사람의 가슴에도 어김없이 마음 꽃을 피우기 위해 찾아가는가 봅니다.





황새가 하얀 보자기에 쌓인 아가를 입에 물고 날아오더라는 신비스러운 옛이야기처럼

소리없이 꽃을 심고 가는 저이의 발자국이 가슴에 스며들면 여기도 '꽃필날'이 되겠지요.











월간 좋은생각의 편집장이자 에세이 [꽃단배 떠가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손명찬 님의 신간 [꽃필날]을 손에 쥐던 날은 소국 한다발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푸짐했습니다. 어떤 곳은 시로, 어떤 곳은 가벼운 그림으로 마디 마디 꽃씨를 품고 있는 에세이 [꽃필날]을 읽는 그 한동안의 시간은 가을같기도 봄같기도 했습니다. 꽃망울이 막 오르는 싱그런 줄기같은 한 토막, 아련한 오렌지 색 햇살 아래 등을 어루만져주는 바람 같은 한 토막이 번갈아 실려 있어서 그랬지요.








[좋은 생각]의 편집장은 그는 지난해부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좋은생각 홈페이지에 글을 연재해왔다고 합니다. 기쁘게 사는 글, 인식을 뒤집어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글, 우아한 재치로 웃음 주는 글, 짧지만 강하게 다가와 눈물을 쏟게 하는 글 등등 그의 글은 많은 회원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았다고도 하지요. 한 주의 시작을 마음 꽃을 피우며 열게하는, 그래서 꽃이 끊임없이 피고지는 소담한 화단 같은 생을 보내게 하는 그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 에세이 [꽃필날] 입니다.





뒷표지에 적힌 책 소개와 회원들의 감상평은 너무 믿지 마시기를. 식상한 소개의 글에 실망하거나 섣부르게 평가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소개보다 훨씬 더 반짝이는 글들이 담겨 있으니 마음으로 읽어가기 전에는 [꽃필날]이 피워 올리는 꽃을 상상하지 마세요.














철학과 종교, 유머와 위로, 자연과 사람을 손명찬 작가 특유의 이지적이면서도 따스한 언어로 풀어낸 글과 시에 읽는 사람 누구라도 삶의 꽃을 피워내길 기원하는 그의 소망이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감동과 격려'는 너무 둔하고 멋없게 이 책의 느낌을 전하게 될 것 같아서 쓰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누군가 수줍게 내미는 꽃, 빨간 꽃잎만 오지 않고 향기부터 다가와 황홀하게 한 뒤에 풍성한 꽃송이, 든든한 줄기까지 다가와 안기는 것처럼, 그래서 웃음도 눈물도 나는 것처럼 [꽃필날] 이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걸 믿으세요...



기쁜 생각에는 기가, 예쁜 생각에는 예가 숨 쉬는데 말이지....

(본문 중에서)







밑도 끝도 없이 감상적으로 흐르기만 한다면 반짝하고 사그러지는 불꽃이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철학적이고 이치적이고 순리적입니다.

날카롭게 각으로 세우거나, 무뚝뚝한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은 따스한 지성.







봄과 여름, 가을에만 꽃이 피던가요.

겨울에도 꽃이 핍니다.

곽재구 시인이 겨울을 '끌어안으면 오히려 따뜻한 것'이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이치와 순리로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겨울이든 언제든 꽃송이 같은 좋은 생각이 가슴에 피어나지 않을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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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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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조한욱 교수의 칼럼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작년 11월부터 한겨레 신문에 '조한욱과 서양사람'이라는 칼럼을 연재해온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역사의 에피소드들을 우리 사회의 거울로 삼아 왔다. 당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다분히 드러나는 그 선명한 주장이 어쩌면 이 칼럼의 존재 이유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저자의 정치사회적 목소리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가 들려줄 낯선 역사 이야기 때문이었다.





페트라르카가 몽방투에 올라 자연의 장엄한 풍경 앞에 남긴 성찰의 메시지, 완전한 지성인이었기에 비난에 매몰된 크리스티나 벨조이오소, 1988년 독일 크산텐에서 펼쳐진 황홀한 평화의 콘서트. 그의 칼럼마다 무대로 삼은 에피소드들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당당히 드러나 있는 표피보다 그 속내가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법. 이미 지나간 시간 속을 조금 더 들춰보고 쪼개며 서양 역사의 깊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만나는 일은 역시 재미있다.





그러나 재미는 어디까지나 저자가 집어 낸 서양 역사가 우리 사회 부조리함의 판박이임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만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와 치정자들에게 진절머리를 칠 수밖에 없게 하는 정치사회의 각종 사건사고들이 서양 역사 속 깊숙히 숨어있던 이성의 야만의 재현임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저자의 칼럼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숨이 튀어나오는 우리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장 사이사이 들어박혀 있는 조소가 매번 뒷맛을 텁텁하게 한다.






그래서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게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왜 단순히 역사(와 그 해석)에 대한 궁금증만으로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후회할 만큼 어려웠다. 저자가 꼬집은 '이성의 야만'은 분명 여기에 있다. 국회에 있고, 청와대에 있고, 거리에 있고, 신문에 있다. 그러나 그 이성의 야만이 특별히 누구들에게만, 어느 한 쪽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이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비를 가려야 할 때, 잘잘못을 따지고 생산적인 향방을 모색해야 할때 '야만'은 더 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잘못은 꼬집어야 하나 그것이 조소가 된다면 그것 역시 이성의 야만 아닌가. 부조리를 지적하고 개선을 부르짖는 목소리에 덕이 없을 때에도 역시 야만은 여지없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공자는 정치를 正治라고 했고 장자는 덕이 아니면서 오래 가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비단 정치가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 그 쓴소리에 동조하거나 혹은 반박하는 대중들까지도 正과 德을 생각해야 하는 게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어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딛고 살면서 너만 잘못이 있고 나만 옳을 수 있나. 품위있게 잘못을 짚어내면서도 상생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길은 정말 없는 걸까. 내 눈에도 들보가 있으니 너도 티끌 빼고 나도 들보 빼자, 이런 형태의 공존은 불가능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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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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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두던 중이다. 몹시 진지한 표정의 상대는 나름 무척이나 예리한 계산을 펴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장기판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차를 대각선 다섯 칸 앞으로 움직이더니 '장이야!' 외친다. 득의양양한 표정. 아놔..... 이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야, 차를 그렇게 움직이면 어떡해.'라며 다소 황당하고 불쾌한 낯을 하거나 '이건 뭐, 장기의 장도 모르는 녀석일세.'하며 피식 웃을터다. 그러나 가사사기의 중고매장 부지점장으로 있는 히구라시는 맞장구를 치며 짐짓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턱을 괼 것이다. '와... 대단한 한 수네. 완전히 당해버렸는걸.'





소년만화에서나 만났을 법한 이런 인물들이 중고매장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가사사기의 중고매장. 근데 역시나 예상대로 장사는 잘 안된다고. 개업 2년 동안 꾸준하고 적자를 유지해왔다니 이렇게 성실할 수가 없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아니 어떻게 적자를 면치 못해도 추리를 계속할 수가 있어?'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사실 중고매장의 사장 가사사기와 그의 꼬임에 홀랑 빠져 동업자가 된 부지점장 히구라시는 적자 따위 겁내지 않는다. 소면과 계란에 비빈 밥으로 연명하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탐정본능을 외면할수 없었다. 뭐, 중고매장 운영은 그냥 부업이고 사실 본업은 추리다. 각종 추리소설과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듯 정확도 0의 추리를 신들린 듯 펼치는 가사사기와 그의 옆에 왓슨처럼 동행하며 그가 저지른 대책없는 추리의 뒷감당을 해주고 있는 히구라시는 그래서 앞으로 얼마가 더 적자가 나더라도 아마 중고매장을 닫을 계획이 없을 거다. 근데 이봐들, 계속 적자만 났다는데 밥에 비벼 먹을 계란은 제대로 사 먹을수나 있는거야?















미치오 슈스케의 신간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원제는 '가사사기 일행의 사계절'이라고 한다. 물론 일본에는 일본만의 정서가 있어서 저런 제목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ㅜㅜ 하지만 '일행의 사계절'에는 '수상한 중고매장'이 담고 있는 매력이 없다. 센스 넘치게도, 이 발랄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발현한 새로운 제목을 지은 북폴리오에게 박수를!!!) 그간 미치오 슈스케는, 환히 드러나는 외형에 가려져 있는 어둡고 음침한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미처 몰랐다. 이 사람 이렇게 발랄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역자조차 새로운 미치오 슈스케를 읽으며 열광했을 정도라고 하니 이제는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의 그에게 비비드 그린, 민트 블루, 핫 옐로 정도의 상큼하고 귀여운 색채를 입혀주어도 좋겠다.





이상한 놈이 무지막지한 핑크 메기를 끌어안고 있는 표지 이미지부터가 일단 수상하고 파리 한 마리가 유유히 나는 풍경이나 적자를 면치 못해도 추리를 멈추지 않는다는 카피도 허 참 수상하다. 이래저래 수상한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은 참 수상한데 그래서 참 재미있다. 원래 모호하고 정체가 불분명한 것들은 궁금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타당하고 발랄한 진상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오~ 재미있어!'라고 외치게 된다.





가사사기와 히구라시, 그리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쉬크한 여중생 나미가 있는 그들의 중고매장이 적자인 이유는 국가 경제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가게 입지가 좋지 않아서도 아니다. (뭐 어느 정도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문제는 고객들이나 거래처와의 사이에 반드시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청동상 방화 사건, 저금통 파손 사건 등 각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한번씩은 꼭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그 때마다 반드시우주같이 넓은 가사사기의 오지랖 레이더가 작동한다. '앞으로 한 수면 체크메이트.'를 외치며 사건 해결에 고심하는 가사사기. 근데 이 체크메이트가 다른 별로 출장을 간 모양인지, 가사사기의 추리는 과녁을 제대로 맞히는 일이 단 한번도 없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그의 상상의 나래를 현실화시켜 가사사기의 행복과 나미의 섬세한 성장기 감수성을 지켜주는 것은 히구라시의 몫이다. 고생이 참 많다.



















요상하고 수상한 가사사기 일행이 말려드는 사건들은 모두 '가족'에 대한 일들이다. 남편을 잃은 뒤 아들을 키우며 무척이나 까칠하고 못된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바짝 여위어 가는 가여운 스미에(봄 에피소드), 전통있는 목공소에 들어가 제자로 입문하지만 여자로서는 힘든 작업 때문에 '가족'을 핑계로 공방'가족'을 저버릴 수 밖에 없는 사치코(여름 에피소드), 이혼과 함께 집을 나간 아빠와 무정해진 엄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미(가을 에피소드), 양아버지와 진심으로 가족이 되어가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소친(겨울 에피소드). 모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맺어진 작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모든 사건마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주인공들이 있고 다른 가족들의 사랑과 이해 그리고 가사사기와 히구라시의 활약 속에 그들은 상처 받은 마음에 위로를 얻고 길을 찾는다. 약간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꽤나 천재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요상한 인물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 속에는 작가가 전하는 위로와 농담이 한겨울 호빵처럼 듬직하고 뜨뜻하게 들어가 있다.







뭐가 좋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진틀 속의 사진을 쳐다보면서

이 세상의 다양한 일이 가능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302 _ 히구라시의 독백 중에서









무심하고 아무 생각없는 한량인 듯 하지만 정의감 넘치는 매력남 가사사기, 손재주가 상당하고 지능지수와 감성지수, 잔꾀지수가 가히 월드클래스인 히구라시, 예민하고 당돌하지만 그 당돌함이 사랑스러운 나미. 작가는 이런 녀석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들의 중고매장을 개업했다고 했다. 만약 작가의 의도가 이 가사사기 일행들의 팬덤을 형성하려던 것이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명중했다. 어떡하지. 가사사기 중고매장의 팬이 될 것만 같다. 나도 나미처럼 날이면 날마다 여기로 출근하련다. 미니 트럭의 짐칸에 히구라시와 사이좋게 구겨 앉아 배달도 가고 말도 안되는 물건도 사오면서 가사사기의 오지랖에 편승해 나의 만만치않은 오지랖을 겨뤄보고 싶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자네들 혹시. 해외 영업을 생각해 본 일은 없나? 일본의 유명 프랜차이즈 '가사사기의 중고매장'. 어이쿠. 생각만 했을 뿐인데 벌써 망조가 보이는구만. 뭐 그래도. 적자면 어때. 추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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