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에 표지에 등장하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고 잠시 기분이 나빴다.

아니야, 이런 미인형이 아니잖아. 좀더 두툼하고 풍성한 살집을 자랑해야지. 어디 이렇게 매끈하고 수려한 등과 다리 라인을 자랑하는 여인을 당시에 미인이라고 쳤겠어. 응??

그러나 이 작품은 1890년대의 작품이었고, 이 그림 속에서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남과 여가 피그말리온과 그의 조각상 갈라테아 라는 것을 안 것은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 건 남자가 피그말리온이고 여자가 갈라테아인데, 이렇게 매끈하고 아름답게 생긴 조각상이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기도 덕에 진짜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가 아니다. '스스로의 창조물에 욕정을 품고 마침내 사랑을 이루려는 남자를 화가는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확실히 이는 인형에 대한 사랑이나 시간과도 통한다.' 중요한 게 여기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구현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사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이 둘의 뒷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욱 아름답지 않아진다.




당신은 그리스 신화를 알고 있나? 얼마나 알고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잘,... 사실은 전혀 모르는 쪽에 가깝다.'라고 대답을 해야 한다. 물론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등등 이런 유명한 이름들은 알고 있지만 그리스 신화집을 읽다가 집어치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이름만 알고 있는 게 전부. 왜 번번이 집어 치웠냐고 물으신다면,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복잡한 족보 때문이라고 하자. 다 접어두고 일단 제우스가 마음에 안 든다. 헤라도 그렇고. 막장 연속극을 이미 오래 전부터 찍고 계신 두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 추천만화나 소설로 그리스 신화가 등장할 때면 내심 긴장이 된다. 혹시, 동심을 어둡게 하는 이상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응? 하며 걱정을 하곤 한다.

나에게 그리스 신화란 이런 것이라서, 참으로 알기도 버겁고 이해하기는 더더욱 버거운 존재였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이 신들을 그토록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그려낸 화가들의 그림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프로디테가 불륜의 화신이라면서 왜 그리 아름답게 그려놓았는가? 불륜에 재주가 있으려면 절세미모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라도 있었던 거야?

이렇게 그리스 신화 앞에서만은 유독 배배 꼬여있던 나의 시선을 시니컬한 유머로 툭툭 건드린 사람이 [명화의 거짓말]의 저자 나카노 교코다.



와세다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는 나카노 교코는 [무서운 그림]이라는 전작을 통해 독특한 미술 읽기 시각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그리스 신화를 페이지 위에 올리고 난도질을 했다. 그녀에 의하면 명화 속에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 대부분은 절대로 정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성애 앞에 앞뒤 못가리고 무너지는 인물들이 다수이며 결벽증이 엄청나다거나 아예 도덕 관념을 상실한 존재도 있다.

그런 그리스의 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사람이. 그들은 위엄있고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신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지만 본질은 인간과 같다.

나카노 교코는 먼저 신화를 들어 설명한 뒤 그림을 한 장, 한 장 들어 이해를 돕는다. 화가들이 완성한 환상적인 그림 속에 인간의 추접한 모습을 간직한 그리스 신들이 있다. 하늘 위에 운집한 그리스 신들의 영광도 그녀의 해설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대신 나카노 교코의 블랙 유머를 입는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해묵은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이 그리스 신화 아닐까. 화가 뿐 아니라 수많은 음악가, 조각가 등 엄청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그리스의 신들 속에는 아름답지 않은 인간이 있다. 책 첫 장에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진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담다. 하지만, 거짓 역시 그렇다.' 진실과 거짓, 둘 다 아름답다. 그러나 진실은 아프고 거짓은 즐겁다. 아마 그래서 그리스 신화는 오랜 세월 수많은 예술 작품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 왔는가. 아프지만 아름다운 진실보다 즐겁고 아름다운 거짓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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