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죄악, 탐식 - 죄의 근원이냐 미식의 문명화냐
플로랑 켈리에 지음, 박나리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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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뉴스를 읽다가 경악했다. 뉴스의 주된 내용인즉, 살이 일단 찐 후에는 어떻게든 살을 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찌기 전에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세상에나... 전세계 다이어터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많은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삼순이 말처럼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너무 많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것이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쉽다. 많이 먹지 말고 맛있는 것을 조금만 먹으라고. 어떤 여자 연예인은 '딱 세 입만 맛있다'고 말하며 그 뒤로는 맛이 없으므로 더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해 그 프로를 함께 시청하던 나와 친구 모양을 코웃음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맛있는 음식일수록 더 많이 먹게 되지 않던가. 입에 쓴게 몸에 좋다는 건 상식이지만 입에 달면 손이 더가는 것 역시 상식이다. 미식은 대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까.



이 미식과 대식, 나아가 먹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욕망인 탐식은 그래서 인류 역사와 개인의 삶 속에서 아주 긴밀한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나보다. '식'이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탐식'의 역사 또한 전혀 이상하거나 생소할 게 없다. 프랑스 역사학자 플로랑 켈리에는 이 탐식의 역사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냥 많이 열렬히 먹어치운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다. 탐식을 죄라고 규정한 유럽의 종교 사회에서 유럽인들은 외면할래야 할 수 없는 '배부름과 맛'의 세계에 어떻게 탐닉해 왔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 역시 종교적인 엄격함과 그 속에 은밀히 자리해온 욕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제7대 죄악, 탐식] 이다.




책은 중세의 신학자들이 규정한 '탐식은 죄'라는 명제에 대한 해설로부터 출발한다. 성경 어디에도 탐식이 죄라는 부분은 없었다. 먹어선 안될 음식을 구분한 하나님의 법은 신학자들의 필요에 의해 어느새 먹는 것을 탐하는 것이 곧 죄라는 해석으로 귀결되고 이러한 신학자들의 규율은 이후 유럽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에도 프로테스탄트 문화인 북유럽과 가톨릭 문화인 남유럽에서 식사와 미각적 쾌락의 관계는 여전히 다르다. 덴마크에서 돼지고기는 맛보다 유연성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사회학자 클로드피슐러가 진행한 최근의 조사(2008)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잘 먹는다는 개념을 쾌락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식품의 산지와 연결시키는 반면 영국에서는 영양분과 비타민, 약으로서의 식품에 연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본문 p85~86

 

 

가톨릭이 지배하는 유럽에서는 먹는 것을 신분에 따라 나뉘었다. 평민들은 언제나 배를 곯았던 탓에 '코케뉴'라는 환상의 나라에 대한 민담이 널리 퍼졌다. 반면 귀족들은 무한정 먹고 살을 찌우는 것으로 미덕을 삼았다. 특이한 것은 신부와 같은 성직자들 역시 귀족처럼 엄청난 식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탐식을 죄로 정의하는 규율에 많은 해석의 차이를 용납해, 식문화가 비교적 자유로왔던 가톨릭 시대는 15세기를 지나면서 금욕적이고 원칙적인 개신교와 부딪힌다. 탐식에 관대했던 가톨릭을 비난하는 개신교의 등장으로 유럽의 탐식 문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이후 점차로 '대식'은 경멸 당하고 '미식'이 사회 주류들에게 각광을 받으며 오늘날에 이른다.

 

저자는 2000년에 걸친 유럽 탐식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를 위해 문학, 미술 등의 자료들을 꼼꼼히 열거하고 인용한다. 특히 책에 실린 선명한 미술작품들은 음식에 탐닉해온 유럽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재미있는 점은 그간 중세 미술작품들 대부분이 아름다움이나 위용, 감동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에 실린 탐식의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감동보다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게 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음식에 심취해 정신없이 먹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울 턱이 있나. 그들 스스로 죄라고 못박은 탐식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고발당하고 있다.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방탕한 대식과 16세기 이후 발달한 미식 문화가 이미 지나간 역사라고만 할수는 없다. 탐식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거리에 가득찬 온갖 음식점과 티비 광고에서 연이어 흘러나오는 식품 광고들. 신문과 잡지 심지어 블로그마다 맛있는 음식점과 먹음직스런 식품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마시고 씹고 먹고 즐기길 열렬하게 권하는 한편에선 건강을 위해 살을 뺄 것을 걱정하는 이 사회가 두툼한 살집을 자랑해야 아름답다고 여겼던 유럽 중세와 크게 다를 것이 무언가.

 

 

식욕과 미각적 쾌락이라는 섭리는 본능적인 신체적 욕구와 번식하고 번성하여라는 신성한 명령에 부응하는 셈이라고 했다. 예수회 신부 뱅상 우드리가 서술한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자연은 우리가 필수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생명을 유지해야 하게끔 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이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식물의 섭취는 미각의 쾌락과 연관되어 있는데, 미각의 쾌락이 없었다면 약을 먹을 때 느끼는 혐오감을 음식을 먹을 때에도 느꼈을 것이다."

본문 p99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먹는 즐거움이 인간으로서의 다른 존엄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죄가 아닐까. 먹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든 삶이 먹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칠면조 두 마리를 먹어치우고 저녁 식사를 하러가는 왕이나 좋은 식재료와 요리법, 훌륭한 쉐프들을 줄줄이 꿰면서 그와 같은 해박한 식견 없이 음식을 먹는 것은 저급하다고 폄훼하는 미식가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제7대 죄악, 탐식]은 '먹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본능적이고 절대적인가를 알려주는 동시에 어디까지 사람을 추하고 방탕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 맛(식)을 사랑은 해도 맛에 미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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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7
이현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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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소.....

이렇게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은 또 처음이었소.

문장도 쉽고 내용도 재미있고. 그런데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소.

 

나는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절박함에 더하여 제대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며 뭔가 제대로 알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반문이 들곤 했소. 아마 로쟈씨가 말한 '자신을 내던질 용의'가 없는 독자여서, 차마 빨간약은 삼킬 수 없는 무리라 그런가 보오.

 

특히 가장 힘들었던 실재에 대한 열정.

 

아, 물론 현실을 뛰어넘는 폭력적인 자극 앞에 불현듯 실재를 깨닫게 된다는 것, 그래서 그 폭력을 실재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한 부분은 이해가 가나 (혹시 이 부분이 내가 오해한 부분이라면, 이해를 구하오. 내겐 이렇게 이해되었소.)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소. 실재를 자꾸 그런 폭력적인 사건의 계기로만 경험하게 된다고 연결짓는 것 같아서 내키지가 않았소. (나는 뼛속까지 비폭력주의자라오. 개혁은 필요하되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것이 좋소) 이론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내가 그 이론에 동조할 수 없을 때 나는 독서가 고역으로 순식간에 전환되는 것을 몇 번 겪었는데 그 기억하기 싫은 감각을 이 책이 다시 알려주었소.

 

하지만 일단 한 번 표지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본 책은 내 서연의 대상이라, 나로서는 책이 나를 놓기전에는 먼저 놓을 수가 없는 것을...... 그러나 기쁘고 슬프게도 책은 단 한번도 나를 먼저 놓아준 일이 없소.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도 마찬가지. 차라리 정말 재미도 유익도 아무것도 없는 책이었다면 뭬얏!!! 하며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소. 분명 재미는 있는 책이었으니까.

 

이 책을 계기로 만나게 된 인물들이 굉장히 많소. 뭐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영화감독과 저자들을 비롯해 당연히 길잡이 로쟈씨의 주타겟이었던 지젝, 그리고 나를 이 책으로 잡아끌었던 로쟈씨. 나는 지젝을 만난 것보다 이렇게 진하고 깊은 연구심으로 독자들에게 지젝을 알려준 로쟈씨가 더 대단해보이오.

그런 대단한 로쟈씨 앞에 솔직해지자면,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소.

잠시 내 마음의 고향인 문학의 숲에서 뛰놀고 있는 중이오. 문학의 샘에서 첨벙대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나는 로쟈씨가 안내해준 지젝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고 있는 중이니 책망은 아껴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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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
마이클 모퍼고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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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보다 사람이 못한 곳이 있다면, 전쟁터 말고 어디를 떠올릴 수 있겠어.

지금이야 핵 미사일 한 방 날리겠다는 으름장을 놓을 기세만으로도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 발발 기는 세상이지만 말야.

그때는 정말 그랬을 것 같아. 대포를 옮기는 말이 다치건 죽건, 사람이 여기저기서 쓰러지건 말건, 일단 중요한 건 적지에 포탄을 시원하게 날려줄 대포였겠지. 진흙에 발이 얼고 피로와 굶주림에 차례로 동료들이 죽어나가도 사람도 동물도 어쩔 수가 없이 그 상황을 견디고 내가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세상이었을거야.

 

마이클 모퍼고의 다른 소설 [굿바이 찰리 피스풀]도 그랬고, 아마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그럴거라고 생각해. 전쟁, 그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비극을 겪은 사람들의 실화를 길어내 거기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재탄생시키는 작가. 나에게는 이 작가가 그래. [굿바이 찰리 피스풀]을 정말 재미있게 그리고 애틋하게 읽었기 때문에 말야, 도입부, 구성, 인물과 엔딩까지 다 내 마음에 진하게 남은 작품이라 나는 그 작품 한 편에 이 작가 아저씨가 참 좋아졌어. 무엇보다도 있잖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 이미 다들 잊어버린채로, 있을 곳을 잃고 시간의 강바닥 아래로 깊이 가라앉은 일을 애써 건져내는 그 아저씨의 노력이 참 대단해보여. 묘비명 하나, 빛바랜 작은 사진 한 장도 그냥 지나치질 않아. 거기에 얽힌 아련한 기억들, 분명 그 때 그 시절에 그 세계를 온통 차지하고 있었을 많은 이야기들을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우리 눈 앞에 복원해내는 그 솜씨는 참 멋있어.

 

사실 [워 호스] 벌써 30년이나 된 작품이야. 나랑 나이가 같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이 소박한 이야기가 더 짠하게 느껴지네.

어른들을 위한 전쟁소설이라기보다, 아이들에게 더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정서를 가진 동물소설이야. 조이라는 말이 주인공이고, 이 멋지고 고귀한 생명체는 인간들의 전쟁에 휘말려 갖은 고생을 다하게 돼. 가엾게도 말이지. 그래도 사람 복은 타고난 말인가봐. 첫 친구였던 앨버트를 시작으로 조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그 중에 프랑스 소녀 에밀리의 애정은 특히나 대단했지. 앨버트가 아직 소년일 적에 조이가 군대에 팔려갔는데, 이후에 조이는 군마로 프랑스 격전지를 헤매다 영국군령의 동물병원으로 오게되고 거기서 든든한 청년으로 자란 앨버트와 조우해. 그리고 그 다음은, 모두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대로 둘은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고 평안한 일상에 안착하지.

 

전쟁에서 프랑스군, 독일군, 영국군의 부대를 두루 돌면서 조이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죽음을 접해. 사람이고 말이고 구분없이 죽어나가는 게 전쟁터잖아. 조이는 존경하는 동료였던 탑손도 잃고 조이가 좋아했던 군인들의 죽음도 지켜보았어. 그 과정에서 조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정신적 고통을 느꼈는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아. 다만 작가는 조이의 귀로 들어오는 군인들- 인간들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남겨.

 

"너희는 친구니까 말해 줄게. 나는 연대에서 유일하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야.

미친 건 다른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모르고 있지.

전쟁에 참가해 싸우면서도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몰라. 그게 미친 거 아니니?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를 수 있지? 상대편이 다른 색깔의 군복을 입고,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그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하지.

너희 둘은 내가 이 어리석은 전쟁에서 만난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이성적인 동물이야.

너희가 이곳에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도 나처럼 끌려왔기 때문이겠지.

용기만 있다면 이 길로 도망가 다시는 안 돌아올 텐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군인들이 나를 잡아 총으로 쏴 죽일 테고,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님은 평생 수치스럽게 살아야 할 거야.

난 미치광이 노병 프리드리히로 행세하며 어떻게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거야."

p130

 

독일군의 초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한두 시간 뒤에는 서로를 죽이려고 발버둥 칠 거야.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지 하느님만이 아시겠지.

내 생각에 하느님도 그 이유를 잊어버렸을지 몰라. 잘 가게. 우리가 직접 보여준 셈이야. 그렇지 않나?

서로 믿기만 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얼마든지 풀 수 있다는 것 보여 준 거야. 믿음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게 전부인데, 안 그래?"

키 작은 영국군은 밧줄을 잡으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한두 시간 정도만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 준다면 이 불행한 상태를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텐데."

p 158

 

전쟁에 뛰어든 군인들 대부분이 왜 이 전쟁을 하고 있는지 몰라. 심지어 마이클 모퍼고가 그린 전장에는 죽이고 파괴하는 걸 즐기는 군인은 아무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 돼. 엄청난 생명들을 희생하면서 말이야. [굿바이 찰리 피스풀]에서도 그랬지만, 마이클 모퍼고는 이런 참상에 대해 꼭 신에게 물어보고 싶나봐. 신이시여, 당신은 이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겠지요. 왜 이런 죽음이 필요한가요. 이 참상이 남긴 상처와 고통과 희생은 어디서 치유받고 채움받아야 하나요.

 

종전 후에, 조이는 앨버트와 함께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와. 앨버트는 사랑하던 메이지와 결혼을 하고 예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 그런 평안한 마지막을 전하면서 조이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아. 우리는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진짜 영웅들은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 묻혀 있다...... 가슴 한 가운데가 가라앉는 슬픈 말이야.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가 개봉되어다고 해. 사실 나는 소설이 너무 동화같아서 영화가 그리 기대되지는 않아. 어떤 분위기의 영화일지 대충 짐작이 가서 그럴까. 하지만 영화화로든 무엇으로든, 돌아오지 않고 거기 묻힌 영웅들을 추억하는 이야기는 늘 환영이야. 그것이 이렇게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아련함을 남겨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저리더라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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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분 기적의 독서법 - 인생역전 책 읽기 프로젝트
김병완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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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독서의 해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이보다 더 강력하게 애독, 탐독을 넘어 광독을 하라고 부채질을 하는 책이 있을까.

매일 오전과 오후, 각각 48분은 반드시 책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내가 책에 몰입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렇게 3년을 보냈을 때, 바르르 떨리던 물이 비로소 100도에 이르러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독서가의 삶도 끓어오를 것이라며 저자는 확신을 넘어 광신한다.

 

 

3년간 천 권의 독서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3년이란 기간 동안 천 권의 책을 읽으면 삶의 임계점을 돌파하게 된다.

삶의 임계점이란, 의식과 사고가 비약적으로 팽창하여 인생이 획기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을 말한다.

이렇게 획기적인 인생역전에는 3년이란 한정된 시간 동안 천 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P26

 

 

독서의 유익함에 대해 말해 무엇하랴. 입만 아프고 몸만 지친다. 이 세상에서 미쳐도 되는, 아무리 심하게 미쳐도 해로움이 단 하나도 없는 그것이 바로 책 아니던가.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요 눈앞의 진수성찬도 먹어야 맛이다. 독서의 유익함에 대해 아무리 골백번 사무치게 들어도 독서의 세계로 거침없이 뛰어들어야만 책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법. [48분 기적의 독서법]의 저자 김병완은 그래서 책 권하는 책을 지었다. 독서에 미치면 인생이 바뀔테니 나처럼 해보라고 대단히 진지하게 강권한다.

 

삼성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일하다 어느 날 문득 깊은 허무를 느낀 후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도서관에 처박혀 책에 미치기 시작했다는 저자. 그는 본인의 독서경험에 비추어 책과 거리가 먼 혹은 나름 책을 가까이는 하지만 특별한 변화와 지혜를 길어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침저녁으로 48분씩 책에 몰입해 3년간 반드시 천 권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3년내에 천권을 읽으면 반드시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48분 기적의 독서법을 실천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실재적인 능력이나 재주, 기술이 무조건 향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고와 의식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식의 도약이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고,

끌려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P280

 

 

책에 미쳐버리라는 권고를 시작으로 다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책 읽는 시간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다독을 가능하게 하는 속독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차례대로 정리한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결론을 내린다. 3년간 천 권 독서, 그에 필요한 매일 48분. 이것은 [48분 기적의 독서법], 이 한 권의 동기이며 결론이자 전부이다.

 

왜 천 권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거는 없다. 그저 천 권 정도 읽어야 사유의 임계점에 다다를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왜 3년 인가에 대한 논거도 불충분하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 속에서 책을 읽을만한 시간을 긁어모았을 때 천 권 독서에 필요한 시간이 3년이라서 그렇단다. 왜 굳이 48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도 명확치 않다. 오전, 오후 12시간 동안 각각 짬을 내볼 수 있는 시간을 모았을 때 48분이라고 저자가 계산했을 따름이다.

 

이 책에서 명확한 것은 '인생을 위해 다독하라'는 것과 다독을 달성하려면 '집념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이 두 가지다. 그래서 저자는 [48분 기적의 독서법]을 읽은 독자가 반드시 3년간 천 권을 독파하도록 책 전반에 걸쳐 다독을 위한 동기부여에 온 힘을 쏟는다. 맹목적이다 싶을 만큼 다독을 권한다. 1년에 백 권 읽는 이가 많지 않은 요즘, 3년간 천 권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명민한 두뇌나 타고난 집중력이 아니라 반드시 읽고 말겠다는 집념과 끈기임을 체득한 저자는 '다독'의 의지를 다지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그래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왜 천 권인지, 꼭 3년이어야 하는지, 반드시 48분이 필요한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논거는 없어도 좋다. 명색이 2012 독서의 해인데, 이렇게 미친듯이 독서를 권하는 책으로 벽두를 시작하는 것만큼 어울리는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스테디셀러가 된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수많은 천재와 위인들의 인문고전 독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48분 기적의 독서법]은 책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일단 읽고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으라고 말한다. 어떤 무익한 책이라도 거기에는 무익에서조차 유익함을 배우는 독자가 있기 때문에 나쁜 책이란 없다. 중요한 것은 책의 질이 아닌 독자의 몰입이다. 어떤 책이든 내가 몰입하고 정신없이 빠져들어 신세계를 만나기를 수백 수천번 반복하면 내가 어느새 바다가 되고 우주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다독'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이다. 아차차. 그냥 다독이 아닌 집중 다독이다.

 

 

나는 하던 얘기 또하고 또하는, 어디서 본 얘기가 또 등장하고 논거조차 명확하지 않은 자기 계발서를 싫어한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이라고 여기지만서도 앞에서 이야기한 책들은 누가 읽어도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이런 책은 다르다. 아무리 듣던 소리 또하고 어디서 읽은 내용이 또 등장하더라도, 책 좀 많이 읽으라고 조언하는 이런 책들은 많이 출간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책에 미친 사회가 되길 바란다. 늦은 밤 이부자리에서 부부가 책을 읽고, 출근 지하철의 숨막히는 자리 다툼속에서도 저마다 책을 읽고, 구둣방 사장님도 순대국집 이모도 짬 나기가 무섭게 책을 읽기를. 아이들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면서조차 책을 읽고, 저녁 상을 치우자마자 온 가족이 책에 빠져드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인생만 바뀌겠는가. 나라가 바뀌고 역사가 바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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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집 2012-01-0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색에 미친 청춘 - 한국의 색을 찾아서
김유나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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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기 세 가지가 있다. 일단 '색'이 있고 그 색을 자연에서 옮겨오는 '천연염색'이 있다. 그리고 이 천연염색에 매료된 '청춘'이 있다.

그래서 제목이 [색에 미친 청춘]. 미친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의 제목도 참 좋다. 무엇이든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색에 미친 이 24살 아가씨는 과연 어디까지 미쳤을까. 청춘,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해 천연염색의 세계로 뛰어든 저자의 이야기는 한순간에 나를 확 잡아끌 만큼 매혹적이었다. 색도, 천연염색도, 청춘도.

그러나 미안하게도, 책을 다 읽고나서는 김이 샜다. 색과 천연염색, 청춘, 그 어느 것하나 매혹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이것을 다 담은 내용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다. 과연 예술서라고 불러야 할지, 청춘의 자서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내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너무 다채로운 내용이라 모든 색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현란해서인지 아니면 그 많은 색이 한꺼번에 다 뒤엉켜 무슨 색인지 알아볼 수 없어서인지 결론을 내릴수가 없다.


 

미국에서 의상 디자이너의 길을 시작한 저자는 어느 날 청바지 한 벌을 염색하는 데에 12,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패션 산업의 화학 염색이 지구를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가에 충격을 받는다. 그러다 그녀의 눈에 든 것이 한국의 '천연염색'. 중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는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꽤 거리가 먼 생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 천연염색의 세계를 만난 순간 단번에 거기에 빠져들어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전국 각지, 구석구석 물좋고 산좋은 아름다운 땅에 자리한 한국의 천연염색 공방을 돌며 그녀는 천연염색에 그녀보다 먼저 빠져든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천연염색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고 기본으로 돌아간 그들의 삶, 그런 그들의 색을 통해 찾아가는 저자의 색.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저자가 전국의 천연염색 공방으로 발품을 팔며 그녀만의 색에 대해 고민해가는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 [색에 미친 청춘]이다.

 


 

천연염색 공방을 꼼꼼히 찾아다니며 천연염색 그 자체와 함께 천연염색에 삶을 건 각 공방의 장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재미있다. 천연염색이 워낙 고되고 번거로운 일임에도 천연염색만이 줄 수 있는 '색'에 모든 고단함을 잊어버리는 장인들의 이야기는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정해진 순서대로, 욕심내지 않고, 정도를 따라서 그리고 자유롭게 '색'을 구현하는 천연염색의 세계는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에게 대단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한 디자이너로서의 고민과 청춘이 가져야 하는 삶에 대한 자문이 그녀의 천연염색 공방 여정에 잘 담겨 있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소 산만하다. 각 꼭지 마다 저자의 염색 체험기가 단계별로 들어가 있는데 이걸 꼭 이렇게 나눠 넣어야 했을까 의문이 든다. 사진 자체도 한 컷 한 컷은 다 예쁜데 레이아웃이 아쉽다. 또한 각 색채별로 정의와 의의를 담는 것은 좋으나 왜 굳이 수많은 해외 예술가의 글을 인용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통적인 색채와 그를 구현하는 천연염색을 탐구하는 내용에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인데다 페이지의 레이아웃도 굉장히 난잡해서 도통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스카프 천 한 장을 넣어야 하는 천연 염색통에 두 장을 넣었다고 가정해보자. 원하던 색은 못 얻고 두 장 모두 망칠 뿐이다.

이건 나의 말이 아니라 저자가 쓴 말이다. 욕심부리기 시작하면 자신의 색은 볼 수가 없다.

[색에 미친 청춘], 조그만 염색통에 천을 너무 많이 넣었다. 조금만 욕심을 덜 부렸다면 분명 아름다운 책이 되었을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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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집 2012-01-0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