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지의 부엌
니콜 모니스 지음, 최애리 옮김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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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하는 인간, 사회적 인간, 도구적 인간 등 인간을 규정하는 여러 특성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된 것이 ‘먹는 인간’일 것이다. 생각을 하든 몸을 움직이든 어쨌든 인간은 먹어야 한다. 인간의 춤과 그림, 말조차 시작되지 않았던 그 때에도 인간은 분명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먹어왔다. 그래서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의 말은 인간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정리한 문장일지 모른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이 시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고도로 발전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엄청난 과학과 예술의 수준 생각해 보라. 요리마저 과학과 예술이 된지 오래인 지금, 사람들은 이 발전된 요리를 매일같이 먹는다. 요리법 자체의 발전, 건강식이 대중화 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재료와 엄청난 노력을 들여 세심하게 조리한 요리를 (경제적 환경 등에 따라 매우 크게 차이가 나긴 하지만) 맘만 먹으면 누구나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람들은 요리(먹는 것)를 ‘사랑’의 매개로 혹은 도구로 때로는 사랑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인식해 왔다. 이제 요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먹는 행위(음식)뿐 아니라 즐기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를 정서적으로도 살아있게 만드는 영혼의 에너지원까지 된다. 사람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우리에게 ‘요리’는 그런 것이다.

 

“먹는다는 건 요리의 시작일 뿐이지! 맛과 질감과 냄새와 그 모든 즐거움이 그저 관문에 불과한 거야.

진짜 훌륭한 요리는 그런 것을 넘어 마음과 정신에 호소하는 거란다. 예술과 자연과 철학에 대해 명상하게 하는 거야.
미식가의 마음에 힘을 주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거지. 그저 먹기 위한 음식은 결코 만들지 말게.”

p201 요리가 시가 될 때

 

 

여기 혼자 먹고 혼자 사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다. 친구도 있고 일도 있고 집도 있는 이 여자는 다만 음식을 혼자 먹을 뿐이다. 남편이 살아 있었던 시기에조차 그들 부부는 늘 따로 따로 밥을 먹었다. 특별히 감정적인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환경이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을 뿐. 그런데 남편이 죽고 우여곡절 끝에 향하게 된 중국에서 만난 중국 요리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했잖습니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점일 겁니다. 함께 먹는다는 거요.”

“저는 혼자 먹어도 상관없어요. 여행 중에는 늘 혼자 먹었고, 매트가 죽은 후로는 언제나 혼자 먹는데요.”

“안됐군요. 제가 좀 바꿔봐야겠습니다.”

“당신은 바꿀 수 없어요.”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p204 요리가 시가 될 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요리가, 그저 몸이 움직이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방법일 뿐이라면 요리는 결코 지금과 같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외롭지만 외로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두 남녀가 중국 전통 요리를 매개로 만나고 서로 보듬는 과정을 그린 [칸지의 부엌]이 중국 전통 요리 철학에 대해 공들여 묘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책은 중국 요리 철학을 중심으로 요리와 사랑, 그 둘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그렸지만 사실 스타일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든 나라의 전통 요리란 다 그럴 것이다. 요리란 인간과 함께 살아온, 인간 그 자체.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고, 또한 사모하는 왕과 스승, 친애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들이 그들 전통 요리마다 녹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중국인과 유대인 혼혈이면서도 중국 전통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샘과 사고로 죽은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낳은 아이를 찾아 중국에 도착한 매기를 내세워 요리에 녹아있는 가족과 사랑, 전통과 역사를 한 권으로 엮어냈다. [칸지의 부엌] 이 한 권 속에서, 편협한 시선과 소외 속에 외로움을 밥처럼 먹고 살아온 남자와 가장 깊은 곳에 상처를 밀어넣고 고독을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여자는 그렇게 중국에서 만나고 요리와 음식, 전통과 역사, 가족과 사랑을 함께 배운다. 이 책은 그 둘이 모든 의미에서의 ‘칸지의 부엌’에 이르며 끝난다.

 

 

“난 영 꿈만 같네요.” 그가 말했다.

“나도 그래요. 꿈만 같아요."

그녀는 쌀이 끓는 것을 지켜보았다. “뭘 만드는 거예요?”

“칸지에요. 제일 간단하고 기본적인 거지요. 하지만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마치 사랑처럼요." 그는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의 눈길이 옷을 뚫고 몸을 뚫고 마음속을 곧장 들여다보는 듯했다.

p403 칸지의 부엌 중에서

 

혼자 먹는 습관을 바꿀 수 없다고 선언했던 여자는 어느 새 한 식탁에서 온 가족이 둘러 밥을 먹는 풍경에 익숙해지고 누군가가 곁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남자는 가장 중요한 결전의 그날, 여자에게 자기 곁으로 와 달라고 부탁한다. 이 둘의 변화는 더불어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부르고 밥 짓는 푸근한 향내가 몸과 마음을 감싸 안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은 그 가족 전부를 훈훈하게 끌어안는다.

 

여행길에서 느끼는 매기의 심리나 전남편이 남긴 아이에 대한 매기의 감정 변화가 무척 아쉽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국 요리에 효과적으로 담았다는 면에서는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자칫 ‘요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잡스러워지기 쉬운 소설이 요리 소설인데 오히려 덤덤한 어조의 분위기가 중국 요리 그리고 요리 소설의 매력을 잘 살렸다. 화려한 느낌의 중국 요리를 ‘소박’하고 가정적인 전통 요리로 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부드럽고 잔잔한 매력적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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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되는 말, 득이 되는 말
쓰다 히데키 & 니시무라 에스케 지음, 김아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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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 요즘 같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예민한 세대일수록 '말'은 엄청난 화력의 무기가 되기 쉽다. 사람은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쉽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까지 들지 않더라도 나쁜 말이 얼마나 강한 파괴력을 가지는지 공감하지 않는 이 없으리.

 

 

일본에서 유명한 상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들이 합심해서 책을 낸 동기도 '말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말이 무기가 되는 상황이다. 나쁜 말은 타인이 자신에게 혹은 자신이 타인에게 전달할 때만 무기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독이 된다. 내가 뱉은 나쁜 말에 나 자신도 상처 받는 법. [독이 되는 말 득이 되는 말]은 나도 살고 남도 살기 위해 말에서 가시도 빼고 돌도 빼고 이리저리 다듬은 다음에 꿀까지 바르라고 권한다.

 

 

-불쾌한 정보는 전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에서 어떤 정보를 가르쳐 주었는데 도리어 상대방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낼 때가 있다.

이는 그 정보가 기분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어서 그렇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선심을 쓰는 척하며 일부러 불쾌한 정보를 흘리는 사람도 있다.

p59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말실수를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지 알게 된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고 읽기도 쉽다. 한 권을 읽는 짧은 시간동안 그간의 내 말버릇을 책에 비춰 보는 건 매우 유익한 일이다. 다만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일본사회의 관점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감사는 한 번 이상 해야 한다'는 부분에는 앗, 역시 일본 사회! 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내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건 문제가 있지만 몇 분 간격으로 감사를 거듭하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게 한국 아닌가. 일본적 정서에만 적용될 듯한 내용이 있으니 너무 이 책의 안내를 있는 그대로 따라하는 건 좋지 않겠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실용서로 매우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가끔 부적절한 예로 보이는 내용들이 있긴 하지만, 잘못된 대화와 바로 잡은 대화를 함께 실어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들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직접적으로 안내하는 페이지들은 분명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된다. 책이 100이라도 읽는 이에 따라 결과는 10에서 1000까지 천차만별이 되는 법. 부드럽고 매력적인 대화가로의 변신을 꿈꾼다면 두시간만 내서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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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설득당하는가 - FBI에서 배우는 비즈니스 심리학
조 내버로 & 토니 시아라 포인터 지음, 장세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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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탈리스트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패트릭 제인은 탁월한 프로파일러다. 외모, 말투, 자세, 손짓, 눈빛 등등 그저 잠깐의 대화를 나누거나 옆에서 잠시 지켜보는 것만으로 다른 이들의 성격, 성장 배경, 현재 환경, 감정 상태 까지도 정확히 읽어내곤 한다. 뿐만 아니라 숨기고 있는 말을 내뱉게 만드는 능력도 대단하다. 마법같은 그의 능력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다. 그의 활약상을 시청하다보면 절로 그런 능력에 흥미가 돈다. 저런 능력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어디서 저런 걸 따로 배울 수 있나? 어디 나도 한번??

 

  인간은 진짜를 숨기는 데 가장 탁월한 동물이다. 전 생명체를 통털어 인간보다 본모습을 더 잘 감추는 존재는 없다. 일부러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자주 본심을 숨긴다. 옷가게 사장은 남는 게 반이 넘어도 손님에게는 늘 '남는 게 없다'고 말하고 부장의 싫은 부탁 앞에서 사원은 늘 '괜찮습니다'고 말할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생존이 달렸는데 어쩔 수 있나. 날이 갈수록 본심을 숨기는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우리가 죄다 패트릭 제인이 아닌 이상에야 그 속에 들어있는 본심을 확인하는 것 역시 더욱 어려워진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은 인간 본성을 꿰뚫는 불변의 진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상황이 이쯤되니 이런 책에 관심이 안 갈수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 설득당하는가]. 간단한 인사만으로도 어느새 나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까다로운 거래처와도 수월하게 거래를 진행하는 사람이 있고 난감한 상황도 부드럽게 처리하는 묘한 능력의 사람이 있다. 특별히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똑똑한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그런 이들은 어떻게 그런 힘을 발휘하는걸까? 무엇이 결정적인 설득력이 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 FBI 츨신의 국제 협상가이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조 내버로는 이 보이지 않는 설득력에 대한 답을 책으로 냈다. 그는 인간이 말 속에 감춘 내밀한 속사정이 몸짓, 표정, 외모 등의 비언어에서 발현된다고 말하며 신간 [우리는 어떻게 설득당하는가]에서 이 비언어의 세계를 읽는 (동시에 비언어적 능력을 발휘하는) 비언어적 지능을 발달시킬 방법들을 제시했다.

  

 '비언어'라는 것이 워낙 방대하고 또한 여전히 연구 중인 분야가 많기 때문에 정확한 공식을 제시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거짓말을 할 때에는 눈이 왼쪽을 바라본다든가 하는 등의 세간에 알려진 많은 팁들은 사실이 아닌 것들도 많고 사실인 것들도 때에 따라서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수도 있다며 저자는 공식을 제시하기보다 비언어의 흐름을 읽는 데에 더 중점을 뒀다. 또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비언어적 능력 중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것은 '진심'이라는 마음가짐임을 자주 강조했다. 그는 '감정은 논리를 앞선다'고 하면서 부정적 비언어를 읽어내고 긍정적으로 전환시켜 보라고 권한다. 이 책이 '비즈니스 심리학'으로 주체성을 잡고 있기 때문에 주로 비즈니스 환경의 예를 들어 설명하긴 하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비언어적 지능은 업무능력이라기 보다 인격을 갈고닦아 빛나게 하는 자기계발 능력으로 보는게 더 옳겠다.

  

 늘 자기 몫은 못 챙기는 실속 없는 사람이나 번번이 남에게 뒤통수를 잘 맞는 사람에게도 이 책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넓게 한번쯤은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먼저는 '나'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하루 종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 책이니까. 그렇게 나를 비롯한 내 환경의 비언어들을 읽고나면 이제 조금씩 이 책이 설명했던 설득의 비언어를 발휘하게 될 터다. 그렇게 되면 뭐 드라마의 패트릭 제인처럼 심령술사를 방불케 하는 초능력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특별한 능력의 매력적인 사람에는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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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도둑 놈! 놈! 놈! 읽기의 즐거움 6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유혜자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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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장 자끄 상페의 꼬마 니콜라는 나에게 굉장한 자극이었다. 아, 그 유쾌하고 천진하고 개구진 이미지들, 그 구미 돋는 에피소드들. 생각해보면 꼬마 니콜라의 세계는 나한테 친구였다. 나는 나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어른 도둑들에게 맞서거나 구니스의 무리들처럼 대단한 보물을 발견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에 몸을 던질 수는 없다. 나의 현실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세계들도 나에게는 친구였다. 그러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가까이 하기엔 초큼 위험한 친구들이라고 봐야 했다. 아주 친근하고 부딪히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그런 친구는 따로 있었다. 꼬마 니콜라 같은.

 

 

프랑스와 독일 문학은 물론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 이론적으로 줄줄 읊을 능력은 없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프랑스는 몰랑몰랑한 푸딩의 느낌이 늘 어려 있고 독일은 투박하고 건조하지만 편안한 느낌이 번져 있다. 나에게 프랑스의 꼬마 니콜라를 연상케 한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우체국 도둑 놈놈놈]은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와 독일, 두 친구를 대표한다. 꼬마 니콜라처럼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세계도 어쩔 수 없는 말썽꾸러기들이 주인공이다. 작가가 그린 한 무리의 이 영민한 아이들은 유리창깨기나 물건 훔치기 등 비생산적인 일에 힘을 빼지 않는다. 치려면 대형사고를 빡!!! 쳐야지. 이들은 감히 실종된 소녀를 찾겠다고 덤빈다. 꼬마 니콜라의 소박하고 낭만스런 장난기에 비하면 박력이 잔뜩 들어간 아이들이다.


실종된 소녀를 쫓아 우체국 도둑까지 잡게 된 이 친구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그린 이 야무진 아이들은 소녀도 찾고 학교에서 그들의 정의로운 도전을 인정 받는다. 아이들의 맹랑한 시도는, 단순한 눈요기가 아닌 스토리 전개의 한 부분으로 적극 등장하는 작가의 그림 때문에 더 재미있다. 그의 글은 담백하기만 한데 그의 그림은 담백한데다 유연하고 해학적이면서 유쾌하다. 이 그림은 초등학생들에게 장난스러운 이 이야기가 조금 더 흥미롭고 다이나믹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아마 이 작가의 이러한 천진함은 안데르센 상, 린드그렌 상을 수상하게 한 저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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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9.11테러 이후의 세계 뉴아카이브 총서 4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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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 예전에 미싱용 윤활유를 보리차인줄 알고 마셔버렸던 적이 있었다. 너무 목이 말랐던 한여름 오후, 마침 컵에 말간 보리차가 담겨 있길래 꿀떡 삼켰더니 기름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쯤에야 '아, 이거 기름이구나' 느낌이 왔다. 옆에서 화들짝 놀라신 아버지는 왜 기름을 마시고 있냐며 내 손에 쥔 컵을 빼앗아 가셨다.

기름을 그것도 공업용 기름을 거침없이 들이키고 나서는 물론 가장 먼저, 헉;;; 설마 내장이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보다 나중에 조금 더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보리차와 미싱용 기름의 색이 그렇게 똑같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름 눈썰미가 좋아서 물건을 잘 구분한다고 자신하며 살았던 나였는데 보리차와 미싱용 기름의 빛깔이 감쪽같이 닮았다는 걸 온몸으로 부딪혀 배우게 될 줄이야.... 물 같은 기름, 기름 같은 물. 마셔보기 전에도 (내가 기름을 물이라고 인식하던 그 순간에도) 기름은 기름이고 물은 물이었으나 내 인식 속에서 기름이 물이었다가 다시 본질인 기름의 모습으로 돌변했던 이 순간의 과정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인식) 속에 파고들어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 실재로부터의 충격이자 내 예상과 감각을 뛰어넘는 현실과 실재의 충돌이었다.

 

 

[로쟈와 함께읽는 지젝]이 왜 그렇게 어렵고 난해했을까. 로쟈와 함께 지젝을 읽고 나서 나 혼자 지젝을 읽으면 더 좋으리라 짐작했던 나는 틀렸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보다 혼자 읽는 지젝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훨씬 더 재밌었다. 911 테러 이후의 세계를 진단한 슬라보예 지젝에게 아직 실재에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이 실재를 접하고 난 이후에 느낄 그 삭막함과 황량함을 따서 '실재의 사막'이라는 감각적인 제목을 붙였겠지만 이 책을 '실재의 사막'이라기보다 '실재의 오아시스'에 더 가깝다. 삶을 화려하게 하는 쪽은 가상화된 현실일지 모르나 삶을 생동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척박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지젝의 사상이, 그의 글과 생각이 마음에 든 것은 그가 공산주의자도, 자본주의자도 아니어서가 아니다. 지금 세계의 주류와 그 지배층의 검은 속내를 들추고 그것은 거침없이 드러내서만도 아니다. 세계1차 대전의 잔혹한 시대의 끝에서 젊은이들에게 의식과 사유의 확장을 격려했던 헤르만 헤세의 메시지를 연상케하는 울림이 그의 글 속에 있어서이다. 지젝은 911 테러라는 명제를 확고부동하게 놓아두고 그 앞뒤 (과거와 미래)로는 움직이되 그 바닥 혹은 그 허공에 있는 모든 공간을 과감하게 파헤치고 끈질기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하라'는 주문을 걸고 있다.

 

 

'생각하라'는 화두는 사실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책에서 나아가 광고에서까지 우리는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접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디어에서 '생각하라'고 주문할수록 우리는 길을 잃는다. 무엇이 생각인가?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미래를 내다보는 것,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만이 우리시대, 우리가 해내야만 하는 생각의 전부일 수 없다. 과거는 어제의 현실이었고 내일은 미래의 현실이므로 결국 우리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뒤집어봐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과연 테러인가.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가. 누구의 전쟁인가. 아니, 이것이 전쟁이라고 할수 있는 것일까. 슬라보예 지젝의 글와 메시지에 부응해 나의 현실에 어디까지가 실재인가를 고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실재라고 밝힌 전부를 나의 실재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밝힌 실재 역시 뒤집어 볼 일이다. 극한의 회의 속에서 실존을 구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몫만은 아니다.

 

세계가 더 긴밀하게 연결될수록 국가와 기업 뿐 아니라 개인의 삶까지 서로 유기적으로 더 가깝고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 흐름은 지구가 그 자체로 부서져 근본적으로 와해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 숙명이다. 지구라는 별에 발 붙이고 사는 인간들의 숙명이다. '생각하라'는 숙명. 보리차로 인식하고 있던, 저 컵에 담긴 황금빛 액체가 정말 구수한 물인지 아니면 미싱용 기름인지 아닌지 생각해야만 한다. 생각만으로 알 수 없으면 마셔봐야 한다. 분명 보리차일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혀와 생각에 미끄덩하고 기분나쁜 충격이 올지라도, 마셔봐야 확인된다면 마셔봐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주문은 그것이다.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이 전부라고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무엇이 실재인가 손을 더듬어 컵이라도 손에 쥐어 볼 것인가. 911테러는 그것을 목도한 만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부와 곧 우리의 생각 내부에서의 전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었고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젝의 말처럼 궁극적 위협으로부터 적어도 우리 자신이 그 위협에 동조하는 일부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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