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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생존이라는 것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그림자와 상존한다. 처음부터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한계가 없다면 ‘생존’이라는 단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별은 죽어 가는 것(현재는 살아 있는 것), 죽어 있는 것, 죽어 없어진 것이 한데 뒤엉켜 있다. 죽어 가는 것들은 죽어 있는 것을 추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 없어지는 것들은 너무도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실제로 ‘죽음’은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에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죽음을 확인하던가.
그러나 죽음의 실체는 고통이다.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나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모두 아프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생존 역시 고통일 수밖에 없다. 내 몸을 죽이는 암세포가 그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암세포 자체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 ‘젠장, 먹고 살기 되게 힘드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주인공 헤이즐은 무엇도 원망하지 않는다. 멀어지는 친구들, 답답한 환경, 안쓰러운 부모님, 온갖 임상실험을 들고 덤비는 의사들. 암투병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이 철학자는 죽음을 둘러싼 인생의 모든 과정과 그 본질에 대해 이미 빠삭한 깨달음으로 중무장했다. 암투병을 위대한 용기라고 부추기는 격려에는 코웃음 치고 암환자의 죽음 이후 그를 추모하는 댓글들에는 분노를 느낀다. 대부분이 죽은 자들에 의해 지어진 세계에 살면서 어째서 단지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안쓰럽고 안되고 불쌍한 것, 특히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지,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혀를 찬다.
작가는 그녀를 통해 죽음을 경원시하거나 영웅시하거나 혹은 온갖 의미를 부여해 미화하거나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봐, 죽음도 그저 삶의 한 점이야. 마지막 점 말이야. 책장의 마지막을 넘기고 나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나는 것처럼, 죽음은 삶에서 이어지는 그것, 외면할수도 부인할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지은 이 별에 현재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남의 마당에 밀어 놓고 멀리서 구경한다. 마치, 너는 오늘 죽지만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나 무거운 주제, 너무나 처열한 주인공이지만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게 페이지를 넘어간다. 통통통~ 요즘 말로 '썸'타는 두 남녀의 문자질은 간질간질하고, 재기넘치는 대화들은 유쾌하다. 불치병에 발뒤꿈치를 덥썩 덥썩 물리면서도 이 아이들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삶의 신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암과 싸우는 것보다 더 장렬히 분투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은 슬프지 않다. 고리타분한 소재와 진부한 주인공으로 뻔한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그저그런 눈물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슬픔 대신 잔잔한 여운으로 산뜻하게 매듭을 짓는다. 그러나 분명 그 무게를 놓치지 말아야 할, 작가의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전쟁에서 용감히 총알받이가 된 사람들은 박물관에 전시하지만 병으로 죽은 사람들에게서는 명예로운 점을 찾을 수 없다고 개탄하는 어거스터스의 대사는 ‘죽음’ 그 자체에 사실 명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작가의 대언이다. 죽음은 이 별의 순리 중 한 단계일 뿐이라고. 그래서 죽음에 수반하는 고통의 원인도, 그 고통 속에 생존할 수 밖에 이 몹쓸 상황의 잘못도 모두 별에 있다고 작가는 격려인지 책망인지 모를 이야기를 남긴다.
그러나 지금 살아있는 모든 존재여! 이 별에 모든 잘못을 돌린 채 ‘될대로 되라지.’라며 생을 소비할 것인가. 아니다. 이 순간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의 생명력 역시 이 별로부터 왔다. 잘못이 별에 있다는 것은 결론일 뿐이다. 우리는 '축복'같은 삶의 과정을 살아가야 한다. 명치 깊숙한 곳으로부터 코 끝으로 다정한 호흡이 들고 나는 것, 부드러운 체온과 향기로운 감정을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이 땅에서 죽어간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을 몸살나게 했던 삶과 죽음의 신비가 이것 아닌가. 삶과 죽음. 같지만 같지 않은 것.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것.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가장 신묘한 부분도 이것이다. 삶과 죽음. 이 기이한 별의 원리를 청춘드라마로 풀어내 들려준다는 것. 십대의 꽁냥질 속에 '생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명체 공동의 철학적 의문이 담겨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