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계
조정현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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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아직도 안전의 경계라고 인식하는가?

 

아니다. 지금 당장 아무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울타리라고 쓰고 검색해보라. 곧장 '울타리 내 건물의 소유주' 따위의 검색 결과들이 화면을 채울 것이다. 울타리는 안전의 경계가 아니라, 소유의 경계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 혹은 울타리 내에 있다는 것은 울타리의 소유(가 된다)라는 뜻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원과 명에게 보냈던 공녀들은 울타리의 소유였다. 울타리의 소유들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제물이 되어 울타리 밖으로 반출되었다. 소설 화려한 경계는 그렇게 반출된 울타리의 여인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공녀에 대해 남아있는 사료는 너무나 적다. 그 때문인지, 혹은 나라를 위해 몸을 판 여인들이기 때문인지 '공녀'에 대한 연구도 적다. 원으로 보내는 공녀들의 명단을 종이류로 적어 넣고 물건처럼 보냈던 울타리의 행태에 격분할 기회는 매우 적다. 이미 너무나 멀고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으니 경계 안에서 '안전'을 만끽하는 우리는 차마 알려고 해보았자 알 길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소설을 읽는 모양이다. 어렵고 딱딱한 사료를 뒤져 그들의 아주 적은 그림자를 좇기보다, 생생하게 묘사된 백여년 전의 삶으로 잠시 빠져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쉬우니. 그래서 작가들은 역사소설 쓰기를 멈출수 없는 것이다. 이 땅에는 잊기엔 너무한 사건과 사람들이 바닷가 모래알보다 많다. 작가는 어찌어찌 그들을 되살려 종이 위에 부활시키기 위해 오래 묵어 스러져가는 기록들을 뒤지며 먼지로 호흡하는 것을 기꺼이 여겼을 것이다.

 

고려와는 다른 나라를 만든다면서 어찌 다시 공녀를 보낸단 말인가?”

딸자식은 낳지를 말아야지, 어여쁜 얼굴이 화가 되어 고향을 떠나니, 나라가 약해 딸들을 팔아먹는구나.”

통곡 속에 비분강개한 선비들의 목소리도 간혹 들렸다. 나는 애써 서러운 마음을 달래며 눈을 크게 뜨고 고국산천의 모습을 기억에 담았다.

페이지 98

 

후비가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어찌하여 우리 언니만이 순종을 당했단 말이냐?”

작은 아가씨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황성과 한성이 사천 리 길이라도 그렇지, 생떼같은 젊은 목숨 삼사 천이 어미 아비를 부르며 죽어 갔는데 어찌 그 어미 아비의 나라는 이리도 까맣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전쟁에 죽으면 차라리 이유나 알고 죽지만, 억울한 누명에 이리저리 몰려 그물에 걸린 고기들처럼 한 손에 떼로 죽으니 그 죽음이 어디 온전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하룻밤에 죽어간 조선 여인들의 사연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자주 중단되었다. 한숨을 길게 쉬지 않고는 그 많은 죽음을 입에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다.

페이지 244

 

생각해보면 참으로 애통터지는 일이다. 품에 안고서도 보호해 주지 않던 울타리는 당연히 내친 후에도 본체만체다. 오히려 내쳐진 소유들이 그들의 목숨으로 울타리를 둘러싸고 지켜야 했다. 울타리가 나와는 일억만리 남남이라면 오히려 참담한 심정은 덜할 것을. 울타리는 내 부모요 형제요 친족이다. 부귀영화는 반겨 받을지언정 생떼같은 젊은 목숨이 타향에서 덧없이 스러진 데에는 귀동냥도 하지 않는다. 이 울타리라는 경계는 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냉정하게 따지면, 소설적 재미는 크지 않다. 공녀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인물들을 이어보려고 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외딴 섬처럼 마냥 다른 바다에 떠 있기만 한다. 일부러 냉정하게 쓰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감성에 호소하는데 실패한 것인지 기구한 사연들을 몇겹으로 포개어 담았지만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려말과 조선초, 한반도와 중원의 관계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의 제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상황에 대한 전달만큼은 생생하다.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 교과서 만으로는 충분히 느낄 수 없는 지나간 시대를 알기 위해 역사소설을 읽는다면, 적어도 읽는 목적에는 부합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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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이펙트 - 인류 탄생의 과학적 분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1
재닛 브라운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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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결정적인 책을 단 한 권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느 대기업 면접 질문이었다고 한다.

 

 

신문에서 저 대목을 읽다가 나는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성경? 국부론?

기사는 이런저런 대답을 나왔다며 면접자들이 답한 여러 책들을 소개했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책들은 매우 고리타분하고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으므로 결국 보기좋게 미끄러질만한 대답이라고, 별 필요도 없는 해설을 더했는데) 그 중에는 이 책도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

 

 

1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 이후로 사람들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사람"이라는 개념에서 확고하게 벗어나 종의 변이와 변형을 거친 진화를 과학적인 즉, 논리적이고 타당한 사실로 받아들였으며 오늘날 현대를 풍요롭게 (혹은 위태롭게) 만드는 수많은 세부적인 과학 (의학) 분야가 이로부터 기원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참 대단한 책이고 인류의 역사에 이보다 더 멋진 발판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정도의 책이건만, 기독교 신자들로부터는 최근까지도 상당히 곱지 않은 눈총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떼어낸 책들 중의 하나이므로.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눈총을 따갑게 받은 것은 오히려 현대의 일이다'라고 한다. 누가? 이 책의 저자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김일성이 대단한 기독교 집안의 후손이라는 것, 히틀러 역시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해온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지리학과 생물학에 걸친 꼼꼼하고도 집요한 실험을 통한 결과를 논거로 제시한 찰스 다윈 역시 한때는 목회자의 길을 꿈꾸기도 했었던 신앙인이다. 여기서 신앙인이라고 한 이유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그는 끝까지 신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종교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윈에 대한 대단히 신뢰할만한 평전을 두 권이나 펴낸 작가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의 기원 이펙트]는 보통 사람들이 찰스 다윈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막연한 이미지들을 확실한 사실을 근거로 뒤엎고 새로운 다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가 깨달은 과학적 개념들이 정립되도록 도운 라이엘과 같은 사람들이나 본의 아니게 같은 과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경쟁하며 결국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게 만들었던 학자 월리스, 평생 다윈을 도왔던 신실한 신앙인이자 좋은 동역자였던 아내 에마와 그의 아이들, 인간적인 다윈의 면모들 등 이 책은 [종의 기원]을 읽기만 혹은 듣기만 했던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인간 다윈의 진실을 알려준다.

 

 

다윈이 살던 시대는 이미 신학 특히 성경이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서의 힘을 잃고 이미 상징적인 이야기로 치부되기 시작한 때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특히 산업혁명의 핵이었던 영국에서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가열찬 에너지로 사람들을 끌어안고 있었고 세계가 빠르게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이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다윈만의 획기적인 깨달음이나 연구 결과가 아니었다. 다윈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동시대에 있었지만 결국 [종의 기원]의 주인공이 된 과학자는 다윈이었다. 그 집착에 가까운 실험과 연구가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론의 아버지가 되게 한 것이다.

 

종종 대단한 사람들이 남긴 책은 그 자체로도 커다란 유산이지만, 대단한 책을 쓴 작가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고 더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빛나는 다른 유산들을 발견하게 된다.

 

 

[종의 기원 이펙트]의 저자 역시 또 다른 다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무신 혹은 불신이라고 막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과학자의 유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오히려 그로 하여금 다윈의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그리고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게 한다. 이러한 책들이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주고 지적 재미 뿐 아니라 많은 사유의 여지를 남겨주는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가 뒤집어쓴 막연한 사고의 장막을 걷어내고 명확한 모습을 제대로 보게 만든다. 마치 다윈이 종의 진화를 연구해 과연 우리 생물은 오늘날까지 어떻게 존재해왔는가에 대해, 막연한 신화의 장막을 걷어내고 명확한 과학적 사실을 보게 만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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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잔해를 줍다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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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침 비가 내렸다. 가을이 비에 젖은 낙엽을 자신의 발자국처럼 남기고 그 위를 달려 사라지는 것이 선명하게 들렸다.

이 선명함은 서글펐다. 가을이 달려, 영영 작별해 버리는 이 소리는 멀리서 걸어오는 겨울의 느릿하지만 단호한 발소리이도 했다.

[바람의 잔해를 줍다]의 주인공인 에쉬는 카타리나의 지독한 잔해 속에서, 비 맞고 더욱 옹골차게 영근 뜨거운 사랑을 주웠다. 나는 이 가을의 잔해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망설인다.

 

'바람의 잔해'라는 어감은 사뭇 파괴적이다. 분명 무엇인가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진 느낌을 준다. 비에 잔뜩 젖어 도로 위에 널부러진 흙과 돌, 탁하고 축축한 흙냄새, 허전한 바람냄새가 엉겨 있었다. 그래서 엄마를 잃고 아빠 그리고 2명의 오빠와 어린 남동생을 가족으로 두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에쉬의 일상은 내게 처음부터(책의 첫 장을 편 순간부터)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에쉬는 (그녀 본인이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그 가엾은 인생의 슬픔을 표출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도 울줄 아는 이 성숙한 아이는 그것이 동시에 얼마나 쓰라린지, 마치 상처 위로 레몬즙이 흘러가는 듯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폐차장에서 풀어 키우는 닭들의 둥지에서 달걀을 찾을 때도, 오빠가 자신의 상처에 침을 발라 닦아주는 것을 보면서도, 홀로 있을 때는 언제든지 엄마를 회상하면서도 아프다, 그립다, 슬프다고 가슴을 치지 않는다.

 

저자는 에쉬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녀의 입에서 흐느낌이 나오게 하는 대신, 이야기 전반에서 끊임없이 피와 살과 상처를 묘사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장식하고 있는 여신 차이나 (차이나는 그냥 암캐가 아니다. 전쟁의 여신이자 에쉬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여신 메데이아의 현실화된 존재다.)의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개싸움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목마르다 못해 갈라지고 피가 튀고 살이 벌어져 붉은 생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에쉬의 심정을 대변한다. 저자는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차이나, 사랑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배신한 남성을 응징하기 위해 가차없이 가족을 베고 자식마저 죽이는 메데이아, 죽은 뒤에도 이 가족의 일상에 여전히 남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에쉬의 엄마를 정교하게 엮어 바람을 이겨내고 그 잔해에서 뜨거운 사랑을 줍는 에쉬를 완성했다.

 

이 이야기는 곱씹어 볼수록 정말 섬세하고 영민하다.

 

에쉬의 성장과 더불어 가족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동시에 작가는, 경제상황은 궁핍하고 아이들이 성폭력과 도박 등 온갖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이 된 지금의 열악한 흑인사회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여전히 사회에 상존하고 있어 그것은 치명적인 발톱으로 약자들을 할퀴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제대로 된 정서적 육체적 울타리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깊은 상실과 상처를 세심하게 그려 페이지를 무심하게 넘기다가도 어느 순간 그들의 상처에 동화된 독자가 눈물을 터뜨리게 한다.

교미상대이자 자기 새끼의 어미인 차이나에게 달려들어 모성의 상징인 젖가슴을 뜯어버리는 숫캐 킬로와 차이나의 싸움은 현대의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서로의 약점을 물고 물어뜯는 남성과 여성의 묘한 관계를 비추기도 한다. (여성들에게 듣기 좋은 소식이라면, 결국 차이나가 킬로를 응징한다.) 그러나 이런 치열한 싸움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등대의 빛처럼 반짝거리는 따스함으로 살아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투쟁에서 승리한 여신 차이나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 책의 마지막은, 별빛 하나 없는 적막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희망을 끌어안은 채로 독자들에게 안녕을 전한다.

 

차이나. 차이나는 돌아올 것이다. 길고 곧게 서서, 젖가슴에서 우유 방울을 흘리며,

차이나는 우리가 이곳 웅덩이에 만든 빛의 원을 내려다볼 것이고 내가 잘 지켜보았다는 것을,

잘 싸웠다는 것을 알아줄 것이다.

-p386

 

부아 소바주의 거친 생명들은 그러나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식물들은 씨를 뿌리며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낸다.

- p179

 

가족, 남과 여, 아이와 어른, 자연과 인간, 인간과 동물을 한 이야기 속에서 동시에 살아있고 동시에 이야기하며 동시에 흘러간다. 마치 이 늦은 밤, 나는 글을 쓰고, 옆방에서는 잠을 자고, 고양이는 나른한 걸음으로 창가를 지나고, 나무는 마지막 이파리를 떨구고 바람은 겨울을 준비하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가 살아있지만 자연스럽게 한데 흘러 같은 메시지로 귀결된다. 살아 내는 것의 치열함. 살아 내는 것의 고독. 그렇게 살아 낸 사람에게 부여되는 영광(사랑). 왜 이 책이 미국 평단의 극찬을 받았는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책의 뒷 페이지에 실린 그런 극찬이나 수상 기록이 오히려 이 덤덤하면서도 명민한 책의 감동을 가릴 수 있다. 이 책이 궁극적인 메시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에쉬처럼 덤덤하게, 그러나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양팔로 끌어안고 그녀의 12일을 함께 보낸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심장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는 그 뒤에 한 문장을 더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더욱 강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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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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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 - 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 -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 이 책의 끝에, 작가 스티븐 킹이

 

 

누군가는, 작가는 신의 부름을 받아 탄생하는 숙명의 존재라고 했다. 누군가는 또, 쓰고 싶은 것 그리고 써야 하는 것을 쓰도록 스스로 택한 사명의 존재라고도 했다.

어느 쪽이건 관계없다. 중요한 건, 작가로 산다는 것 자체 아닌가.

클로이 모레츠를 주연으로 한 21세기판 캐리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스티븐 킹의 이 오래된 작품은 또 다시 영화화 될 정도로 징그러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토록 매력적인 작품 수십개를 꾸준히 완성시킨 작가가 쓴 글쓰기(소설) 안내서는 그가 이제껏 발표한 수많은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흥미롭고 재밌다.

원, 글쓰기를 안내한다고 하면서 자기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불쑥 꺼내놓는 센스라니.

 

이야기로 하여금 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야 뭐가 그리 어렵겠냐마는, '그 이야기를 꼭 내가 소유하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이야기는 아무나 그리고 언제라도 뽑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아는 걸 쓰면 된다'라는 것들이 모든 선배 작가들의 거의 공통된 조언이지만, 스티븐 킹은 말한다.

 

모르면 어때? 그냥 상상해버려.

 

네, 그런 방법도 있네요.

라고 빈정거려주고 싶지만 물리적인 거리도 거리인데다, 과연 그 사람과 마주하고 이런 대가에게 '아, 예예' 라고 할 정도의 오만함은 나한테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메일이라도 보내볼까.

 

스티븐 킹이 처참한 교통사고를 당했던 때와 이 책의 원고 진행 기간이 겹친다. 때문에 교통사고 이후, 작성한 원고 - 책의 후반부, 그가 그의 교통사고 경험을 적어놓은 부분 이후 - 는 그 이전에 작성한 원고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에너지가 넘치고 중년의 나이지만 여전히 싱싱한 상상력과 정력적인 창조열을 가진 작가는 죽을 뻔했던 사건 이후 왜 글을 써왔는지, 작가로서의 생의 가장 깊은 부분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그러더니 맨 마지막, (원고 교정 예시 페이지 전에) 이런 글을 써 놓고 책을 마감한다.

 

글쓰기는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나는, 신이 택한 자가 작가가 된다는 데에도 동의하고 스스로에게 글쓰기의 사명을 부여한 자가 작가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글이 곧 신인데, 글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야 하는 작가를 신이 택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이고, 역시 스스로 글을 써야겠다는 소명 의식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어떻게 탄생되든지 간에, 작가는 글을 쓴다. 그것이 작가를 살게 하기 때문에.

 

나는 시종 내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온갖 공상과 망상에 조금 지쳤다.

이 놈들을 어떻게 종이 위에서 살아있게 할 것인가, 고민이 지겨워졌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진심어린 조언은 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행복해지기위해서 쓰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면 글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그랬다.

"마누라한테 정말 화가 났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봐. 너 그렇다고 마누라 없이 살 수 있냐? 엉? 그러면 답이 나와. 못 살거든."

 

딱 그 심정이다.

행복해질 수 없다면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쓰지 않고서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쓰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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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 초보자를 위한 미술감상 토크쇼
롤프 슐렝커, 지모네 로이터 지음, 정연진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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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고급문화다. 아무리 미술관에 어린아이 장난 같은 추상화나 키치 작품들을 전시한다고 한들, 사람들이 '미술관'이라는 단어에 연상해 떠올리는 이미지나 느낌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마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미술관 혹은 박물관은 여전히 고급문화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놀이터 같은 곳은 절대 될 수 없을 거란 얘기다. 시간과 공간이 정제한 인류 문화의 응집체들이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미술이든 뭐든, 세월이라는 숙명의 적을 이겨낸 끝판왕들이 버전별로 시대별로 버티고 있는 장소인데.

 

 

이 도도한 고급문화를 오랜 친구처럼 편안히 대해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아는만큼 보인다,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걸 알면서도 이 '알아가기'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미술관에나 박물관을 부지런히 드나들어도, 아무 준비없이 드나들기만 한다면 어느 단계 이상은 이해하고 느끼기가 쉽지 않다. 특히 미술의 경우, 어딜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 그냥 전시된 그림 사이를 걸어 산책 하는 것 밖에 하지 못하고 돌아오기 쉽다. (뭐, 이건 내 얘기 ^^) 그림은 종류도 워낙 많고 르네상스니 인상주의니 하는 것들은 무척이나 헷갈리는 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피카소처럼 시대를 가로지른 화가들이 아니면 이름 외우기도 쉽지 않은 것이 서양 미술.

 

 

굉장히 복잡한 듯 보이는 서양미술사를 유유히 가로질러 콧대 높은 서양미술 작품들과 친구맺어주는 기특한 책이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내 하소연이 독일까지 들린 모양이다. 독일의 방송국의 인기 진행자와 두 명의 전문가가 힘을 합쳐 미술 강의 방송을 만들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은 책이 되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단 14점의 작품으로 (서양) 미술사 만 4천년을 보여주겠다는 둥, 미술 감상의 ABC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내용이라는 둥 하는 책 소개에는 귀 기울이지 않아도 좋다. 그냥 주욱 한번 읽어보면 이 책이 미술 감상에 입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데에 주저없이 동감할 것이다. 더 상세한 미술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돌다리로 삼아도 좋을 책이고 미술시장과 현대 미술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싶을 때 참고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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