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15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5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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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 이맘때에도 읽었던 트렌드코리아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해야 할 때면 언제나 자연스레 찾게되는 책이다.

 

매해 소비트렌드를 분석하고 연구하여 어떤 것이 가장 핫했는지, 그 이슈로부터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그를 바탕으로 새해에 대한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재미가 더하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해, 나는 어떻게 보냈는지를 돌아보고 올해 나는 어떻게 움직여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트렌드코리아2015의 구성은 1. 2014 10대 트렌드 상품 선정 2. 2014 소비트렌드 회고 3. 2015 소비트렌드 전망. 이렇게 크게 3가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세월호 사고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일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마음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지만, 자신을 던져 상황을 정리해나갈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희생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희생적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영화 <명량>에서 보았듯 '우리 사회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지 35 / 2014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 중에서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기억해달라고 조르기는커녕,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제품을 소개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혜안은 바로 '소비자 스스로 놀게하라'는 것이다. 2014'의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페이지 47 / 2014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 중에서

 

 

2015년 소비트렌드에 대해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열 개의 테마로 정리했다.

햄릿증후군, 감각의 향연, 옴니채널전쟁, 증거중독, 꼬리 몸통을 흔들다, 이상을 자랑질하다, 치고 빠지기, 럭셔리의 끝 평범, 우리 할머니가 달라졌어요, 숨은 골목 찾기

 

사람들은 심각한 결정장애를 앓고있으며 개인의 기호와 취향은 더욱 세분화되고 상품시장은 나노로 쪼개져 간다. SNS를 통한 자랑질은 더욱 드세지되 은근한 컨셉질 아래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는 행태는 심화될 전망이다. 젊고 창창한 노년 특히 할머니들이 새로운 소비집단으로 떠올라 인생은 60부터를 온몸으로 보여주실 예정이라고 한다.

 

 

2014년은 여러가지로 참 힘든 해였다. 사건 사고가 달마다 이어지고 서민들은 살기가 참으로 팍팍하였더랬다.

그래서인지, 트렌드코리아2015는 청양의 해에 일상의 작은 꿈들을 헤아려보는 해라고 진단했다. 전 국민의 마음을 뒤흔드는 빅히트 상품이나 메가히트 건은 더 이상 기대할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게 되었다. 우리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이다. 나의 취향, 나의 기호, 내 작은 관심사들. 아주 작은, 미묘한 꼬리에 불과한 이런 것들이 대세를 만든다.

 

트렌드코리아2015는 판매자가 보기에 매우 쏠쏠한 책이다. 대중의 심중을 읽고 그들의 반응과 움직임을 분석하니 판매자 입장에서는 꼭 참고해야 할 책이 아닌가.

 

하지만 더불어 소비자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나의 소비가 어떤 흐름에 따른 것인지를 알려주고 내가 어떻게 움직일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지도 예측하게 한다. 단순한 관심사로 읽어보기에도 재미있고 공부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이미 시작된 청양의 해, 채 못한 새해 준비에 트렌드코리아2015 필독!을 넣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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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부여의 기술 - 평범함을 위대함으로 바꾸는 8가지 코드
인터브랜드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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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이라는 작품은 의미 부여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름은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다. 이름 곧 의미를 얻은 존재는 꽃이 된다. 아름다움이 되고 향기가 되고 생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을 붙이는 일을 쉬지 않는다. 연인에게는 서로에게만 통하는 애칭을 붙이고 친구에게는 별명을 붙인다. 어디 사람에게만 붙이랴. 애완동물, 자가용, 아끼는 화분 등에도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는 일 즉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개인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에게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고 생사를 가늠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브랜드에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한다. 의미 부여에 성공한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꽃이 되고 기업에게는 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브랜드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알리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정교하고 체계적인 전략으로 브랜드 가치 창조와 관리에 기여해왔다. 인터브랜드 코리아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창립 이래 발간된 인터브랜드의 매거진 중 가장 의미 있는 글을 모아 의미부여의 기술을 펴냈다.

 

 

 

인터브랜드 코리아의 문지훈 대표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으며 끊임없이 자기다움을 탐색하는 현대인에 대해 말했다. 물질이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의미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음료 한 잔, 펜 한 자루에서도 그 상품의 브랜드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나를 특별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찾는 순간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꽃이 된다. 브랜딩이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의미부여의 기술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이 브랜딩이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한 부분이다. 기업의 제품에만 브랜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 사람도 브랜딩이 필요한 시대다. 이 책이 브랜딩 관련자들만 아니라 브랜딩이나 마케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 같은 개인에게도 의미를 갖게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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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내면의 풍경
미셸 슈나이더 지음, 김남주 옮김 / 그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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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가가 아니다. 음악 듣기를 즐겨하지만 연주하기와는 사이가 멀다. 그래서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일을 마치 낮고 무거운 어떤 목소리를 내는 일이라고 쓴 책 뒷면의 글은 매우 낯설었다. 나는 곧, 내가 그간 부드럽고 아름답기만 하다고 느꼈던 슈만의 곡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슈만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곡을 들려주는 음악가가 아니었다. 내가 들은 슈만은 정말 진짜 슈만이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런 삶을 산다. 고통은 일종의 감각이다. 음식에 단 맛, 짠 맛, 신 맛, 쓴 맛, 매운 맛이 어우러진 것처럼. 고통은 삶이 본질적으로 동반하는 여러가지 감각 중 하나다. 다만 어떤 이의 혀는 다른 맛보다 단 맛을 더 민감하게 느끼고, 다른 이의 혀는 짠 맛을 느끼는 것처럼, 삶의 수많은 감각 중에 고통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슈만이 그런 음악가가 아니었을까. 글쟁이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글을 통해 일생을 관통하는 고통에 쓸수 밖에 없듯이, 슈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평생 그의 삶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던 고통과 허무는 슈만의 음악을 통해 세상으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제목 그대로 슈만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던 그리고 그 노력을 독자와 함께 하기를 원했던 저자의 책 [슈만, 내면의 풍경]은 참 어렵다. 내가 기본적으로 슈만의 음악에 정통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책의 화법이 보편적인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슈만처럼 고통에 천착하고 내면의 허무에 시달리는 인간형이 아니기에, 슈만의 내면에 공감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내용과 주제가 모두 어려운 책이라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이건만, 나는 이 책을 꽤나 오랫동안 씹어먹어야 했다.

 

그러나 만약, 음악가의 생애가 아닌 그 내면의 세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음악가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그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읽어볼 만한다. 저자는 슈만의 생애가 아닌, 슈만 자신의 눈으로 그의 시각으로 슈만의 말년을 성찰한다. [슈만, 내면의 풍경]은 엄청난 분석과 연구와 더불어 음악을 통해 고통을 이야기한 한 인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바탕이 된 감성이 동반된 책이다.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어려운 원고를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해준 김남주 님의 말을 먼저 읽고 난 후에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책 제일 뒤에 담긴 김남주 님의 말은, 이 책의 어려운 활자들을 읽기 어려워 질 때 필요한 동기와 에너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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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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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직선과 곡선을 가리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나있다. 온갖 차들이 온갖 방식으로 길을 지난다. 그러나 길 위에서 사람은 두 종류다. 달리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명예나 돈, 권력,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전속력으로 차를 달린다. 경쟁하던 차들이 뒤엉켜 처참하게 구겨지고 사람이 죽는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고 레이스는 끝나지 않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레이스가 레이스다워졌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레이스를 구경만 할뿐이다. 마치 전쟁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희생될 때, 멀찍이 서서 그것을 구경하듯이. 전쟁을 안타까이 여기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 군인의 상처는 외면하듯.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방관하게 될까. 달리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모두 길 위에 있지만 과연 달리는 사람의 길과 구경하는 사람의 길은 같은 길일까.

 

 

[이런 이야기]는 열여덟 굽이의 길을 전속력으로 레이스한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사실은 사람들이 달음박질하는 모든 길,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열여덟 개의 굽이가 있는 레이스 서킷을 구상하고 짓고 그 길을 질주한 주인공은 울티모인데, 울티모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흐르는 부분은 많지 않다. 이야기는 시종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울티모를 보여준다. 저자는 어린 울티모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소 수상하고 불친절하게 안내한다. 울티모를 찾아다니며 독자가 더듬는 것은 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더해서 결국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완벽한 뺄셈이자 노인의 주름처럼 한 굽이 한 굽이 고스란히 생애의 시간들을 담고 있는, . 울티모는 일찍이 길의 이치 곧 생애의 이치를 깨우치고는 자신의 인생을 담아낸 완전한 서킷을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이야기]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울티모가 인생의 목표인 서킷을 완성하고 그 길을 질주하고 난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길이니까. 길은 언제나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되기 마련이고 레이스는 길이 있는 한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길은 구경하는 사람이 아닌 달리는 사람에게만 온전한 길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길은 변덕스럽고 심술궂고 엉망진창으로 꼬여있다. 그러나 길은 진실하다. 길은 오직 그 길을 질주한 사람만을 기억한다. 울티모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엘리자베타에게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은 그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어달리기의 주자가 바뀌는 바통터치의 순간이었으므로.

 

울티모는 엘리자베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는 미치광이 같았죠. 하지만 진실했죠. 하나의 길과 같았어요. 생뚱맞은 굽이가 자꾸자꾸 나오는 길, 돌아올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광막한 벌판으로 내닫는 길,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고 또 달리는 길이었죠.” 그가 엘리자베타 더러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볼만한 길이라고 한 말의 의미는 책을 덮어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도전적이었고 당돌했다. 심지어 그녀는 울티모를 그녀가 만든 길 가운데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곡선의 미학에 일찌감치 매혹된 울티모가 온갖 변주로 휘어져있는 서킷 같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생의 황혼에서 잠시 마주쳤다 덤덤하게 헤어져 끝내 각자 홀로 죽음을 맞은 연인은 비극적이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살아낸 인생이 있는 그들에게 기다림과 추억이라는 것은 슬픈 것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벌어진 그런 저런, 이런 이야기일 뿐.

 

 

 알렉산드로 바리코가 이야기 속으로 낸 길은 무척 아름답다. 울티모의 여정은 담백하고 그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온화하다. 돌이켜보면 울티모의 이야기를 전해준 모든 사람들 중 구경꾼은 없었다.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들, 진정으로 살았던 순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죽음과 이별, 비극이 벌어지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화자들의 목소리는 슬프지 않다. 엘리자베타가 젊었을 적에 썼던 일기를 중년이 되었을 때 또 노인이 되었을 때 펼쳐보며 그녀가 달려온 길을 회고하듯, 내가 달려갈 길에서도 이따금씩 이 책을 펼쳐보며 과연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가다가 죽더라도 가볼 만한 길이 되고 있는지 비춰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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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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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열심히 자기가 믿은 길을 선택했는데 어느새 미아가 되어버렸네요.”

작품 속 296페이지 리노의 말 중에서

 

 

내 길에 확신을 갖는다는 일은 참 어렵다. 나름 열심히 걸어왔고 또 부지런히 길을 간다고 가는데도 목적지는 대체 어디인지 요원하기만 하다.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길인 것 같은데 남들처럼 쉽게 쉽게 살아지지 않는 것도 같고 내가 택해서 걸어온 길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과연 내 길인지 종종 의문이 든다. 남들 길은 승승장구 레드카펫이라도 깔려 있는 양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데 내 길은 참 비루하다. 애초에 내 길이 아니었는데 어린 날의 호기심과 흥미로 대책 없이 걸어온 것은 아닌가, 지금이라도 돌아서 다른 길을 찾아야 되나. 이 정도 고민까지 들면 그때부터 길은 미로가 된다.

 

 

미로에는 괴물이 산다. 괴물 없는 미로는 앙꼬 없는 팥빙수다. 괴물은 길을 잃은 사람이 우왕좌왕할 때, 사람이 가장 약해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듯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겠다고 하고 돈에 약한 사람에게는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괴물의 실체는 환상이다. 괴물은 길을 잃은 내가 만들어 낸 허황된 꿈일 뿐, 길을 찾게 해줄 수 없다. 그러나 길을 잃은 사람들은 미로에 독버섯처럼 등장하는 이 괴물 몽환화에 덥썩 손을 뻗고야 만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갔듯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신간 <몽환화>에서 미로를 헤매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렸다. 유망한 수영선수였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트라우마로 수영을 그만둔 리노. 음악적 한계에 부딪힌 밴드 뮤지션, 나오토. 어딘가 자신이 소외된 것 같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소타. 아내와 별거로 지내며 아들의 신뢰마저 잃은 경찰, 하야세.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길을 잃었다는 자각조차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다. 이 건조한 일상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몽환화의 등장이었다. 한 노인을 죽인 범인과 그의 집에서 사라진 몽환화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미스터리 드라마 속에 진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두었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작품 속 420 페이지 소타의 말 중에서

 

 

 

21세기가 되면서 인간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이기적이 되었다. 개인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논리는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나에게 이익인가 아닌가로 만들어버렸다. ‘에게만 집중하는 세태는 그러나, 행복한 개인도, 행복한 모두도 만들지 못했다. 애초에 인간이란 로서만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나를 잉태한 누군가의 자궁이 없었다면, 나보다 앞서 이 세상을 살아내며 문명을 이룩한 선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내가 영위하는 문화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는 생명조차도 이전의 사람들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존재 아닌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길인 유산<몽환화>의 무게중심에 두었다.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 혹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길 앞에서 사람은 방황하기 마련이다. 왜 내가 이런 길을 가야 하는가, 억울한 심정마저 든다.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이 꽃길처럼 보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갈등의 기로에서 나오토와 같은 어떤 이들은 환상을 현실의 돌파구로 착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몽환화의 유혹을 경계하라고 독자에게 일침을 놓는다. 미로를 벗어나는 출구는 빚이라는 유산까지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한다.

 

 

<몽환화>는 탄탄한 복선을 촘촘히 깐 추리극을 통해 꽤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20123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 등장하여 일본 원전에 대한 자국인들의 책임감을 넌지시 일깨우는 이 작품은 추리극 이상의 진솔한 무게를 지닌 소설이다.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온, 또한 향후 수백 년에 이르는 동안 더 큰 후유증을 몰고 올 원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존경할만한 작가, 진정성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작품은 내가 처음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미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로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저자이지만 나는 <몽환화>로 말미암아 그를 추리소설가가 아닌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작품은 절묘한 밸런스로 추리극 만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개인만을 생각하는 모든 독자가 성찰해야 할 가치를 그린, 깊은 주제의식까지 갖춘 수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 길을 잃은 일본이 '몽환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빚이라는 유산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그리고 나 역시 나의 길에서  아키야마 슈지처럼 언제나 정의롭고 성실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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