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리스트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돈만 많으면 살기 편한세상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다. 나 역시 그런 말에 일부 공감한다. 일부가 아니라 아주 많은 부분을 공감한다. 돈만 많으면, 얼마나 편리하고 안온하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돈이 많으면 살기 좋은세상이라는 말에는 반대한다. 편한 것은 편한 것일 뿐, 좋은 것과 다르다. 이 소설의 출발은 거기였다. 좋은 삶은 과연 어떤 삶인가? 작은 화장품회사를 일류기업의 반열에 올린 한 여성 CEO는 죽으면서 그녀의 딸에게 말도 안 되는 조건부 유언을 남겼다. ‘딸아, 네가 14살에 작성했던 라이프리스트(내 인생동안 꼭 해야 할 일)를 완수하렴.’. 두 아들에게는 억대 자산을, 며느리에게는 회사를 상속한 엄마는 정작 딸인 주인공에게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해고까지 당한다. 번듯한 화장품회사 홍보실장에서 순식간에 백수가 된 주인공은 그때부터 그녀의 라이프리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주인공 브렛이 14살에 쓴 라이프리스트는 뭐 크게 대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강아지를 기르고 말을 기르고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빠와 화해하고 지금 가장 친한 친구와 영원한 우정을 간직하고 뭐 등등등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서른이 넘은 싱글 여성이 저런 목표들을 달성하기에는 굉장한 부담이 따른다. 강아지야 뭐 어느 정도 현실성 있지만, 도시에서 말을 기르라니 거기에 아이 엄마가 되라니. 더구나 아빠와 친구 같은 관계는 아이가 아니라 도리어 어른이게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제 아닌가. 라이프리스트 목표 달성의 기한은 1. 1년의 4계절을 보내며 주인공은 참 많은 변화를 겪는다. 이야기의 끝은 물론 해피엔딩. 엄마는 하나뿐인 딸에게, 그것도 그녀의 영혼을 다 바친 사랑의 결실인 유일한 딸인 브렛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커다란 유산을 상속해주었다.

 

나는 내가 14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지? 내 인생에 어떤 기대를 걸고 꿈을 가지고 살았던가? 돌이켜 본다. 그때 내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지금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 서랍장 제일 안 쪽 구석에, 표지가 해지고 종이가 노랗게 바랜 내 오래된 일기를 꺼내보아야겠다. 시간이 오래된 먼지 냄새로 깃들어 있는 내 삶의 기록. 어쩌면 거기에도 내 인생의 중요한 어떤 것을 일깨워 줄 라이프리스트가 들어있을지 모르니까.

 

 

"부자들은 그러나 봐." 제이 오빠가 말한다. "그 사람 아버지가 무려 서른 개가 넘는 특허를 가지고 있대. 다른 주에도 집이 있고, 카리브 해에 섬도 가지고 있고 자식은 허버트뿐이래."
"나 같은 사람에게 흥미 없을 거야. 교사에다 필슨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데."
셸리가 그만하라는 듯이 손을 젓는다. "그런 당분간이잖아. 유산 상속이 미뤄졌다는 얘기는 제이가 벌써 했대."
입이 벌어질 일이다. "뭐?" 나는 오빠를 본다. "왜 그런 말을 했어?"
"그 사람과 수준이 맞는 사람이란 걸 알리고 싶을 거 아냐?"
오빠의 말에 불편한 감정이 밀려온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어떤 곳에 사는지, 얼마나 돈을 버는지 같은 것에 따라 사람ㅇ르 판단하는 사람? 내가 앤드루하고 만났던 친구들이 모두 부유하고 매력적이었던 게 그냥 우연이었나? 전율이 인다. 엄마가 내게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과 깊이 없는 만남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라고 떠밀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더디고 화려하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난 처음으로 살아가는 일을 즐기며 가고 있다.

p308 –3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