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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199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겨울은 이전에 없었던 시위로 소란했다. 수도 리야드에서 여성 운전권에 대한 시위가 일어났고 ‘여성의 운전할 권리’를 외친 여성들은 체포되었다. 당국은 이들을 중죄를 저지른 인물로 취급하였고 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의 겨울에 해빙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날 알 샤리프가 유튜브에 자신이 운전하는 영상을 게재하고 이 영상이 국제적인 관심을 얻게 되면서 여성 운전권 요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우디 여성의 운전권은 더 이상 사우디 내국의 문제도, 여성 문제도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전 인류가 함께 주목하고 고민하는 세계인의 이슈인 동시에 인권 문제로 자리 잡았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상 최초로 여성 운전을 허용하게 되었다.
30년 전에는 실패했던 일이 지금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 이유는 한 가지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딸애에게 수혈이 필요하다고 올리면 순식간에 주변의 수십 명이 헌혈하겠다는 응답이 오고, 물부족 국가에게 전해진 식수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오르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 선행에 동참하겠다는 하트를 보낸다. 법학박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매슈 대니얼스의 말대로 ‘인터넷은 좋은 생각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보편적 인권 운동의 추진력을 마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109쪽)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는 그 어떤 시대도 요구되지 않았던 남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다. 인권 감수성이다. 인권이라는 단어를 읽으면 평범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대의나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정의 같은 것들이 떠올라 부담스러운가? 그러나 사실 인권이란 멀리 있고 거대한 어떤 것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있는, 공기처럼 투명하고 가벼운 것이다.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세계 인권 1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은 우리가 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장소, 그러니까 너무나 작아서 세계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은 개인의 세계입니다. 자신이 사는 동네, 다니는 학교, 일하는 농장이나 공장, 사무실 모두가 개인의 세계이지요. 이런 곳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고, 존엄성이 지켜져야 합니다. 거기에서 보편적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지켜질 수 없습니다. 집 가까이에서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합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책 40쪽)”
오늘 집 앞에서 강도를 당하지 않고, 장을 보러 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시체나 핏자국을 보지 않았으며, 놀이터에서 납치된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안전한 개인의 세계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쉽게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손 닿는 곳에 있는 우리들이 식수가 없어 생존에 위협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위에 쓴 마날 알 샤리프의 심정에도 다가가기 어렵다. 분명히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잡은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그녀와 그런 그녀에게 공개적인 지지를 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살고 있는 ‘개인의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개인의 세계’란 마치 몇 광년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이 다름은 고통이고, 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지구촌 각각의 ‘개인의 세계’가 모두 보편적 인권이 지켜지는 세계가 되도록,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왜냐하면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방관이며, 모든 방관은 유죄이기 때문이다.
인권 운동가 매슈 대니얼스는 타인에게 무감하고 무지한 현대인들의 삶에 영감을 던지기 위하여 이야기를 썼다. 그 이야기란 얼마 전 출간된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세계의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매슈 대니얼스는 성장기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 강도를 당해 척추가 부러진 어머니, 길에서 얻어맞지 않고 학교를 가기 위하여 고민했던 시간들, 청소년기에 수없이 보았던 시체들과 핏자국들, 그가 사는 곳에 언제나 맴돌던 강간을 당하고 죽거나 총격을 당해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은 자신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방관하지 않으려는 의욕이 있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매슈 대니얼스는 이 책에서 ‘인권’이라는 가치가 대두되기까지의 간략한 역사와 1948년 발표된 세계 인권 선언문의 핵심 가치 그리고 그 가치가 실현되기에 충분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특징을 설명하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인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인권 전쟁에서 승리한 시민들의 사례들까지 실었다. 나와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영감을 얻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책에 앞으로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를 잠시 생각했다. 중고등학생들의 독서토론 주제도서가 되어 이 책을 읽고 각자가 SNS에서 할 수 있는 인권 활동이 무엇이 있을지 토론을 해도 좋겠고,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이 책을 함께 읽고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권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나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제일 필요하리라. 이 책은 ‘인권’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 받는 것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도 모두 사람답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 옆에서 내가 살릴 수 있는 타인이 죽어가고 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일 아닌가. 내가 내는 목소리가 무의미하게 묻히거나 분명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면 무지하고 방관해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이 무한대로 연결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세계적인 연대가 가능해진 우리 시대에 ‘무지와 방관’은 유죄다.
유대와 연대가 희미해져, 사회와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어쩌면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나라보다 디지털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 디지털 시대의 상호연결성이라는 힘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이 책이 우리의 인권 감수성 향상 뿐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는 풀지 못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갈래갈래 찢어진 시민들의 연대를 회복하게 만드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 문명사회는 우리 시대에 감춰진 이 홀로코스트를 끝내야 한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어둠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암흑세계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세계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공포를 알리고, 억압자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모든 인간의 자유가 보호되는 새로운 시대는 단순히 정보화 시대와는 다르다. 내가 펼치는 인권 혁명 운동은 실질적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벽을 허물며, 생명을 구하는 시대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그 일은 성공하고 있다.
책 32쪽
https://www.instagram.com/p/B6X2mi8l3Hl/?igshid=pn51gshdv900
이제 문명사회는 우리 시대에 감춰진 이 홀로코스트를 끝내야 한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어둠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암흑세계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세계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공포를 알리고, 억압자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모든 인간의 자유가 보호되는 새로운 시대는 단순히 정보화 시대와는 다르다. 내가 펼치는 인권 혁명 운동은 실질적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벽을 허물며, 생명을 구하는 시대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그 일은 성공하고 있다. 책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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