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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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리법칙 75가지를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 심리학 서적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이미 중국에서 150만 독자를 만나고 한국으로 왔다. 150만 독자의 검증이라니, 서점가에 이토록 많은 심리학 책 중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뭘까?
 저자 장원청은 심리와 경제 분야 도서를 저술해왔다. 심리와 경제는 개인의 생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야다. 학문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접근하는 이론서들도 많지만 일반 시민으로서의 독자에게 가장 와 닿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일들을 심리와 경제로 설명하는 책이 아닐까.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우리 일상과 제일 밀접한 심리법칙 75가지를 설명한다. 인간 관계, 경제 현상, 소비 심리, 진로와 직업 부분까지 우리가 매일 매순간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해야 하는지를 도움을 주려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내가 실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마법 주문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착각 중에 하나가, 환경이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인생이 불확실한 것은 맞지만 환경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변해야 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심리 관련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자 귀찮음,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환경을 바꾸기 보다, 내가 이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를 먼저 바꾸는 게 효율적이다. 이 책은 문제를 나에게 좀더 도움이 되고 발전이 되는 방향으로 바라보는 데에 작지 않은 도움을 준다. 내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해설해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어려움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해주는 게 심리학 서적의 역할이라면, 이 책은 좋은 심리학 서적이다.

 

일상의 자잘한 불편함, 잡음, 어려움, 귀찮음으로 피곤하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를 잠식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기결정권을 침범하는 온갖 주변의 자극으로부터 내 중심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방향과 전략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므로.

 

; 이 책은 단편적인 심리 법칙 몇 가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관련된 최신 연구결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75가지를 망라했다.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인 독자에게 능동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주변 환경에 필요한 심리 법칙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저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법칙의 적용은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절대 가볍지 않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이 책은 단편적인 심리 법칙 몇 가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관련된 최신 연구결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75가지를 망라했다.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인 독자에게 능동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주변 환경에 필요한 심리 법칙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저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법칙의 적용은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절대 가볍지 않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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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별과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 서가명강 시리즈 9
윤성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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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윤성철 교수가 서울대 교양과목인 <인간과 우주>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현대 천문학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우주관, 그 우주관이 어떤 발견들을 통하여 뒤집어졌고 엎어졌다가 새로운 이론과 법칙들로 발전해왔는지를 정리하고, 현대 천문학이 발견하고 정립한 우주와 생명체에 대하여 안내한다.

 

 이 책을 읽고 빅뱅 이론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천문학이나 우주물리학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던 나였는데 이 책에서 우주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따른 뒤에 ‘그럼 빅뱅 전엔 뭐가 있었지?’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찾아보니 빅뱅 전에는 시간과 공간도 없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럼 그 전이야말로 ‘영원’의 상태였다는 거 아닌가? 백년인생 밖에 안 되는 내가 수십억, 수백억 년 전을 너머 시간과 공간조차 없던 시절을 가늠하는 건 신기하고 묘한 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별을 구성하는 물질과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같다는 것을 여러 근거와 이론을 들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별들의 세계, 우주는 하나의 형태와 구성으로 고정되어 존속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공간이 팽창하거나 수축되며 별들이 태어나거나 소멸하면서 우주는 계속 다른 얼굴로 살아왔다. 원래 그런 모습으로 있었던 것도, 고정된 모습인 것도 아니다. 별과 우리의 몸을 이루는 성분이 같다는 사실은, 인간의 몸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변화는 생명의 속성이다.

 

 이 책은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들을 관통하는 이 생명의 속성에 집중한다. 우주의 장엄한 역사도, 그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역사도 생명의 속성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설명이 펼쳐진다. 교양수업 내용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 그런지, 문장 곳곳이 매우 감성적이다. 천문학은 우주를 숫자와 계산의 공간으로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낭만적이다.

 

 그러나 우연성, 가능성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부분들은 읽기에 난해하다. 인간의 모습, 현재의 세계가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때로 ‘우연성’이 등장하는데 (물론 무작위와는 다른 의미로) 이런 부분을 읽으면 의문이 가시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다고? 우연히?’라는 반문이 더해진다. 아마 이런 부분은 현대 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부분인가보다.

 

  과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과학 논문에는 오류가 없을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 또한 과학자의 말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틀렸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기 때문이다.
120-121쪽

 

 그러하기에 이러한 서적을 읽을 때는 현재까지 측정된 데이터는 이러하며, 실제 값으로  이런 저런 점을 추측하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구별되어야 하겠다. 실제와 추측을 구분 짓는 건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모두 필요한 부분이리라. 예를 들면 외계문명에 대한 네 번째 꼭지에서 ‘가능성’이라고 언급한다면 자칫 ‘외계문명이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무리하게 확장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결과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만 적어도 100억 개 이상, 최대 400억 개의 지구형 행성이 존재한다. 우리 은하와 유사한 은하들이 우주에 약 2조 개가 존재하고 있으니 우주 전체에는 무려 10의 22승개가 넘는 지구형 행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지구에는 약 78억 명의 인구가 있다. 만약 100억 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이 있다면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중 거의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기적이라 부른다. 인간의 존재도 이런 기적일까? 만약 골디락스 존 행성에서 인간과 같은 고등 지능을 지닌 생명체가 등장할 확률이 100억 분의 1이라면, 지구의 관점에서 이는 100억 분의 1의 극히 희박한 확률이 실현된 것이다.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전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는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우주에 10의 22승개가 넘는 골디락스 존 행성이 있다면 그 중에 1조 개가 넘는 곳에서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적 생명체의 존재는 오히려 우주적 필연이다. 이처럼 우주는 기적을 평범함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광대하다. 우주에 관해 점점 더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혼자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236-237쪽

 

 기대만으로 점치듯 예측하는 건 과학이 아닌 경우여야 한다. 빅뱅으로 인간이라는 고등생명체가 탄생한 경우와 인간이라는 고등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그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 저자의 말처럼 생각을 구체적인 ‘숫자’로 구현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닌 공상이니까(178쪽).

 

 우주라는 거대한 생명체와 나라는 한 인간이 하나의 유기체임을 마주보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 사실을 타당한 근거와 설득적인 해설로 설명을 듣는 건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아마 그래서 ‘서가명강’시리즈가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앞으로 과학이 어떤 발견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반 세기 동안 이전의 역사와 전혀 다른 서사를 써온 현대 천문학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앞으로 거듭 뒤집어지고 엎어져서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게 될 테니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올 때가 그랬고 정상우주론에서 빅뱅이론으로 넘어올 때가 그랬다.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게 더 많은 지금, 앞으로 또 어떤 미지가 언제 어떻게 우리의 눈에 발견될지 기대가 된다.

과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과학 논문에는 오류가 없을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 또한 과학자의 말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틀렸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기 때문이다.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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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응원하라
호응회 지음 / nobook(노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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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게 응원이란 매우 오래된 것이고 익숙한 것이다. 고된 농번기에 풍악으로 농군들의 기를 북돋우었던 농악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응원은 단순히 스포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에 관계된 신명이고 흥이었다.

 응원 받는 일도 멋진 일이지만 응원 하는 일은 숭고한 일이다. 응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선한 마음의 표현일 뿐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단단히 응축된 에너지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감정은 전이된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진취적이고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 옆에서는 그런 좋은 기운을 받게 마련이고 일생이 짜증나고 화나는 일 투성이인 사람 옆에서는 나 역시 그 짜증과 분노에 감염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응원단은 일종의 씨앗이 된다. 건강하고 정열적인 생기는 상대와 주변에 전달되면서 시너지를 일으켜 패배가 예상되었던 경기에서 승리하게 만들고, 사회와 조직에서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싹트게 한다.

 

 

 씨앗의 단단한 표피가 찢어지고 배아가 흙속에서 자신을 산산이 분해하여 흙 밖, 햇빛 아래로 싹을 올려 보내듯이 응원단이란 순수하게 좋아서 몸 바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뭐 대단한 평가나 대가가 따르는 일이 아니기에 때로 이것은 청춘의 객기나 무모한 치기로 비춰지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도 안돼, 결혼은커녕 연애도 힘들어, 그냥 사는 게 다 버거워’라는 무기력과 고단함이 20~30대 전반에 형성되어 있는 때에, 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뭐 주는 것도 아닌 개고생을 자처해서 한다는 건 자본주의의 논리상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응원단은 왜 존속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나의 응원단 생활을 뒤돌아보면, 분명 나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하는 위치에 서 있었지만, 응원을 하는 동안은 항상 내가 더 그들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응원은 허공을 향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서로 진한 교감이 있어요. 사실 응원단이든 응원단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든 응원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하나가 됩니다.
60쪽 (권오진 79학번)

 

 고대 응원단 OB들의 인터뷰 및 수기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그 자체로 고대 응원단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 대학가와 그 문화가 걸어온 길의 단편이다. 나로서는 까마득한 59학번들의 회상과 7080학번들의 피땀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분투기, 영광스러운 기록들로 점철된 90년대를 지나 새로운 기조 앞에서 진보와 변혁을 꿈꾸고 있는 00학번들의 비전까지 이 작은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고대 응원단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던 나는 우리나라 응원 문화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해온 연고전/고연전과 이 첨예한 접전에서 호랑이 기운으로 50년여를 달려온 고대 응원단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특히 고대와 연대의 관계는 마치 코카콜라와 펩시에 다름없다. 둘이서 죽고 못하는 원수로 비춰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있기에 더욱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가 한다.
 대학 다니던 때에는 관심도 없던 응원단 활동이 이렇게 멋진 일이었을 줄이야. 화려한 응원복을 입고 사람들의 시선과 환호를 받기 때문에 멋진 게 아니다. ‘응원’ 자체가 멋지다. 응원은 같은 팀을 위하여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응원단이 누구냐에 따라 건강하고 역동적인 기운을 응집한 대중의 축제가 될 수도 있다. 고대 응원단은 이 대중의 축제를 가장 선두에서 만들어온 주역이다. 장영철 OB의 이 말은 이 뜨거운 관계를 이 한 마디로 압축한다.

 고연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본질은 ‘서로의 존재 가치를 높이자’는 것이었죠.
163쪽  (장영철 67년 부단장, 72년 총기획)

 

 고대 응원단의 자화자찬만으로 이 책이 점철된 건 아니다. 이 책은 응원단 문화의 그림자를 지적하며, 자기애에 너무 도취되지 말라는 경계도 담겨 있다.

 

 내가 고대를 다녔기 때문에, 고대응원단을 했기 때문에 얻은 경험의 영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나도 모르게 경험의 영역 안에 머무르게 만드는 측면이 있어요. 인간은 머무르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나를 위한 응원이 필요한 것이겠죠. 자신을 응원하되 자기애에 너무 빠지지는 말자.
187쪽 (이상훈 80년 부단장)

 

 이 책은 대학 응원단에 참여하라는 동기 부여제이자 대중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는 응원에 대한 성찰이자 새로운 문화에 대한 야망의 기록이다. 독자 모두가 자기의 인생을 자신이 응원하길 바라는 이 책의 열정이 모든 독자들에게 가 닿기를.

 

 

 


나의 응원단 생활을 뒤돌아보면, 분명 나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하는 위치에 서 있었지만, 응원을 하는 동안은 항상 내가 더 그들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응원은 허공을 향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서로 진한 교감이 있어요. 사실 응원단이든 응원단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든 응원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하나가 됩니다. (권오진 79학번)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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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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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고 나서 저자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입니다. 그동안 저에게 소설은 언제나 문 밖에 선 누군가의 노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두드린 소리는 문 안에 울림을 남기고 그 울림은 문 안에 있는 나만의 것이었습니다. 문 안에서 그 울림이 어떻게 둥글려지고 응결되고 간직되든지, 그것은 나의 몫이었습니다. 해서, 저는 문 안의 울림이 문 밖에서 두드린 당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제껏 저는 독자가 소설을 발견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야기란 소설의 몸으로 박제되어, 어디 가만히 고정된 채로 독자가 자기를 발견하기만을 기다리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진주]는 발견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견하기 위해서 나타난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소리를 듣고 그 두드림에 공명하는 독자를,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장혜령 작가님, 오 년 동안 쓰고 또 고치며 비로소 세상에 낸 이 책을 읽고 놀란 건 저 한 사람만이 아닐 겁니다. 일기, 시, 르포. 고정된 형체 없이 그러나 명명한 터치로 문을 두드리는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만들게 합니다. 에세이를 초과하는 기록이라 결국 소설로 진주를 토해낸 이 사람은 누구일까? [진주]라는 기록을 써서 결국 글쓴이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나? 해방인가, 중력인가?

 

 

*

 

 

저자인 당신의 기억 속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는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작가님과 저는 나이가 같거나 한두 살 차이가 나는 정도일텐데, 생의 타임라인으로 보자면,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 성인이 되기까지 같은 시간을 살아왔을 겁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일기와 제 일기는 마치 다른 우주에서 기록된 듯 다릅니다. 당신이 부당하고 부조리한 정치에 대한 일기를 쓸 때 나는 술을 많이 드시는 아빠가 싫다거나 사이가 틀어진 친구를 원망하는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사복경찰로부터 지켜야 하는 비밀을 품었을 때, 나는 거실 한 구석에 커튼을 치고 은밀한 공간을 품었을 뿐입니다. 같은 정권을 거쳐 같은 뉴스를 보며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성장한 당신과 나인데도 몸의 동선 뿐 아니라 기억의 동선까지도 완전히 달라 기이했습니다.

 

기이한 것은 알 수 없는 것. 알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다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미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읽는 것.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로부터 바로 사유가 확장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혜령 작가님. 티비를 보는 늙은 아버지에게 그의 과거를 묻는 대신, 민주화운동가인 아버지의 기록을 구하며 찾아 읽었던 것은 이런 마음이었습니까? 이해할 수 없음에도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고 찾아가 읽는 것. 사랑의 속성인 이것에 힘입어 당신의 사유는 이토록 확장되어 나에게까지 와 닿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덕에 당신의 기록에 닿은 나의 세계가 깨어지고 그 파편들이 다른 모양으로 건설되어 새로운 세계로 조직되는 일. 이것이 [진주]를 읽으며 나에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

 

 

우리가 상속받은 이 세상은 불친절했습니다. 책 속에, 작가님이 삽입한 어린 날의 일기에서와 같이, 부재한 아버지를 앓고 있는 아이에게 “시험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답하고 현실의 부조리를 토로하는 일기에 “깨끗이 잘 썼다”고 응수하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라왔습니다. ‘왜‘를 설명해주지 않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빛을 던지기 위해서는 다시 질문해야만 했다(책 20쪽)’며 질문으로 어둠을 밝히고 질문으로 지도를 그린 작가님과 저 같이 아무런 질문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 공존합니다. 경계에 서서 사회와 불화하는 작가와 귀퉁이에 앉아 불화하지도 친화하지도 못하는 독자.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었을까요?

 

[진주]는 우리가 상속받은 세계가 어떻게 건설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신앙으로 지도를 그렸던 그 시절, 1970년대를 깊이 탐색합니다. ‘우리로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꿈꾸던 세계가 이루어지리라 여기고, 우리로 사는 사람들의 가족은 거룩한 신앙으로 삶을 지탱하던 시절이었다고, 작가님은 증언합니다. 그 기록을 통하여 비로소 내 안에 찢기거나 소실된 페이지를 채워 넣어봅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상의 기록을 [진주]로 채우면서, 나는 내 안에 이토록 부재한 기록이 많았음을 확인합니다. 내가 살았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은 실존한 것이 아니었나? 내가 이토록 세상에 어두웠나? 부재한 기록이 한 겹, 한 겹 두터워질수록, 이 질문은 과거가 아닌 현재로 시선을 돌립니다.

 

물러나라. 목적어가 없는 피켓을 들고 당신들은 불시에 흩어집니다.

그렇게 햇빛이 사라진 곳에서 어느 날 다시 눈을 뜹니다.

엎드려 손을 머리 위로.

명령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여전히 손과 발이 없는 감정을 연습합니까.

 

민주화운동이라는 죄목으로 쫓기는 아버지가 하나님이었고 그를 쫓는 독재자가 하나님이었던 신앙의 시절, 우리로 사는 일에 가슴이 뜨거웠던 그 믿음으로 그린 지도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지도 위로 행군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멸시하거나, 두려워했다고 해서 그 지도는 사라졌습니까? 아니요. 우리에서 해체된 그 많은 개인들은 지도를 덧칠했습니다. 지도 위에 또 다른 붓질을 수없이 그어 다른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을 갈 수 없었다고, 가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이 그때와 바뀌었다고 다들 말하지만,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청, 병원, 관공서, 대학 등이 감옥의 초입과 같고,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묻는 것과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도색만 새로 한 낡은 아파트에 들어선 듯 속았다고 느낍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만 현재는 너무 소란해서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말을 꺼내고 힘들이지 않고 글을 뱉습니다. 하지만 과연 서로에게 닿아서 이야기가 되어 빛을 발하는 건 얼마나 될까요? 말과 글의 홍수 속에서, 모두의 손등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고 자기 좋을 대로 움직이면서 화분을 깬 잘못을 떠맡게 될까봐, 누가 나를 거짓 밀고 할까봐, 내가 한 짓은 아니니까, 어차피 우린 다 완전한 각자로 사는 거라며 침묵합니다. 손등에 붉은 자국이 새겨지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침묵합니다. [진주]의 빛으로 내 손등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비춰보면서, 이대로라면 작가님의 말대로 수치는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 동감합니다.

 

 

*

 

 

왜 그렇게 살아왔는가, 왜 그렇게 지나와야했는가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불화합니다. 자신과 불화한 사람은 타자와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증명하기 위하여 써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님이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삶은 그런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다가 결국에는 못 이겨 진주라는 낯선 도시로 향했던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자신과 불화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야 했던 그 산통은, 어쩌면 작가에게만 아니라 이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모두에게 필요하겠구나,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말대로 애초에 기억도 삶도 타인과 더불어 시작되고 이야기는 고립된 방이 아닌 누군가가 들어와 머무는 세계니까요.

 

작가님이 오랜 시간, 오래도록 속에 담아두었던 많은 것들이 더 많은 진주가 되어 세상으로 토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야기에 닿아 완전한, 우리의 이야기를 빚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우리가 서로 맞닿으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신앙이나, 어둠을 쫓기 위한 질문이 아닌, 빛으로 지도를 그릴 수 있을까요? 세계의 전진은, 어쩌면 지금부터 비로소 시작이라는 기대로 편지를 갈무리합니다.

 

 

 

 

우리의 대화를 받아 적던 간수가 이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립니다. 바깥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더 말할 것은 없습니까. 당신은 고개를 들고, 그러자 그곳에 없던 작은 창문 하나가 생겨납니다. 그 창 너머로, 오랜 시간 감옥의 겨울을 견디고 지내온 나무 한 그루가 엿보입니다. 그 나무만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나무의 삶이므로. 나무는 기다리는 일을. 가만히 시간을 견디는 일을, 그러니 삶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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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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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년 가까이 된 소설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월간지에 2년 여간 연재한 작품이었다. 찰스 디킨스가 이 소설을 쓸 때 25살이었는데, 그때 이미 그는 [피크윅 클럽의 기록]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유명해져서 인기 작가가 된 상태였다고 하다. 이 신랄하고 도발적인 작가는 대중이 보고싶어 하는 얌전하고 고상한, 그러니까 성 제임스 거리(런던의 상류 부촌)에서의 보기 좋은 것들을 그리는 작품을 쓰기 보다 정 반대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우중충한 성 자일스 거리에서도 으리으리한 성 제임스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위한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정신으로, 나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를 어떤 주변 인물들 가운데 두어야 가장 잘 묘사할 수 있을지, 또 그가 어떤 유의 사람들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타락할 가능성이 있을지를 궁리하면서,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생각해냈다. 이 주제를 두고 곰곰이 숙고하는 동안, 나는 내 의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할 많은 강력한 이유들을 발견했다.
10쪽 저자 서문 중에서

 

 

 그래서 작가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게도, 악당들의 생활을 아주 노골적이고 집요하고 철저하게 이 소설에 담았다. 악당들이 어디까지 비열하고 어디까지 혐오스러울 수 있는가? 그런 악당들의 끝은 과연 평탄할 수 있는가? 찰스 디킨스의 주제 의식은 [올리버 트위스트] 작품 전체에서 시종일관 맹렬하게 타오른다.

 

(줄거리)

 올리버 트위스트가 태어나자 마자 그의 엄마는 목숨을 잃는다. 엄마의 신분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올리버가 태어났기에, 올리버는 고아원에서 자란다. 당시 고아원의 아이들은 상품처럼, 노예처럼 거래되었다. 올리버는 고아원 관리자인 빔블씨에게 이끌려 굴뚝청소부, 장의사 등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어른들의 학대와 또래의 모함에 견디지 못한 올리버는 어느 날 도망을 쳐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으로 오는 길에 유대인 노인의 무리에 끼게 된 올리버는 졸지에 소매치기 일당이 되고 만다. 사람 좋아 보이는 유대인 신사는 사실 아이들에게 앵벌이를 시키는 포주였다. 하지도 않은 소매치기에 대한 누명을 쓴 올리버는 재판까지 몰렸다가 구사일생으로 혐의 없이 풀려난다. 지쳐 쓰러진 올리버를 집으로 데려와 간호하고 보살펴준 브라운 씨의 덕택으로 올리버는 생애 처음 따듯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올리버가 자신들을 밀고할까봐 소매치기 집단은 다시 올리버를 잡아와 도둑질에 합류시킨다. 도둑질을 하러 간 집에서 총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된 올리버는, 다시 로즈 아가씨 등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가출한 올리버를 쫓는 빔블씨, 역시 올리버를 찾으러 다니는 소매치기 집단 등의 위협 속에 올리버는 불안해한다. 그러던 중 올리버의 출생 비밀이 밝혀지고, 악당들은 붙잡히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등 제각각 흩어진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찰스 디킨스는 단 한 명의 인물도 허투루 등장시키지 않고 각기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게 무대에 올려, 작품 전체가 시종일관 흥미와 긴장을 유지하도록 했다. 200년 전의 작품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은 세련되었고 현대적이다. 왜 영국인들이 찰스 디킨스를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출간한 [올리버 트위스트]는 보통 2권으로 나뉘어 있거나 청소년 버전으로 축약되어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원작 그대로, 한 권에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 초반에 저자 서문과 책 말미에 작품 해설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으면 재미와 이해가 더 깊어지리라 생각이 든다.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록생크의 삽화를 수록하여 당시 사회상과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최근 아이들과 집에서 독서토론을 하는 가정이 많이 늘었는데, 어린이 버전이나 청소년용도 좋겠지만, 현대지성의 [올리버 트위스트] 단권 완역본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고 각 인물의 입장이나 사정, 선택들에 대하여 토론을 나눠보는 것도 굉장히 좋은 시간이 되리라 싶다.


나는 우중충한 성 자일스 거리에서도 으리으리한 성 제임스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위한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정신으로, 나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를 어떤 주변 인물들 가운데 두어야 가장 잘 묘사할 수 있을지, 또 그가 어떤 유의 사람들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타락할 가능성이 있을지를 궁리하면서,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생각해냈다. 이 주제를 두고 곰곰이 숙고하는 동안, 나는 내 의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할 많은 강력한 이유들을 발견했다.
10쪽 저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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