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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사람 - 나의 모든 이유가 되어 준 당신들의 이야기
김달님 지음 / 어떤책 / 2018년 4월
평점 :
내 편이라는 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가 아무렇게나 투정을 부리고 못난 얼굴로 칭얼거려도 받아주는 내 편은 내가 실수를 하고 사고를 쳐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탱해준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빚지기 싫어하는 야멸찬 내가, 주시면 주시는 대로 뭐든지 다 넙죽 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분들이 내 편이기 때문이다.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나의 두 사람. 내가 여러 번의 실패와 자괴감의 진창에서 뒹굴지라도 끝내 불행해지지 않는 이유가 되어주는 내 편,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누구의 것이라도 개인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공공의 기록으로 확장된다. ‘아빠, 엄마’라고 적힌 글자가 눈동자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 대부분은 막 지은 밥내음처럼 따듯한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버리는 법이니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에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날 밤 꼭 캠프파이어라는 걸 했다. 운동장 가운데에 장작불 피워놓고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 앉아 촛불을 하나씩 켠다. 그리곤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떠올려보는 것이다. 어느 한 아이가 엄마가 보고싶다며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으면 그 뒤로 릴레이하듯 아이들은 순식간에 눈물바람이 된다.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맞슴돠!”를 내지르는 군인 아저씨들의 <우정의 무대>를 우리는 초등학교 수련회 때 예행연습해보는 셈이다. 실제로 부모님 얼굴을 마주보면 서는 짜증을 부리거나 무뚝뚝하게 대꾸하는 주제에, 조용한 데에 홀로 앉아 부모님을 떠올리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세상에 부모 심정 다 똑같다면, 세상에 자식 마음도 다 비슷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립을 하고 그러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다가 문득 우리는 화들짝 놀란다. 나는 자라고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는 동안 부모님은 늙어가신다는 사실에 불에 데인 듯 정신이 들고 그제서야 가늠해본다. 부모님과 내가 함께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무심無心은 발이 빠르고 애틋함은 엉덩이가 무겁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라는 생각은 자주 무뚝뚝함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뒤늦게 부모님의 세월을 헤아리며 찾아오는 애틋함은 명치 깊은 곳에 눌러앉아 후회와 아쉬움과 그리움 같은 것들을 자꾸 피워 올린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상처를 준 것, 내가 그 상처에 대해 사과를 하기 전에 이미 용서를 받은 것.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슬픈걸까.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내 부모라는 두 사람을 떠올릴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이유가 어느 쪽 때문인지 아마 나는 평생 모를 것 같다. 내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어 나를 닮은 아이에게서 내 부모의 얼굴을 보고 문득 울게 되는 시간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알게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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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님 작가는 1939년생 김홍무 씨, 1940년생 송희섭 씨의 손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일러, 88년에 태어난 달님 씨는 조부모의 품에서 생을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 배를 타거나 공사장을 다니며 가정을 부양하는 할아버지. 세상에 자기 편이 없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에게 달님씨는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자 든든한 자기 편이었고, 아들 딸이 모두 똑똑한 것이 평생의 자랑이었던 할아버지에게 그중에 제일 똑똑한 달님씨는 언젠가 꼭 글 쓰는 사람이 될, 제일 든든한 자식이었다.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부모님과 살았기에 추억과 고민, 불행과 행복도 여느 가정과는 조금 달랐다. [나의 두 사람]은 그 ‘조금’ 만큼의 다름에 채색된 봄나물, 제철 채소, 핫핑크 스웨터, 새 스포츠브라, 직접 지은 벽돌집의의 냄새가 난다. 자신과 조부모 사이에 놓인 50년을 조급해하던 김달님 작가는, 자신의 평생을 마련해준 늙은 부모님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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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책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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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사람]은 경남 창원에서 사회적기업 공공미디어 ‘단잠’의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달님 작가가 2017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다. 이 글은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하고 책으로 나왔다.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 날의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처녀와 총각으로 만났던 오래전의 언젠가, 유년과 소녀 시절을 거치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진통했던 그때와 저자가 독립한 이후 창원과 고향집에 차곡차곡 쌓인 애틋함과 그리움들이 에세이로 기록되어 잔잔히 펼쳐진다. 한 장 씩, 한 꼭지씩 넘어갈 때마다 가슴에 그 고향집의 노란 불빛이 환하게 밝아진다. 저자가 성장하는 동안과 마침내 어른이 된 후에도 고추장에 절인 장아찌처럼, 짠하고 구수한 사랑을 그치지 않는 두 사람의 온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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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을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이 위대한 일은 그치지 않는 사랑 없이는 안 된다. 사랑이라는 작은 단어로 표현되는 서럽고 고된 밥벌이와 궂은 살림과 온갖 수고로움을 자기 몫으로 삼키는 존재들이 없이는 결코 이 위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뭐 어디 멀리 있거나, 대단히 별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김치국밥 한 사발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으로 충분하다.
슬프거나 때로 힘들 수는 있어도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워서, 서로의 속사정이 달라서 우리가 잠간은 슬퍼지기도 하고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 서로가 서로에게 준 삶의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의미는 우리가 함께 눕고 먹고 서로를 보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만큼 켜켜이 채워져, 그날이 그리운 어느 날 추억을 돌이킬 때 고향 벽돌집처럼 노란 전등을 밝히고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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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사람]은 참 좋은 에세이다. 늙은 부모를 간직하려는 자식의 애틋한 시선에 이끌리면 나 역시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찾게 된다. 수련회날 마지막 밤의 그 장작불을, 별자리처럼 동그랗던 촛불을 여기다 피워놨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서 오늘도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또 하루가 간다, 다시 오지 않을 너머로. 세상 가장 든든한 내 편인 두 사람의 기록을 글로 남길 수 있는 건, 저자의 말처럼 다행이고 참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 다행한 기록이 세상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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