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사람 - 나의 모든 이유가 되어 준 당신들의 이야기
김달님 지음 / 어떤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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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편이라는 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가 아무렇게나 투정을 부리고 못난 얼굴로 칭얼거려도 받아주는 내 편은 내가 실수를 하고 사고를 쳐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탱해준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빚지기 싫어하는 야멸찬 내가, 주시면 주시는 대로 뭐든지 다 넙죽 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분들이 내 편이기 때문이다.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나의 두 사람. 내가 여러 번의 실패와 자괴감의 진창에서 뒹굴지라도 끝내 불행해지지 않는 이유가 되어주는 내 편,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누구의 것이라도 개인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공공의 기록으로 확장된다. ‘아빠, 엄마’라고 적힌 글자가 눈동자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 대부분은 막 지은 밥내음처럼 따듯한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버리는 법이니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에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날 밤 꼭 캠프파이어라는 걸 했다. 운동장 가운데에 장작불 피워놓고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 앉아 촛불을 하나씩 켠다. 그리곤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떠올려보는 것이다. 어느 한 아이가 엄마가 보고싶다며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으면 그 뒤로 릴레이하듯 아이들은 순식간에 눈물바람이 된다.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맞슴돠!”를 내지르는 군인 아저씨들의 <우정의 무대>를 우리는 초등학교 수련회 때 예행연습해보는 셈이다. 실제로 부모님 얼굴을 마주보면 서는 짜증을 부리거나 무뚝뚝하게 대꾸하는 주제에, 조용한 데에 홀로 앉아 부모님을 떠올리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세상에 부모 심정 다 똑같다면, 세상에 자식 마음도 다 비슷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립을 하고 그러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다가 문득 우리는 화들짝 놀란다. 나는 자라고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는 동안 부모님은 늙어가신다는 사실에 불에 데인 듯 정신이 들고 그제서야 가늠해본다. 부모님과 내가 함께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무심無心은 발이 빠르고 애틋함은 엉덩이가 무겁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라는 생각은 자주 무뚝뚝함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뒤늦게 부모님의 세월을 헤아리며 찾아오는 애틋함은 명치 깊은 곳에 눌러앉아 후회와 아쉬움과 그리움 같은 것들을 자꾸 피워 올린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상처를 준 것, 내가 그 상처에 대해 사과를 하기 전에 이미 용서를 받은 것.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슬픈걸까.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내 부모라는 두 사람을 떠올릴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이유가 어느 쪽 때문인지 아마 나는 평생 모를 것 같다. 내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어 나를 닮은 아이에게서 내 부모의 얼굴을 보고 문득 울게 되는 시간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알게 되겠지, 싶다.

 

 

 

 김달님 작가는 1939년생 김홍무 씨, 1940년생 송희섭 씨의 손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일러, 88년에 태어난 달님 씨는 조부모의 품에서 생을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 배를 타거나 공사장을 다니며 가정을 부양하는 할아버지. 세상에 자기 편이 없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에게 달님씨는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자 든든한 자기 편이었고, 아들 딸이 모두 똑똑한 것이 평생의 자랑이었던 할아버지에게 그중에 제일 똑똑한 달님씨는 언젠가 꼭 글 쓰는 사람이 될, 제일 든든한 자식이었다.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부모님과 살았기에 추억과 고민, 불행과 행복도 여느 가정과는 조금 달랐다. [나의 두 사람]은 그 ‘조금’ 만큼의 다름에 채색된 봄나물, 제철 채소, 핫핑크 스웨터, 새 스포츠브라, 직접 지은 벽돌집의의 냄새가 난다. 자신과 조부모 사이에 놓인 50년을 조급해하던 김달님 작가는, 자신의 평생을 마련해준 늙은 부모님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책 217쪽

 

 [나의 두 사람]은 경남 창원에서 사회적기업 공공미디어 ‘단잠’의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달님 작가가 2017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다. 이 글은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하고 책으로 나왔다.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 날의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처녀와 총각으로 만났던 오래전의 언젠가, 유년과 소녀 시절을 거치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진통했던 그때와 저자가 독립한 이후 창원과 고향집에 차곡차곡 쌓인 애틋함과 그리움들이 에세이로 기록되어 잔잔히 펼쳐진다. 한 장 씩, 한 꼭지씩 넘어갈 때마다 가슴에 그 고향집의 노란 불빛이 환하게 밝아진다. 저자가 성장하는 동안과 마침내 어른이 된 후에도 고추장에 절인 장아찌처럼, 짠하고 구수한 사랑을 그치지 않는 두 사람의 온기 덕분이다.

 

 

 한 인간을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이 위대한 일은 그치지 않는 사랑 없이는 안 된다. 사랑이라는 작은 단어로 표현되는 서럽고 고된 밥벌이와 궂은 살림과 온갖 수고로움을 자기 몫으로 삼키는 존재들이 없이는 결코 이 위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뭐 어디 멀리 있거나, 대단히 별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김치국밥 한 사발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으로 충분하다. 


 슬프거나 때로 힘들 수는 있어도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워서, 서로의 속사정이 달라서 우리가 잠간은 슬퍼지기도 하고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 서로가 서로에게 준 삶의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의미는 우리가 함께 눕고 먹고 서로를 보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만큼 켜켜이 채워져, 그날이 그리운 어느 날 추억을 돌이킬 때 고향 벽돌집처럼 노란 전등을 밝히고 거기 있다.

 

 

  [나의 두 사람]은 참 좋은 에세이다. 늙은 부모를 간직하려는 자식의 애틋한 시선에 이끌리면 나 역시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찾게 된다. 수련회날 마지막 밤의 그 장작불을, 별자리처럼 동그랗던 촛불을 여기다 피워놨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서 오늘도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또 하루가 간다, 다시 오지 않을 너머로. 세상 가장 든든한 내 편인 두 사람의 기록을 글로 남길 수 있는 건, 저자의 말처럼 다행이고 참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 다행한 기록이 세상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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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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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사람에겐 누구나 이기적 편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 편향이란 잠재적 편견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고하는 습관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꽤 나쁘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라 믿고 자신의 약점이나 악한 면은 외면하거나 무시하여 자신을 미화한다. 은희경 작가는 신작 [빛의 과거]에서 이기적 편향을 중력 삼아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는 별들의 세계, 우리라는 우주를 그렸다.

 

 

  [빛의 과거]는 1977년 청파동 여대의 기숙사 풍경과 그때 함께 생활했던 대학 동문들의 노년을 그린 소설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청춘들이 대학가에서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기숙사 안은 견고했다. 또래의 다른 여자들이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을 때 대학에 입학하여 화장이니 옷차림, 민주주의나 성평등을 관심사로 삼았던 그들은 진정 공주들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 뜨겁고 빛나는 청춘을 보내고 있던 그들은 대학 밖의 혼란한 상황엔 적당히 무심한 상태로 남편감을 찾기 위한 데이트나 졸업 후 진로에 매달렸다.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와 그녀의 룸메이트인 곽주아, 이재숙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1학년 김유경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경은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 소극적인 인물이다. 자기 감정과 욕구에 충실해 본 적이 없는 유경의 얌전함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이기적 편향을 신랄하게 꿰뚫어 본 또 다른 공주가 있었으니, 바로 김희진이다.
 희진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인물들을 모티프로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쓴다. 유경은 희진이 쓴 첫 작품을 뒤늦게 읽어보며 자신의 청춘을 반추하는데, 희진이 작품 속에 그린 기숙사 인물들과 유경이 기억하는 인물들은 마치 다른 인물인 듯 너무나 다르다. 유경은 시니컬하고 욕망에 충실한 희진의 눈에 비친 그때의 자신을 회상하며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때로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해체해 본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335쪽
 
 이기적 편향은 어쩌면 생존의 본능과 연결되는 기능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약함과 악함으로부터 가장 상처 받는 건 자기 자신이니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유경은 첫사랑에 빠져 있던 그때를 두고 ‘자신이 가장 예뻤던 때’라고 회상한다. 그토록 빛이 났던 그 시절이건만 그때 자신의 행동과 내렸던 선택, 이런저런 일들 속에서 느꼈던 온갖 감정들을 40년 뒤에 뒤돌아보면서 비로소 유경은 발견한다. 빛의 과거, 빛의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자신의 약함과 악함으로부터 도망쳤던 유경과 그런 타자들을 비웃으며 이용하는 희진, 그리고 빛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한계와 타성 속에서 억눌려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공주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별이 되어 그 빛만을 밤하늘에 남겨두었다.

 

 독자는 각양의 공주들에게서 때로는 자신을, 때로는 지인의 얼굴을 본다. 빛을 받아 하얗게 도드라지는 부분만을 나의 삶이라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건 이 책의 공주들 뿐 아니라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빛의 그림자까지 들여다보며 살기에 시간은 너무나 빠르고 우리의 정신은 그리 강하지 못하니까. 이기적 편향이란 사람이 자신의 약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쌓게 되는 성곽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희진이 그토록 신랄하게 조롱했던 공주들을 변호해본다. 더불어 나라는 빛의 과거 속에, 약하고 악한 나를 간직하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변호도 덧붙인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정도의 변호가 불가피한 사람들이니 서로서로 봐주자는 긍휼한 마음으로.

 

 

 은희경 소설가는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새의 선물](1996년 출간)의 에필로그에 이런 말을 썼다.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세계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다 자기 빛에 눈이 멀어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허세, 욕망과 이기심을 지니고 살아간다. 소설이라는 현미경으로 해체해 보면 우리의 실상은 다 비슷비슷하게 누추하고 민망하고 그런 법이다. 그러니 관계가 조각나고 삶이 섬처럼 떠돌지 않으려면 우리는 적당히 상처를 덮어가야 한다.
 인간에 대한 환상과 긍정을 부수는 은희경 소설의 마력은 이 작품 [빛의 과거]에서도 여전하다. 환상과 긍정이 부서진 후에는 그럼 무엇이 남는가? 이 책의 결말에서 유경은 다 부서진 과거의 잔해를 저벅 저벅 밟고서도 희진을 좋아하지도 경멸하지도 않는 관계의 궤도를 유지한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은희경 소설의 냉소 역시 여전하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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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 - 그림 한 장에 담긴 자기 치유 심리학
단 카츠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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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 먹으면 배 아파.” 내 입에 물고 있는 불량식품을 보면서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다. 하교하는 길, 문방구에는 알록달록 포장도 예쁘고 값도 싼 달달구리들이 얼마나 많던지. 죄다 설탕과 색소 범벅이라는 것도 알고 이런 거 먹어봤자 피와 살이 되기는커녕 건강만 해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어쩐지 자꾸 자꾸 손이 갔다. 마음이 허해서 그랬나?

 하교하는 길, 문방구를 서성이던 마음은 서점의 책 진열대 앞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마음에 드는 책들이 눈짓한다. 오늘 퇴근길에 허한 마음을 달래보려, 내 허한 마음이 왜 이러는지 문제를 해결해보려 심리학 책을 골라본다. 그래서 심리학 서적 좀 읽고 “형편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그간의 독서인생에 실례가 되지 않을는지.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의 저자 단 카츠는 스웨덴의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이다. 심리상담사로 오랫동안 일한 단 카츠 박사는 인지행동치료 CBT 전문가다. 저자는 정체모를 내면의 힘을 소환하는 사이비 심리학 서적과 전문가들이 썼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어렵고 재미가 없는 심리학 서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겠다는 야심으로 이 책을 썼다. 대중에게 인기는 있지만 영 못 미더울 뿐 아니라 어떤 경우 해롭기까지 한 책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과학적인 책들 속에서 저자는 ‘짧은 글과 명쾌한 일러스트’를 이 책의 무기로 내세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미술치료니, 뭐 그림심리니 이런 것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림이란 그 순간의 기분은 표현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심리라고 하는 내 마음의 작동 양식까지 파악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의 첫 장을 열기도 전부터 독자의 마음이 이렇게 강퍅한데 ‘명쾌한 일러스트’가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 예상보다 그림은 훨씬 힘이 셌다. 무엇이든지 뚜껑 열어보기 전에 얕잡아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한 번 배운다. 

 

 

 


 요 1년 사이에 내가 읽었던 가장 파워풀한 심리학 서적 첫 손에 꼽을만큼 이 책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는 훌륭하다. 왜 훌륭하냐? 저자가 말한 ‘짧은 글과 명쾌한 일러스트’로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심리적 도움을 주겠다는 집필의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작용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책 55쪽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는 사람의 뇌 속에서 공포를 감지하는 편도체 즉 파충류 뇌의 정체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이 멍쳥한 도마뱀 녀석이 우리 뇌를 장악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누구라도 패닉에 빠진다. 진정하지 못한 도마뱀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들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 심리 문제다. 


 이 심리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생각을 바꾼다’라는 설명과 암시 같은 걸로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심리 상황을 은유하는 그림 32장을 이 책에 싣고 각 그림에 따라 짧은 설명글을 곁들였다. 틈만 나면 도망치고 싶은 뇌, 무작정 열심히 하는 뇌, 한 치 앞만 보는 뇌 등 공포와 두려움, 무분별, 집착과 편향 등에 빠져 있는 독자들의 심리 문제를 쉽고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썼다.

 

 

 저자의 야심과 포부에 100퍼센트 부응한 이 책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완독이 가능하다. 복잡하고 정교한 해설이 아닌데도 나는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를 읽으면서 상당한 위로와 환기를 경험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림은 정말 힘이 세다. 그림과 함께 짧고 명쾌하게 쓴 전문가의 글이 있다면 더더욱 힘이 강해진다. 시집을 읽으면서 받았던 위로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심리학 책. 이도저도 아닌 심리학 서적과 정교하지만 너무 어려운 심리학 서적 사이에서 정말 환기가 될 심리학 서적을 찾는다면 이 책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를 감히 추천한다.

 

 

스톡홀름 대학교와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20년 넘게 인지행동치료 CBT 임상시험과 강의를 해오면서 한 가지 신념을 굳혔다. 좋은 상담사란 뛰어난 교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심리치료가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내담자 교육도 함께 이루어졌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상담심리사는 모름지기 우리가 어째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어째서 불안과 우울의 공격을 받으며, 또 그에 따른 변화가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 나아가 삶 전체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가는지를, 믿을만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책 12-13쪽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작용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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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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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습관이 좋은 생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가 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고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아침 운동하기나 일기쓰기 혹은 일주일에 몇 권 이상 독서하기. 인생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돛, 작더라도 의미 있는 결실을 남기는 자양분을 얻고 싶은 열망이 ‘습관 만들기’를 시도하도록 불을 지핀다.

 그런데 이 불에 되려 나 자신이 까맣게 타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분명 뭔가를 해보자고 시작할 때의 나는 ‘하면 된다!’는 기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아뿔싸 불이 너무 센건지 장작이 너무 약한건지, 이 불같은 기세는 며칠을 못 가 내 모든 노력을 탈탈 태우고는 사그라진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걸 하고 있나’ 식의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오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자기 성찰이 뒤따르면 이미 나는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살던 대로 살자 aka 되는대로 살자’라며 오래된 습관의 품에 다시금 나를 맡기고야 만다. 전남친에 비견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래된 나쁜 습관. 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이야? 이 정도로 내가 의지박약이란 말야? [해빗]의 저자는 우리의 이런 고민에 대해서 이렇게 답한다.

 

 

 

 

 

지난 1세기에 걸쳐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시청하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설계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했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유저가 밤새도록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도록 유도하고, 수많으 온라인 쇼핑몰은 원클릭 결제 시스템과 결합해 소비자의 과다 지출을 촉진하고, 대형 마트의 계산대는 달콤하기만 하고 영양가는 없는 정크푸드를 구입하도록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자동으로 반복하도록 조작된 함정들이다. 이런 세상에서 오직 개인의 의지력에만 의존해 저항하는 건 진이 빠지는 일이다. 마치 압력밥솥처럼 분노가 폭발할 때까지 욕망과 충동을 억누르고 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8쪽 한국 독자들에게,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그동안 우리는 습관을 형성하지 못하는 건 노력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약해서라고 생각해왔다. 노력하기 싫어하고 심지가 연약해서 그런 거라고, 그러니 밤낮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금연도 실패하고, 아침 운동 가는 일에도 실패하게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혹은 타자를) 생각해왔다. 그러나 [해빗]은 다르게 이야기한다. 환경과 상황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걸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 이전과 다른 환경과 상황이 새로운 습관의 시작이다. 


 습관은 무의식에서 나오고 노력은 의식에서 나온다. 새로운 행동 양상이 몇 번 거듭되는 동안은 의식이 관장하지만, 이것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어느새 무의식이 이것을 수행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상태를 ‘습관’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행동 양상이 습관으로 자리잡기까지는 그 행동 양상을 지속해줄 든든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 책 [해빗]은 무엇을 어떻게 지원군으로 삼을지를 안내한다.

 

 [해빗]은 저자가 연구하고 관찰하고 취재한 여러 사례와 실험 기록들을 근거로 ‘습관이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분석 정리한 책이다. 책속에서도 운전을 예로 든 부분이 있는데, 내 운전 경험을 돌이켜 보면서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쉬웠다. 면허를 딴 후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했을 때는 주행 중에 일체 다른 것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눈은 오직 전방에 고정되어서 사이드미러 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내게 운전이 얼마나 힘들었냐면, 쌩초보 딱지를 달고 인천을 다녀온 후 열흘 동안 몸살을 앓았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운전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니,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운전을 해야만 하는 환경’과 ‘이 환경 후에 내가 얻게 되는 보상’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습관은 쉽고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습관은 무의식(이 책 [해빗]에서는 비의식이라고 썼다.)의 영역에서 나의 생활을 경영하는 일종의 운전대다. 만약 우리가 정말 하기 어려운 일들을 이 습관으로 삼아 쉽고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된다면 얼마나 편해질까? 힘을 덜 들이고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된다면!
 저자 역시 이런 ‘습관’의 힘으로 독자들의 인생이 힘은 덜 들이고 더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성취하게 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해빗]을 썼다고 한다. 
 


 

 습관의 특징, 습관의 형성과 사람의 행동 원리, 충동과 의식 그리고 인생 안에서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혼란과 단절과 변수와 관계되는 습관의 변화에 대해 이 책이 설명해주지만, 이 책이 오늘부터 당장 내 습관을 대신하게 되는 건 아니다. 습관이 만능열쇠도 아닐뿐더러, 습관만 맹신하지 말라는 경고도 이 책에는 담겨 있다. 결국 자기에게 유익한 습관 설계와 운영 , 자신만의 시스템을 창조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구슬이 서말이 아니라 백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이 책에서 내가 좋은 습관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내 의지가 박약한 탓만은 아니라는 뜻밖의 격려와 ‘그래, 머리 굴리며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해’라는 새로운 불씨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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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 - 살기 싫어 몽테뉴를 읽었습니다
이승연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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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저 빛들에게는 ‘별’이라는 이름이 있다.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빛은 실은 별 그 자체가 아니라 별의 흔적이다. 별은 수백 혹은 수십 광년쯤 멀리,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에 있고 그중에 어떤 것들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소리 없는 폭발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진 별이 보낸 자기 목소리는 지구의 밤하늘에 걸린다. 산봉우리 어딘가에서 시작된 ‘야호-!’라는 외침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닿지 못하는 깊은 골짜기와 산맥 마디마디에 내려와 앉듯이, 별빛은 별이 사라진 시공간에 남아 우리들의 눈동자에 물들어 수많은 상상력과 영감과 위로 그리고 추억의 모티프가 된다.

 가까이는 백년, 어떤 책은 수백 년, 더 멀리는 수천 년. 별이 아스라이 멀 듯 고전의 저자들은 2020년의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남긴 별빛은 여전히 생생하다. 과학자들이 별빛을 따라 저 멀리로, 우주로, 시공간의 기원으로 거슬러 가듯이 독자 역시 고전을 읽고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따라 ‘정신의 기원’으로 거슬러 간다.

 

 

 몽테뉴의 <에세>는 철저한 자기 해체의 산물이다. 공직 생활에서 발견한 권력과 욕망의 위선, 잔혹한 종교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체험한 야만성은 몽테뉴로 하여금 끝없이 무엇이 인간인지, 자기 자신은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고 자기 자신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던 경험 역시 몽테뉴에게 사는 동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게 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제나 바로 다음 순간에 죽음이 예고되어 있으므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하고 솔직해야 한다. 몽테뉴가 <에세>를 기록한 20년 동안 한번도 느슨하지 않고 팽팽히 당겨진 ‘솔직함’은 5세기를 지난 현재도 여전히 하이텐션을 유지 중이다.

 

 이 하이텐션의 선율에 공명한 21세기의 독자는 한 둘이 아니나, 그 공명의 결실로 한 편의 오케스트라를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영화 비평을 주로 하던 이승연 저자는 반 년 동안 몽테뉴의 <에세>를 세 번 읽었다고 했다. 고통과 절망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붙잡았던 지푸라기인 몽테뉴의 <에세>는 그녀가 발견한 신대륙과 같았다. 신대륙의 이곳 저곳을 탐색한 이승연 저자는 신중하게 그 발견의 결과를 기록했다. 몽테뉴가 <에세>를 기록한 것과 같은 태도인 ‘솔직함’으로, 그녀는 몽테뉴와의 조우에서 얻은 생각들을 이 책<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로 썼다.

 

 

 저자는 스스로를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원시인’이라고 부른다. 페이스북이 나쁘진 않지만 매커니즘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여튼 SNS에는 취미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가 몸서리 쳐지게 싫지만 생계를 위하여 시간과 에너지를 저당 잡힌 가장의 고단함에는 무감하지 않다. 공기처럼 팽배한 성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들들이 없도록 균형 잡힌 인식 형성이 필요함을 안다. 민주당 공보팀장 등의 일을 했으나 초심을 잃고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에 몰입중인 정치권(한 때 동료이자 선배였던 그들)을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직장맘으로서, 노동자로서, 여자로서 저자는 자기가 지닌 수많은 페르소나의 면면을 아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몽테뉴가 <에세>를 썼던 자세 그대로 저자는 자신이 쓴 에세이가 받을 공격이나 불만을 예감하지만 용기를 낸다. 에세이가 자기 사유의 면면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용기에서 발원하는 글이라면 이승연 저자의 이 책<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는 순도 100% 에세이다.

 

 

 굳이 몽테뉴의 <에세>가 아니어도 좋다. 물론 <에세>이기 때문에, 5세기를 관통하여 만난 사람이 몽테뉴이기 때문에 생각의 물꼬는 더 풍성한 줄기가 되어 맑고 깊은 물길로 뻗어나갈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저자는 굳이 몽테뉴의 <에세> 읽기를 권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 몽테뉴와의 인연이, 그로부터 시작된 숨길 수 없는 울림이 멀리 메아리를 그릴만큼 퍼졌기에 이 책을 쓸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거나, 밑도 끝도 없이 힘내라는 족보 없는 격려가 에세이로 둔갑한 요즘, 정말 에세이를 쓰고 싶다면 이 정도의 솔직함은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
 몽테뉴의 <에세>가 궁금하지만 아직 읽기에 도전하지 못한 사람,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좋을지를 매일 고민하는 사람, 뭐가 됐든 본질적인 삶의 의미와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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