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 - 살기 싫어 몽테뉴를 읽었습니다
이승연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저 빛들에게는 ‘별’이라는 이름이 있다.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빛은 실은 별 그 자체가 아니라 별의 흔적이다. 별은 수백 혹은 수십 광년쯤 멀리,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에 있고 그중에 어떤 것들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소리 없는 폭발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진 별이 보낸 자기 목소리는 지구의 밤하늘에 걸린다. 산봉우리 어딘가에서 시작된 ‘야호-!’라는 외침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닿지 못하는 깊은 골짜기와 산맥 마디마디에 내려와 앉듯이, 별빛은 별이 사라진 시공간에 남아 우리들의 눈동자에 물들어 수많은 상상력과 영감과 위로 그리고 추억의 모티프가 된다.

 가까이는 백년, 어떤 책은 수백 년, 더 멀리는 수천 년. 별이 아스라이 멀 듯 고전의 저자들은 2020년의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남긴 별빛은 여전히 생생하다. 과학자들이 별빛을 따라 저 멀리로, 우주로, 시공간의 기원으로 거슬러 가듯이 독자 역시 고전을 읽고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따라 ‘정신의 기원’으로 거슬러 간다.

 

 

 몽테뉴의 <에세>는 철저한 자기 해체의 산물이다. 공직 생활에서 발견한 권력과 욕망의 위선, 잔혹한 종교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체험한 야만성은 몽테뉴로 하여금 끝없이 무엇이 인간인지, 자기 자신은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고 자기 자신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던 경험 역시 몽테뉴에게 사는 동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게 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제나 바로 다음 순간에 죽음이 예고되어 있으므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하고 솔직해야 한다. 몽테뉴가 <에세>를 기록한 20년 동안 한번도 느슨하지 않고 팽팽히 당겨진 ‘솔직함’은 5세기를 지난 현재도 여전히 하이텐션을 유지 중이다.

 

 이 하이텐션의 선율에 공명한 21세기의 독자는 한 둘이 아니나, 그 공명의 결실로 한 편의 오케스트라를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영화 비평을 주로 하던 이승연 저자는 반 년 동안 몽테뉴의 <에세>를 세 번 읽었다고 했다. 고통과 절망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붙잡았던 지푸라기인 몽테뉴의 <에세>는 그녀가 발견한 신대륙과 같았다. 신대륙의 이곳 저곳을 탐색한 이승연 저자는 신중하게 그 발견의 결과를 기록했다. 몽테뉴가 <에세>를 기록한 것과 같은 태도인 ‘솔직함’으로, 그녀는 몽테뉴와의 조우에서 얻은 생각들을 이 책<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로 썼다.

 

 

 저자는 스스로를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원시인’이라고 부른다. 페이스북이 나쁘진 않지만 매커니즘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여튼 SNS에는 취미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가 몸서리 쳐지게 싫지만 생계를 위하여 시간과 에너지를 저당 잡힌 가장의 고단함에는 무감하지 않다. 공기처럼 팽배한 성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들들이 없도록 균형 잡힌 인식 형성이 필요함을 안다. 민주당 공보팀장 등의 일을 했으나 초심을 잃고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에 몰입중인 정치권(한 때 동료이자 선배였던 그들)을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직장맘으로서, 노동자로서, 여자로서 저자는 자기가 지닌 수많은 페르소나의 면면을 아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몽테뉴가 <에세>를 썼던 자세 그대로 저자는 자신이 쓴 에세이가 받을 공격이나 불만을 예감하지만 용기를 낸다. 에세이가 자기 사유의 면면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용기에서 발원하는 글이라면 이승연 저자의 이 책<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는 순도 100% 에세이다.

 

 

 굳이 몽테뉴의 <에세>가 아니어도 좋다. 물론 <에세>이기 때문에, 5세기를 관통하여 만난 사람이 몽테뉴이기 때문에 생각의 물꼬는 더 풍성한 줄기가 되어 맑고 깊은 물길로 뻗어나갈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저자는 굳이 몽테뉴의 <에세> 읽기를 권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 몽테뉴와의 인연이, 그로부터 시작된 숨길 수 없는 울림이 멀리 메아리를 그릴만큼 퍼졌기에 이 책을 쓸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거나, 밑도 끝도 없이 힘내라는 족보 없는 격려가 에세이로 둔갑한 요즘, 정말 에세이를 쓰고 싶다면 이 정도의 솔직함은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
 몽테뉴의 <에세>가 궁금하지만 아직 읽기에 도전하지 못한 사람,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좋을지를 매일 고민하는 사람, 뭐가 됐든 본질적인 삶의 의미와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