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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힘은 삶의 무기가 된다 - 고요한 공감이 만드는 대화의 기적
마쓰다 미히로 지음, 정현 옮김 / 한가한오후 / 2025년 10월
평점 :
듣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고 느낀다. 요즘처럼 저마다 '자기 말만 하는 시대'가 또 있었을까. 유투브의 등장 이후, 누구나 자기 채널을 한 두개 이상 가지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누구나 한 두 시간 정도는 자기 이야기하면서 떠들 수 있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말 잘하는 사람이 예전처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말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그렇다. 말과 말하는 사람이 포화상태에 이른 듯한 요즘, 귀한 것은 잘 듣는 사람이다. 듣는 척하거나 듣기는 듣는데 대충 듣는 그런 거 말고, 정말 제대로 잘 듣는 사람은 참 귀하다. 손바닥 두 개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다면, 말 하는 소용이 다 어디에 있나. 말하는 쪽이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듣는 쪽은 대화를 완성하는 사람이다. 대화의 완성, 대화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역량이 더 크다.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일본의 커뮤니케이션 전략가인 마쓰다 미히로는 듣기 기술을 전수하는 책을 냈다. [듣는 힘은 삶의 무기가 된다]는 말하기가 어려워서 듣기를 택해버리고 마는 사람이나 듣기는 듣는데 영 실속이 없는 사람, 고품질의 대화를 유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듣기의 기술'을 안내한다.
요즘 MBTI로 사람 유형을 파악하는 게 대세라, 이 책을 T와 F로 나눠보자면. 상대의 푸념이나 하소연에 반드시 해결안을 제안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T는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뜨끔할 것이다. 이 책은 상대의 말을 듣고 내가 제언해주고 싶은 부분보다는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풀어가라고 조언한다. 엄밀히 말하면 '듣기'만 하는 기술이 아니고 '듣고 적합한 다음 말'을 찾는 기술이라고 해야겠다. 대화라는 게 말을 주고 받는 일이니, 상대의 말을 내가 멀뚱히, 한없이 듣기만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들었으면 나도 상대에게 뭔가 말을 건네야 상대는 또 그 말을 받아 그 다음으로 간다. 그래서 '듣기' 태도와 전략을 설명하는 책이지만 크게 보면 '대화의 태도'를 안내하는 책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사소한 고민을 나눌 때조차 상대가 늘 답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답을 주려고 애쓰지 마세요.
상대는,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라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더 얻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 감정이,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니 무리해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충분히 위로받고 여러분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159-160쪽
그렇다면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의 감정과 입장에 곧장 공감해버리는 F에게 이 책은 무용한가? 그렇지 않다. 한없이 상대의 입장으로 몰입해버리는 F에게는 적당한 브레이크와 차선 변경 기술이 필요한데, 이 책은 그 지점 역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눈치채더라도, 끝까지 ‘듣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답을 맞히려는 마음보다는, 상대가 자신의 말로써 끝까지 표현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85쪽
솔직히, 나는 듣기가 되게 안 되는 사람이다.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일엔 매우 서툴다. 성격이 급해서 그런가. '서론-본론 건너 뛰고 빨리 결론 짓고 끝내버리자' 라는 효율성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런가. 그런데 최근에는 이 효율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단지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치워버리는 게 효율성인가? 밥도 충분히 씹고 삼켜야 뒤탈이 없는데, 씹지도 않고 삼켰다가 체하는 게 밥 먹는 일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때로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면 시간을 두고, 그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관심의 무게 중심이 상대에게 가 있어야 한다면, 또 그리로 무게 중심도 옮겨 보고, 그런 과정이 오히려 가장 높은 효율을 보장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속도와 효율성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결과를 빠르게 내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일은 점점 더 드물고 귀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진심으로 들어주는 태도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66-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