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 역사 3 - 고대·고려사 사물궁이
최승이 지음, 사물궁이 잡학지식 기획 / arte(아르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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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궁이 시리즈의 역사 편을 드디어 읽어봤다. sns 카드뉴스에서 시작하여 유투브로 넘어와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채널은 이제 출판계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일명 사물궁이 시리즈가 과학 분야에 이어 역사 분야가 출간되었는데, 근현대사, 조선, 고대 및 고려사 등 시대별로 나누어 3권의 시리즈가 나왔다.


사물궁이 책 시리즈의 가장 큰 특이점은 '질문'이다.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라는 채널명이자 책 제목에 맞게, 이 책의 질문들은 무척이나 사소하고 때로는 하찮을 정도로 소소하다. 3번째 역사 시리즈인 고대 및 고려사의 목차에는 마치 카톡으로 친구와 주고 받았던 내 대화창에서 길어온 듯한 질문들이 들어있다. 질문들을 차례로 읽다보면 친구가 전 남친을 '고조선 시절에도 안 팔렸을 남자'라며 속터져 했던 날이나 할머니가 하셨던 '조선시대에나 썼을 것 같은 기묘한 욕'의 뜻을 엄마한테 물어봤던 날의 기억이 소환된다. 그만큼 이 책의 질문들이 현재의 삶에서 길어온 아주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일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의미다. 역사에 대한 질문을 현재의 일상과 일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역사의 의미와 재미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른 별에 사는 외계인들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만 다를 뿐, 몇 백년 전에 혹은 몇 십년 전에 지금의 우리처럼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이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과 일반이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는 역사가 곧 삶인 이 지점을 명확하게 캐치한다. 역사는 위엄 가득한 관복을 입고 국가 정사를 논의하던 사람들의 시간 뿐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험한 말을 주고 받거나 시시덕 대던 평범한 사람들,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걸치고 양푼에 밥 비벼 먹던 나 같은 사람들의 하루하루도 함께 쌓여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역사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려면 사소한 질문들이 필요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 삼국시대에도 투표가 있었을까?, 고려시대에도 고소할 수 있었을까?, 고려 사람들은 어떤 욕을 했을까?' 등과 같이 사소하지만 재치 있고, 나도 한번쯤 이걸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나는 그런 질문들이 미처 몰랐던 역사의 새로운 매력을 깨닫게 한다.


'연개소문의 이름은 개소문일까, 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개소문은 연씨 성을 가진 '개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연개소문의 아들과 손자들의 묘지명에는 그들의 성이 천씨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삼국사기도 연개소문 가문을 천씨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개소문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며, 왜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을까요?

책 79쪽 중에서


처음에 이 질문을 읽고 나는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름이 개소문이겠어? 그런데 아뿔싸. 고구려의 장수, 연개소문의 이름이 소문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 손 들어보세요. 네, 바로 접니다. 나는 정말이지 성이 '연개'인줄로만 알았다. 이름이 '개소문'이었을 줄이야. 그런데 심지어 중국에 남아있는 묘지명에는 이름이 다르단다. 왜? 무슨 이유로 연개소문이 천개소문으로 개명된 것인가? (궁금한 사람은 꼭 책을 읽어보시길)

좋은 질문은 허를 찌른다. 좋은 질문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좋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질문과 질문을 연이어 타고 가다보면 어느덧 당시의 정세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이러한 이해는 마침내 오늘날의 세계와 사람으로 이어진다. 연개소문의 이름에서 출발한 이 꼭지는 당시 당나라와 고구려의 정치적 상황, 연개소문 집안의 사건들, 후대가 평가하는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로 이어져 역사를 읽는 재미와 의미가 특히 더한 부분이다.


역사를 안다는 건 어떤 사건이 언제 일어났다든가, 어떤 인물이 어떤 흥망성쇠를 겪었다는 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오늘날에 그 사건 혹은 인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건과 인물이 있었는지 정보를 모른다면 의견을 낼 수 없겠지만 설령 연혁과 계보 등을 모두 꿰고 있다고 해도 그 사건과 인물의 의미를 오늘날에 비춰 생각하지 못한다면 자기 의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3편 고대 및 고려사 편은 책 중간 중간, 이러한 생각을 돕는 내용들이 많다. 정몽주의 피가 실제로 선죽교에 남아 있는가를 이야기하며,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이 조선 건국 후 정몽주를 충신으로 추켜 세운 사실을 언급할 때나 삼국통일을 이룬 후 200년이 지난 뒤에도, 정치적 주류가 되지 못한 고구려와 백제 출신 인물들이 후고구려와 후백제를 세운 역사적 흐름을 보여준 부분은 오늘날 이 시대의 사회와 정치에 비춰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질문은 사소해보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사소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 책을 읽으며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며 들인 많은 정성이 느껴진다. 책 뒤에는 각 꼭지별로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실어두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서를 집필한 분들의 열의를 볼 수 있다.


세상엔 재미있는 역사책이 많다. 어디 책 뿐인가. 역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각종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역사 콘텐츠에 실린 정보들은 반드시 검증된 팩트여야 한다. 역사를 다룬 콘텐츠에서 재미는 그 다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검증된 사실을 재밌게 다루기까지 했다면 10점 만점에 10점 아닌가.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2편 조선사, 1편 근현대사까지, 이대로 주욱 역주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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