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그루의 나무 - 다시, 지구를 푸르게
프레드 피어스 지음, 마르코 김 옮김 / 노엔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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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어제, 밤잠을 설쳤다. 밤이 늦도록 인터넷을 뒤지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뉴스나 sns를 새로고침 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이 재난이 언제 사그러들지 마음을 졸였다. 산불이 경상북도를 집어 삼켰다. 정말 문자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 산천초목 속에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 가축들 그리고 사람들. 엄청난 수의 이재민과 그들의 삶의 터전. 신라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역사, 그 시간들을 증명해온 우리의 문화재들을 집어 삼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불길이 잡혔다. 149시간 만에 산불을 잡았다고 했다. 새까맣게 재만 남은 산 둔덕 사진이 처참하다. 그래도. 너무나 슬픈 마음이지만 우리에게는 땅이 남아 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우거지고 온갖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그 땅. 그렇다. 땅만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땅만 있다면 자연은 어떻게든 다시 그 위에 숲을 건설한다. 인간을 위해서? 아니.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다. 자연 스스로의 의지로,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불타버린 산림을 재건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계획과 실행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계획과 실행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마어마한 자생력을 가졌지만 인간이 보기엔 느린 자연의 호흡을, 인간이 어떻게 맞추어갈 것인지 아닐까. 3월의 끝자락에서 [1조 그루의 나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참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1조 그루의 나무]라는 책은 프레드 피어스라는 영국의 저명한 환경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다. 저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환경 분야를 직접 취재하고 연구하며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이라는 상당한 시간 동안 몸으로 부딪혀 직접 보고 듣고 겪어온 지구촌의 환경 문제들에 대한 연구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해결 방안으로 산림 조성(책 속에서는 조림이라고 한다)이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사람이 아무데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드는 행위'가 과연 정말 지구와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를 묻는다.


벌목은 부유한 국가들의 열대림 훼손 공모 스토리의 일부분일 뿐이다. 벌채의 많은 부분이 주로 대두, 팜오일, 고무, 코코아와 같은 작물을 기르기 위한 플렌테이션이나 혹은 쇠고기 육우를 기르기 위한 땅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작물들은 일반적으로 급속하게 확장하는 글로벌 마켓 공급을 위해 재배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햄버거로 열대림을 먹고, 신발로 열대림을 누비며, 우리가 사용하는 프린터 속으로 열대림을 공급하고, 열대림 비누로 몸을 씻고, 빵을 만들어 열대림을 뿌려대고, 고무를 채취해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대규모 상업적 농업을 위한 토지 수요는 열대지역에서의 산림훼손 중 적어도 2/3의 원인이 된다.

132쪽 [1조 그루의 나무]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의 대부분은 산림 훼손에 큰 지분이 있다. 내가 뭐 특별히 산림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먹는 것, 내가 쓰는 것, 내가 신고 입는 것들이 산림훼손의 결과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행위로 산불이 이토록 크게 나서 경북 일대가 전쟁터가 된 지금의 사건은 꿈속에서조차 복장이 터지고 슬프다.) 저자는 나무 심기에 대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인간의 산림 약탈의 실상을 알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이 아직도 나무와 숲과 산림에 대해, 그것들이 지구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1조 그루의 나무] 초반부에서는 공중 수맥(책 속에서는 플라잉 리버라고 부른다)이나 바람의 발원 등 숲과 산의 역량에 대해 설명하는데, 정말이지 이 부분들은 진짜 재밌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재밌다. 왜냐면 저자는 그간 지구과학, 기후학 등에서 보편적으로 정설이라고 알려진 내용에 도전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숲과 산에 대해 경외감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대단한 숲과 산림을 인간이 어떻게 약탈하고 파괴하고 있는지, 얼마나 함부로 막 다루고 있는지, 저자 본인이 지구촌 모든 대륙을 두루 다니며 취재한 내용이 이어진 후에는 저자가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가 아직도 원시림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이 조림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고대 세쿼이어 숲 역시 그렇다. 캘리포니아 화재 연구원인 리 클링어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크며, 오래된 나무들은 ‘지역 주민들이 키우고 보살핀 것’이라고 말한다.

167쪽



지구상에는 더 이상 인간의 발길이 완전히 닿지 않은 원시림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원시림이라고 여기는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숲조차 인간이 키우고 보살핀 숲이다.그럼 인간이 모든 숲에 간섭해야 하는가? 그러기엔 이 책은 인간이 인간의 필요대로 숲에 간섭하고 숲을 통제하려는 시도(대표적으로 중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무얼 전하고 싶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비로소 알 것 같다. 저자는 숲은 숲의 역할, 인간은 인간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시간이 주어지면 손실된 많은 부분은 복원될 수 있다. 그것이 기후변화와 싸우고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정말 중요한 점이다. 이러한 ‘황폐한’ 토지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을 지구를 다시 녹화하는 1순위의 방법으로 삼는 전 지구적 캠페인이 요구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회가 있으면 자연은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147쪽


독일은 조림 사업계획을 내세우는 한편 산림의 5%는 자연 스스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완벽하게 천연적인 상태로 되돌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니더작센 뤼네부르그 히쓰의 야생 지역은 냉전 시대에 탱크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영국 군인들이 떠난 이후에 천연화되었다. 정부는 1992년 까지 러시아 군대 훈련장이었던 드레스덴 북부 코니히스브뤼크 히쓰에 5천 헥타르가 넘는 지역에 모든 사람의 접근을 제한했다. 풍화작용에 의해 막사와 콘크리트 벙커, 연병장이 붕괴하고 자작나무, 사시나무, 소나무 숲이 쾨니히스브뤼크 히쓰를 점령했다. 최소한 한 무리의 늑대 떼도 나타났다.

164쪽



원시림이 사라진 지구에 필요한 건 천연림이다. 독일의 사례처럼 모든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고 자연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그 시간의 작용에 따라 회복된 숲과 산이 그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숲을 조성하는 것이 지구 온난화에 도리어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소개한다. 숲을 만드는 것만이 모든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인간은 숲과 산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이런 인간이 숲을 조성한다?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그래서 자연이 자연의 힘으로 복원하는 환경을 제안한다. 시간만 있다면 자연은 스스로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독립적인 '시간'을 자연이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식에 맞지 않는 애꿎은 수종을 심는 것도 문제도,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만 골라 심는 것도 문제고, 나무고 숲이고 뭐고 심을 곳도 없이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숲이 들어설 자리를 뺏는 것도 문제다. 자연이 자연의 일을 할 동안 인간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독일 히쓰에 늑대 떼가 사는 천연림이 조성된 것과 같은 사례가 지구촌 전체에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천연림들의 등장으로 우리는 숲과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어쩌면 한국의 독자들을 영영 만나지 못할 뻔 했다. 산림 분야의 전문 지식을 얻으려 이 책을 찾아낸 역자(마르코 킴)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이 책은 한국어로 읽힐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들에게 출간을 거부당하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 책 한권을 출간하기 위해 스스로 번역 뿐 아니라 출판사까지 설립하며 각고의 노력을 들인 역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한국은 이 책이 꼭 필요한 시기에, 진주처럼 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역자 분, 정말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좋은 책 고맙습니다.)


산불은 꺼졌다. 이제, 나무를 심어야 한다. 저자 프레드 피어스는 이 책 서두에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국이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잃어버린 숲을 복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에 감탄을 보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잿더미가 된 산을 복원한 경력이 있다. 약 120억 그루의 나무를 우리들의 손으로 이 땅에 심었던 과거가 있다. 경력직이 왜 경력직인가? 신입보다 일을 잘하니까 경력직이다. 한 번 해내었던 일을 두 번은 못할 리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더 잘 심어보자. 자연의 호흡에 귀기울이고 식생과 생태계에 발맞추며, 접근을 끊어야 할 때와 보살펴야 할 때를 적절히 살피며. 이제,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

기회가 있으면 자연은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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