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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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작동하는 자연의 섭리를 지켜보노라면, '완벽'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어떤 쓰레기도 남기지 않으면서, 어느 한 군데 어그러짐 없이, 최고의 효율과 최대의 효용을 보여주면서 자연은 움직인다. 저자의 말처럼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언제나 일을 해낸다(책 47쪽). 화재로 잿더미가 된 들판은 누가 애쓰지 않아도 어느 새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찾아든다. 용암이 들끓어 생명체들이 사라졌던 바다에도,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거대한 포식자들까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온다. 이 '자연'이라는 말이 얼마나 크고 기적같은 말인지 이 책을 읽으며 실감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환경보호 운동가인 엔리크 살라가 쓴 책이다. 환경 운동계에서는 무척 유명한 인물이지만 나는 이런 유명한 인물을 잘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에도 꽤 무지한 편이라, 동물이니 식물이니 생태계니 하는 주제들에 대해 읽는 것은 좋아 하지만 굳이 찾아 읽는 편은 못된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계기는 순전히 이 책의 표지 때문이다. 바다짐승, 산짐승, 나비, 꽃, 온갖 식물들이 모여 있는, 마치 휴양지에서 봤던 열대의 셔츠 무늬같이 화려한 표지 한 구석에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나는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 지구촌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인류가 같이 고민해봐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할까? 지구상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 900만 종의 생물들, 아직 채 발견되지도 않은 미생물들과 균들, 온갖 풀들, 나무들,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새와 짐승들 그리고 이들이 사는 숲과 산과 바다와 강과 사막과 도시. 인간이 길들여 곁에 두는 반려 식물이나 동물 혹은 식용으로 키우는 가축 외에 사람의 손길을 타지않은 이 야생의 존재들은 과연 인간에게 무슨 가치가 있나? 이 야생의 삶과 인간의 삶은 과연 어떤 영향을 주고 받나? 인간이 굳이 수고를 해서 이 야생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한다.


(보르네오의) 기름야자는 전 세계 도시에서 식용으로 소비되겠지만, 인간은 그 대가로 생태계에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책 64쪽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내 친구 대니얼 폴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마치 폰지 사기꾼처럼 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폰지사기꾼은 <투자자2>의 자본을 <투자자1>에게 지불하고 수익금을 지불한 것처럼 가장한 다음, <투자자2>에게 수익금을 지불하기 위해 <투자자3>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폰지 사기는 <속아 넘어갈 새로운 투자자>가 존재하는 동안에만 작동한다. (중략) <파괴할 숲>과 <고갈될 어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기반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마지막 자원까지 탕진할 필요는 없다. 소비는 계속 증가하지만, 지구와 그 안의 다른 생물들의 개체 수는 그렇지 않다.

책 199쪽


자연 생태계의 경이로움을 알려주는 책은 무척 많다. 당장 자연과 생물, 과학을 주제로 집필된 혹은 그 분야의 저자들이 집필한 책을 검색하면 아마 검색 결과의 끝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저자의 표현대로 '지구 생태계의 압도적인 기적'에 대해 서술하는 책은 맞지만. 그것 뿐이라면 이 책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과 비슷한 감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자연의 경이로움, 그 정확하고 틀림없는 작동 방식과 결과에 대해 저자가 전 생애에 걸쳐 경험하고 연구해온 내용이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은 맞으나, 저자는 자연의 경이를 이야기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경이로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가 마법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책 86쪽)'는 저자의 말을 빌려야 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군데를 메모해 두었는데 그 중 단연 인상적인 문장은 이 말이었다. 생태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문명을 이루어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발달시켜온 인간이라 해도 생태계의 한 켠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그 영향을 받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자연의 작동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자연을 다스리고 이용하고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명체 역시 그 생태계의 일부로서 함께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논문과 연구 결과, 갖가지 이슈와 사례를 통하여 자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독자에게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주지시킨다. 생태계의 작동 방식을 거울 삼아 인간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비춰보기도 하고, 생태계의 어떤 현상이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자연을 신성시하지 않는 동시에 야생을 폄하하고 멸시하지 않으면서, 기적 그 자체인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동화된 저자의 통찰과 철학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저자는 지난15년 동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상주탐험가로활동하면서, 온전하고 완벽하게 기능하는 생태계를 엿보았다고 했다. 극지방에서부터 온대 바다, 열대 지방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곳을 탐험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그는 '우리 주변에 이 모든 종들이 왜 필요한지'를 지극히 이성적인 수준에서 최고의 영적 수준까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과연 이 영적 수준에서 이해한 내용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한 가지 질문에 이끌려 읽기를 시작한 책인데, 다 읽고 난 후에 더 많은 질문을 해보게 되는 책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다.



우리는 지능이 더 높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생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우리의 지성과 공감을 사용하여, 다른 모든 생물의 존재할 권리를 보호해야 할 때다. 그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금전이 아니라, 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경외감과 경이로움이어야 한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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