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and Greater China: Political Economy and Military Power in the Asian Century, Greg Austin and Stuart Harris. London: Hurst & Company, 2001.

By John W. Garver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The China Quarterly, Jan., 2004, pp187., Translated by Park Jongchol (May, 2005).

 

책은 중일관계의 포괄적, 공평한, 예리한 분석

그리고 연구는 중국인연구자나 비중국인학자의 기존의 연구에 기초하지만, 분야의 선행연구를 뛰어넘었다. 저자는 파괴자로서가 아니라, 진실하고 좀더 논쟁이 빛을 발휘하도록 다른 학자의 의해 발전한 아이디어를 많이 인용

중일의 상호작용에 초점, 그러나 중일간의 대만문제에 대한 논문과 홍콩반환에 대한 일본의 정책에 대한 고려는 대중국이라는 제목으로 합리화

상호이익, 그리고 경제영역과 전략영역의 일치에 대한 증명하지만, 책은 중일관계의 한정적인 작업으로서 위치한다.

 두 저자는 중일간의 다중적 분열을 정의하고 추적: 30-40년대의 전쟁의 기원과 상징성을 넘어서는 차이; 인권과 민주주의을 넘어서는 차이; 중국 군사력의 건설; 핵실험과 비확산 이슈; 지역의 지렛대로서 일본의 대중 개발원조의 사용을 넘어서는 차이.

 이 책는 다음을 연구

1, 아시아태평야지역에 군사적 영향을 포함한 거대한 영향력을 추구하는 일본에 대한 중국의 불쾌함, 2, 일본의 중국에 대한 마지못한 최선진 공업기술의 이전, 3, 일본의 대만에 대한 규준에 벗어나는 정책

아시아에서 중일간의 경쟁은 1, 중국이 권력을 확장하고, 2, 일본이 국제 규범의 확장을 추구함으로 증가.

그러나 저자들은 아시아에서 리더쉽과 지배을 위한 중일의 경쟁 모델을 거부, 그리고 강하게 억제된 세력의 행동과 결합된 이익의 광범한 집중(converge)은 중일관계를 대립보다 협력으로 유도

세계질서와 관련된 증가하는 집중에 관한 실례

1949-1971, 동경과 북경은 동서진영의 다른 편

1971년의 변화이후에도 중국은 글로벌 시장 경제를 거부

1978년부터 북경이 글로벌 경제를 받아들이면서 현상유지가 광범하게 손상됨으로써,

특정하게 병렬된 이익을 변형, 1. 병참조직의 해양경계에 대한 안보, 2, 홍콩의 인민공화국으로의 안정적인 반환, 3, 한반도와 같이 민감한 지역의 평화의 지속

 

 

 

 

 

저자는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의 팽창은 상호협조관계를 지속시킨다고

아시아의  다른 국가는 두 개의 대국과의 좋은 관계를 희망하고, 중일의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

두 대국의 어느 쪽의 움직이든지, 아시아의 소국들이 따라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화해에서 (소국들에게) 인지된 (양국의) 노력은 지역 명성을 확보하게 한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는 중일경쟁을 견제(완화) 동경과 북경은

동경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지역 리더쉽에 편안함을 느끼지만, 북경은 미국의 역할을 기본적으로 거부하고, 실제적으로 미국이 없다면 일본은 좀 더 강건한 군사적 능력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대만문제는 중일 분쟁으로 가는 남겨진 이슈, 그러나 북경조자도 위안을 위한 공간을 있다. 초기 몇 십 동안, 중국의 지도자는 역사적인 의미에서 경제적,문화적 일본의 세력범위로 포함되는 것을 우려

(Garver의 의견) 경제적으로 대만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과 통합되고 있고, 문화적으로 대만인들은 중화세계에도 서양세계에도 속해있지 않다고 본다. 일본은 문화적 정신적 정체성으로서 대다수의 대만인에게 인지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체성이 있는 대만인은 대부분은 구세대이고, 그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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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革때 방공호로 30㎞ 조성 300명 볼수있는 영화관까지

중국 베이징(北京)시 지하에 인구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하도시가 있다?’

믿기지 않는 소문이 5일 사실로 드러났다. 베이징시 중심부 지하에 미로처럼 얽혀 있는 ‘지하 만리장성’이 이날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돼 관광명물로 탈바꿈했다.

베이징 사람들이 ‘지하장성’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1960년대 말 지하방공호로 조성했던 것. 문화혁명 초기인 1969년 베이징의 둥청(東城)·시청(西城)·충원(崇文)·쉬안우(宣武)구 등 도심부 4개구 전역에 지하방공호를 파기 시작, 10년 뒤인 1979년에서야 완공됐다. 현재 50세 전후인 베이징 주민들은 대부분 방공호 공사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적인 광기(狂氣)가 ‘지하도시’라는 명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하 평균 8m 깊이에 폭 2m, 높이 2.5m 가량인 이 방공호는 전체 길이가 30여㎞에 달한다. 방공호 군데군데에는 영화관과 이발소, 병원, 군수창고 등이 조성돼 있어 그야말로 ‘지하도시’를 방불케 한다.

지하 영화관은 한꺼번에 3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또 지하수 우물이 70군데, 통풍구가 2300여개 있어 식량만 준비하면 지상과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돼 있다.

방공호 통로를 따라가면 자금성, 천안문, 베이징역과도 연결된다.

 

 (::특파원 르포-베이징 방공호를 가다::)

 

 

 

 

“웬만한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에도 수개월을 견딜 지하도시라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옛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방공호니까요. 영화관과 도서관, 공장 등 웬만한 지상의 시설은 없는 게 없어 지금이라도 다시 사용하려면 할 수 있죠.”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최대 30여만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 방공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외부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언론에는 지난 30여년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당국이 톈안먼(天安門)의 지하성(地下城)으로 불리는 이 시설을 일반에 공개, 그동안 막연하게 풍문으로 떠돌던 사실을 기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개 1주일째를 맞아 취재차 찾은 현장에서 여성 안내원 저우원(周文)이 설명한 대로 웬만한 편의 시설이 다 갖춰진 구시대의 유물이 일부나마 모습을드러낸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원(崇文)구 시다모창(西打磨廠) 후퉁(胡同)입구에 자리잡은 ‘베이징 지하성’은 간단한 신원 조회를 거친후 입장료 20위안(약 2600원)을 내면 현실로 다가온다. 이어 안내원을 따라 지하 8m의 계단을 내려가자 폭 2m, 높이 3m의 아치형 동굴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흑백 사진이 우선눈에 들어온다. 마오 전 주석의 권력이 전성기였던 1969년에 건설을시작, 10여년만에 완공한 시설이니 그럴 만했다. 옛 소련의 폭격에 대비해 건설했다는 총 길이 30㎞ 통로에는 당시 중국인들이가장 두려워했다는 핵 공격에 대한 위기감이 짙게 묻어난다. 통로 곳곳의 벽에 ‘원자탄, 화학탄, 세균무기 대처와 확산 방지요령’ 등을 설명한 그림이 붙어 있다. 방독면 역시 드문드문 눈에 띈다.

전시에 대비한 시설인 만큼 공간의 대부분은 군사용이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탄약고’, ‘군수창고’, ‘전시병원’등시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영화관이나 도서관등도 눈길을 끈다. 유사시 대피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을끄는 것은 넓은 광장에 자리잡은 이불 공장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잘 자는 것도 전투이다”라는 저우원의 말처럼 아마 당시에는이불도 군수품으로 인식된 듯했다.

저우원은 안내를 다 마칠 즈음 “전국의 대도시들에는 모두 이런크고 작은 방공호가 있다. 아마 다 합치면 웬만한 국가의 면적보다 넓은 것”이라는 자랑 비슷한 부언 설명을 사족으로 달았다. 또 베이징 시단(西單)의 군사박물관 인근에도 규모는 다소 작지만 군사 시설이 더 많이 들어선 방공호가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에 지하 만리장성이 적어도 수십개는 존재한다는 풍문이 과장이아닌 듯했다.

베이징〓홍순도특파원 mhh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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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공원-북해공원에서 자금성보기

낭만적인 서양식 카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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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Exit? The Origin and Evolution of US Policy toward China 1945-1950, Zi Zhongyun

Translated by Zhang Ciyun and Jia Yanli

By Michael M. Sheng(ABC, Southwest Missouri State University),

The China Quarterly, July, 2004, pp188.

Translated by Park Jongchol (April, 2005)

 

Zi의 연구는 국공내전의 미국간섭에 대한 초기 저작(Park)

1. 배경:

Zi여사는 노학자중 대표적1951년 청화대학 졸업, 1950년대 비엔나 공관에서 근무

1980년대 프린스턴 방문연구, 미국외교정책에 역사적 문건을 연구에서 이 책을 시작

1987년 중국출판,  미국정책에 대한 대표적인 중국학자

Michael Hunt : 영문편집, 영문서문의 작자, Zi의 작품과 과거 모택동주의 영향의 학문과 차이를 지적

 

2. Zi는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의 기초에서 해석의 틀을 구축

- FRUS뿐만 아니라 대통령도서관들등

과거 모택동주의의 해석이 단순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적/제국주의적 본성의 미국은 중국공산당을 본능적으로 대립적이라고 전제하는데 비하여,

Zi의 미국의 대중정책에 대한 분석은 미묘하고 정교하다.

다중분석으로, Zi는 대중정책에서 1.미국의 글로벌 냉전 전략뿐만

아니라 2.국내정책의 역할도 연구

 

3. 엥겔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Zi는 다음을 저작의 기본전제로 시작.

어떻게 미국이 중국과 (미국)자위에 모두 해악을 끼치는 간섭주의 정책에 착수하는가?

결론마직막 분석으로, 미국은 결코 중국혁명이 독립적 역사사건로서 보지 않았고, 중국정책을 소련과 관련한 하위문제로 분류했다. 잘못된 전제로 인하여, 미국정책은 실패로 가고 있었다

에치슨의 손떼기 전략, 마셜특사과 웨드마이어 특사, 중경담판과 같은 Harliy중재와 같은 Zi는 주요사건들의 세세한 고려를 제시

이 과정에서 Zi는 중국문제에 대한 미국의 운영에서 자가당착적이고 비효율적 본성을 발견

예를 들면, 마셜의 주요목적은 국공내전을 방지하는 것이었지만, 워싱턴 당국은 비타협적인장개석을 지지를 지속.결과는 전면적이었고, 미국은 첫번째 국면에서 피하기를 원했던……” 현재의 미국의 대만정책은 마샬특사의 50년전 행했던 같은 실수를 반복

 

4. 중국의 인식으로서, Zi의 연구는 미국-중국정책을 구조적 문제

최근의 다양한 문서보관소의 조사에 기초한 다국가 분석에 경향에 비하면, 이 연구는 중국측의 충분한 배경 정보가 없다.

 

5. 관련 쟁점에는 공산당과 소련관계의 본질과 외교정책에서 이데로올로기의 역할에 있다.

Zi는 중국혁명은 독립적 역사 사건일고, 모스크바와 다르고, 그러므로 워싱턴은 소련과 중국공산당을 연계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최근 중국과 구소련연방에서 나오는 역사적 증거는 Zi의 이런 전제에 의문시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전세계적 공산주의의 공약에 의하여, 모택동과 공산당 지도자들은 선천적으로 친소적이고 반미적이었다. ( 마샬의 노력과 관계없이 미중관계의 어렵움이 있었다.역주)

 

 레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제도들의 본질은 항상

1,다른 정치적 실체와 관련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2,자기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에서도 중요한 요인이 있다.

 

1949년 이전의 공산당-모스크바-워싱턴의 관계는 오늘날의 워싱턴-베이징-타이베이의 경우와 같다.  

 

 이 책의 중국어판은 87년 출판되어, 냉전시기에 새로운 정보가 없었다.

Zi는 관련 중국어 자료의 수집을 어려움을 솔직히 토로했다

원래 영어버전은 92년 출간예정이었지만, 10년이 더 걸렸다.

저명한 역사학자 Daniel Boorstin 1987년에 이렇게 말했다

-           민주사회에서 역사저술은 惡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고, 비민주사회는 善을 과장하는 경향.

 

 

중국어저작

참고

정치대학 중산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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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xamining the Cold War: U.S.-China Diplomacy, 1954-1973, edited by Robert S. Ross and Jiang Changbin

By Robert Sutter(Georgetown), The China Quarterly, Jan., 2004, pp183.

Translated by Park Jongchol(April, 2005)

 

1. 작품의도

54-73년간의 중미관계의 개괄 포드재단지원하에 중미학자가 공동참여

이 작품은 (Harry Harding and Yuan Ming, eds., Sino-American Relations, 1945-1955: A Joint  Reassessment of a Critical Decade, 1989: 위기시대에 대한 공동의 재평가)와 함께 중미공동연구의 걸작

12개 장으로 구성

 

2. 모택동주의 대미외교를 측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국내-국제적 요인의 중요성을 명백화

국내동원과 이데올로기의 수행에 이용하기 위하여, 1954년과 1958년의 대만해협위기에  미국과 미국동맹에 대항한 도발적인 이니시에이티브의 요인으로서 모택동을 묘사하기도 하고,

중국과 수퍼파워간의 불균형을 강조하기도……

참여학자들은 다른 국가에 의한 통제되는 환경에서 외교정책이익과 중국생존을 지키기위하여, 마택동이 외교정책을 조정했다고 본다.

 

3. 연구자들은 국내요인을 연구하지만,

1950년대 강한 국제압력에 의한 중국외교정책행태도 본다

모택동은 1, 미국에 대한 반응, 2, 수퍼파워 미국과 직접적인 대결을 회피하기 위한 이니시에이티브와 3, 외교정책어프로치의 변경으로서 보여진다.

모택동은 국내쟁점의 압도되어, 1960초기에도 외교문제에 급진적 어프로치를 사용했다고 간주되어지나, 미소간의 대항하기 위하여 현실적인 고려….

 

4. 이 연구는 미국과 중국정치에서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실용주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화해할 수 없이 과민반응하게되는 적을 대항하는 불변하는 정책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에서 관료들은 민감하고 전술적으로 적응하는 외교정책로서 보여진다. 외교정책으로서 관료들은 상대 정책의 변화하는 평가와 국제환경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그들 스스로 적응하도록 했다.

 양측은 지도자들은 상대편의 즉각적인 정책 목표은 이데올로기적 고려보다 실용적인 국가 안보적 고려를 중시

 

5. 1960년대 베트남전쟁, 1954,1958년의 대만해협위기시의 미국과 중국의 정책결정과정

 위기관리는 미국과 중국의 최고위층이 가지고 있다. 양측의 지도자는 상대측 지도자가 합리적 현실정치 이익을 추구할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 능력이 있다고 간주한다.

 위기통제에 있어서 합리성과 상호이익의 가설은 중미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시그널등을 하게 한다….

 

6. Robert Ross introduction 는 미중행태는 전통적 대국 갈등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 -

미중관계에서 비현실적이고 동요시키는 외교정책목표에 집착할수록 극단상황은 타개할수 없었다.

미국은 중국과 화해비용을 극단적으로 평가하고, 중국의 능력을 과대평가.

미중간의 극단대립은 1,미국의 베트남에서의 실패와 2,소련과의 군사충돌에 의하여 거대한 재진화을 이루웠다.

 

7. 눈에 띄는 몇 개의 장.

Robert Ross는 현재 미중관계를 위하여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소개하고, 중국에서 기록보관서연구의 유용한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 제공.

Willian Kirby 1950년대 중국에서 소련진영의 원조의 긍정적 역할을 연구

Zhang Baijia는 힘의 균형과 국제적 주변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지도자의 시기별 중국외교정책패턴을 연구

Ronald Pruessen Robert Accinelli 1954년과 1958년의 대만해협위기에서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을 평가

Gong Li는 모택동의 위기관리를 연대기적으로 연구, 대약진운동과정에서 국내동원을 위하여 1958년의 위기를 이용

 

 Zhang Baijia and Jia Qingguo 는 중미의 대사간 대화를 통한 중국인식을 리뷰

 Steven Goldstein 은 미국외교기록에 기초하여 평가

Robert Schulzinger는 베트남에서 중국과의 대립을 강하게 우려하는 존슨행정부

Rosemary Foot 1960년대 중국정책에 대한  정부-비정부적 미국의 평가

Li Jie 1962년 모택동의 급진전 외교정책태도의 변화를 중국국내정치에서 기원하다고 연구

Gong Li는 미국과 화해를 향한 결정을 위한 중국지도자의 내부논쟁을 연구

Michael Schaller은 중국과 화해를 위한 닉슨의 전략적고려에서 일본의 중요성

 

참고:

미국 국립문서기록소 소개

FRUS

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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