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革때 방공호로 30㎞ 조성 300명 볼수있는 영화관까지
중국 베이징(北京)시 지하에 인구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하도시가 있다?’
믿기지 않는 소문이 5일 사실로 드러났다. 베이징시 중심부 지하에 미로처럼 얽혀 있는 ‘지하 만리장성’이 이날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돼 관광명물로 탈바꿈했다.
베이징 사람들이 ‘지하장성’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1960년대 말 지하방공호로 조성했던 것. 문화혁명 초기인 1969년 베이징의 둥청(東城)·시청(西城)·충원(崇文)·쉬안우(宣武)구 등 도심부 4개구 전역에 지하방공호를 파기 시작, 10년 뒤인 1979년에서야 완공됐다. 현재 50세 전후인 베이징 주민들은 대부분 방공호 공사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적인 광기(狂氣)가 ‘지하도시’라는 명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하 평균 8m 깊이에 폭 2m, 높이 2.5m 가량인 이 방공호는 전체 길이가 30여㎞에 달한다. 방공호 군데군데에는 영화관과 이발소, 병원, 군수창고 등이 조성돼 있어 그야말로 ‘지하도시’를 방불케 한다.
지하 영화관은 한꺼번에 3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또 지하수 우물이 70군데, 통풍구가 2300여개 있어 식량만 준비하면 지상과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돼 있다.
방공호 통로를 따라가면 자금성, 천안문, 베이징역과도 연결된다.
(::특파원 르포-베이징 방공호를 가다::)
“웬만한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에도 수개월을 견딜 지하도시라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옛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방공호니까요. 영화관과 도서관, 공장 등 웬만한 지상의 시설은 없는 게 없어 지금이라도 다시 사용하려면 할 수 있죠.”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최대 30여만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 방공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외부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언론에는 지난 30여년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당국이 톈안먼(天安門)의 지하성(地下城)으로 불리는 이 시설을 일반에 공개, 그동안 막연하게 풍문으로 떠돌던 사실을 기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개 1주일째를 맞아 취재차 찾은 현장에서 여성 안내원 저우원(周文)이 설명한 대로 웬만한 편의 시설이 다 갖춰진 구시대의 유물이 일부나마 모습을드러낸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원(崇文)구 시다모창(西打磨廠) 후퉁(胡同)입구에 자리잡은 ‘베이징 지하성’은 간단한 신원 조회를 거친후 입장료 20위안(약 2600원)을 내면 현실로 다가온다. 이어 안내원을 따라 지하 8m의 계단을 내려가자 폭 2m, 높이 3m의 아치형 동굴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흑백 사진이 우선눈에 들어온다. 마오 전 주석의 권력이 전성기였던 1969년에 건설을시작, 10여년만에 완공한 시설이니 그럴 만했다. 옛 소련의 폭격에 대비해 건설했다는 총 길이 30㎞ 통로에는 당시 중국인들이가장 두려워했다는 핵 공격에 대한 위기감이 짙게 묻어난다. 통로 곳곳의 벽에 ‘원자탄, 화학탄, 세균무기 대처와 확산 방지요령’ 등을 설명한 그림이 붙어 있다. 방독면 역시 드문드문 눈에 띈다.
전시에 대비한 시설인 만큼 공간의 대부분은 군사용이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탄약고’, ‘군수창고’, ‘전시병원’등시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영화관이나 도서관등도 눈길을 끈다. 유사시 대피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을끄는 것은 넓은 광장에 자리잡은 이불 공장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잘 자는 것도 전투이다”라는 저우원의 말처럼 아마 당시에는이불도 군수품으로 인식된 듯했다.
저우원은 안내를 다 마칠 즈음 “전국의 대도시들에는 모두 이런크고 작은 방공호가 있다. 아마 다 합치면 웬만한 국가의 면적보다 넓은 것”이라는 자랑 비슷한 부언 설명을 사족으로 달았다. 또 베이징 시단(西單)의 군사박물관 인근에도 규모는 다소 작지만 군사 시설이 더 많이 들어선 방공호가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에 지하 만리장성이 적어도 수십개는 존재한다는 풍문이 과장이아닌 듯했다.
베이징〓홍순도특파원 mhh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