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 탄생의 진실 - 기밀 해제된 구(舊)소련 공산당 정치국 사료로 본
시모토마이 노부오 지음, 이혁재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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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아시아 냉전의 시작

동아시아 냉전사

세계체제로서의 냉전과 동아시아에서의 냉전를 구분하여 이해하는데 설득력

45년 2월의 유동적 동아시아체제를 규정한 얄타 체제를 실패로 규정

동아시아의 분단국과 영토모순 베트남, 몽고, 중국, 한국 등의 분단

냉전의 주요쟁점: 이데올로기, 지정학, 핵무기

냉전연구의 전통주의든 수정주의든 미국자료에 의존, 그러나 지금은 냉전은 1/4을 차지했던구소련의 해제문건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

 

2장 중국혁명과 중소동맹

스탈린의 동아시아 구상

진주만 기습이후 일본패배(41.12)를 예상하고, 전후질서 구상

이데올로기보다 지정학적 이익을 우선시

 

이데올로기와 지정학적 이익의 충돌

스탈린의 지정학적 팽창요구는 우라늄확보 목적도 있었고, 핵개발에 따른 아사자 급증

(소련 46-47년 100만-200만, 중국 대약진정책 2천만-3천만, 북한 90년대)

모택동의 중국혁명은 얄타체제와 중소우호조약에 기반한 스탈린의 지정학적 이익을 침해, 스탈린은 모택동의 회담이나 지원을 실현하기 어려운 입장

- 최신연구: 스탈린은 모택동와 장제스 지원도 하지 못했다(선택불능)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관계, 코민테른

1920년대이후, 코민테른의 하부조직으로 각국 공산당, 하지만 코민테른은 소련의 외국공산당 통제 기구화, 1930년이후는 소련의 국경경비대, 스탈린 외교의 외부 조직화

미영동맹을 강화하고, 전쟁수행을 위하여, 1943년 5월 코민테른 해산→소련공산당 국제정부 신설(10월) →중앙위원회 국제부로 개칭(12월)

전후, 일국사회주의라는 고립노선에서 탈피

코민포름창설(47년 9월)

-51년 1월, 각국 지도자를 불러 53년 말까지 전쟁준비를 지시→냉전으로 불능

옌안의 모택동과는 충고정도, 중국동북부 공산당과 중국 동북부 소련군은 항시적  연락

 

▲중국내전과 중국 동북부

소련점령정권과 동북 공산당과 밀착

소련제공의 무기 등은 동북내전승리의 발판

 

만주혁명근거지설: 중국혁명에서 옌안의 모택동 중심과 동북의 린비아오, 가오강 주도에 대한 것은 논쟁적이다.

 

중소동맹은 중국입장에서는 자립을 위한 동맹으로 중소분쟁은 내재적이었고, 아시아 혁명의 중심지로서 소련을 중국을 인정. 소련에게 동유럽이라는 소련의 위성국과 공산주의 대국 중국은 달랐다.

 

3장 북한-건국, 전쟁, 자주

소련의 괴뢰정권 북한의 탄생 지정학적 목적, 우발적 결과

+중소 공동의 전쟁

56년 위기이후 김일성 독재체제의 확립

 

4장 소련과 아시아, 위장동맹(54-64)

세계내전후, 동아시아는 내전과 혁명, 한국전쟁 등 대정치의 시대

유럽과 동아시아 냉전은 1. 대칭적 구조 vs 비대칭적 구조, 2. 2극지배 vs 다극구조

                    그리고 소련과 동아시아 동맹의 불균형성 상호오해와 불신

 

 ▲스탈린 사후, 동맹의 재정의

소련, 뤼순, 다롄에서 소련군 철수를 관철, 55년 5월 ⇒ 중소불평등해소, 대일관계개선 메시지

몽고분단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스탈린 격하를 둘러싼 중소가 불협화음 → 헝가리 사태 등 동유럽문제를 둘러싼 중소의 신경전

핵문제를 둘러싼 동맹위기 – 군사문제를 둘러싼 모택동과 흐루시초프의 개인적 차원이 대립이 양국의 전쟁과 평화대한 시각까지도 큰 차이 – 1950년 모택동의 독자성이 확대  

▲모택동의 중국 확정되지 않는 영토(티베트, 대만 등)를 둘러싼 미중대립에 흐루시초프는 평화적 방법을 강구하며 대립→.64년 흐루시초프 실각때즈음 중국핵실험성공과 문혁시의 중소무력 충돌

▲49년 1월 미코얀과 모택동의 몽고통일을 위한 논의  - 중소의 제국주의적 지정학적 관점에 결렬

▲북소간의 우호조약은 신뢰가 없었고, 흐루시초프는 케네디정권과 평화공존이 달성되면 조약의 무효화를 김일성에 설명하면서 조약에 조인

 

5장 중소냉전과 아시아 냉전(1964-1984)

 

▲2중 냉전구도

64년 8월 통킹만 사건, 10월 브레즈네프가 제 1서기.

 아시아주의자 코시킨총리는 대중관계 개선에 적극적. 안드로포프 서기는 모택동의 이중전략을 우려하면, 중미관계 개선를 통한 소련 위협을 우려.

11월 혁명기념일, 주은래는 소련을 방문하여 흐루시초프 노선을 비판, 개정요구 소련 마리노프스키 국방장관은 주은래에게 소련이 흐루시초프를 처분했기 때문에 중국은 모택동을 제거하라고 요구, 주은래는 곧바로 귀국. 긴장완화의 실패.

베트남, 몽고 문제를 둘러싸고 중소대립은 격화되고, 일본공산당과 중소간 대립하여,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은 완전 붕괴.

▲중소냉전에서 등소평, 유소기등의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실권파와 모택동은 투쟁의 수단으로 문혁을 발동. 문혁으로 중국외교의 고립화라는 악순환.

문혁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연계성.

▲베트남전쟁: 소련권으로

소련의 양해하에 팔로군내 일본병사들이 베트남 지원→ 49년 중소합의에 따라 베트남 안보는 중국이 담당 “세계혁명은 총사령관 스탈린, 아시아 혁명의 총사령과 모택동”→54년 제네바합의이후 베트남의 중국 불신 시작 → 북폭과 시작된 이후 베트남 지도자들의 중국 불신강화

→문혁시 모택동은 베트남과 북한의 소련권 편입에 대하여 무관심 →

베트남의 자체적인 혁명과 통일 성공→ 중국내 반베트남 감정의 격앙→1979년 등소평의 베트남 응징발언과 중월전쟁→1979년 2월 17일, 중국인민해방군의 참패, 18일 소련은  ‘베트남 소련 동맹준수’라른 성명을 발표하며, 군을 극동으로 이동시켜 베트남을 지원했고, 몽고에 파견된 소련 전차부대도 시위활동에 동원되었다.

▲1969년 3월 100만명의 군인이 동원된 중소국경분쟁, 1971년 9월 린뱌오 추락사건으로 중소갈등의 심화

▲중국의 국내외적 위기를 중미, 중일 화해를 통하여 돌파, 소련의 2개의 전선 구축에 따른위기감 심화와 소련의 유럽, 일본 접근

▲1979년 모택동 사망이후 중소접근을 모색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의 신냉전

 

6장 소련 붕괴와 아시아

▲ 1985년 3월 고르바초프 서기장 취임

신사고 논쟁, 군사보다 정치를 통한 안전보장 추구, 핵실험 중지 움직임, 중국과 관계개선

▲1985년 체르넨코서기장 장례식에 참석한 이붕은 소련을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인정

등소평은 중소관계 개선 움직임에 3대장애를 거론 ‘캄보디아의 베트마국, 중국, 몽고국경국의 소련군, 아프카니스탄의 소련군’ →고르바초프 중국, 동유럽 담당자 교체 → 1986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에서 고르비는 중국을 중요한 대국으로 인지→1988년-89년 3대 문제의 철군 시작→89년 5월 고르비 베이징 방문, 천안문 사태→94년 9월 강택민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국경선문제를 해결하고, 중소냉전의 해소

→2001년 중러선린우호협력조약, 1996년 4월 상하이 5

 

7장 21세기의 아시아 : 결론

1.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는 냉전의 출발점부터 균형을 잡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세력균형)

현대러시아외교는 전방위, 동아시아 중시 외교, 그러나 역사적으로 소련과 아시아는 연결고리가 없다.

모택동과 스탈린은 공산당보다는 군사첩보적 연대. 이념의 일체성은 처음부터 없었다.

2. 지정학이란 측면에서는 유라시아의 동서 국가들을 어떻게

3. 동아시아의 핵문제. 핵확산.

 

코멘트

저자는 현실주의관점에서 동아시아 공산주의 연대를 이데올로기없는 지정학적 동맹으로 파악하고, 21세기에는 지경학적 관점에서 유사동맹형태를 띠고 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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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
대니얼 고든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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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떤 나라이다. 80년 북한을 탈출한 어떤 인사가 동토의 왕국이라는 표현을 써듯이 동토에 왕국이기도 하고, 여전히 조선왕국와 같은 군사부일체를 중심하는 세습적이고 하나의 가족이 같이 사는 듯한 국가사회주의 국가이기도 한다.  심지어 요덕스토리가 있는 어떤 나라이다. 요즘은 북중국경이나 장마당은 자본주의 국가처럼 도박도, 매춘도 한다.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커밍스의 표현대로 사람사는 세상이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하는 북한에서 집단체조 연습을 하는 두 명의 여학생을 추적한 다큐멘타리이다

2003년 2월

냉전시대에 동유럽이나 소련에서 나온 다큐멘타리에 비하여 개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니얼 고든 감독은 명절마다 이루워지는 선전선동의 일환으로 집단체조를 통하여 북한사회를 보고있다

감독은 영국인으로서 균형감있게 북한을 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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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분야 및 응시자격


선발분야 응 시 자 격

해양법

o 석사학위이상 소지자로서 해양법 또는 국제법 분야 전공자

사이버보안

o 전산·통신 관련학 학사학위이상 소지자로서 정보통신망 취약점 분석·평가·침해사고 조사·보안관제·해킹패턴분석 등의 실무경력 2년 이상인자

IT컨텐츠

o 전산 관련학 학사학위이상 소지자로서 모바일 게임 및 서비스개발 또는 웹기획·마스터 실무경력 2년 이상인자

프로그램개발

o 전산 관련학 학사학위이상 소지자로서 C/C++, Java, 4GL, CGI, Active-X, COM분야 또는 Oracle 활용 웹 프로그램 등 개발경력 2년 이상인자

전산시스템운영

o 전산 관련학 학사학위이상 소지자로서 Unix·Windows·리눅스 시스템  또는 DBMS 운영경력 2년 이상인자

사서

o 문헌정보학 석사학위이상 소지자로서 MARC DB구축 능력 보유 및 도서관 실무경력 2년 이상인자

 

【공통자격】

국가정보원 직원법 제8조 2항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
 

74.1.1이후 출생한 사람(남자는 병역을 필했거나 면제한 사람)

*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의한 제대군인 및 병역법 제26조 1항 1호 및 3호와 4호에 의한 공익근무요원, 제38조에 의한 산업기능요원은 복무기간에 따라 지원 가능 연령 1~3세 연장

* 박사학위자는 병역에 따른 연령연장과 함께 추가로 2세 연장 가능

 

전형일정
 

 

원서 접수 : 2006.4.3(月) - 4.28(金)

* 4.28(金)한 도착분에 한하여 유효
 

서류심사 결과 발표 : 5월 초

※ 심사결과 발표는 국가정보원 홈페이지 채용정보란 「자주하는 질문」을 통해 공지하고, 합격자에 한해서만 추후 전형일정 개별통보

 

제출서류
 

 
응시원서(소정양식, 반명함판 사진 1장 부착) --------------------- 1부
* 응시원서는 국정원 홈페이지(채용정보)에서 내려받아 작성

연구실적 및 관련연구논문 목록·초록(해당자 한함) ---------------- 1부

자기소개서(A4용지 2매 분량) ----------------------------------- 1부

대학·대학원 성적증명서 및 학위수여증서 ------------------- -- 각 1부

자격증 및 공인어학성적 증명서(소지자에 한함) -------------- ---- 1부

주민등록초본(병역사항이 기재된 것) ---------------------------- 1부

※ 제출서류는 일체 반환되지 않습니다


원서접수장소
 

 
국가정보원 인력관리실(강남구 역삼동 서울상록회관 303호)

※ 우편접수시 : 서울 강남우체국 사서함 491호 인사담당관 앞(우편번호 135-604)

안내전화 : 02)558-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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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국 중국 - 국제문제 시리즈 7 나남신서 382
로스 테릴 지음, 이춘근 옮김 / 나남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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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중국의 문제

중국: 지탱할 수 없는 신화와 연계된 권위주의적 전통과 이미 변햅린 사회와 경제를 합치시키기 위한 현대적 정치적 형식사이르 우왕좌왕

중국제국이라는 정치적 구조물: 억압적, 다양한 문화를 엮을 수 있는 기구와 신화를 요구

서방제국의 시민국가화 : 시민의 표현된 의지에 따라 국가의 진행방향이 결정

북경정권은 역사를 왜곡하고, 변방지역에 관한 잘못된 지도를 무기로 사용, 그리고 독재는 강화되었고, 제국적 감각은 다시 변호되었으며, 이완된 사회와 자유주의적 경제사이에 나타난 모순은 더욱 악화

중국은 오로지 일시적으로 날조된 역사와 억압적 정치의 힘에 의해서 국가로 취급, 그러나 각 성들은 자기 스스로의 봉견경제 양식이 부활중

중국제국의 본질적 속성 : 제국과 민족국가의 중간쯤의 형태

1.       중국의 추진력은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나온다

2.       중국은 자신을 진리의 수호자로 본다

3.       중국이 다른 강대국과 체결하는 어떤 타협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전술적인 것이며, 중국과 중구 이외의 주권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 양립성을 용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착오적인 중국제국은 퇴화로 인한 분열상태를 맞이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2장 중국제국의 형성

현재의 중국제국은 기원은 다른 제 3세계국가와 기원이 달리, 역사적 구조물

역사적 중화제국 문명적 통치: 세계최초의 정부를 발명하였고, 상주시대의 공맹 철학을 구축하고, 진나라는 잔인하고 효과적 현실주의 정치를 구축, 한나라는 칼에 의한 재비와 덕에 의한 재배를 타협점이라는 관료제를 구축, 최초의 한인의식(민족) 출현, 당나라는 지구사에 군주제와 관료제를 혼합하는 정치체제를 남김

중국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존재로 문명으로서 중국정부는 문명으로서 정체(polity)를 형성했다. 중국의 문명권적 통치양식은 현재에도 남아있다. 세상의 모든 왕조나 정치 공동체는 중국적 관점에서 특정한 지위를 부여받아야했다.

조공책봉체게가 이상적 형태이다. 조공이란 중국주변국가로서 일종의 보험정책으로 중국황실에 예를 바침으로서 중국이 일정한 안전보장을 제공하였고, 주변국가들의 공격을 회피알수도 있었다. 중국은 모든 왕조는 덕과 힘이라는 이중정책을 구사하였다. 중국의 도덕적 우월성을 이해못하는 국가에 대하여 항상 무력침공이란 대안이 준비완료된 상태였다. 과거의 다양한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이어받은 중국공산당은 가장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중국정체(polity)의 특성

1. 중국에서 역사로서 국가개념은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고, 자타(自他)개념은 중국의 문화, 생활양식, 그리고 우주론적 사고방식의 수용여부. 국경선이라 왕조의 편의의 산물로, 국경밖에 대하여 무한대의 통치권이라는 개념을 남겨두고 있다. 국경은 항상 변하는 것이며 일부러 모호한 채 놓아두는 것. 중국인, 한족 등은 근대의 산물. 중국이나 중화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변형과 단절된 단어. (현재 국내적 탄압과 북조선등의 주변국 외교정책에도 적용.)

  민간인 공무원과 군대(고대 이집트, 로마와 동일)

- 중화인민공화국은 국미은 국가가 결정해 줄 것입니다라는 전제. 직업, 학교, 농업의 우선순의, 자신의 경력등의 지시를 기다림. 모택동의 제국의 아버지.

유교사상에서 부모님을 말씀을 거역하면 안 되지만, 역사적 중국제국은 나쁜 통치차를 백성들이 쫓아던 역사적 경험,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제국의 인민은 그런 권리가 없음(역사적 제국과 공산당 제국의 차이)

2. 화이개념.

  역내의 비중국적 공동체에 대한 대우, 화이(華夷)개념 중국의 인종차별주의를 합리화하는 역사적 개념, 국내정치구조에서 발전하여 외교정책으로 발전시킨 개념. (제국내부의 이민족정책에서)

천하개념 - 4단계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의 연계

  1. 내부 중국의 영토에 대한 확고한 통치력,

2. 외부 중국에 대한 일상적 물리적 폭력사용 몽골, 티벳, 투르키스탄 등,

  3. 정치적 패권이 가정하는 지역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 베트남, 한반도 등

    -  폭력과 덕에 의한 지배를 병행, 조공관계와 소유관계를 혼돈

(현재 조선족 지역이나 베트남, 한반도를 역사적 중국영토로 오인)

  4. 원방 : 우주론적 측면에서 이론적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지 정의  - 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강한 주변국에 대하여 결혼동맹으로 대항, 그러나 현재의 공산당 역사학자는 중국-주변국관계를 부정, - 결혼동맹은 덕에 의한 통치와 칼에 의한 통치의 중간쯤의 위치

중국은 외교정책을 이행하지 않았는데, 역사적으로 천하는 중국의 일부이므로 가부장적 국내정치의 연장

 명청시대에 주변지역의 약체화, 예) 중국과 류큐관계

 - 정치적, 상업적, 문화적 목적

 중국제국은 압제적 국가로서 타지역의 지배이후, 문자로 대표되는 문명적 통치

 

3장 중국제국의 방어적, 우월적 전통: 중국이 곧 세계다

중국제국의 특징: 중국인의 우월감과 느슨한 통치

1.       현실과 이상사이의 간극을 고민하지 않는 간극

2.       중국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제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야기되는 간극

제국(의 외교정책)이 방어적, 수동적이라는 신화를 창조 : 이민족만이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 등의 중화권에도 군사력과 부드러운 정책과 도덕의 영향을 병행

정화의 대항해시대에 해외 식민지 획득보다는 아시아 내부문제에 골몰

유목민족에 대한 지배는 대부분 실패, 중국왕조는 성숙의 시간이 짧고, 쇠퇴의 시간이 긴 특징

중국왕조는 주변 지역, 국가들의 문화역량이 부족하여 자극제가 없었고, 심지어 류큐와 같이 이중조공도 거만하고 너그럽게 인정

중국제국의 방어위주의 속성과 거만성은 동전의 양면 자신감있는 고립주의(confident isolationism) , 제국의 역량이 부족할 때는 변방에 가혹한 지배

▲천자는 현실주의적 : 허구의 역사를 창조 : 1667년 교황이 직접 천자에게 조공을 받쳤다든가, 조공책봉에서 약소국은 무역이나 정치적 안정이라는 필요에 의한 거래의 측면이 강했다. 중국은 야만인을 군사적으로 통치했으나, 중국사에는 덕에 의한 지배라고 기술하는 경향 등등

 

 

▲왜 중국은 이런 역사를 기록하는가? 중국은 제국이기도 나라이기도 했다. 힘의 균형여부에 따라 거방지기도 비굴하기도 했다.

권력의 변동은 거만함과 비굴함, 제국적 교리의 강요와 그 반대되는 행동 중 어느 것을 택할지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1. 중국의 정치체제가 지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지역에서의 공공철학이었던 유가사상과 법가사상을 혼재(투쟁)- 유교는 종교적 견해, 법가는 법과 질서라는 개념으로 중복

- 2천년동안 현재 중국영역을 중국인 전체 지배한 것은 300년.

 진나라는 중국제국의 통일, 명나라, 청나라 말기는 국가권력과 교리가 연계된 진정한 유교국가, 공산주의 독재체제도 유가사상과 법가사상이 상호작용

 중국제국의 뿌리를 보면 법가사상이 막강한 강철기둥의 역할을 했고, 유가사상은 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옷과 같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방어적 왕조라는 명나라도 300년간 308회의 대외전쟁을 치렀다. 유가사상-법가사상의 이원주의는 한나라 시대부터 덕에 의한 통치를 말하면서 손에 칼을 쥐고 있는 마오쩌둥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국지도자는 입으로 덕치를 말하지만 행동은 신법가사상(neo-legalist)이다.

 

▲2. 중국의 정치체제가 지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천자가 초자연적인 것보다 국가 통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  

유교는 타 제국의 종교 역할을 했고, 중국의 지식관료는 유럽국가들의 성직자나 회교국가의 이맘(imam)의 역할 – 진나라 이후 신정국가인 적이 없었다. 유교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윤리를 제공. 법가사상은 권력의 과학을 추구. 중국황실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벌였다. 미래의 비전과 계획보다는 안전을 중시. 중국공산당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신화와 전쟁에 패한 경우라도 승리라고 외치는 트릭을 현재도 연출.

▲중국의 과거 유물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건축물을 통해서 과거를 볼수없지만..

중국제국의 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내재적이고, 잠재적인 것(implicit)이었다. 즉 통치방식, 사고 및 행동방식이 남아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공학적 이유로 중국역사에서 권위주의적 요소를 더욱 추출.

 

▲중국정치체제의 쇠퇴. 로마제국과 한제국의 비슷한 특징을 가졌고, 비슷한 이유들로 쇠퇴. 그러나 로마제국은 종말의 성격으로 로마제국지역에 봉건주의화, 그러나 한제국의 멸망의 성격으로, 정치체제의 본질은 당나라가 계승.

 정통성과 계승의 문제는 황위계승의 딜레마 – 마오쩌둥의 후계자 선정문제처럼 전제적 전통과 난제가 여전히 현재중국에 있다

▲중국제국의 정치체제가 강성과 허약성의 혼합이어서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1. 중앙정부가 변방지역에 대하여 큰 통제력을 행사사지 못했고,

2. 제국의 이상와 현실사이의 간국이 존재. 이 두가지 요인은 중화제국의 안정과 지속에 제한적인 긍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의 허구의 역사 – 고구려침공실패후 당제국의 멸망, 신라독립허용, 만주, 몽고역사왜곡의 한계, 영국이 조공을 바쳤다고 역사적 기록을 했으나 아편전쟁에서의 참패, 대만여론에 대한 대륙내의 왜곡보도, 해방군의 침공노력 등 – 중국황제를 통치하지 못하고 군림할 뿐이다. 진실을 아는 관료들은 황제에게 진실을 보고 하지 않았고,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이것이 중화제국의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멸망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국의 대표적 문명이 중화제국은 자신의 국민과 지도자를 대규모를 속이는 정치체제이다.

 3. 계몽적 통치와 우주론적 조화 사이에는 인과적 관계가 있다.

▲이러한 체제가 청제국과 영국의 조우에서 나타났고,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4장 왕조시대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의 추구

현대중국의 특징: 경제성장, 사회적 변동, 공식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심의 결핍 등

 -개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체제에 대한 개혁은 아님

해외중국인들의 현대중국문제와 19세기 청제국에 대한 우려는 비슷

-중국의 정치문화가 진보보다는 균형을 추구했기 때문에 서양의 도전에 굴복(아편전쟁이후 100년간)

▲저자의 중요한 관점은 청제국의 멸망은 오래된 군주제를 유지하려는 것과 중국이라는 민족을 구원하려는 것 사이의 간극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정치체제는 약했지만, 공동체는 강했다.

19세기 중국정치문화와 서양정치문화는 충돌(메이지유신은 성공=일본+서양)

신해혁명: 17개성의 독립, 아젠다없는 혁명, 한족과 만주족의 긴장 – 근대적 한족의 제국주의적 쇼비니즘⇒손문중심의 연방제+개혁적 군사지도자 원세계의 대통령⇒제국체제의 복귀: 원세계는 외국의 자본, 제국주의적 정치사사의 잔존, 풍부한 군비를 소유

: 원세계 사망이후 12년간 중국정부는 9번, 내각은 20번, 수상은 26번 바뀌었다.

청나라멸망의 무질서는 서기 220년 한나라의 멸망, 907년 당나라의 멸망이후와 비슷, 혼란의 현재도 지속

▲신해혁명은 군주제 붕괴라는 성공과 새로운 체제가 출현되지 않는 실패라는 성격이 있다.

: 1920년 중국은 독립적 군벌의 시대(사실상 독립상태), 1930년 후반 신강은 소련영역, 간쑤, 청해, 닝샤는 회족중의 마족이 통치, 운남은 이족의 준독립적 영역, 티베트는 독립국,

 - 모택동은 당시 왕조적 성격, 호남의 독립주의자,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라는 정체성 – 이후 연방주의와 지방정부 자립을 ‘군벌, 분권주의’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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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국 중국 - 국제문제 시리즈 7 나남신서 382
로스 테릴 지음, 이춘근 옮김 / 나남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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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제목을 중국어를 고려한다면, '신중국제국'이 되어야한다. 현재 신중국이라는 제국에 대한 논점을 중심으로 논쟁하는 내용이다. 신중국이라는 어휘가 갖는 특수성을 제목에서 잡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제국 - 중국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글로벌 차원의 질서의 형성과도 관계가 있다. 냉전이후 글로벌차원은 질서는 과도기처럼 보인다. 동아시아의 입장에서 150년전의 개국-쇄국 논쟁이후, 최대의 질서변화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미래의 질서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제국, 중국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 중국제국은 중국-한국관계를 통하여 현재의 중국제국의 외교를 고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세계는 중국의 부상에 대하여 위협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한국내에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하여 감정적인 환영이 강하고, 서방에서는 이성적인 중국위협론이 대두되고 있다. 두 가지 관점 모두 논점을 잃어버리고, 균형있게  중국외교를 고찰하지 못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강한 제국적 성향 때문에 최근 국제관계 학계에서는 중국의 제국적 성향과 외교정책을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이다.

 

중국내에서는 인민공화국의 국내적 폭압성과 대외팽창주의를 부정하면서 중국부상을 화평굴기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서방학자들은 긴 역사적 안목에서 현재의 인민공화국제국의 속성을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분석 작업중의 일환으로 중국인의 친구라고 불리는 로스테릴의 새로운 제국-중국이 탄생되었다.

 

국제관계사를 롱사이클에서 연구하는 역사학자와같이 서방적이고, 공격적인 현실주의 관점에서 중국외교정책의 역사성을 정리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게도 시대착오적이고 중화제국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중국의 외교행태를 이해하기 위하여 강력히 추천할만한 연구서이다. 

 

동일한 영문이 여러가지 중문이나 한국어로 번역이 가능한데, 이 책에서는 중화, 중국 등 통일한 어휘에 대한 중국어나 한국어로의 번역이 영어식으로 되어 있는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중국어에서 민족과 민주가 발음이 비슷한데, 역자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번역을 혼동해서 하는 등 중국문화를 이해못하는데서 오는 번역상의 오류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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