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제국 중국 - 국제문제 시리즈 7 나남신서 382
로스 테릴 지음, 이춘근 옮김 / 나남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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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중국의 문제

중국: 지탱할 수 없는 신화와 연계된 권위주의적 전통과 이미 변햅린 사회와 경제를 합치시키기 위한 현대적 정치적 형식사이르 우왕좌왕

중국제국이라는 정치적 구조물: 억압적, 다양한 문화를 엮을 수 있는 기구와 신화를 요구

서방제국의 시민국가화 : 시민의 표현된 의지에 따라 국가의 진행방향이 결정

북경정권은 역사를 왜곡하고, 변방지역에 관한 잘못된 지도를 무기로 사용, 그리고 독재는 강화되었고, 제국적 감각은 다시 변호되었으며, 이완된 사회와 자유주의적 경제사이에 나타난 모순은 더욱 악화

중국은 오로지 일시적으로 날조된 역사와 억압적 정치의 힘에 의해서 국가로 취급, 그러나 각 성들은 자기 스스로의 봉견경제 양식이 부활중

중국제국의 본질적 속성 : 제국과 민족국가의 중간쯤의 형태

1.       중국의 추진력은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나온다

2.       중국은 자신을 진리의 수호자로 본다

3.       중국이 다른 강대국과 체결하는 어떤 타협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전술적인 것이며, 중국과 중구 이외의 주권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 양립성을 용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착오적인 중국제국은 퇴화로 인한 분열상태를 맞이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2장 중국제국의 형성

현재의 중국제국은 기원은 다른 제 3세계국가와 기원이 달리, 역사적 구조물

역사적 중화제국 문명적 통치: 세계최초의 정부를 발명하였고, 상주시대의 공맹 철학을 구축하고, 진나라는 잔인하고 효과적 현실주의 정치를 구축, 한나라는 칼에 의한 재비와 덕에 의한 재배를 타협점이라는 관료제를 구축, 최초의 한인의식(민족) 출현, 당나라는 지구사에 군주제와 관료제를 혼합하는 정치체제를 남김

중국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존재로 문명으로서 중국정부는 문명으로서 정체(polity)를 형성했다. 중국의 문명권적 통치양식은 현재에도 남아있다. 세상의 모든 왕조나 정치 공동체는 중국적 관점에서 특정한 지위를 부여받아야했다.

조공책봉체게가 이상적 형태이다. 조공이란 중국주변국가로서 일종의 보험정책으로 중국황실에 예를 바침으로서 중국이 일정한 안전보장을 제공하였고, 주변국가들의 공격을 회피알수도 있었다. 중국은 모든 왕조는 덕과 힘이라는 이중정책을 구사하였다. 중국의 도덕적 우월성을 이해못하는 국가에 대하여 항상 무력침공이란 대안이 준비완료된 상태였다. 과거의 다양한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이어받은 중국공산당은 가장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중국정체(polity)의 특성

1. 중국에서 역사로서 국가개념은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고, 자타(自他)개념은 중국의 문화, 생활양식, 그리고 우주론적 사고방식의 수용여부. 국경선이라 왕조의 편의의 산물로, 국경밖에 대하여 무한대의 통치권이라는 개념을 남겨두고 있다. 국경은 항상 변하는 것이며 일부러 모호한 채 놓아두는 것. 중국인, 한족 등은 근대의 산물. 중국이나 중화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변형과 단절된 단어. (현재 국내적 탄압과 북조선등의 주변국 외교정책에도 적용.)

  민간인 공무원과 군대(고대 이집트, 로마와 동일)

- 중화인민공화국은 국미은 국가가 결정해 줄 것입니다라는 전제. 직업, 학교, 농업의 우선순의, 자신의 경력등의 지시를 기다림. 모택동의 제국의 아버지.

유교사상에서 부모님을 말씀을 거역하면 안 되지만, 역사적 중국제국은 나쁜 통치차를 백성들이 쫓아던 역사적 경험,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제국의 인민은 그런 권리가 없음(역사적 제국과 공산당 제국의 차이)

2. 화이개념.

  역내의 비중국적 공동체에 대한 대우, 화이(華夷)개념 중국의 인종차별주의를 합리화하는 역사적 개념, 국내정치구조에서 발전하여 외교정책으로 발전시킨 개념. (제국내부의 이민족정책에서)

천하개념 - 4단계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의 연계

  1. 내부 중국의 영토에 대한 확고한 통치력,

2. 외부 중국에 대한 일상적 물리적 폭력사용 몽골, 티벳, 투르키스탄 등,

  3. 정치적 패권이 가정하는 지역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 베트남, 한반도 등

    -  폭력과 덕에 의한 지배를 병행, 조공관계와 소유관계를 혼돈

(현재 조선족 지역이나 베트남, 한반도를 역사적 중국영토로 오인)

  4. 원방 : 우주론적 측면에서 이론적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지 정의  - 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강한 주변국에 대하여 결혼동맹으로 대항, 그러나 현재의 공산당 역사학자는 중국-주변국관계를 부정, - 결혼동맹은 덕에 의한 통치와 칼에 의한 통치의 중간쯤의 위치

중국은 외교정책을 이행하지 않았는데, 역사적으로 천하는 중국의 일부이므로 가부장적 국내정치의 연장

 명청시대에 주변지역의 약체화, 예) 중국과 류큐관계

 - 정치적, 상업적, 문화적 목적

 중국제국은 압제적 국가로서 타지역의 지배이후, 문자로 대표되는 문명적 통치

 

3장 중국제국의 방어적, 우월적 전통: 중국이 곧 세계다

중국제국의 특징: 중국인의 우월감과 느슨한 통치

1.       현실과 이상사이의 간극을 고민하지 않는 간극

2.       중국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제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야기되는 간극

제국(의 외교정책)이 방어적, 수동적이라는 신화를 창조 : 이민족만이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 등의 중화권에도 군사력과 부드러운 정책과 도덕의 영향을 병행

정화의 대항해시대에 해외 식민지 획득보다는 아시아 내부문제에 골몰

유목민족에 대한 지배는 대부분 실패, 중국왕조는 성숙의 시간이 짧고, 쇠퇴의 시간이 긴 특징

중국왕조는 주변 지역, 국가들의 문화역량이 부족하여 자극제가 없었고, 심지어 류큐와 같이 이중조공도 거만하고 너그럽게 인정

중국제국의 방어위주의 속성과 거만성은 동전의 양면 자신감있는 고립주의(confident isolationism) , 제국의 역량이 부족할 때는 변방에 가혹한 지배

▲천자는 현실주의적 : 허구의 역사를 창조 : 1667년 교황이 직접 천자에게 조공을 받쳤다든가, 조공책봉에서 약소국은 무역이나 정치적 안정이라는 필요에 의한 거래의 측면이 강했다. 중국은 야만인을 군사적으로 통치했으나, 중국사에는 덕에 의한 지배라고 기술하는 경향 등등

 

 

▲왜 중국은 이런 역사를 기록하는가? 중국은 제국이기도 나라이기도 했다. 힘의 균형여부에 따라 거방지기도 비굴하기도 했다.

권력의 변동은 거만함과 비굴함, 제국적 교리의 강요와 그 반대되는 행동 중 어느 것을 택할지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1. 중국의 정치체제가 지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지역에서의 공공철학이었던 유가사상과 법가사상을 혼재(투쟁)- 유교는 종교적 견해, 법가는 법과 질서라는 개념으로 중복

- 2천년동안 현재 중국영역을 중국인 전체 지배한 것은 300년.

 진나라는 중국제국의 통일, 명나라, 청나라 말기는 국가권력과 교리가 연계된 진정한 유교국가, 공산주의 독재체제도 유가사상과 법가사상이 상호작용

 중국제국의 뿌리를 보면 법가사상이 막강한 강철기둥의 역할을 했고, 유가사상은 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옷과 같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방어적 왕조라는 명나라도 300년간 308회의 대외전쟁을 치렀다. 유가사상-법가사상의 이원주의는 한나라 시대부터 덕에 의한 통치를 말하면서 손에 칼을 쥐고 있는 마오쩌둥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국지도자는 입으로 덕치를 말하지만 행동은 신법가사상(neo-legalist)이다.

 

▲2. 중국의 정치체제가 지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천자가 초자연적인 것보다 국가 통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  

유교는 타 제국의 종교 역할을 했고, 중국의 지식관료는 유럽국가들의 성직자나 회교국가의 이맘(imam)의 역할 – 진나라 이후 신정국가인 적이 없었다. 유교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윤리를 제공. 법가사상은 권력의 과학을 추구. 중국황실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벌였다. 미래의 비전과 계획보다는 안전을 중시. 중국공산당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신화와 전쟁에 패한 경우라도 승리라고 외치는 트릭을 현재도 연출.

▲중국의 과거 유물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건축물을 통해서 과거를 볼수없지만..

중국제국의 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내재적이고, 잠재적인 것(implicit)이었다. 즉 통치방식, 사고 및 행동방식이 남아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공학적 이유로 중국역사에서 권위주의적 요소를 더욱 추출.

 

▲중국정치체제의 쇠퇴. 로마제국과 한제국의 비슷한 특징을 가졌고, 비슷한 이유들로 쇠퇴. 그러나 로마제국은 종말의 성격으로 로마제국지역에 봉건주의화, 그러나 한제국의 멸망의 성격으로, 정치체제의 본질은 당나라가 계승.

 정통성과 계승의 문제는 황위계승의 딜레마 – 마오쩌둥의 후계자 선정문제처럼 전제적 전통과 난제가 여전히 현재중국에 있다

▲중국제국의 정치체제가 강성과 허약성의 혼합이어서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1. 중앙정부가 변방지역에 대하여 큰 통제력을 행사사지 못했고,

2. 제국의 이상와 현실사이의 간국이 존재. 이 두가지 요인은 중화제국의 안정과 지속에 제한적인 긍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의 허구의 역사 – 고구려침공실패후 당제국의 멸망, 신라독립허용, 만주, 몽고역사왜곡의 한계, 영국이 조공을 바쳤다고 역사적 기록을 했으나 아편전쟁에서의 참패, 대만여론에 대한 대륙내의 왜곡보도, 해방군의 침공노력 등 – 중국황제를 통치하지 못하고 군림할 뿐이다. 진실을 아는 관료들은 황제에게 진실을 보고 하지 않았고,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이것이 중화제국의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멸망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국의 대표적 문명이 중화제국은 자신의 국민과 지도자를 대규모를 속이는 정치체제이다.

 3. 계몽적 통치와 우주론적 조화 사이에는 인과적 관계가 있다.

▲이러한 체제가 청제국과 영국의 조우에서 나타났고,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4장 왕조시대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의 추구

현대중국의 특징: 경제성장, 사회적 변동, 공식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심의 결핍 등

 -개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체제에 대한 개혁은 아님

해외중국인들의 현대중국문제와 19세기 청제국에 대한 우려는 비슷

-중국의 정치문화가 진보보다는 균형을 추구했기 때문에 서양의 도전에 굴복(아편전쟁이후 100년간)

▲저자의 중요한 관점은 청제국의 멸망은 오래된 군주제를 유지하려는 것과 중국이라는 민족을 구원하려는 것 사이의 간극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정치체제는 약했지만, 공동체는 강했다.

19세기 중국정치문화와 서양정치문화는 충돌(메이지유신은 성공=일본+서양)

신해혁명: 17개성의 독립, 아젠다없는 혁명, 한족과 만주족의 긴장 – 근대적 한족의 제국주의적 쇼비니즘⇒손문중심의 연방제+개혁적 군사지도자 원세계의 대통령⇒제국체제의 복귀: 원세계는 외국의 자본, 제국주의적 정치사사의 잔존, 풍부한 군비를 소유

: 원세계 사망이후 12년간 중국정부는 9번, 내각은 20번, 수상은 26번 바뀌었다.

청나라멸망의 무질서는 서기 220년 한나라의 멸망, 907년 당나라의 멸망이후와 비슷, 혼란의 현재도 지속

▲신해혁명은 군주제 붕괴라는 성공과 새로운 체제가 출현되지 않는 실패라는 성격이 있다.

: 1920년 중국은 독립적 군벌의 시대(사실상 독립상태), 1930년 후반 신강은 소련영역, 간쑤, 청해, 닝샤는 회족중의 마족이 통치, 운남은 이족의 준독립적 영역, 티베트는 독립국,

 - 모택동은 당시 왕조적 성격, 호남의 독립주의자,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라는 정체성 – 이후 연방주의와 지방정부 자립을 ‘군벌, 분권주의’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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