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 - 내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똑똑한 임신출산 준비
에밀리 오스터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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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내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똑똑한 임신출산 준비

 

제목과 부제만 보면 마치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들을 속이는 것만 같고, 이 책을 읽으면 내 아이의 운명을 훌륭하게 결정지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조금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과장이 심한 제목이다.

 

책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기보다, 저자가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독자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내용이다. 몇 가지 흥미로운 주제가 있긴 했다.(전체 주제에 비해 소수지만) 하지만 읽는 내내 호들갑스러운 임산부와 마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대다수 임산부들이 저자와 같은 마음인 것일까? 내가 유난히 무덤덤한 것일 수도 있고, 저자가 유난히 호들갑스러운 것일 수도 있으니, 정보의 유용성은 각자가 읽고 판단하는 게 정답인 듯하다.

 

저자를 호들갑스러운 임산부라고 느낀 이유를 밝히는 게 좋겠다. 저자는 언제나 정확한 수치로 된 정보를 원한다. 예를 들면 '임산부에게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는 괜찮다'는 정보는 저자를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임산부는 235밀리리터 들이 커피 한 잔은 마셔도 좋다(브랜드마다 차이가 있지만)'라는 정확한 수치가 제시되어야 안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수치를 얻기 위해 관련 연구 논문을 최대한 찾아보고 정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불안에 떠는 것보다야 확실하게 알고 안심하는 게 훨씬 좋은 일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유난스럽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커피 '한 잔'이라는 것을 설마 맥주 500cc잔으로 한 잔을 의미하지는 않으리라는 걸 대다수의 임산부라면 예상하지 않을까? 그리고 235밀리리터 들이 잔과 240밀리리터 들이 잔이 얼마나 커다란 차이를 낳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점에서, 저자의 수치에 대한 집착이 과도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평소 성격이 예민하거나 확실한 수치와 근거가 있어야 안심하는 성격의 임산부 및 그 가족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내 경우에는 산부인과 의사가 대체 뭘 속이고 있는지 궁금해서 책을 샀지만, 제목과 내용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다른 분들은 목차와 다른 사람의 독후감 등을 조금 훑고나서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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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7-1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임기여성으로서 제목을 보고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코보미님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 우리 시대 공부의 일그러진 초상
이원석 지음 / 책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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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학생(청소년)이었다.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부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을 뿐,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공부 잘 한다는 건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차지하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대학에 가서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했다. 내가 소속된 학과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건 학점이 높다는 뜻이고, 임용고시에 합격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였으니까. 최근까지도 나는 공부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곤 했다. 곰곰이 생각한 것은 아니다. 으레 그런 건줄 알고 살아 왔다는 뜻이다. 공부라는 건 자격증을 얻거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처럼 즉각적이고 확실한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런 점에서 나는 공부를 못 하는대학생이었다.

 

당황스러운 것은 공부를 못 하는내가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사실이다. 학부를 막장 성적으로 졸업하는 바람에 취업하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사회생활 초년생처럼 그래도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며 막연한 향수를 느끼거나 이것은 나의 적성에 안 맞아!’라며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나는 말문이 막혀버린다. 스스로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다.

 

공부란 무엇일까? 나도 궁금하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라는 것이 자격증을 얻거나 취업하고 학위를 얻기 위한 공부는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사소한 계기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 성소수자들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책을 읽다 보니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또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보수 진보 그런 얘기도 나오고 정치 이야기도 나오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주변을 살펴보게 되고. 이런 일들이 쌓이다가 어떤 시점부터 아 답답해. 제대로 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세상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 왜 이렇게 안 변하는 것 같은지 궁금했다.

 

학부 시절 어느 강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있다고, 정말 그런 것 같다며 막연한 느낌을 가졌던 말이다. “앎과 삶의 격차가 그대로 우리의 욕망을 보여 준다. 욕망은 우리 몸의 관성을 여지없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욕망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확인할 수 있다.”(51~52) 바로 그 욕망이 바깥으로부터 주입된 욕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어느 날, 나는 내가 원하는(욕망하는) 것들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 자유로워지기 위해 공부한다는 그 말이 떠올랐다. 주입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거구나, 하는 느낌? 그런 점에서 유학은 이 욕의 통제, 즉 절욕節慾을 지향한다”(52)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새로운 마음과 신체를 만들고 나아가 새로운 자신을 형성하는 것이 공부라고 말한다. 때문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행복은 공부순이다’(169).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공부를 하는지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지를 넘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할 것인지를 결정”(169)하기 때문이다. 유념해야 할 점: 행복은 공부순이라고 해서 마치 공부하기만 하면 현실사회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진지하게 제대로 공부할수록 어렵고 힘든 삶을 살게 할 확률이 높다.(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등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공부 자체가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품는 것, 생각 없이 대세를 따르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나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껍지 않은데도 간단히 읽히지는 않았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를 토대로 공부가 무엇인지(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좋았지만,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한 가지만 불만을 말하자면 저자가 하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서 눈에 거슬렸다는 것. ‘하나가 자연수의 첫 숫자가 아니라 그러나, 그렇지만, 하지만의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대부분 하나라는 단어는 자연수의 첫 숫자로 쓰지 않는가), 말버릇처럼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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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오카 2015-06-17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행복 해 질려고 하는 수단이기에...

cobomi 2015-07-02 09:46   좋아요 0 | URL
아.. 댓글을 이제 봤습니다. 공부도 행복해지려고 하는 수단이다... 맞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것 같아요.

albatros 2015-06-2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에서 공부의 의미는 상당히 오염되었죠. 공부가 무엇이어야하는지를 논한다니 한번 읽어봄직한 책이네요.

cobomi 2015-07-02 09:47   좋아요 0 | URL
네 ㅎㅎ 책값도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이렇게 말하니 왠지 출판사 직원 같네요ㅎㅎㅎ)
 
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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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럼에도 글쓰기 책에 끌리는 이유는? 가끔 제목이 꼭 내 사정을 함축한 듯한 자기계발서에 손이 가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글쓰기, 독서,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의욕이 샘솟곤 하는데, 내 문제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책에서 의외의 답을 얻고 기분을 전환한다.

 

글쓰기의 최전선도 비슷한 이유에서 주문했다. 빨간 바탕에 몇 가지 필기구가 그려진 표지가 인상적이다. 손으로 글씨를 쓰고 싶어진다. 책을 펼치고 가장 처음 등장하는 글이 나는 왜 쓰는가저자의 자기고백이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붙들고 씨름할수록 생각이 선명해지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는 즐거움이 컸다. ()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9)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저자의 고백. 그녀의 고백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일기장을 펼쳤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살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는 그 얘기가 꼭 내 얘기인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하여 내 일기, 나의 글은 내 삶을 얼마나 잘 보듬고 풀어주었는지 다시 살펴보기 위해 일기장을 뒤적였다. 왜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뭔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문제가 있는 날. 원래부터 있었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그게 신경이 쓰여서 당장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 문제가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막연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 말이다. 나는 그런 날이면 일기장에 생각나는 대로 다 털어놓고 싶다. 막상 일기장을 펼치면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몇 줄짜리 밋밋한 기록만 할 때가 많지만.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어떻게 해서 글 써서 먹고 살게 되었는지, 글쓰기란 어떤 것이고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연구공동체(수유너머R)에서 직접 수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과 관계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부분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글이 있다. 그 모든 글들을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 두 가지로 나눈다면 기준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문장? 구성? 정확한 단어 사용? 내 생각엔 나 자신의 글이 좋은 글이 아닌가 싶다.(이것은 저자와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마치 나도 그렇다는 듯이 표현한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의 말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가꿔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리하여 읽고 쓰는 것이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이며,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식이 된다는 저자의 말에도 깊이 수긍하게 되었다.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내 얘기를 쓴다는 것은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두루뭉술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어쩌면 글쓰기가 를 선명하게 해주는 하나의 방법이자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 주어진 (일반적인) 생각을 받아들일 때가 더 많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사실은 남들이 원하는 것이었을 때도 많았다. 자식으로, 학생으로, 선후배로, 동료로, 친구로, 배우자로 내게 기대되는 역할, 행동, 사고방식, 태도 등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글쓰기의 최전선은 말 그대로 글쓰기의 최전선이 곧 삶이라는 것, 그렇게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 내 글이 곧 나라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안 읽히는김수영의 시-삶이지, 김수영의 시-삶을 이론의 형틀로 찍어낸 잘 읽히는지식인의 해석이 아니다. 소박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느낌과 생각으로 시를 읽어내고 해설하느라 낑낑대는 것이 공부다. 독서의 참맛이다.”(100)

좋은 글은 질문한다. 선량한 시민, 좋은 엄마, 착한 학생이 되라고 말하기 전에 그 정의를 묻는다. 좋은 엄마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좋음인가, 가족의 화평인가, 한 여성의 행복인가. () 하지만 평균적인 삶도 정해진 도덕률도 없다. 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 개여야 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118)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글쓰기를 하고 싶은지, 왜 글을 쓰고 싶고 써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으로 실린 공동체 학인의 글 세 편도 좋았다. 저마다의 삶을 잘 보여주는 글이었고 추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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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인 2015-07-2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책 사고싶은데 집에서 넘 멀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 2015-09-2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은유 작가님을 비롯하여 글쓰기의 유명한 작가 4분이서
와우북페스티벌에서 글쓰기 강연을 하신답니다!!

지금 사전등록 받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이원시인 글쓰기 강좌: http://onoffmix.com/event/52416
박수밀 작가 글쓰기 강좌: http://onoffmix.com/event/52431
함돈균 평론가 글쓰기 강좌: http://onoffmix.com/event/52445
은유 작가 글쓰기 강좌: http://onoffmix.com/event/52452
 
장정일의 독서일기 3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3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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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앞서의 두 권에 비해 차분하고 냉정한 느낌이다. 독서일기임에도 또렷이 각인된 사건이 있는데, 이 권 전체에 걸친 핵심 사건은 바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 할 수 있겠다. 1996년 봄. 처음 파리로 떠난 후의 일상(이라고 해도 독서가 거의 전부이지만)에서 뜬금없이 한국 생활로 배경이 바뀐다. 324일의 두 줄짜리 영화감상문 다음에 곧장 424일의 일기가 나오는 것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앞의 두 권에서 저자는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한 달 동안 별다른 독서를 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중심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자리 잡고 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바로 말함(193~199), 리뷰지가 위촉한 이영준과의 대담(203~215), 시사저널이문재와의 대담(230~232), 지역 신문에 게재한 나는 하이틴 작가가 아니다(241~247),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설명글(269~275) 등은 모두 당시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심경을 대변해준다.(이 책은 사건 당시 출판사 스스로 판매중지하고 책을 회수하였다. 현재 알라딘 중고 거래가격은 3~10만원) 물론 독서 감상문 자체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했지만, 작가가 쓴 소설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에 대한 작가의 글은 내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표현의 자유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작가가 내놓은 작품에 대해 강제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런 제재를 가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등.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20년 전에 비해 지금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회의적이다. 사이버 감찰 논란이나 닭그림(풍자화라 하자) 제재(制裁)는 코미디에 가깝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 아니라 폭력이라고 말한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의견, 그에 대해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며 댓글을 달던 사람들그러나 솔로강아지라는 초등학생의 시집에 실린 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에 대해서 사람들은 잔인하고 끔찍하다면서 시집을 눈앞에서 불태워 버리라고 했다는데(그리하여 출판사는 전량 회수, 폐기했다 한다), 학원 가라고 하는 엄마가 끔찍하니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는 앞서 말한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표현의 자유란 어른에게만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만을 너도 표현할 수 있다’(이때 는 대다수 혹은 강자, ‘는 소수 혹은 약자)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여 이래저래 씁쓸하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관련한 글에서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2001년에 그 소설로 인해 장정일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장정일의 독서일기31997117일 일기로 끝나니까 이어지는 책에서도 당분간 이 사건 이야기가 나오겠지.(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부연하자면 내가 이 소설을 포르노로 치장한 다른 이유는 부권적이고 권위적인 문어체에 억눌려 온 구어체를 마음껏 풀어놓기 위해서였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고작 기성 체제에 봉사하는 요즘 소설의 존재 방식에 의문이 났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은 자유로우며 불온한 것이라고 말해지지만, 굳어진 형식에 아무런 충격을 가하지 못하는 작가의 더듬거림은 체제에 대한 고해에 불과하며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장인정신은 아버지가 심어준 내면감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기 갱신의 열정 없는 기계적인 글쓰기는 선생님에게 보이는 매일 매일의 일기쓰기에 불과하지 않은가.”(196)

 

음란도서와 작가, 출판인에 대한 제재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첫째 인신구속과 같은 사법처리, 둘째 판매 금지, 셋째 통신판매나 비닐 씌우기 미성년자 판매 불가와 같은 유통방법상의 제재. 나는 인신구속이 중세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판매 금지는 작가의 실존적 체현물인 동시에 경제 수단을 원천봉쇄한다는 이유로 수락할 수 없다.”(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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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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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님 서재에서 본 책이다. 관련 글을 읽고 사두었다. 머리가 좀 복잡해서 편히 쉬려는 마음으로 가볍게 빼들었다가 당황했다. 빠져들어서 1권 절반 쯤 읽다가 다시 마태우스님 서평을 찾아보니 이런 경고가 있다.

"그러니 뭔가 꼭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펼치지 마시라."(http://blog.aladin.co.kr/747250153/6518600)

그 말을 기억했어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나흘 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읽었다. 아니, 잘 수가 없었다. 지금도 눈이 빨갛고 정신은 혼미하며 입술에 물집이 생기려 한다.

 

1990년 초 일본, 중학생의 죽음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과 해결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죽은 소년이다. 죽은 채로 계속 등장하고, 사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세 권이나 된다. 이야기의 전개는 굉장히 느린 느낌(간간히 빠르지만)인데, 그래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긴장감을 주었던 것 같다. 작가는 사건과 등장인물을 물고 늘어지고 씹고 뜯고 맛보고 파고들어서 끝장을 본다. 느린 전개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중학생)의 심리 묘사는 단연 돋보였다.(특히 죽은 소년)

'아니 중학생이 이렇게 어른스럽단 말이야!'

라고 놀라면서 자연스레 나의 중학 시절을 떠올렸다. 가족과 학교, 친구들, 선생님, 성적, 인기 등 그 시절에 나도 했을 법한 고민과 생각들. 물론 작가가 표현하듯이 어른스럽게 생각한 건 아닐 테지만 나름 진지했던 기억이 난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뒤따르는 생각은 '어쩌면 난 아직 중학생 수준에서 못 벗어난 걸지도 모른다'는 것.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함께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학교라는 '체제', 부모와 자식, 교사, 언론, 교육, 법, 자살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도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소설 속에서 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점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 우리 사회와 많이 닮은 일본(소설의 배경) 사회를 보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돌이켜 보기도 했다.

 

1권 후반부에서 2권으로 넘어갈 무렵부터 범인(?)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게(상당히 자주 나오는 암시) 조금 흠이었지만, 구체적인 전개는 조금 의외였다. 마지막에 가서 작가가 힘이 빠져버린 느낌. 죽은 아이의 노트를 더 살리길 바랬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핵심 줄거리와 잔가지(?)들이 연결된 부분들도 흥미로워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심리 묘사와 유머러스한 표현이 좋았다.

 

 권 당 600쪽 이상 3권이나 되는 분량이니 결코 가볍지 않다. 마태우스님 말을 기억하자.

"그러니 뭔가 꼭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펼치지 마시라."

 

 

#리뷰는 왜 1,2,3권 한꺼번에 안 써지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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