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메일을 확인하다 교보문고에서 보내온 글을 한 편 읽었다.

[김연수의 곰곰이 생각해보니]라는 칼럼에 연재된 글이다.

그런 칼럼이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 메일로 온 글 제목은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이다.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12275&OV_REFFER=http://netpion2.kyobobook.co.kr/1I-147632I-44612375I-4goaSoZE-8zPqrCF-1938052I-4ehhgE-8D-7D-7HPDzD-6ZACvCvCCZD-6oCD-6ZuD-7oCbbBD-7CgPHfCaUbHxSPDD-6SHZF-3zHhHI-5SJF-112275I-3

 

 

나는 올해 초 첫 아이를 출산했다.

덕분에 독서할 시간이 절반 이상 줄었다.

독서는커녕 잠자기, 밥먹기, 씻기, 화장실 가기 등 그동안 당연한 듯이 누려왔던 거의 모든 활동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지치는 날에는 아이 낳은 걸 후회하거나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를 또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예쁘고, 그 아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순간도 많다.

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난 내가 출산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감정과 사건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냥 무심코 글을 읽어내리다가 저자가 아이를 낳기로 하고, 딸에게 남긴 메시지를 발췌한 부분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잠들었던 아이가 깨서 나를 찾았고, 오늘 낮엔 유난히 보챘다.

진 빠지는 시간을 보낸 후 이제야 다시 노트북을 열었는데 아침에 읽은 글이 그대로 화면에 떠있었다.

 

잘 모르겠다.

아이는 온전한 기쁨일까?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어쨌거나 아이를 기르면서 나 자신이 단련되고 있다는 거다(근육도).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게 되는 것들도 늘어났고,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사가 좀 넓어졌다.

욕심을 줄이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으며, 웬만한 일에는 유난을 떨지 않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순간도 많아졌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아이의 존재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이전의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

나 또한 책의 저자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으로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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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9-0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너무 좋네요
현재 시각. . 비 오는 밤에 읽어도요^^

cobomi 2016-09-09 06:57   좋아요 0 | URL
네, 김연수님 글 좋죠?

clavis 2016-09-0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 저는 cobomi님 글이 와닿아서..♥저희 언니도 아이 둘 키우면서 근육과 감성모두 일신우일신을 이뤄가고 있어서^^!

에디터D 2016-09-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의 저부분이 맘에 남아 별도로 메모했어요.ㅎ 누군가의 딸이라면 거의 같은 맘이었을 것 같아요.ㅎ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땡스북스 + 퍼니플랜 지음 / 알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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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꿈은 서점 주인이었다.

동네에 서점을 열고 내가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으로 채워넣고 싶었다.

손님이 오면 책을 팔거나 얘기를 나누고, 손님이 없을 때는 혼자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하지만 진심이었다.

 

그런 꿈을 꾸며 살았을 때는 지나다가 작은 동네서점들을 꽤 볼 수 있었다.

아이들 학습 교재와 잡지를 주로 팔거나, 문구류를 함께 판매하는 서점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마저도 언제부터인가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다.

내 기억엔 시내 중심가에 교보문고가 들어서면서 지역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동네에 있던 서점도 하나 둘 사라진 것 같다(정확하진 않다).

2000년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사라졌던 것 같은데 이것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릴 때 자주 들렀던 서점들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아쉽고 속상하다.

가깝게 들릴 서점이 사라지니 나도 별 수 없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

시내 중심가에는 교보문고와 알라딘 중고 서점이 있지만 우리집에서 너무 멀다.

이사 가듯이 날 잡고 가야만 한다.

자가용이든 버스든 이용할 수 있긴 하다. 

시내 중심가라 몹시 번잡해서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다.

가끔 들리는데, 서점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고 만다.

차분하게 책을 고르기는커녕 북적대는 사람들을 피해다니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한다.

신간코너만 겨우 기웃거리다 지쳐서 대충 한두권 사서 나온다.

그까지 갔는데 빈손으로 오기가 왠지 억울해서다.

흡족한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아, 서점에 그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어째서 독서율이 낮다는 걸까.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은 나처럼 서점 주인이 꿈이었던 사람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나는 작은 서점들과 제법 규모가 컸던 지역 서점들이 문 닫는 걸 목격하면서 서점 주인의 꿈을 접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작은 서점을 꾸리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손님이자 독자로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현실적이 되었거나 현실에 찌들었거나 겁이 많아졌거나 그 모두가 한꺼번에 생긴 탓이다.

 

각각의 서점에 얽힌 이야기, 책 이야기, 무엇보다 사람 이야기가 실려 있어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전국의 동네서점 정보와 몇 군데 서점에서 추천한 책의 목록도 실려 있다.

책값도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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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09-0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동네 작은 서점을 꿈꾼,, 그러다 헌책들을 무심한 듯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것 같지만 금새 찾아낼 정도의 애착을 가진,, 그런 작은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었어요ㅋㅋ

cobomi 2016-09-09 06:57   좋아요 0 | URL
상상만으로도 즐겁네요~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우리 시대의 질문 2
윤보라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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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 동안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불편하고 답답하고 부끄럽고 속상하고 화나는 등의 여러 감정이 엉켜서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다.

 

"여성들이 흔히 경험하는바, 익숙하게 들리므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불쾌하고 분한 감정이 드는 말을 들으면 이에 대해 당황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탓하게 된다."(108쪽)

나는 이런 경험을 자주 하는데, 적절한 대응을 못할 때마다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논리나 지식과 같은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따로 공부해야 하는 문제"(108쪽)

라니 위안이 되면서도, 그저 나 하나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이니 답답하다.

 

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일주일 내내 내 머릿속엔 온갖 억울했던 일들과 대응할 말들, 행동들 같은 게 떠올랐다.

그러다 이틀 전 밤에 남편에게

"여성이 약자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아니. 뭐, 물리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왜 약자야?"

헐.

 

나: "그럼 장애인은?"

남편: "어떤 면에서는."

나: "그럼 어린이는?"

남편: "어린이는 약자지."

나: "왜?"

남편: "어린이는 어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이 망가지기 쉽고, (이하 생략)"

나: (... ...)

남편: "(....내 눈치를 보며) 왜, 아니야?"

나: "하아......"

 

내가 결혼생활을 답답하고 힘들게 느끼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짜증나고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이 상황 자체! 내가 왜 약자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 자체가 약자라는 증거야."

남편: "응?"

나: "그런 거 몰라도 불편한 거 없이 잘 사는 게 권력 아니야? 기득권을 갖고 있으면 뭐가 불편해서 그걸 매사 공부하고 설명하고 극복하고 바꾸려고 하겠냐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꼈으니까 모르고도 잘 지냈겠지. 오히려 알려고 하는 게 더 수고롭고 거슬리니까 알려고 하지 않는 거 아닌가."

남편: "(....)"

나: "아니야?"

남편: "(비장한 어조로)그래서 어떻게 하면 돼?"

나: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남편: "....."

 

그럼에도 남편은 깊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또 이상한 책 읽고 히스테리 부리는구나'하는 표정.

 

정말이지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을 수 있는 게 권력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권력이지.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랬을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 자체가 내가 가진 알량한 권력을 드러내는 건 아니었는지.

그래서 누군가는 불편하고 억울하고 상처받지 않았는지.

나의 생각없는 말이 누군가를 멋대로 규정하거나 없는 존재로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나는 페미니즘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런데 페미니즘 관련 책을 보면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랄까.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유연하고 유용한 틀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남편은 그날 밤 대화를 잊어버린 것 같다.

여전히 그날 밤 어떻게 말했어야 더 좋았을까를 생각하는 나는 약자가 아니고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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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평화 - 전쟁,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자들의 대담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1
전쟁없는세상 엮음, 엄기호 외 지음 / 오월의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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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다.

언제부턴가 관심이 커졌는데, 관심을 가질수록 더 예민해진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폭력에 대해서도 관심에 따라 민감한 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나도 예전엔 '폭력'이란 말에서 물리적인 것만을 떠올렸다.

 

책을 읽는 내내 폭력에 대해 다시금 고민했다.

폭력이란 권력의 문제이자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단순히 전쟁이나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폭언, 강요, 무언의 압박 따위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내 생활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 아닐까.

이를테면 (요즘 전기요금이 핫이슈이니만큼)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이동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지 떠올려 보면, 전자제품 사용하는 게 (비싼 전기요금도 문제일 수 있겠지만)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도 참 고기 좋아하지만, 그 동물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고통 받으며 죽임을 당하는지를 떠올리면, 굳이 고기를 안 먹어도 먹을 것이 널려 있는 세상인데 참 폭력적이었구나 싶다.

사용하지도 않는데 잔뜩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생각하면 그 마저도 자원낭비이자 환경파괴이니 폭력적인 것이다 싶고.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조명과 컴퓨터를 켜서 전기를 쓰고 있으니 이것 또한 폭력이다.

아, 진심으로 분노하게 되는 사드배치 - 난 정말이지 북한보다 핵발전소가 백배 이상 커다란 위협이라 생각하는데, 거기다 사드까지 배치되면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망가질 게 뻔하지 않나.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나 결과가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그 밖에도 참 많다.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인도를 볼 때마다 유모차 끌기도 이렇게 힘든데 휠체어 탄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조금만 신경쓰면 되는데도 삐딱하게 주차하는 사람들, 마트에서 계산해주는 직원한테 돈이나 카드 던지는 사람들,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오는 스팸 전화 등등.

그리고 명절이나 제사에 시댁에 가서 음식하고 시중드는 나의 역할,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종류의 말들, 학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관념들 등등.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폭력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지만(오히려 그 편이 편할지도 모르지만), 폭력에 대해 생각할수록 사소하게 지나쳤던 일도 마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특별히 주목해서 읽었던 건 '교육'에 관한 장과 '비폭력운동'에 관한 장이었다.

'교육'과 관련한 폭력에 대해서는 나도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었던 불편함을 짚어주었기에 뭔가 조금은 뚜렷해진 느낌이다.

많은 교사들, 예비교사들이 이 글을 읽고 거듭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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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미니멀라이프 - 무인양품으로 심플하게 살기
미쉘 지음, 김수정 옮김 / 즐거운상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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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도착한 책을 오늘 읽는 즐거움, 오랜만이다.

아기가 낮잠 자는 동안 가볍게 읽었다.

육아와 살림으로 몸이 무겁고 눅진한 기분이었는데 간만에 개운하다.

 

'무인양품으로 심플하게 살기'라는 부제를 보면서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했지만, 큰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 읽고 난 후에는 그저 상쾌함이 가득하다.

특별히 무인양품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물건을 사들여야겠다거나(오히려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인테리어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정리나 단순한 삶(미니멀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들은 늘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진', '그래서 생활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운' 내게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준다.

좀 당황스러웠던 것은, 저자가 적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리 수납 물건은 많이 갖고 있는 듯이 보였던 것_ 뭐, 필요했겠지만.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딱히 뛰어난 능력도, 돈도 없으니 노후대비책으로 '단순한 삶'을 미리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절실하다.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한 문장.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내가 좋은 기분으로 있는 것'이라는 점도 언제나 의식하고 있습니다."(111쪽)

그렇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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