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년 전, 내가 아직 출판사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무렵, 앙리-까르띠에-브레송의 이 책의 이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여전히, 여전히 만들고 싶어했을 때.

나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지방의 국립대학을 다니다가 국문학과로 전과를 하고, 서울로 편입을 한 다음의, 어떤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기에 내가 받은 충격이랄까..상처랄까..하는 것은 너무도 깊은 것이었다.

물론, 그 출판사는 동아리 선배의 추천과, 남자친구의 책 리뷰 도움으로 얻게 된 나의 첫 직장이었기에 근라임-되기 형식에는 아주 부합하는 내 삶의 양식이었고, 이러려고 글쓰기를 좋아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는 커녕 더 큰 출판사에 들어가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한심한 로라였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우니까 그만 넘어가고,
오늘 갑작스럽게, 누군가의 실직 소식을 들었다.
나는 결국 노동사무소를 찾고,
해고 예고 수당을 받고,
그 돈이 다 떨어질 무렵 이직(이랄까)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서교동 성당의 어린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받으며
뿌렸던 나의 피눈물은 그 거리에 흥건해 있을 것이다아.

그 신부님의 말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좋을 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성경을 보면 위로와 힘을 받게 된다는 요지의
그 말씀이 몇 번 나를 살렸다.

오늘은, 요즘은 괜히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제 지인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꽝, 찍었다 하고
나는 내일모레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소포를 보내려 하고
곧 3시에는 레슨이 잡혀있는, 얼기설기한 하루인데도
왜때문에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밝고, 진지하게.가
십 년전, 이 책에 밑줄을 그을 무렵에의
내 모토였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내일 먹을 장을 보고,
결혼 반지를 끼고,
체중은 여전히 다이어트를 절박하게 요구하는
여전한 나인 것이 반갑다.

몰랐는데,
아 10년 전에도 내가 이 책을
이토록 읽고 싶어했다는 것이
문득 아련하고 좋게 느껴져서
오랫만에 글을 한번 써본다.

대학교 4학년 남학생 하나가
내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진지하게 구는 바람에
선생이 되어버렸다.
그게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십 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이 오지랖일지, 근자감일지,
전공도 아닌 나에게 배우겠다는
오, 너라는 청춘이여.

삶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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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2-07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 박근혜 탓일 겁니다.. ㅎㅎ

clavis 2016-12-07 19:01   좋아요 0 | URL
나는 콩사탕이 시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