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열린책들 세계문학 147
쥘 베른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리어스 포그는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무척 정중하며, 영국 상류 사회에서 제일 잘생긴 신사에 속한다는 점 말고는, 도통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p.11)

제일 잘.생.긴. 신사인데 난 자꾸 사자얼굴이 떠올라 ㅋㅋㅋ 90년대에 방영된 동명의 TV만화영화 시리즈를 애청하며 자랐고 원작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동물. 필리어스 포그씨는 신사모를 쓰고 지팡이를 든 사자, 파스파르투는 갈색 들쥐(?)인 것 같고, 픽스 형사는 사냥모를 쓰고 파이프를 문 개, 인도여인은 보라색 털에 투명한 베일같은 것을 입가에 두른 고양이과에 속하는 어떤 동물이었던 거 같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스토리를 내가 얼추 꿰고 있더라는 것. 아이때의 기억이란게 늘 그렇듯이 매회 에피소드가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나 (아마 친구들이랑 밖에 나가 놀다가 좀 놓친 것 같다) 그래도 대강의 큰 줄기는 파악하고 있었고, 그 말인즉 만화제작사가 나름 원작을 최대한 고수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이 원작 소설은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쥘 베른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상당한 이야기꾼이구나 감탄했다. 지명이 줄줄이 나열되고 날짜와 시간 계산등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빡빡한 일정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포그씨와 파스파르투, 포그씨는 특유의 침착함으로 (문득 그저께까지 3일 연속 세이브를 기록한 돌부처 오승환 투수가 생각난다. ㅎㅎ) 파스파르투는 초조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인간미 넘치는 매력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적재적소에 장애물과 모험과 역사와 문화와 풍경과 유머를 배치했고 각 장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지만 스포일은 하지 않는) 부제를 붙여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독자들이 미리 상상해 보게끔 했다.

구글을 검색하면 부지런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80일간의 세계일주 여정을 그린 지도가 나온다. 이 나이가 되도록 뭐가 어디에 붙었는지 잘 모르는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홍콩에서 요코하마로 곧바로 떠난 파스파르투의 일정과 홍콩에서 배를 놓쳐 상하이, 나가사키를 거쳐 요코하마에 도착한 포그씨 일행의 일정이 헷갈렸는데 지도를 보고서야 이해가 됐다.) 어릴 때 읽었던 (아마도 아동용 축약본으로 읽지 않았을까 싶은) 15소년 표류기와 해저 2만리도 완전판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7-3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리뷰 읽으니 급 읽고 싶어집니다.. 사실 이 작품도 모두 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읽지 않은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북깨비 2016-07-31 15: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걸 (내용도 대충 알고 애들 읽는 동화같은 걸) 굳이 사서 읽어야 하나 몇달째 장바구니에 넣었다 보관함으로 옮겼다 혼자 수없이 고민하다가 그냥 어느 날 확 질렀는데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뭔가 이야기가 순박한(?) 느낌이 난다고 할까요. 쥘 베른이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가 프랑스 출신으로 나오는 하인인 파스파르투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그려진 느낌도 없진 않지만요. 그런 거 저런 거 다 따져도 일단 재미난 이야기임은 확실해요. ㅎㅎ

cyrus 2016-07-3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화 기억합니다. KBS 2TV에 했었어요. 백년 전에 쓴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재미있어요. ^^

북깨비 2016-07-31 14:52   좋아요 0 | URL
어머낫, cyrus님께서도 그 만화를 아시는군요! 갑자기 실감이 납니다 그 당시 이 만화의 인기가 ㅎㅎ 저는 여자아이라서 그랬는지 키다리 아저씨는 꼭 챙겨봤는데 80일간의 세계일주는 그러질 못한 것 같아요. 나디아는 그 당시 제게 너무 난해해서 이해를 못했고요. ㅠㅠ 아 정말 90년대 주옥같은 명작들이 많았죠.

transient-guest 2016-08-03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만화가 기억납니다. 원작소설은 어린이-청소년 버전으로 나이와 함께 up해가며 읽다가 몇 년전 쥘베른 작품이 다시 나올 때 구해서 읽었습니다.ㅎ 여전히 재밌더라구요. 그러고보면 예전엔 이렇게 문학의 명작을 만화화한 것들이 참 많았었네요.

북깨비 2016-08-03 07:1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t게스트님 말씀처럼 옛날에는 세계명작만화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서는 진짜 눈물 콧물 쏙 뺐답니다. ㅠㅠ 아. 그리고 저는 파우스트를 아직 안 읽어봤는데 어릴 때 만화영화로 본 기억이 있어요. 만화영화니까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악마가 되게 무서웠던 기억이. 어떻게 파우스트처럼 난해한 작품을 아이들을 위한 만화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 시도가 참 대단했네요 지금 생각하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