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65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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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로 쓰여진 앞부분이 너무 재밌어서 기대가 컸는데 중반부터 스토리가 늘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하권부터는 집중력이 확 떨어져서 그냥 skim thru하며 읽었다. 고딕 소설은 공포를 자아내야 하는데 드라큘라가 워낙에 유명한 고전이다보니 나뿐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포를 당해서 서서히 긴박감을 주기 위한 빌드업이 오히려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영화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보는 느낌? 하지만 초반에 조너선 하커가 런던을 떠나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뮌헨 - 빈 - 부다페스트 - 다뉴브강 - 터키 - 클라우젠부르크 (로얄호텔) - 비스트리츠 (골덴 크로네 여관) - 보르고 고개 -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어찌나 두근두근했는지 이 부분을 수도 없이 읽으며 (이게 먹방이 아니면 뭐가 먹방이냐 ㅋㅋ) 한동안 동유럽 음식에 꽂혀서 헝가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paprika hendl (chicken paprikas)에 Tokaj 와인을 곁들여 먹고, 간 김에 책에 안나오는 blood sausage와 Liver sausage도 같이 시켜 먹었는데 어쩐지 고급 순대, 순대간의 맛이 남ㅋ Robber steak (kebab/kabob), mamaliga (cornmeal)등을 맛보려고 간 로마니안 레스토랑에서도 책에는 나오지 않는 stuffed cabbage roll을 같이 시켜 먹었는데 약간 김치쌈 만두맛이 나서 왠지모를 친근감이 ㅋㅋ 동유럽쪽 음식이 아시아문화권의 음식과 닮은 것이 지리적으로 당연하면서도 신기했다. 무튼 고딕 소설로는 즐기지 못했지만 (고딕 소설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여행기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소소한 재미가 있다.

기차는 거의 제시간에 출발하였고, 해가 떨어진 뒤에 클라우젠부르크에 도착했다. 그날 밤을 나는 그곳에 있는 로얄호텔에서 묵었다. 저녁엔 닭고기로 요기를 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고추를 넣고 구운 것으로 무척 맛있기는 했으나, 먹고 났더니 갈증이 났다 (미나를 위하여 조리법을 알아두자). 웨이터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파프리카 헨들>이라는 것이며, 헝가리 고유의 음식이기 때문에 카르파티아 산맥 근처의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독일어를 얼치기로나마 알고 있는 것이 여기에서는 무척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가 난감했을 것이었다. - P12

침대가 꽤 편안했는데도, 온갖 종류의 해괴한 꿈에 시달리느라고 잠을 설쳤다. 밤새도록 창문 아래에서 개가 짖어 댄 탓이거나, 저녁에 고추를 먹고 나서 물 한 병을 다 들이키고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탓이리라. 날이 밝을 무렵에야 잠을 좀 잤는데, 누군가가 계속해서 방문을 두드려 대고 나서야 잠이 깬 것으로 보아, 그때는 그래도 잠이 꽤 깊이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로는, 어제저녁보다 더 많은 고추와 <마말리가>라고 불리는 옥수수 가루로 쑨 죽과, 가지에다 고기를 다져 넣은 것으로 아주 감칠맛이 나는 <임플레타타>라는 가지소박이를 먹었다 (임플레타타의 조리법도 알아 놓아야겠다). - P13

적어 두어야 할 신기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비스트리츠를 떠나기 전에 저녁 식사를 아주 잘했을 것으로 상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내가 먹은 저녁에 대해 정확하게 적어 두어야겠다. 내가 저녁 식사로 먹은 것은 이른바 <도둑 스테이크>라는 것으로, 베이컨 몇조각에, 양파, 그리고 고추로 양념을 하고 런던에서 고양이먹이를 요리할 때와 같은 간단한 방식으로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운 쇠고기였다. 포도주는 <골덴 메디아>였는데, 이상하게 혀를 톡 쏘기는 했지만, 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만 두 잔을 마시고 다른 것은 마시지 않았다. - P19

백작이 다가와서 손수 음식 그릇의 뚜껑을 열어 주었고 나는 곧바로 먹기 시작했다. 훌륭한 닭고기 구이에, 치즈와 샐러드, 오래 묵힌 토케이산(産) 포도주 한 병이 곁들여졌다.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백작은 나의 여행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 왔고,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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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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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나를 위한 요약

1.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인간은 단 한 번밖에 못 살고, 문학은 (그저 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 그 자체이면서 표현 방식인) 언어를 가장 예민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
2. 책은 꼭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3. (소설이 아닌 책들은) 꼭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가 없기도 하다.
4.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다.
5. 책을 곳곳에 두어 시간이 나면 닥치는 대로 읽는다.
6. 읽고 나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 기억하고 싶다면 리뷰를 써 볼 것.
7. 책을 모셔두지 말자... 심지어 책은 막 학대하면서 읽어야.. 줄도 치고 메모도 하고 찢어보기도 하고... 내 그리는 못하겠다.
8. 병렬식 독서. 굿!
9. 서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꾸미고 책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류하고 정리하기. 배열도 자주 바꿔보기.
10. 책 고르는 팁: 3분의 2지점, 즉 저자의 급소를 공략.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그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일 가능성 업!
11. 목적 독서는 지친다. 재미가 최고다. 지식이 늘고, 화술도 늘고, 글도 잘 쓸 수 있고... 이 모든건 책을 다 읽고 나면 얻어지는 부산물일 뿐.
12. 전집 안 사도 된다. 전집 강박증 버리기.
13. 전작주의 강박도 버리기.
이동진: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되나 생각해보면, 지금부터 단 한 권도 안 사고 집에 있는 책만 읽어도 평생 다 못 읽어요.˝ p113
14. 책을 버리는 방법: 수십 년 간 책을 솎아내고 남기는 작업을 반복해오며 느꼈던 아픔만 언급하시고, 정작 책장 안에서 책을 탈락시키는 그 중요한 방법은 안 알려주심.
15. 책을 읽고 요약만 제대로 해도 굉장한 것. 책의 구조를 파악하고 핵심을 간추리는 능력 장착이 먼저. 비판은 줄거리와 내용 요약 경험치가 쌓인 후에.
16.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 그러니 좋은 습관을 가지는게 최상의 행복 기술. 우리의 시간은 대부분 습관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독서가 습관이 되면 그것이 행복!
이동진: “그러니까 그런 게 저는 행복인 것 같은 거에요. 좋은 인간관계, 좋은 습관, 좋은 책을 읽는 방식, 좋은 시간을 경유하는 방식, 이런 거겠죠.“ p.153
17.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쌓는 독서와 (내 고정관념을 깨는) 허무는 독서의 균형.
이다혜: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p.160
이동진: “허물다 허물다 보면 그게 옆에 가서 쌓이는 거에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긴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 쌓는 독서가 되죠. 저한테는 그랬던 것 같아요.“ p.162

저는 책을 많이 산 사람 중 하나인 동시에 책에 관한 한 많이 실패한 사람일 것입니다. 워낙 많이 샀기 때문에 그만큼 실패했던 경우도 많으니까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산 책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이상 갖고 있을 이유가 없는 책들을 헌책방에 판 적도, 도서관에 기증한 적도, 다른 사람에게 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가 괜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돈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름대로 책을 고르는 법, 책을 읽는 법을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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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5-16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동진 님 같은 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살짝 얄밉기도 하죠. 영화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독서 전문가라 할 만큼 독서광이라서 말이죠. 게다가 목소리도 좋고 말도 잘하잖아요.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는지...ㅋㅋ 뭐 덕분에 유튜브를 통해 좋은 정보를 많이 얻고 있으니 이동진 님에게 감사드려야 할 것 같네요. 좋은 마음으로 감사를 보냅니다.^^

북깨비 2024-05-16 14:26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이 이동진님께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부디 팟캐스트 빨책 시즌2로 다시 돌아와주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간절함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책은 아날로그 감성이잖아요. ㅠㅠ 라디오 느낌의 팟캐스트 너무 그립습니다.
 
뉴올리언스에 가기로 했다
이인규.홍윤이 지음 / 버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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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면 나도 좀 다녀봐서 굳이 남이 미국 구경한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사서 봐야할까 고민했지만 너무 재밌었다. 별 4개와 5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서점에 들른 이야기 보따리도 풀어 놓으셔서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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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19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파파이스의 추억...

살던 동네 근처에 파파이스
매장이 있어서 큼지막한 버거
를 그냥 -

그리고 한 동안 즐겨먹던
케이준 잠발라야가 다시 먹고
싶어지네요.

북깨비 2023-10-19 13:32   좋아요 0 | URL
파파이스 비스킷도요! 😭 후라이드 치킨, 잠발라야, 검보, 케이준 음식 넘나 맛있죠~~~~ 🤤🤤🤤 여행에세이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기승전 먹방이니까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우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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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구판을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에 소개된 글을 보고 관심이 갔으나 이미 절판이 되었다 하여 구판 중고알림을 등록해두었더니 얼마전 재출간 알림이 와서 개정판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냥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지만 1/3 내지 1/2 정도만 컬러인쇄인데 어차피 컬러인쇄를 기획했다면 그냥 통으로 컬러인쇄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뒷부분은 흑백인쇄라 살짝 아쉽다. 원서도 본 적이 없어서 컬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재출간 해주셔서 감사 또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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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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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오미 시게시와 요양원의 같은 병실을 쓴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 유품으로 남긴 두 권의 노트에서 열여덟 살의 봄과 스물네 살의 가을을 회상하는 그를 만난다.

어린 날에 만났더라면 조금 위험했을지 모를 그는 고독을 이야기했고 한발 물러나 관전할 수 있는 나이에 다시 마주한 청춘은 내 좌절과 절망의 시간에 기름을 끼얹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동요한 것은 아마도 시오미 시게시가 죽는 날까지 극복하지 못했던 허무감 속에 나 역시 아직도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머물고 있는 까닭이다.

내가 요양원에 있는 동안은 열 명 이상의 사람들과 한방을 썼다. 그들은 다들 ‘우연‘이 인생의 도중에 가져다 준 한때의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낮에는 낮의 불안을 함께하고 밤에는 밤의 공포를 함께하는 이 여섯 명의 환자들 사이에 깊은 우정이 흐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것을 한때라고 부른다면, 한때가 아닌 우정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한 사람은 한 사람만큼의 고독을 품고, 저마다 폐쇄된 벽안에 웅크린채, 자신의 고독의 무게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다른 나이, 서로 다른 인생 경험, 서로 다른 병증에 따라 독립되어 있어, 서로를 잇는 우정과 우정 사이의 틈새에 질투나 선망, 증오같은 감정, 무엇보다 에고이즘이 숨겨진 감정이 감춰져 있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 P15

사람은 누구나 죽을 것이고,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다. 다만 사람은 그것이 언제일지 미리 알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일상 속에서, 살아 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 P59

옛날의 나는 무지몽매한 소년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인생의 미로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갈망으로 넘쳐흘렀고,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오로지 영혼을 아름답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열여덟살의 내가 사랑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내게 없다. 스물네 살의 내가 바랐던 것처럼 바라는 사람은 지금 내게 없다. 나는 결코 옛날에 살았던 것처럼 지금을 살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 P63

"하지만 전 어디에 있어도 제 존재가 쓸데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 고독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남한테 피해 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 P115

"난 말이야, 진짜 고독이란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 어떤 괴로운 사랑에도 견딜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건 영혼의 강하고 적극적인 상태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기도하고 있는 인간의 상태 같은 거지. 기도는 신 앞에서는 갈대처럼 나약한 모습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뺏길 게 없는, 한계까지 다다른 강함을 보여주지. 고독이란 그런 게 아닐까?" - P117

"전 너무 두려워서…... 그게 아니라도 우리에겐 선천적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이 주어져 있어요. 부모나 형제 같은…… 전 어릴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그런 어머니의 애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걸 어머니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에, 전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가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것도 오로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예요. 지에코도 있고, 보세요, 전 주어진 것만으로도 너무 힘에 겨워요. 더 이상 저 스스로 누군가를 선택할 수도 없어요…..." - P131

"그건 그런데, 거기 곶 끝에 말이야, 너 거기 간 적 없어?"
"곶 끝에요?" 후지키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거긴 자주 갔어요."
"자주? 아무도 안 가는 거기에?"
"생각할 게 있으면 종종 그곳에 갔어요. 그런데 선배는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거기 한 번 산책 간 적이 있거든. 널 보고 불렀는데 안 들렸나 보네. 왠지 너무 황량해서 우울해질 것 같은 곳이야."
"그런가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왜긴요. 어디에 있든 똑같아요. 어디에 있어도 외로워요." - P172

"꿈이라도 좋잖아. 난 그런 식으로 살아 있는 거야. 난 매일 직장에 나가서 속된 이탈리아어로 편지 따위를 쓰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하숙방에서 페트라르카를 읽고 있는 쪽이 훨씬 더 진짜 내 모습이야." - P190

"나한테 외부의 현실 따위는 문제가 아냐. 내부의 현실만이 문제야. 물론 나도 징집되면 이런 소리는 할 수 없겠지. 게다가 언제갈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그때까지만이라도 가장 나답게, 후회 없이 내 시간을 쓰고 싶은 거야." - P191

"오빠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에요. 네, 그래요. 옛날에 시노부 오빠를 좋아했을 때도 오빠는 꿈을 꾸고 있었어요. 난 시노부 오빠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시오미 선배는 꿈을 꾸고 있어, 하지만 난 그걸 볼 수가 없어, 라고요. 나도 그래요." - P193

하지만 난 그 1달란트를 땅에 묻은 하인을 쫓아낸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리도 나쁘고 재치도 없고, 그저 주인의 말을 중히 여기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어. 그게 쫓겨날 짓이라면 그 종교는 너무 엄해. 너무 비인간적이야. 아니면 너무 이해타산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P219

말하자면, 나는 무엇에나 다 반항했다. 기독교에도 마르크스주의에도, 가정에도 학교에도, -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미온적인 반항, 나 자신이 손해 보지 않을 정도의 반항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딜레탕트로도, 학자로도, 또한 예술가로도 만들지 못했다. 나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겁쟁이에다 고독한 청년이었다. - P228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회한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입이 닳도록 이야기한들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지에코가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될수도 없고, 내가 신을 믿고 기독교인이 될 수도 없다. 사랑도 역시, - 어쩌면 사랑 역시 인간이 마음속에다 그린 이미지를 자신의 고독으로 색칠하고 자기 멋대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 P258

나는 나의 고독을 죽일 수가 없었다. 그토록 무익한 고독이 지에코에게 있어 하나님의 존재처럼, 내 작은 존재이유의 전부였다.
이 고독은 무익했다. 그러나 이 고독은 순결했다. - P264

그분이 저를 볼 때, 어떤 이상형을 두고 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제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여자입니다. 그런 저를 그분은 비범하다는 듯이 보셨습니다. 그런 착각은 언젠가는 깨어지는 법입니다. 언젠가는 그분이 환멸의 눈으로 저를 바라볼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분은 꿈을 꾸며 사는 사람이었고, 저는 현실밖에 볼 줄 몰랐습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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