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번 주 출판계에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표적 출판사 중 하나인 김영사가 지난달 하순 출간한 ‘조선의 재산상속 풍경’(이기담 지음)이 역사학자 문숙자 박사(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경인문화사·2004년 출간)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출판사가 책을 전량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경인문화사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씨 책의 본문 204쪽 중 50여 쪽에 이르는 내용이 문 박사의 저서와 95% 이상 동일하고, 나머지 중에서도 50쪽 이상이 문 박사 저서의 내용을 축약해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영사와 이씨는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후 조치에 들어갔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사는 9월 초 문 박사로부터 문제 제기가 있은 후 이씨의 책을 출고 정지하고 이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회수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저자 이씨 역시 사과의 뜻을 전하기 위해 문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숙자 박사는 ‘4대 일간지에 사과문 게재’등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사태는 결말이 어떻게 나는 지와 관계 없이 지식사회의 ‘표절’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동안 학계에서 부분적인 표절 논란은 가끔 있었지만 대중서에서 이렇게 통째로 베끼다시피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역사소설가인 이씨는 문 박사의 학위 논문을 비롯한 여러 논문을 참고문헌 중 일부로만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대중적인 저술가가 전문학자의 연구성과를 집필에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지켜야 할 금도와 방법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번처럼 머리말이나 본문 어디에도 제대로 된 전거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은 앞으로 대중서 집필자들이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선민 출판팀장 [ smlee.chosun.com]) 조선일보 200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