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출판인이 찾아와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어떻게든 도서정가제가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한 권을 사면 한 권을 더 얹어주는 '1+1'을 주도해 베스트셀러를 여러 차례 만든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대로 가다가는 출판계가 공멸한다는 논리를 폈다.

자, 그의 논리를 들어보자. 매출이 집중되는 온라인서점 서너 곳의 구매담당자들은 갈수록 능력이 커진다. 한마디로 책을 좀더 싸게 구매하는 논리를 개발한다. 원래 도매상에서는 정가의 60%에 책을 공급받고 3-4개월짜리 어음을 줬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온라인서점은 같은 가격에 현금을 주었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얼씨구나 하고 쫓아갔다.

온라인서점들은 한꺼번에 1000부를 주문하면서 55% 공급을 요구했지만 판매력이 커진 지금은 5천부 주문에 50%를 요구한다. 도매상에서도 자주 있던 일이라 출판사도 쉽게 따라갔다. 그런데 어느 날 쿠폰이라는 것이 생겼다. 지금 웬만한 베스트셀러에는 대부분 쿠폰이 붙어 있다. 처음에 500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000원 정도가 상식이다.

1만원 정가인 책에 1000원의 쿠폰이 붙으면 다시 10%가 내려간다. 따라서 출판사는 40%에 공급하는 셈이다. 이래놓고도 불안하다. 서점의 무료 배송하는 비용마저 떠안고 1만원짜리 책에 5천원 쿠폰까지 붙이는 지경이다. 심하게는 할인에다 마일리지까지 감안하면 독자는 10%도 안 되는 금액에 책을 살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벤트나 광고를 해야 하고 1+1처럼 보다 자극적인 수단도 동원해야 한다.

이래저래 모든 것을 감안하면 통상 정가의 35% 이하에 책을 공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금액은 통상 제작비와 맞아 떨어진다. 물론 20만 부 정도를 팔면 제작비가 어느 정도 절약되기는 한다. 그러나 인건비나 경상비는 그대로다. 그래서 전에는 20만 부 정도 팔면 이익이 짭짤했지만 지금은 종이 값과 제작비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 짓'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렇게라도 해서 베스트셀러에 올려야 그나마 책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흔적이라도 남는다. 그나마 '이 짓'을 계속 할 수 있는 출판사는 주로 '팔리는 책'만을 추구하는 대형 출판사들이다. 홈쇼핑 또한 매출만 증가하지 이익은 없기에 소수의 출판사가 독점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본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이 험난한 시국'을 견뎌내겠지만 이른바 중소형 출판사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여기까지가 그가 말한 논리다. 온라인서점의 등장을 처음에 두 손 들고 반긴 것은 주로 인문사회과학 출판인이었다. '이익'보다는 '뜻'에 집중하는 그들은 기존 유통시스템에서는 '찬밥' 대우를 받았지만 온라인서점들이 현금거래 같은 미끼를 들고 나온 데다 초기화면에 자주 띄워주면서 한때 '호경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라인서점 칭찬에 침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도서정가제에 목숨을 건다.

그때 나는 '자본'에게 도덕이나 양심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축은 '이익'일 뿐이라고, 머지않아 그 원리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 이 땅의 출판인들은 그 지엄한 '철칙'에 몸을 떨고 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그 답은 여러분의 가슴속에 이미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기사게재 : <한겨레> 2006.8.25

출처: 한국 출판 마케팅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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