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6-08-05 ]
《무슨 배짱일까. ‘모중석 스릴러 클럽’(비채). 모중석이란 알쏭달쏭한 가명의 주인공이 해외 스릴러 소설을 추천, 번역, 출판하는 시리즈다. ‘탈선’ ‘단 하나의 시선’이 나온 데 이어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가 4일 나왔다. 한 사람이 기획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시리즈물을, 그것도 스릴러 장르의 책만 모아 출간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출판사에 모 씨가 누구냐고 묻자 ‘30대 중반의 재미교포로 현대 스릴러 마니아이자 아마추어 작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10여 년간 스릴러를 섭렵해 온 그의 제안으로 시리즈를 시작했다는 것.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수 없다는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자신에 대해 설명한다면….
“중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 고교와 대학을 마쳤고 현재는 자영업자다. 스릴러 소설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셜록 홈스, 괴도 뤼팽 시리즈는 물론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탐독하며 자랐다. 스릴러 소설만 5000권쯤 갖고 있다. 좋은 작품을 공유하기 위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을 시작했다. 하루를 국내외 스릴러 정보 사이트 검색으로 시작한다. 스릴러 북 헌팅을 위해 영국 캐나다 일본에 자주 간다. 얼마 전엔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주관한 스릴러 페스티벌에 참석하러 애리조나 주에 다녀왔다. 10여 년간 해마다 세계 미스터리, 스릴러 컨벤션에 간다.”
―스릴러 마니아로서 가슴 뛰는 첫 경험은….
“고등학교 때 가족과 캐나다 토론토 여행을 갔다가 헌책방에 들렀는데 우연히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오데사 파일’ 초판본을 발견했다. 표지를 들추니…세상에, 저자의 서명이 들어 있더라! ‘심봤다!’고 외치고 싶었다. 저자 사인이 있는 책을 7달러에 사갖고 나오면서 책방 주인이 잘못 계산했다고 뒤따라올까 봐 진땀 흘렸다.”
―스릴러 소설을 왜 보는가.
“스릴러는 어디까지나 즐기는 문학이다. 영화로 치면 할리우드 오락영화쯤 될까. 레이먼드 챈들러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총잡이를 등장시켜라. 독자들로 하여금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가도록 만들려면 우선 첫 페이지부터 화끈하게 시작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릴러는 그런 문학이다. 시작은 액션으로, 설명은 나중에. 생사가 오가는 위기의 순간에도 주인공에게 쉬운 해결책이란 없다. 팽팽한 긴장감과 액션, 충격적 반전. 뭘 더 바라겠는가.”
―스릴러 마니아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다른가.
“주변 환경, 흔적, 목소리 등으로 범인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링(profiling) 기법을 적용해 숱한 연쇄 살인범을 검거한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존 더글러스가 ‘킬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 그처럼 주변 사람의 마음, 행동을 추측해 보는 버릇이 있다. 부작용도 좀 있다. 운전을 하다가도 괜히 누군가 미행하지 않는지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계속 뒤를 확인하고…. 좋은 습관도 있다. 날마다 일상사를 스릴러처럼 기승전결로 구성해 생각하고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면 마지막 결말을 반전으로 처리하는…. 내겐 매일이 한 편의 즐거운 스릴러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모중석 씨 추천 스릴러 소설▼
○모방범(미야베 미유키 지음·문학동네)
요즘 일본 미스터리 소설 출간이 봇물을 이루는데, 그중 제일 옹골찬 작품이다. 여느 일본 소설처럼 가벼운 트릭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탐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법 두툼한 분량에 수많은 사건이 나열되어 있고 읽는 재미가 있다.
○맥시멈 라이드(제임스 패터슨 지음·북@북스)
왜 제임스 패터슨은 한국에서 빛을 못 보는지 안타깝다. 성인은 물론 청소년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어드벤처 스릴러다. 98%가 인간, 2%가 새인 아이들이 실험실을 탈출해 늑대인간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 패터슨의 색다른 실험이 아주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뿌리깊은 나무(이정명 지음·밀리언하우스)
한국 장르 소설도 꾸준히 진화한다. 치밀한 구성, 반전, 세종 시대에 대한 방대한 지식,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이 작품의 장점은 무수히 많다.
무수히 쏟아져 나온 외국 작품에 전혀 ‘꿀리지 않는’ 한국형 팩션.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조르지오 팔레띠 지음·한스미디어)
이탈리아산 스릴러. 조르지오 팔레띠는 이미 ‘나는 살인한다’로 국내에 알려진 작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들이 펼치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구조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국산 스릴러가 조금 물린다 싶으면 이 작품을 읽어보시길.
○자칼의 날(프레더릭 포사이스 지음·국일미디어)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고용된 악명 높은 살인청부업자 자칼과 그를 추적하는 형사의 숨 막히는 대결이 그려져 있다.
첩보 스릴러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구성이 탄탄하다. 저자는 르포 작가 출신답게 캐릭터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