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그를 떠올리면 우울하다. 아니 '우울하다'란 표현은 근심이나 걱정 따위를 동반하는 형용사이니, 적확한 심사는 아니겠다. 심란하다는 게, 되레 맞겠다. 일종의 결의를 더한다면 '비장'이라고 써도 무방하겠다. 여하튼 그를 생각하면 만사가 복잡하다. 그의 이름은 김훈(사진). 직업은 '자전거 레이서'다.

평단과 독자 모두가 당대 최고 작가로 받들어도 그는 작가로 불리길 꺼린다. 책표지 이력에도 자전거 레이서라고 적는다. 글을 쓰는 행위가 여전히 밥벌이를 위한 노동에 불과하다고 여겨서인지, 자전거 타는 일이 "몸뚱어리로 만들어낸 유일한 자랑거리"이어서인지 그는 똑 부러지게 답한 적 없다. 최근 단편집 '강산무진'(문학동네)을 내놓으면서도 그는, 별다른 설명 없이 '1948년 서울 출생. 자전거 레이서'라고 적었다.

책은 아마도 근자의 단편집 가운데 가장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할 것이다. 수록작 8편 안에는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언니의 폐경'과 재작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화장'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책은 김훈의 첫 창작집이다. 1995년 장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이후 그는 몇 권의 장편소설만 내놓았을 뿐이다. 그 안엔 물론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칼의 노래'도 있다.

앞서 우울하다고 쓴 건 이번 소설을 두고 한 말이다. 김훈은 여전히 삶과 죽음의 문제, 그의 말마따나 생로병사의 화두를 붙들고 있다. '언니의 폐경'은 제목처럼 폐경기를 맞은 50대 중년여성의 일상을 복원하듯이 재현했고 '화장'은 아내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야기다. 그리고 표제작 '강산무진'엔 암 선고를 받은 중년남성이 등장한다. 책을 관통하는 색깔이 있다면, 아마도 잿빛일 것이다.

소설에 따르면, 우리네 삶은 한심하다 못해 파렴치하다.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 따위는 없다. 몇몇 못된 부류의 얘기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다. 하나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지극히 평균적이다. 이른바 중년을 사는 도시 중산층이다.

예컨대 '강산무진'을 보자. 번듯한 기업의 임원인 나는 어느 날 암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소설은, 아들이 사는 LA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출국준비를 하는 나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삶에 대한 회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악다구니 각오? 아니다. 그딴 건 애당초 없다.

'8월 중순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일 년치 보너스 천오백만 원을 포기하는 대신 명예퇴직 위로금 팔천사백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8월 말 회사 신체검사에서 암이 적발되면 대기발령 상태에서 연말 보너스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명예퇴직 대상자에서는 제외될 것이다.'

'출국 전에 아파트가 팔린다면 내가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칠억오천만 원쯤이었고 LA에서 주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요양시설에 입원하게 된다면 그 돈은 결국 아들의 몫이 될 것이다.'

소설을 읽고 도저한 허무의 정서를 느꼈다고 쓰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 허무라고 말하려면, 무언가를 초월했거나 적어도 빈손이어야 하는데, 소설 속 삶은 그러하지 못하다. 아니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세속도시의 삶은 고상한 것이 못된다. 김훈이 새삼 일깨워줬다.

손민호 기자 2006-04-18중앙일보

▶사족=아직도 김훈은 연필과 원고지를 고집한다. 김훈의 글은 하여 "팔목을 움직여서 쓴 글"이다. 김훈의 필체를 알고 싶으면 책 표지를 뜯어내시라. 손수 쓴 '작가의 말'이 숨어있다. 생각보다 달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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