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측면에서 한 없이 가벼워져만 가는 듯한 요즈음이고 보면, 출판이라는 분야 역시 가벼움이 미덕이 되어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면수가 많은 책, 어려운 이론을 담고 있는 책, 필자의 생각이나 삶의 깊이에 비례해서 문장에도 깊이가 있는 책. 이런 책보다는 면수가 많지 않은 책, 쉽고 재치있는 내용과 문장의 책, 또는 그냥 '도움이 되는 책'(일생에 도움이 않된다는 표현도 있으니...)이 환영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책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지금까지, 과연 가볍지 않은 책이 널리 각광받았던 시기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요컨대 쉽고, 짧고, 도움이 되는 책이야말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제 책의 무게나 내용의 측면에서 공히 중량감 있는 책을 출간하려면, 어느 정도 '박해받는 자의 심정'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박해라는 것은 단지 독자들로부터의 외면이라는 차원이 아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그러니까 공공 및 대학 도서관의 도서 구입 예산의 한 없는 가벼움과 관련 정책 당국의 무관심, 무신경, 무사안일 따위가 더욱 심각한 박해인지도 모른다.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도 필요하겠지만, 튼실한 책 또는 출판 활동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도 그에 못지 않게, 어쩌면 더욱 중요한 일이리라.

여하튼, 출판의 엄숙주의랄까 그런 것은 이미 가뭇없이 사라진 것 같다. (혼자 엄숙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엄숙주의와 가벼움이 최소한 공존할 수 있는 정도의 문화적 토양이랄까 그런 것은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무리인가? 하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엄숙 아니면 가벼움의 양자택일 또는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아니라, 엄숙과 가벼움이 '성공적으로' 제 나름의 역할을 다하는 출판계.

물론 그런 출판계의 지형도는 출판계라는 한 부문만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서점에서 부지런히 지갑을 여는 손길의 도움이 있어야함은 물론이고, 설혹 지갑을 자주 열게 하지 못하는 책이라도 그 내재 가치에 따라 '밀어주는' 제도적 장치 같은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밀어주고 싶어도 밀어줄만한 책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밀어줄만한 책이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는 현실. 그것은 엄숙을 버리고 가벼움을 택함으로써 치러야 할 비싼 대가일 것이다. 박해받는 자의 심정으로 '엄숙한'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이런 의미에서 선각자의 고독을 겪는 셈이다.

출처-http://www.kung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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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7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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