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의 '전기(傳奇)'-
초월과 환상, 서른한 편의 기이한 이야기


책소개


2006년, 흡혈귀들이 우리네 삶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를 이어 영화 ‘썬데이 서울’과 ‘흡혈형사 나도열’이 관객들의 목덜미를 노린다. 박쥐 떼 날고 여인들 비명과 함께 찾아들던 20세기 흡혈귀와 2006년 흡혈귀는 확실히 다르다. 훨씬 발랄하고 엄청 웃긴다. 속세에서 그들은 괴물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아주 조금 사람과 다를 뿐이다. 이야기는 그 ‘다름’을 부각시키며 전개된다. 때론 그 다름이 심각한 위기를 낳기도 하지만 상대를 격멸시키려는 적대적 의지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흡혈(吸血)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주목받아왔다. 청나라 사람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등장하는 흡혈귀는 발바닥을 통해 피를 빨아먹는다. 목덜미를 빠는 흡혈귀가 섹스 어필하는 배우의 과장된 손짓을 닮았다면, 발바닥을 빠는 흡혈귀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숨기려는 옆집 아저씨의 심심한 농담 같다.

중국 옛 설화집을 펴면 숱하게 들락날락거리는 여우 이야기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 하나. 처녀로 둔갑한 후 순진한 사내를 홀려 아들딸 낳고 잘 살던 여우가 어느 날 커밍 아웃을 한다. “여보! 사실 나 여우에요.” 서양에서라면 당장 그 여우를 처치하는 이야기가 전개되겠지만, 사내는 여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렇게 답한다. “뭘 그까짓 것 가지고 그래? 당신은…… 귀신도 아니잖아?” 그리고 처가 식구인 여우들까지 모두 불러 백년해로했단다.

당나라 사람 배형의 ‘전기(傳奇)’는
기이함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며칠 전 귀천(歸天)한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갈래를 창조한 것처럼, 배형 역시 기이함을 전하는 이야기 갈래 자체를 자신의 설화집 제목으로 삼았다. 협객·귀신과의 사랑, 선녀와의 연애가 이 책의 세 줄기다. 그 신이(神異)한 존재들 역시 세상을 향해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 별세계(別世界)에 살며 신출귀몰한 능력을 지녔지만 세상을 정복하거나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은 관심 밖이다. 오히려 인간보다도 더 많이 삶을 이해하고 더 자주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안타까워한다.

허면 왜 요즈음 기이한 이야기들이 사랑받는 것일까.

2006년 흡혈귀들도 서양문학의 전통 속에서 발전된 여러 가지 언행과 복식을 차용하지만, 마음 씀씀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지극히 토속적이다. 그 속에는 정(正)을 앞세워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는 주장을 의심하는 시선과 함께 개개인의 작은 자유를 훼손당하지 않으려는 바람이 맞물려 있다. 일탈(逸脫)은 하되,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홀로 상처 받기는 두려운 것이다. 2006년 뱀파이어들이 ‘다름’을 극복하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좌충우돌할 때, 어둠 속 인간들은 화면을 바라보며 배꼽을 잡은 채 웃다가 갑자기 섬뜩해진다. 유쾌한 한바탕 백일몽(白日夢)으로 돌리기엔 우리네 표정과 너무 닮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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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소설가 ) 조선일보 200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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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로 대변되는 서양신화는 솔직히 재미도 못 느씨고 흥미가 없지만 동양의 신화들은 그 이야속의 재미가 뻔하고 익숙한 교훈을 전해주면서도 소박한 재미가 있다. 올해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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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s7676 2006-02-0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책도 소박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친근하면서도 환상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