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부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대학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비록 개점휴업 상태이거나, 학내용 교양 과목 교재를 펴내는 수준에 머무르는 곳도 적지 않겠지만, 여하튼 총장을 발행인으로 하여,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라도 거의 모든 대학이 출판부를 두고 있다. 여기에서 외국(대학 출판부)의 경우를 거론하지는 않고자 한다. 말 안해도 이미 잘 알려져 있을뿐더러, 중요한 것은 "여기, 지금, 우리"의 현실일테니까.

시내 대형 서점에 가면,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도서를 각 대학별로 따로 진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각 대학 출판부의 활동 또는 수준을 한 눈에 판가름할 수 있는 기회라 하겠는데, 역시 천차만별이다. 물론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표지 디자인, 본문 편집, 교정 및 교열 상태 등에서 일반 출판사의 도서와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대학 출판부의 경우, 대학 소속 연구자들의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출간한다는 기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성이 거의 없는 전문 학술서를 내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출판부가 아니라면, 원고지 또는 파일로 연구실에서 잠자고 있을 성과를 그나마 공적으로 선보인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꾸준히 전문 학술서를 출간해 온 우리 나라 대학 출판부의 업적과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온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출판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학 출판부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건국대학교에서 세계의 주요 문학가들의 생애, 작품 세계, 작품 자체 등을 간략하게 요약, 정리하여 문고판으로 출간하는 "문학의 이해와 감상 시리즈" 같은 것은, 비록 그 내용의 수준 차이가 각 권마다 심하고, 전반적인 편집 상태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비교적 성공적인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출간하는 "이화문고" 역시 몇 해 전부터 그 면모를 일신하여, 일반 출판사에서 내는 도서와 거의 비슷한 얼굴을 갖추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의 "인문사회과학총서"도 최근 들어와 '대학 출판부에서 낸 도서같지 않은 도서'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출판부 역시,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여러 대학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신문이나 출판 관련 잡지에 광고를 내는 경우도 가끔씩 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징후 또는 시도는 아직까지 초보적인 것이어서, 본격적인 '출판 기획'이라 할 수 있는 정도에는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대학 출판부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획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대학에 포진하고 있는 연구 인력, 특히 각 대학마다 넘치는 '미취업,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기획 및 편집, 번역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학 자체의 교수 및 강사 평가에서,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저서 또는 번역서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조금은 치사한?) 방법도 고려할만 하다. 편집이나 디자인은 외부 전문 업체에 맡겨서 고정적인 인건비 부담 없이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더구나 각 대학마다 몇 명쯤은 있기 마련인, 이른바 "잘 나가는 교수님"들의 저서를 외부 출판사가 아닌 대학 출판부에서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편집과 마켓팅의 측면에서 경쟁력을 지녀야만 필자가 신뢰감을 가지고 원고를 기꺼이 맡길 수 있겠지만.

최근의 우리 나라 대학은 지식인 사회 일반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또한 전문 학술과 일반 대중을 매개하려는 노력("글쓰기"를 포함한)을 방기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결국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회로 안에서 맴돌며" 안주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러한 현실도 현재 대학 출판부의 위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실, 그렇게들 혈안이 되어 있는 "홍보"의 차원에서도 대학 출판부의 활성화는 적지 않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투입 비용과 기대되는 홍보 효과의 비율을 고려할 때, 성공적인 출판 기획으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출판부 도서를 여러 종 보유하게 되면, 언론 매체의 광고를 통한 홍보 효과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을 탐방하여 진행되는 TV 오락 프로그램에 자기 대학 학생들이 출연하여 노래와 춤 등으로 마음껏 끼를 발산하여 얻게 되는 홍보 효과 보다는 훨씬 더 지속적이지 않을까?)

대학 출판부 역시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경우가 아닐까 한다. 결국 "대학" 출판부가 아니라 대학 "출판부"라는, 발상의 전환이 무엇보다 먼저 요구된다 하겠다.

출처-kung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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