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출판 관련 단체에서 행한 독자 대상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독자들은 가장 필요한 분야의 도서로 환경 문제 관련 도서를 꼽았다고 한다. 그러나 필요하다는 인식과 지갑을 여는 손길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환경 문제 관련 도서는 여간 해서는 팔리지 않는다. 사실 환경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일이다. 개발 논리에 밀려 방치되어 있던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전반적인 사회 민주화 분위기와 함께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많은 환경 운동 단체가 결성되어, 현재 시민 운동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환경 문제 관련 도서가 팔리지 않는다는 불패의 신화는 좀처럼 깨질 줄 모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 잇슈 등을 대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태도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중요한 문제나 잇슈가 있을 경우,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과, 현실, 그리고 대안을 조리 있게 규명, 제시하는 이야기(담론이라고 그럴 듯하게 부르기도 하는)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부족한 것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과 동전의 양면으로, 이른바 냄비근성이라는 자조적인 말로도 불리는 태도, 다시 말해서 그 일 아니면 당장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열을 내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지는 태도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얼마 전에 환경 도서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과 술자리를 가졌다. 지조와 고집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분이기도 한데, 우리 나라에서 환경 도서는 더 이상 아무런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말씀하셨다. 파괴되어 가는 환경 실태를 자세히 정리, 보고하는 자료집 성격의 책은 이제 인터넷의 확산으로 자료로서의 가치를 잃었다고 한다. 요컨대 웬만한 환경 관련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입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통계 자료와 조사 보고에 기초한 자세한 현실 분석 및 그에 이어지는 대안 제시를 기본 형식으로 하는 도서에는 우리 나라 독자들이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사회과학의 시대가 가뭇없이 실종되어 버린 분위기 속에서, 사회과학적 분석을 주조로 하는 환경 도서가 살아 남을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

결국 일종의 Hard Book(Hard Science와 같은 맥락에서)으로서의 환경 도서의 자리는 없어졌고, 넓은 의미의 환경 도서,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감수성에 기반을 둔 말랑말랑한 환경 도서만이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독자의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환경 도서의 자리가 사라지고, 독자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환경 도서만 가능한 상황이다. 추세가 그렇다면 추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출판계의 입장이겠지만, 머리가 사라진 가슴만으로 환경 문제를 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척 서글픈 현실이라 하겠다. 그 서글픔 때문이었을까? 그 분과 나의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자료출처-http://www.kung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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