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본이라는 것이 있다. 무척 아름다운 말이다. 증정은 '남에게 선물이나 기념품 따위를 드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책의 경우, 그러니까 증정본의 경우는 증정의 본래 의미와는 다소 다른 것이 사실이다.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책을 드리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증정본의 대부분은 언론사 홍보용이나 저자 또는 번역자용, 아니면 단순히 인사치레 수단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책에 따라서 그리고 출판사의 영업 전략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책이든지 족히 100권 정도는 이런 저런 이유로 '증정본'(홍보용 포함)으로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한 경우 500권까지도 증정본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번역자의 입장에서 '증정본'(?)을 받아 본 경험이 몇 차례 있는데, 적으면 10권, 많으면 20권 정도를 받았다. 번역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드리기도 하고, 주위 분들 가운데 그 책을 요긴하게 여길 것 같은 분들에게 드리기도 하고, 그냥 친한 분에게 생각난 김에 드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출판사 관계자 분들과 자주 만나게 되다보니, 의외의 증정본을 받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 앞서 언급한 사항 가운데 단순한 인사치레에 해당하는 셈이다. 물론 '공짜'로 받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다. 더구나 안 그래도 꼭 사서 보리라고 마음 먹었던 책을 받게 되면 다음날까지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증정본이라는 이름(출판사에 따라서는 '증정' 또는 '드림'이라는 고무인을 속표지에 찍어서 주시는 경우도 있다.)이 갈수록 쓸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말해서, 신간을 '곱게 키워' 다른 사람에게 건네 주실 때 출판사 분들이 느낄 법한 어떤 쓸쓸함 같은 것. 물론 그것은 '공짜로 주니 속이 쓰리다'는 따위의 심정이 결코 아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그러니까 최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배본에 이르는 남다른 고민과 노력의 시간이 책을 건네는 손길 하나에 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손길은 단순히 '값 얼마'하는 책 한 권을 선의로 남에게 그냥 주는 손길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던 물건, 존재하지 않던 의미, 존재하지 않던 사건, 존재하지 않던 하나의 세계를 정중하게, 그리고 사무치는(속까지 깊이 미치어 닿다) 심정으로 타인에게 건네는 소중한 의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정 의식은 쓸쓸하다. 출판사 전용 봉투에 책을 넣어 언론사의 출판 담당 기자들에게 '돌리는' 일이거나, 책 한 권을 건네 받는 의식의 소중함을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명함 대신 '뿌리는' 일이거나, 심한 경우, 책은 공짜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는 구제불능의 사람에게 '빼앗기거나'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평소에 잘 아는 어느 출판사 대표께서는(선비 정신에 가까운 자세로 출판에 임하시는 분이다.) 교재 채택 여부를 검토하려고 하니 한 권 보내 달라는 교수들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고 한다. "서점에서 사서 보십시오. 혹시 서점에서 구하기 힘드시면 저희 계좌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입금이 확인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반응도 천차만별이어서, 순간적으로 '깨달음'에 도달하여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닷없이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일방적으로 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후자 쪽이 대부분.) 심지어 무작정 출판사로 찾아와서 '나는 당신 출판사 책의 애독자인데, 이번에 나온 책이 무척 마음에 드니 그냥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마저 없지 않다고 한다. (정신의 허기를 공짜로 달랠 요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해서 정신을 채운 들 무슨 소용일까?)

이른바 마케팅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 혹시 정말로 교재에 채택이 될 수 있다면 한 권을 '증정'하고 수십 권,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 권을 판매할 수도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 대표 분을 향해서 왜 그렇게 앞뒤가 막혔느냐고 힐난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힐난해야 할 대상은 앞서 언급한 그런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쓸쓸한 증정식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혹시 증정식에 초대받는 기회, 그러니까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공짜로' 받는 기회가 생기거든, 스님들이  식사하기 전에 외운다는 다짐의 말을 이렇게 조금 바꿔서 외울 필요가 있다. '내 한 몸과 마음 이 책 받기 부끄럽지만, 이 책으로 내 마음의 양식을 삼아 보다 많이, 보다 정확하게 알고, 보다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자료출처-http://www.kungree.com/kreye/kreye5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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