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지난해부터 방영중인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 작가 김탁환의 신작 소설. 조선 중흥기였던 정조 시대, 쟁쟁한 실학자들이 활약하는 역사 추리 소설 '백탑파 연작'의 두번째 작품이다. 이 책은 열녀 종사 폐단을 한탄한 박지원의 글 <열녀 함양박씨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여졌으며, 경직된 사고 아래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나간 소설 흥성기를 배경 삼았던 전작 『방각본 살인 사건』에 뒤이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용 학문이 퍼져 나가는 시대상을 바탕으로 했다.

<작가의 말>

탈고 후 제주 바다를 품고 왔다. 다도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겐 섬 하나 없는 수평선이 언제나 낯설고 통쾌하다. 삼 년 전 맥주 캔 홀짝거리며 넘실넘실 등장인물을 건져 올릴 때부터 유난히 느낌이 좋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동안 내 상상력이 진화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다.
‘소설로 쓰는 고전소설사’ 세 번째 성과물을 담았다. 필사본 소설, 방각본 소설에 이어 이번에는 <여와전> 연작을 중심으로 메타픽션적인 소설에 천착하였다.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들을 모아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는 방식은 현대문학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창작방법이다. 18세기 중엽부터 더욱 흥성한 고전소설의 면면을 맛보시기 바란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열녀문의 비밀』의 또 다른 축이다. <나, 황진이>에 이어,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열(烈)’이라는 관념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여주인공 김아영은 신유박해(1801년) 때 순교한 성녀(聖女)들로부터 착상을 얻었다. 유교와 천주교의 충돌을 온몸으로 체험한 여인의 내면풍경을 촘촘히 그려보고 싶었다.
‘혁신’은 백탑파 시리즈의 핵심 주제다. 『열녀문의 비밀』에서는 이야기 무대를 한양에서 경기도 적성으로 옮겨 특히 지방혁신의 문제를 다루었다. 적성현감 이덕무와 향청-질청 사이의 대결은 지금까지도 겉모습만 바뀌며 이어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행태들을 여럿 접하면서 지방혁신과 균형발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십 년 동안 네 도시를 떠돌며 열한 편의 전작소설을 썼다. 얻은 것은 소설이요 잃은 것은 전부다. 청춘도 친구도 희망도 기억도 곁에 없다. 어쩌다가, 아, 어떡하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혼자 걷고 혼자 밥 먹고 혼자 그림자 밟으며 이 소설을 썼다. 현명한 이들은 이렇게 살지 않겠지만, 나는 아직도 올바름으로 돌아오지 않는 일들을 부여잡고 곱씹는다. 편 가른다. 윽박지르며 뜯어고치려 든다. 김춘수 선생의 <밤의 시>를 읽는다. ‘집과 나무와 산과 바다와 나는 / 왜 이렇게도 약하고 가난한가.’ 모를 일이다. 구름도 산도 갓 피어난 가을국화도 자기 식대로 외롭겠지만, 그 고독을 응시하는 밤과 낮은 특별하다. ‘전부를 내주고 당신이 취한 건 과연 무엇인가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각자의 인생을 찬찬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첫마음은 얼마나 큰 욕심이었던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기적이란 역시 없다.
백탑파 시리즈를 격년으로 펴내겠다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켜 다행이다. 지리학자 이현군 선생의 도움으로 적성을 꼼꼼히 답사할 수 있었다. 감사드린다.

2005년 6월
김탁환

김탁환 홈페이지

http://www.kimtakhwan.com/ 

그의 전작인 < 방각본 살인사건 > 은 영화 제작 준비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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