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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이 시대 7인의 49가지 이야기
김용택 외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OFF 매장에서 음반이 잘 팔리던 시절엔 음반 1장당 10곡 이상이 주로 담겨 있었습니다. 곡 수가 충분하다보니 앨범 고유의 특징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음반이 대세일 땐,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혹은 베스트 앨범이라고도 해요)이 그리웠습니다.
앨범마다 고유한 음악세계도 좋지만, 음반마다 핫한 노래를 골라 담은 것도 좋았지요.
지금보다 성능 떨어지는 카셋트에 열심히 녹음했던 기억이 나네요.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그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가에 의해 씌어진 게 아닌, 여러 작가가 한 꼭지씩 맡은 컴필레이션 책이라 해야 할까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서민과 반이정이었습니다.
그 둘은 '책 쓰기'에 대해 서로 양 끝단에 있어요.
서민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책 쓰기'를 장려합니다.
우리나라 30개 대학 50명 정도의 기생충학자가 있는데, 왜 유독 자신에게만 전화가 왔을까, 며 '책'이라는 결론을 냅니다.
책을 쓰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인식될 소지가 충분하고 돈을 벌 수 있고, 생소한 분야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서요.
반이정은 말합니다.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필경 자기 한계에 부딪혀 모멸감을 느끼고 실의에 빠지곤 하는데, 그게 글쓰기의 정도라구요.
'저자 되기' 수요를 충족시키며 언급될 수 있는 '자신감'에 대해서도 날을 세웁니다.
자신감이란 휴대전화처럼 소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당사자만 은연 중 감지하는 '흐름'에 가깝다구요. 이것은 반복된 수련으로 각자 내면에 감지되는 흐름이랍니다.
텅 빈 모니터를 응시하며 '끝낼 수 있다'는 설득과 '못할지도 모른다'는 협박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끝내는 쪽'으로 결론내는 일, 그것이 그가 하는 직업의 패턴이라 말해요.
그의 얘기는, 아무나 쉽게 책 내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것처럼 여겨졌어요.
서민과 반이정의 책쓰기 분야가 서로 다름을 감안해야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저는 반이정 편에 가깝습니다.
아니, 대세 흐름과 반대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아무나 쉽게 책을 쓴다면 쓰지 않을테고 (아, 능력은 열외로 할께요) 책 내는게 어렵다면 혼자 도전해볼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에요.
작가 입장의 책쓰기와 별개로 폭 넓고 구애받지 않을 독자의 자유는 존중해야겠지만요.
컴필레이션 책인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진지하게 얘기하는 초보 정치인 송호창 씨가 좋았고, 유럽 생햄의 맛과 돼지 볼살!, 잘 숙성된 비계, 내장으로 새로운 분야를 얘기하는 박찬일 씨가 좋았고,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홍세화 씨가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5년 동안 딱 2권 읽은 컴필레이션 책 모두 홍세화 글이 들어가 있군요.
아직 덜 훼손된 인간으로 살아남았고 사회적 발언까지 하게 해준 '우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에, 예전보다 많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한 작가에 의해 씌여진 깊이 있는 책도 좋지만, 가끔 이런 컴필레이션 책을 보는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평소에 접해보지 않는 다양한 작가와 만날 수도 있고, 챕터마다 다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읽은 컴필레이션 책 제목이 <거꾸로 생각해 봐!> / (2008년 출판) 였는데, 이 책 제목은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2013년 출판) 입니다.
책 제목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처럼 느껴지는 건... 성급한 시선일까요.
사진 출처 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sectionCode=MOVIE_TUE§ionId=699
읽은 날 2013. 8. 2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홍세화 씨 편에 나온 '개똥 세 개'를 인용합니다. 곱씹어 볼만해서요.
옛날에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날 서당 선생은 나란히 앉은 삼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봤겠다.
맏형이 "저는 커서 정승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서당 선생이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라고 응수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겠다.
이어서 둘째 형이 "저는 커서 장군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당 선생이 이번에도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암, 그래야지, 사내대장부라면 큰 뜻을 품어야지." 라고 했겠다.
그리고는 막내를 향해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물었겠다.
막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지금 여기에 개똥 세 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겠다.
뜻밖의 대답에 서당 선생이 "개똥 세 개? 그건 왜?" 라고 물을 수 밖에.
막내가 대답하길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 그 입에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또 저보다 겁이 많은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 그 입에 개똥 한개를 넣어 주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 선생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외할아버지가(홍세화 씨의 외할아버지) 잠시 뜸을 들이다 나(홍세화)에게 물었다.
"애야, 막내가 뭐라고 했겠니?"
나는 주저 없이 "그거야 서당 선생 먹으라고 하지 않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건 왜 그러냐?"
외할아버지 물음에 나는 또 서슴없이 "맏형과 둘째 형의 그 엉터리 같은 소리에 맞장구치며 좋아했으니까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는 작은 떨림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넌지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마지막 세 번째 개똥은 서당 선생이 먹어야 마땅하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꼭 기억해 두어라.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세 번째 개똥이 서당 선생 몫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 때엔 네가 그 세 번째 개똥을 먹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