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제 인식흐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알고자 하면 알게 될 것이다' 에서 '알고자 해도 끝내 알 수 없다'로요. 

어떤 책이 결정적 기여를 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책은 활실히 영향을 줬습니다. 바로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 입니다. 

 

전중환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라구요.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에게 주어졌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는데, 마음의 진화 속도가 환경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왜 태어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은 어떤 존재인가 같은 심오하고 추상적인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지 않았답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상당히 공감 했습니다. 

사람이 단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오래 전 환경에서는 적응적이었다 라든가, 비효율적인 과시적 소비는 수공작의 휘황찬란한 꼬리와 같다든가, 사람들이 왜 매운 향신료를 좋아하는지....등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그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니, 사람은 텅 빈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도덕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임을 절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사건의 옳고 그름을 순식간에 판단해야만 해어요. 그러한 심리적 기제가 쌓이고 쌓여 '보편적인 도덕 성향'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진화심리학'이라고 합니다. 

 

전중환의 얘기에 공감하면 할수록 한숨이 나옵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마음이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잘 풀게끔 진화했다면, 지금 현대 산업사회의 복잡한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당대에는 분명 힘든 일이니까요. 저자의 말대로,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면 수천에서 수만 세대가 걸려야 할까요! 

 

이 책은 <과학자의 서재>에서 최재천 교수의 추천을 보고 읽은 것입니다. 최 교수의 말대로 어려운 분야를 쉽게 풀어쓴 저자의 능력이 탁월하더군요. 

또한 전중환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진화심리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학자라 합니다. 

앞으로 진화심리학자들이 심리기제 -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정말로 둘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를 연구해 밝혀낸다면, 우리 마음이 좀 더 환경에 적응적이 될지 궁금합니다. 

심리기제가 명명백백 밝혀진다해도, 마음의 작동원리란 게 간단할지......의문스럽기도 해요. 

지금도 우리는 아는 것을 왕왕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향에 안 맞을 경우 귀를 닫기도 하니 말입니다. 

 

'오래된 연장통'이란 전중환의 표현, 아주 근사합니다. 

세상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지칠 때 그 뒤에 숨어가거나 토닥토닥 스스로를 위안할 수도 있고, 

미지의 분야를 켜켜이 쌓인 먼지를 헤치며 개척하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하니 말입니다. 

비록 우리에겐 오래된 연장만 가득하다해도 잘만 활용한다면, 세상으로의 개척에 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낙관적 기대 또한 오래된 연장일테니, 믿어야 하겠지요. 

 

 

 

     

     

 

읽은 날  2013. 6. 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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