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과 제왕 - 국제 테러리즘의 역사와 실체
노암 촘스키 지음, 지소철 옮김 / 황소걸음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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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과 제왕, 노암 촘스키>

 

<라피끄>를 읽고 '도대체 왜 미국은 팔레스타인에서 이런 짓들을 벌이고 있는가'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은 <라피끄>에서 추천하는 책 중에서 그 답을 해주리라는 기대로 고르고 고른 책이다. 이 책 초판 서문에 인용된 이야기의 의미심장함으로 한층 기대감을 갖고 읽어 나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렉산더 대왕 앞에 사로잡혀 온 한 해적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 해적에게 물었다.  '넌 어찌하여 감히 바다를 어지럽히느뇨?'  그러자 그 해적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는 당신은 어찌하여 감히 온 세상을 어지럽히는 건가요? 전 그저 자그만 배 한 척으로 그 짓을 하기 때문에 도둑놈 소릴 듣는 것이고, 당신은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그 짓을 하기 때문에 제왕이라 불리는 것뿐이외다.”
그 해적의 대답은 '촌철살인'의 그것이었다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

 

노암 촘스키가 위의 인용을 빌어 얘기하고 있는 '제왕'은 미국이며, '해적'은 리비아처럼 미국의 악마 리스트에 오른 나라이다. 제왕에게 해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왕이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책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고전적 수법인 '두려움을 유발'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 해적은 만만해야 하고, 손쉽게 증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리비아처럼.

 

"리비아는 필요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카다피는 손쉬운 증오의 대상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 반아랍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고, 정치계와 말 잘하는 지식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거부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카다피는 추악하고 억압적인 사회를 창조했으며, 실제로 주로 자국민들에 대해 테러리즘을 저지른 죄가 있다.  따라서 리비아가 부각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리비아는 힘이 약하고 방어 능력도 없으므로 무력이 잘 먹히며, 필요하다면 리비아인들을 살해하는 것쯤은 무난히 해낼 수 있다."

 

즉,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골려 먹을 수 있는 해적을 골라 그 해적을 방패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자가 바로 제왕인 것이다.

 

또한 제왕은 중요한 용어들이 본래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전문적(특수한) 의미를 갖도록 적절한 형태의 뉴스픽을 고안한다. 이것은  '합의의 조작' 혹은 '역사의 공작'이라 불려지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북베트남의 침공을 미국은 이렇게 부른다. '국제법 상 무장 공격에 대항한 전면적 자기 방어', 그럴싸 하지 않은가?
"우연히 그리고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전쟁의 희생인 오폭에 의한 부수적 피해 '무고한 희생'을 보도하는 것은 용납되지만,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죽을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의식적이며 고의적으로 살해된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 계획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더 심각한 도덕적 타락이다."

 

쉽게 말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공격은 전면적 자기 방어이고 남이 하는 공격은 테러인 것이다.

 

노암 촘스키가 말하는 미국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야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1967년 이스라엘의 군사적 승리 이후 극적으로 진전되었다.  그 지역과 관련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그 이면에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그 지역의 엄청난 에너지 자원이 놓여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닌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범세계적 시스템을 조직하려는 신중하고도 정교한 계획에 착수했다.  그 계획에는 그 이전까지 프랑스, 영국과 공유했던 그 지역의 석유 자원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제거되었고, 영국도, 한 영국 외무성 관리의 처량한 애기처럼 점차 '미약한 협력자'로 전락해갔다."

 

이 책 <해적과 제왕>의 역자 지소철은 말한다.
"이제까지 소개된 촘스키의 책들에 실린 내용이 거의 모두 이 한권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촘스키의 글쓰기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또 원서는 미국의 지식인을 독자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한 쉬운 말로 옮기고자 했고…"

 

그러나, 난 이 책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제왕이 원하는 형태의 뉴스픽, 합의의 조작, 역사의 공작 이야기가 무한 반복 됐고 내가 알고자 한 미국과 팔레스타인 이야기는 너무 간단했으며, 문장은 쉬 읽혀지지 않았다. 저자의 문제인가? 역자의 문제인가?

 

앞으로 노암 촘스키 책은 읽지 말아야지 하던 차에, 그의 이력을 알게 됐다.

 

"요즘 들어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국내 언론(주로 신문)에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촘스키는 '살아 있는 전설'이기 때문이다. 변형생성문법을 창안해낸 그는 현대 언어학의 태두로 통한다. '사회학에서 마르크스가 또 인류학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촘스키는 언어학에서 차지하고 있다.'(기 소르망). 여기에 촘스키는 생존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이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통틀어서도 여덟 번재로 많이 인용된다."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 최성일>

 

음음음.... 이렇게 유명한 분이셨군. 내가 문제인가? 그들 혹은 그의 문제인가?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 노암 촘스키가 말한다.

"지금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위험성이 훨씬 더 커졌다는 점이다.  전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상이 현재의 경향이 지속될 경우 일어날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 전망의 일부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야 할 이유는 없다.  희소식은 현재의 권력 시스템이 무너지기 쉽다는 점이며, 그들도 그 점을 알고 있다.  현재 조성된 기회의 창을 악용해 잔인하고도 퇴행적인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고, 전례 없이 특별하고도 매우 고무적인 모습으로 세계 전역에서 일고 있는 대규모 대중운동들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시도들에 굴복한 이유는 없다.  아니, 모든 이유들로 볼 때 그러지 말아야 한다.  많은 선택과 대안들이 가능하다.  항상 그렇듯이, 필요한 것은 그런 선택과 대안들을 추구하려는 의지와 헌신이다."

 

옳은 말이지만, 독서에 지친 나는 그저 한숨 내쉰다.

그래도 '노암 촘스키'의 책을 처음 읽어보지 않았는가!

애써 달랜다.

 

 

읽은 날   2011. 7. 1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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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끄 : 팔레스타인과 나 - 물고기 학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엮음 / 메이데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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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끄,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야기는 뭘까?'란 궁금증은 2여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늘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지 못하고 허둥대다 다음을 기약하곤 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해 모처럼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책 <라피끄>는 2003년 개인들이 모여 만든 '팔레스타인평화연대'란 단체가 인티파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反)이스라엘 저항운동) 를 기념해 출간한 책이다. 국내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이 경험하고 느낀 점을 쉽게 정리한 팔레스타인 입문서로 '테러리스트’로만 비추어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온갖 그릇된 이해와 편견을 바로 잡고,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제안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한국은 아시아의 양 끝자락에 있으면서 인류 역사의 한 가운데서 비슷한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서가 있음에도, 한국인은 팔레스타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기조차 하다. 우리에게 부족한 그들에 대한 이해와 편견은 무엇일까?  내가 들은 바람결에 실어오는 소리는 '이스라엘은 원래 그들의 약속된 땅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 곳 정착민(팔레스타인인)들이 이를 방해한다' 였다. 정말...일까?

 

시오니즘 운동은 여러 가지 유대인 운동 가운데 하나이다.  시온Zion은 성경적 의미로 예루살렘을 말하며, 유대인 사이에는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적 열망의 표현이다.  그 시오니즘 운동이 종교를 넘어 어떻게 변질됐는지, 한번 따라가 보자. 

 

"오스만 투르크는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을 잡고 영국, 프랑스 등과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 과정에서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전쟁에서 자국을 지원하면 전쟁이 끝난 뒤에 중동 지역에 아랍인이 통치하는 국가를 세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이 1915~1916년 사이에 영국 정부와 당시 아랍의 큰 가문 가운데 하나였던 후세인 가문 사이에 주고받은 <후세인 – 백마흔 편지>에 담긴 내용입니다.
한편 1916년 영국은 프랑스와 ‘사이크스 – 피코 협정’이라는 비밀 협정을 맺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 지역을 프랑스가 지금의 터키 남부, 이라크 북부, 레바논, 시리아 지역 등을 차지하고 영국이 지금의 요르단과 이라크 중남부 지역 등을 차지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러시아와 다른 동맹국들과의 협의에 따라 관리하는 국제관리지역으로 만들기로 합니다.  이 비밀협정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러시아 혁명 정부가 내용을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시오니스트들은 아랍인 지주들에게 높은 가격을 주면서 땅을 사들였고, 이것은 아랍인 소작농들에게는 땅을 빼앗긴다는 의미였습니다.  1936년 5월에 총파업을 선언하고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자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들에게 계엄령을 선포하고 탄압하기 시작하고,  그 동안 유대인들은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이라는 동정적인 여론과 시오니스트 조직들의 강력한 로비를 받은 미국 의회, 1947년에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겨 버립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는 팔레스타인을 반할하는 안이었습니다.  유엔이 유대인 국가에게 할당한 땅이 전체 팔레스타인의 약 56%인데 당시 유대인이 소유하고 있던 땅은 약 6%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전체 인구의 68%를 차지하고 토지의 87%가량을 소유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에게는 팔레스타인 땅의 42%가 주어졌습니다.  게다가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감귤 농사 등 농작무 생산에 적합한 땅의 많은 부분이 유대인 국가에게 주어지고, 산과 언덕 지역의 많은 부분이 아랍 국가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엔 결의안은 팔레스타인들에게 강요되었고, 미국과 유엔의 공개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시오니스트들은 1947년 말부터 이스라엘 건국을 향한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만들어집니다.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는 1948년 5월 15일 하루 전인 5월 14일.  시오니스트들은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5월 15일 미국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곧바로 승인하고,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첫 아랍 – 이스라엘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후 미국은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재원을 보다 강화해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고, 1982년에는 수십 반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활하고 있는 레바논을 침공하는 등 일방적인 상황을 전개해 가고 있다.  이에 팔레스타인에서는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하마스가 집권한다.  하마스가 집권을 하자 미국, 이스라엘, 유럽연합, 파타 등은 하마스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경제.정치.외교 분야에서 공세를 펼치고 2006년 6월부터는 무력 공격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미국, 이스라엘, EU, 파타 등은 하마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가자지구 봉쇄를 강화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의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종교적 의미에서 시오니즘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조차 하지 않는다. '박애'는 분명 그들 교리 중 하나일텐데 그들의 종교적 이상을 위하고자 무고한 수많은 사람이 왜 희생을 당해야 하는걸까? 그런 종교적 이상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스라엘이 건설한 720km의 고립장벽 -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들을 모두 추방할 수 없다면 남아 있는 이들을 감옥 속에 가둬 놓고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건설 - 200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가 국제법 위반이라 하고, 유엔 총회 또한 장벽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나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장벽 건설을 계속 강행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들의 삶을 옥죄는 주요한 무기인 검문소 - 1시간이 걸릴지, 5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기 없어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그 전날이나 새벽부터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상상해 보라,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 검문소가 있는데 그 검문소의 시간은 검문자 마음대로인 것을.
누가 어떤 권리로 그들 삶을 옥죄고 난도질하는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은 말한다. 팔레스타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우리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도대체 왜, 왜, 왜, 미국은 팔레스타인에서 이런 짓들을 벌이고 있는가!

시오니스트들의 주장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새로 생긴 궁금증에 답해 줄 책을 찾아 책여행을 출발한다.

 

 

http://pal.jinbo.net/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읽은 날   2011. 7.  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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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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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이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서 저자의 이력과 제목이 주는 느낌에 끌려 읽게 됐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 북부 오바예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사 정권하에서 반독재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다 수감되었고, 결국 당시 많은 칠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오로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피노체트의 나라에서 도망쳐야 했다. 수년 동안 그는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유네스코 기자 등으로 활동했고, 1980년 독일로 이주했다.
1989년 세풀베다는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치는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출간과 동시에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하는 추리 소설적 기법과 <양키>로 대표되는, 자연과 삶을 파괴하는 세력들에 대한 적대감 등도 이후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며,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노인은 소설을 읽는다. 그것도 연애 소설을. 어떤 사연이 있을까?
아마존 밀림 인디오족인 수아르 족과 헤어져 이제 노인이 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이제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자신의 보금자리인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읽는다. 여러 분야의 책읽기를 시도했지만, 연애소설만큼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그는 책장이 닳도록 천천히 읽고 또 읽으면서 무료하고 적막한 나날을 보낸다.     

 

한 때 노인은 용맹한 수라르 족 인디오들의 절친이었다. 수라르 족 인디오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냥을 하지 않으면 뭘 하는데?"
"일을 하지.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말이야."
"저런 바보들 같으니라고. 다들 왜 그렇게 멍청하지?"

 

자연과 혼연일체인 수라르 족만의 문화 중 인상 깊은 것은 다음이었다.

 

"또한 그(안토니오)는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결정한 부락의 노인들을 위해 베푸는 고결한 의식에도 참여했다. 그들은 임종을 앞둔 노인이 치차 즙과 나테마 즙을 마시고 그 효과로 이미 예정된 내세의 문을 통과하는 동안 스르르 잠이 들면 그 육신을 부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서 온몸에 달콤한 종려나무 꿀을 바르고, 그다음 날 죽은 자로 하여금 저 세상에서 현명한 나비나 물고기나 동물로 다시 환생하길 축원하는 어넨트를 읊조리면서 밤사이에 개미들에 의해 완전하게 육탈이 된 하얀 분골을 수습했다."

 

그들의 형제이자 친한 친구였던 안토니오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들은 그(안토니오)가 백인인 노다지꾼에게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준 다음 독화살로 끝장냈더라면 죽은 백인의 얼굴에 그 용기가 남아 누시뇨가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지만 총을 맞았기에 백인의 얼굴이 놀라움과 고통에 일그러져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누시뇨의 영혼은 눈이 먼 앵무새로 날아다니다 나뭇가지에 부딪히거나 잠이 든 보아뱀의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어서 그들의 사냥을 방해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과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렵혔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친구 누시뇨에게 영원한 불행을 가져다주고 말았던 것이다.
수아르 족 인디오들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카누를 밀어 준 뒤, 그의 모습이 멀리 사라지자 발자국을 지웠다."

 

어느 날 양키(외지인이자 밀렵꾼, 환경 파괴자)에게 친구 누시뇨가 급습을 당한다. 안토니오는 수라르 족 방식대로 독화살로 보복을 했어야 했는데, 잘못 하여 총으로 그를 사살하게 된다.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럽힌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수아르족 인디오들은 먹을 것과 카누를 내주면서 앞으로 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없고, 그들의 부락에 들르는 것은 가능해도 그곳에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금발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한가롭기만 한 마을이 두려움으로 술렁거리고, 세상사를 멀리한 채 연애 소설을 읽던 노인의 평화가 위협을 받는다. 밀렵꾼인 양키에게 새끼들과 수놈을 잃은 암살쾡이가 그 보복으로 인간 사냥에 나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피할 수 없는 한판. 그 중심에 노인(안토니오)와 암살쾡이가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는 황새치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에 비해 안토니오의 싸움은 본질적인 삶의 근원 - 밀림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이란 그 자체일 뿐이라는 수아르 족의 말처럼 - 을 찾아 나선 행위이다.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방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고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죽음을 스스로 택한 암살쾡이, 아마도 그건 살해 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가 아닐런지. 살해당했다지만, 죽음의 길을 알고 물러서지 않은 채 한판 싸움을 벌였을 '치코 멘데스'
그에게 헌정한 이 소설은 많은 이를 '공감'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라울 줄리아란 미국배우가 주연한 <버닝 씨즌>, 치코 멘데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읽은 날  2011. 11. 2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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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 개정판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 한문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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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체중감소는 작년 근심거리 중 하나였다. 고3 때 최고 몸무게를 찍고 근 20여년 동안 가랑비에 옷 적듯 빠져왔다.  아이 1명 낳고 빠지고 또 1명 낳고 빠지고...작년 한해 동안  간만에 보는 이들 모두 '살은 빠졌는데 얼굴은 좋아졌네' 란 말을 했다. 49,48,47 급기야 작년 건강검진 때 46 숫자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내년에 45숫자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왜 자꾸 살이 빠질까? 먹는 건 예전과 같고 활동량은 되려 줄었는데 그 이유가....뭘까?
집안 내력으로 살이 잘 안 찐다. 당연히 여성에겐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 낳을 때마다 허리가 안 좋아졌다. 자세도 나쁘다. 몇년 전부터 애들 방 침대에서는 긴 시간 잠을 못 잔다. 최근 허리가 아파 세안을 길게 못한다. 점점 이건 아니다 싶어졌다.

 

며칠 전, 고종사촌 언니가 말했다.
"여자는 45세 이전에 몸을 만들어 놔야 해. 아이들은 나보다 더 크지, 말은 점점 안 듣지, 체력 안 되지, 오후만 되면 힘들어 움직이지도 못한다니까! 돈 버는 건 모두 약값으로 갈 지경이야"

 

작년에 읽은 이 책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이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를 하다가 임상경험과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여성 질병의 원인이 사회적 조건, 환경 등이라는 데 있으며 질병으로서의 치료가 결코 완전한 치유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Women to Women'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여성건강관리센터를 설립했다.  

 

사촌언니가 말한 45세는 그녀 주위의 경험담이다. 왜 45세일까?
그건 폐경기와 관련있는 나이였다. 폐경연령은 현재 약 52세 정도이며, 보통 45 ~ 55세까지라 한다. 30대가 되면 난소의 일부가 작아지기 시작하고, 평균 마흔 다섯 살이 지나면 더욱 빠르게 그 부피가 줄어 들며 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 이 때 부신은 서서히 난소로부터 호르몬 생성하는 일을 넘겨받는데, 이 작업이 원활하려면 부신의 힘과 영양상태가 양호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감정적.영양적인 고갈상태에서 폐경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것은 부신이 기능을 수행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한다. 특히 감정적인 부분 중 폐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나 심리적 스트레스(경제적, 사회적)는 폐경기 증상을 악화시킨다.

 

으례히 폐경하면 어쩔 수 없이 치뤄야 하는 홍역이라 생각했는데, 건강한 마음과 몸이라면 그리 걱정할 단어가 아닌가 보다. 그래도 폐경은 상당히 거리감 있는 단어인데, 최근 내 몸의 징후는 '이건 아니다' 신호를 강력히 보내고 있다. 몸의 징후는 영혼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겉으로 드러낸 표현이자, 내 증상들이 삶의 어떤 부분들에 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내면의 인도자로부터 온 메시지이다.  저자의 얘기를 보자.

 

"캐롤린 미씨와 모나 리자 슐츠의 연구에 따르면, 분노에서 비롯되는 감정은 허리 아랫부분에 타격을 가한다.  반면에 마음껏 표출되지 못한 슬픔은 허리 윗부분에 질병을 일으킨다고 한다."

 

"허리 아랫부분 중 자궁은 여성의 내면세계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꿈과 자아를 상징한다. 이제 여성들도 전통적인 남성사회에서의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자신의 가정이나 개인적인 삶에서 감정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만난 자궁내막증을 가진 여성들 중에는 자기 자신을 무자비하게 외부세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다시 보며 최근 내 몸의 징후를 생각해봤다. 체중, 허리...그리고 항상 날이 선 감정상태까지.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짜증이 많이 난다지만, 그건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해 들어 매일 108배 한다는 이웃블로거의 글까지...
서서히 의식하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말해서 면역체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스트레스를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믿음이 원인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한 믿음은 지적 능력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오래 전 우리 몸의 세포에 묻혀버린 기억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매일 다시 만들어지며 우리는 7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과거의 기억이 몸에 고착되어 있다는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세포를 만드는 우리의 의식이 과거에 고착되어 과거를 탈피하지 못하고 과거와 똑 같은 패턴의 세포를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난 주, 운동할 방법을 궁리해 봤었다. 평일 헬스클럽? 주말 운동? 애들 재우고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
그리고 오늘 하루, 바쁜 틈틈히 생각한 것이 싹을 피웠다.
"애들아, 엄마가 오늘부터 매일 운동을 하기로 했어!"
아이들과 간만에 일찍 들어온 남편과 함께 스트레칭을 했다. 아이들은 신났다. 구멍이 송송 났을 것 같은 뼈임에도 엄마아빠는 뻣뻣하고 당췌 구부러지지 않는 걸 보며 깔깔대고, 힘을 격하게 쓰느라 시뻘개진 얼굴 보며 뒹구르고.  한심해서 웃고 웃겨서 웃고 웃으니까 웃고 재미, 있었다.

 

"브라이언 스위미의 주장에 따르면, 운동을 한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기억을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의 몸은 나무와 숲에서 살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지능, 감정, 영적 능력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걷고 오르고 뛰어야 한다.  우리는 운동을 체중감량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운동은 몸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얽혀 있는 힘을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몸의 변화를 노화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노화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제지방체중의 감소, 체지방의 증가는 요즘 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한편 그러한 변화는 결코 당연한 것일 수 없기도 하다.  그것은 나이를 먹으면 약해진다는 고정관념과 운동부족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보듯이 꾸둔히 운동한 60세 노인이 20대 청년보다 훨씬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하고자 하는 여성이라면, 언제든 내면의 영혼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주의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내적 성찰과 묵상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자유와 기쁨을 얻기 위한 도약이다.  왜냐하면 치유가 가능한 유일한 시간이 바로 ‘현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느낌을 소중히 하자.  많은 질병이 억압된 감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밑줄 쫙, 몇 가지!

 

"우리는 항상 명랑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도록 배웠다.  그렇게 느끼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은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며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슬픔이나 고통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가야만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크다."

 

"난소는 폐경이 지나서도,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기력과 리비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라디올을 생성해낼 수 있다."

 

"정제된 설탕과 정제된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물을 과잉섭취하면 질에 기생하는 효모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

 

"여성들에게 폐경기는 전환점의 시기이다.  인간관계나 일, 우리가 거쳐온 상황들은 계속 유지하면서 살 수도 있고, 우리 몸이 요구하는 발전적인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과감히 몸이 요구하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제2의 청춘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폐경기는 인생을 통해 쌓아온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상실감에 대해서 충분히 슬퍼하고, 끝마치지 못한 대학의 졸업장을 받고 싶어하고, 또 다른 아이 혹은 첫아이를 갈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창고에 들어갔다가 분류하고 추려내야할 물건들의 박스더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과도 같다.  만일 여성들이 끝내지 못한 감정의 문제들을 기꺼이 해결하고자 한다면 폐경기 증상을 훨씬 덜 느끼게 될 것이다."

 

건강한 폐경기를 위한 부신 회복 프로그램
- 사고력과 감정의 힘으로 배터리를 충전시켜라
-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
- 애정을 받아들여라
- 영양을 고려하라
- 호르몬 요법
- 운동을 하라

 

"한 연구에 따르면 가공음식을 주로 섭취할 경우 아동기 말이나 청소년기 초에 인슐린 감수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는 육체적인 활동이 저하되는 30대나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잔소리를 하고 싶지만 그것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러한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자신의 건강에 이롭다."

 

"지구의 지력이 줄어들고 있다. 먹여 살려야 할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노화를 대비하려면 마그네슘, 붕소, 비타민D, 비타민C, 미량의 미네랄 등 음식 이외에서도 섭취해야 한다."

  


읽은 날  2011. 2. 1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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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인도 방랑, 후지와라 신야>

 

얼마 전 TV 예능프로에서 봤다. 사진기사까지 대동한 신혼여행에서 그들만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만 6천장이라는, 어느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닌 그들의 에피소드를 듣노라면 상당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그리 사진을 많이 찍을까? 아니, 비단 그들만의 얘기만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찍는다. 

 

"우리는 카메라의 심부름꾼이 되었다...카메라는 내 경험을 보존하고 다시 생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장난감과 비슷한 도구가 되었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사진의 순기능,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극단인 경우 단점도 있다. 경험을 보존하고 다시 꺼내어 추억하는 도구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도구, 치장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 말이다.
어떤 여행기를 보노라면 여행을 통해 느꼈었어야 할 무언가가 사진으로 채워진 느낌을 받곤 한다. 온전한 경험이 필요한 순간, 카메라가 경험의 순간을 대신해 느낀다.

 

얼마 전, 한국민속촌에 갔을 때 일이다. 제기차기, 그네타기 등 각종체험과 국악비보이, 마상무예 등 볼거리 중에서 아이들이 최고로 뽑은 것은 '고구마 먹기'였다. 생뚱맞았다. 하필 고구마 먹기라니! (블로그에 고구마 먹기를 제일로 쓸 지도 모르는데, 이런 사진이 없네!)
아마도 이런 느낌 때문이지 않았을까? 호일에서 갓 구운 뜨끈뜨끈한 군고구마. 생각보다 너무 뜨거운 고구마 껍질을 벗기질 못해 엄마는 연신 '앗, 뜨거 뜨거'를 연발하고 언제나처럼 아빠가 껍질을 벗겨주고. 차가운 강바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와 종이컵에 얄밉게 채워진 코코아를 같이 먹으며 생각보다 맛있네의 느낌. 맛있네~ 하니 응~ 맛있지? 되받아주는 가족.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먹는 오붓함. 바로 이것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정감있게 서로 쳐다보며 먹는 그 순간, 기록한답시고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 순간을 최고로 쳤을까?
후지라와 신야의 <인도방랑>에도 사진은 있다. 그러나 그의 여행기는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진정한 경험의 순간이 기록되어진 인도여행의 고전이자 바이블이다. 

 

"책은 머리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운율상 맞는 문장이 독서를 추켜세운다. <여행자의 독서, 이희인>에서 봤을 때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였다. 그러나 이 책 <인도방랑>을 보면 독서와 여행이 거의 동격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눈, 코, 입, 귀, 피부 이 모든 것을 통해 마음과 몸에 새겨진 여행은 머리로 하는 여행과 비교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런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찰나와 같은 순간일지라도 진정한 '나'와 만나고, 타인에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지만 분명 있는 그만의 깨달음, 세계...일상에서 느낄 수 있지만 여행에서 보다 더 많은 기회가 오는....그러한 것이 아닐까?
신야가 느낀 그만의 깨달음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꼽아본다.

 

"여행은…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랄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가득하고, 결국 그것은 기묘한 무엇이다."

 

너무 짧은가? 좀 더 긴 문장으로 음미해보자.

 

"나는 ‘여행’을 계속했다…다분히 어리석은 여행이었다. 때로 그것은 우스꽝스런 발걸음이기도 했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실實’을 ‘베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그에게 '긴 잠의 끝'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물한 여행....부럽다. 그런 여유가 있어도 하기 힘든데, 지금은 말하면 뭣하리.
내게 여행은 4인 가족이 함께 떠나고 느끼는 것이다. 다양한 장소, 볼거리, 할거리, 먹을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같이 가고 보고 하고 먹고 느끼며 나누는 공감이 중요하다. 여러 곳을 가고 보고 먹으면서 나중에 엄마아빠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고 내밀어야 하는 증거가 아니다. 같이 고구마를 먹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결을 쌓아가는 것, 진정 여행이다.

 

후지와라 신야가 1969~1972년까지 3년간의 여행기록을 담고 있는 이 책, 꽤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혀지는 이유, 분명 있다.  그가 전하는 비참, 신랄, 신성, 어리석음, 우스꽝, 기묘한 무엇...결국 이 모든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런지.
끝으로 기묘한 무엇 중에서도 웃음을 주는 그의 글을 전한다.

 

"사두(성자) – 예로부터 있어온 이 정체 모를 사람들은 적어도 10만 명 이상 지금도 인도 아대륙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왜 어슬렁거리고 있는가. 왜 이런 정체 모를 사람들이 있는가. 그것은…이야기가 너무 복잡해 나도 잘 모르겠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혼자 알아서 연구하면 될 거라 생각한다.
또한 연구 결과, 왜 이런 정체 모를 사람이 있는지 알아냈다고 해도, 그것은 살아가는 데 별 보탬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읽은 날   2011. 10.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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