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인도 방랑, 후지와라 신야>

 

얼마 전 TV 예능프로에서 봤다. 사진기사까지 대동한 신혼여행에서 그들만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만 6천장이라는, 어느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닌 그들의 에피소드를 듣노라면 상당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그리 사진을 많이 찍을까? 아니, 비단 그들만의 얘기만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찍는다. 

 

"우리는 카메라의 심부름꾼이 되었다...카메라는 내 경험을 보존하고 다시 생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장난감과 비슷한 도구가 되었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사진의 순기능,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극단인 경우 단점도 있다. 경험을 보존하고 다시 꺼내어 추억하는 도구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도구, 치장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 말이다.
어떤 여행기를 보노라면 여행을 통해 느꼈었어야 할 무언가가 사진으로 채워진 느낌을 받곤 한다. 온전한 경험이 필요한 순간, 카메라가 경험의 순간을 대신해 느낀다.

 

얼마 전, 한국민속촌에 갔을 때 일이다. 제기차기, 그네타기 등 각종체험과 국악비보이, 마상무예 등 볼거리 중에서 아이들이 최고로 뽑은 것은 '고구마 먹기'였다. 생뚱맞았다. 하필 고구마 먹기라니! (블로그에 고구마 먹기를 제일로 쓸 지도 모르는데, 이런 사진이 없네!)
아마도 이런 느낌 때문이지 않았을까? 호일에서 갓 구운 뜨끈뜨끈한 군고구마. 생각보다 너무 뜨거운 고구마 껍질을 벗기질 못해 엄마는 연신 '앗, 뜨거 뜨거'를 연발하고 언제나처럼 아빠가 껍질을 벗겨주고. 차가운 강바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와 종이컵에 얄밉게 채워진 코코아를 같이 먹으며 생각보다 맛있네의 느낌. 맛있네~ 하니 응~ 맛있지? 되받아주는 가족.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먹는 오붓함. 바로 이것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정감있게 서로 쳐다보며 먹는 그 순간, 기록한답시고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 순간을 최고로 쳤을까?
후지라와 신야의 <인도방랑>에도 사진은 있다. 그러나 그의 여행기는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진정한 경험의 순간이 기록되어진 인도여행의 고전이자 바이블이다. 

 

"책은 머리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운율상 맞는 문장이 독서를 추켜세운다. <여행자의 독서, 이희인>에서 봤을 때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였다. 그러나 이 책 <인도방랑>을 보면 독서와 여행이 거의 동격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눈, 코, 입, 귀, 피부 이 모든 것을 통해 마음과 몸에 새겨진 여행은 머리로 하는 여행과 비교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런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찰나와 같은 순간일지라도 진정한 '나'와 만나고, 타인에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지만 분명 있는 그만의 깨달음, 세계...일상에서 느낄 수 있지만 여행에서 보다 더 많은 기회가 오는....그러한 것이 아닐까?
신야가 느낀 그만의 깨달음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꼽아본다.

 

"여행은…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랄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가득하고, 결국 그것은 기묘한 무엇이다."

 

너무 짧은가? 좀 더 긴 문장으로 음미해보자.

 

"나는 ‘여행’을 계속했다…다분히 어리석은 여행이었다. 때로 그것은 우스꽝스런 발걸음이기도 했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실實’을 ‘베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그에게 '긴 잠의 끝'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물한 여행....부럽다. 그런 여유가 있어도 하기 힘든데, 지금은 말하면 뭣하리.
내게 여행은 4인 가족이 함께 떠나고 느끼는 것이다. 다양한 장소, 볼거리, 할거리, 먹을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같이 가고 보고 하고 먹고 느끼며 나누는 공감이 중요하다. 여러 곳을 가고 보고 먹으면서 나중에 엄마아빠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고 내밀어야 하는 증거가 아니다. 같이 고구마를 먹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결을 쌓아가는 것, 진정 여행이다.

 

후지와라 신야가 1969~1972년까지 3년간의 여행기록을 담고 있는 이 책, 꽤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혀지는 이유, 분명 있다.  그가 전하는 비참, 신랄, 신성, 어리석음, 우스꽝, 기묘한 무엇...결국 이 모든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런지.
끝으로 기묘한 무엇 중에서도 웃음을 주는 그의 글을 전한다.

 

"사두(성자) – 예로부터 있어온 이 정체 모를 사람들은 적어도 10만 명 이상 지금도 인도 아대륙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왜 어슬렁거리고 있는가. 왜 이런 정체 모를 사람들이 있는가. 그것은…이야기가 너무 복잡해 나도 잘 모르겠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혼자 알아서 연구하면 될 거라 생각한다.
또한 연구 결과, 왜 이런 정체 모를 사람이 있는지 알아냈다고 해도, 그것은 살아가는 데 별 보탬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읽은 날   2011. 10.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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