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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로지코믹스>
'1+1=2' 를 증명하는데 362쪽이 걸린 책이 있다. 그 책을 누가 썼는지 궁금할까?
'1+1=2' 를 증명하는 362쪽이 포함된 그 책은 2천여 페이지라 한다. 그런 책을 누가 읽을지 궁금할까?
아! 난 전혀 궁금하지 않다. 왜 그런 일을 하며,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하나!
99.999999%의 사람들이 그러함을 이 책의 저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여, 어디서도 보기 힘든 창작물의 형태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독자를 끌어 당기고 심지어 매,혹. 시킨다.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만 읽었는데, 이 책이 아니었다면 러셀은 '유명한 수학자' 한 문장으로 기억됐으리라.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지성'이라 불리우는 버트런드 러셀을 말이다. 그는 수학, 논리학, 철학 외 다양한 분야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했고, 1970년 1월말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며칠 후 숨질만큼 사회의 비합리성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 서양의 신좌파운동의 우상이기도 한 러셀, 그러나 그의 인생만큼 '러셀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가 쓴 <런던통신 1931 1935>는 인문학 입문서로 손색 없다 하고, 한비야가 소개한 <행복의 정복>도 있고, 1945년 <서양철학사> 또한 베스트셀러에 오를만큼 유명세를 탔다는데, 러셀 스스로 말하는 '러셀의 역설'이란!
그 역설의 최대 피해자는 안타깝게도 그의 자식들이었다.
개인의 성찰, 사회의 성찰, 합리성과 논리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건만 그의 아들, 손녀는 정신분열증과 자살로 얼룩져 있으니 이보다 더학 역설이 어디 있으랴.
이해를 돕기 위해 '러셀의 역설'에 대한 개념을 소개한다.
"'시민 여러분,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사실 참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또 만일 그가 참말을 하고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고요. 무언가가 자기를 언급하면 역설이 일어나기 쉬워요." - <로지코믹스> 중
다시 러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느 날 그는 광기와 불확실성 바깥에 절대적인 이성과 확실성의 세계가 있으리라 희망한다. '수학'이 바로 그런 세계임을 발견하고 수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앎을 얻겠다며 인생의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왜 그런 목표를 세웠을까....?
거대한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만 수학은 증명되지 않은 전제들과 순환적인 정의들이 널려 있는 난장판이었는데, 이는 마치 인도 신화에 나오는 우주와 비슷한 것이었다.

비록 수학이 코끼리를 등에 지고 가는 거북이와 같을지라도, '논리학'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기로 결정하고 화이트헤드교수와 함께 '1+1=2' 증명에 362쪽이 걸린 2천페이지 <수학원리>를 출간한다. 근 30년 동안 무지막지하게 난해하고 기호로 가득 찬 2천페이지를 빠.짐없이 읽은 독자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쿠르트 괴델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열정은 러셀 못지 않아 오로지 수학공리를 밝히기 위해 세계대전 한 가운데에 뛰어드는데, 죽음을 대면하고서야 그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세계의 의미는 세계 속에 있지 않다!" - 진정 중요한 것들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
즉, 정말 중요한 것 - 사랑, 우정, 감성 등 그 모든 것들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책은 언어의 한계를, 따라서 생각의 한계를 설정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모든 한계 너머에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문제. 그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전부 다 알아도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해하려면 세계 밖으로 한 걸음 나가야만 해요!"
러셀은 논리학 문제에서 인간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푸는 완벽히 논리적인 방법을 발견하겠다는 꿈을 평생에 걸쳐 꿔왔고 그것을 위해 돌진했지만, 그의 제자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은 애초 불가능한 문제라며 그의 평생 업적을 깔아뭉갰다. (물론,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누구보다 역설의 인생을 살았던 '러셀'을 내세워 이 책 <로지코믹스>를 기획하고 만든 저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그건 그렇고, 자네가 보내둔 지안-카를로 로타의 글 읽어봤네. 이상하게 논리학 창시자들 중에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흥미롭지 않았나? 대중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논리학자들은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게.
왜 유독 논리학자들이 정신병에 잘 걸릴까? 음, 내 생각엔 말일세, ‘논리를 너무 따지다가 미친 것’이라는 식의 뻔한 설명은 말이 되지 않아.
그럼 어떻게 설명할 텐가? ‘정신병 때문에 논리학자가 되었다.’?
표현을 조금만 바꾼다면 그게 더 진실에 가깝지.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그건 왜 러셀이 확실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찾고자 했는지와 닿아 있다. 가문의 정신병 내력과 유년기를 함께 할 수 없었던 그의 부모, 냉혹하고 엄격한 조모의 교육방식...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자신과 '흡사하다'고 여러번 이야기했다. 그 둘에게는 감성을 마비시키고 싶을만큼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던 유년시절이란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를(이름이 너무 어려워) 통해 러셀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전한다.
"나도 이 사람(라이프니츠)과 똑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논리학 문제에서 인간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푸는 완벽히 논리적인 방법을 발견하겠다는 꿈!
확실성의 모범인 논리학과 수학에서도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하물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하기는 정녕 불가능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내 이야기를 조심하라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로, 기존의 해결책들을 비판하는 이야기로 해석해주십시오. 내 이야기는 공식을 적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공식의 적용은 정녕 불충분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아니므로 여러분이 할 일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딜레마에 직면한 여러분을 위해 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인정합니다. 가능한 대답이지요. 그것이 내 이야기에 대한 당신의 반응입니다. 거기 숙녀분의 반응은 무엇일까요? 또 당신은? 아니면 당신은? 당신만이 대답할 수 있어요.
오로지 당신만. 당신. 그래요, 당신. 모든 남자. 모든 여자. 당신!"

읽은 날 2012. 1. 1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