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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 풍경, 김형경>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형경과 미라로부터'란 칼럼을 즐겨 읽곤 했다. 그 '형경'이 이 책의 작가임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우연히 보게 된 칼럼을 꾸준히 애독하게 만든 힘, 이 책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작가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쓴 여행기와 심리 에세이를 버무린 책이다. 심리현상에 대한 전문적인 것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것의 절묘한 결합과 작가의 여행기 그리고 자전적인 애기를 버무려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했다.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은 부정적인 심리기제는 유아기 때 엄마와의 관계 형성 때 억압되고, 거부되고, 사랑받지 못했던 경험이 트라우마를 형성해 본인의 무의식에 깊이, 본인도 모를만큼 내재되 있어 생긴 것이라 한다.
우리 모두 유아기 때 엄마 (혹은 애착관계의 상대방)와의 관계에서 좋은 경험만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기도 하고 주변 환경적 영향, 기타 여러가지 무수한 것들이 유아기 시절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곤 했다. 각자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받은 스트레스, 반복적 유형의 스트레스, 일시에 충격이 오는 갖가지 모양의 것들은 내면에 적든 많든 상처를 준다.
왜 하필 엄마인가....?
그건,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다. 유아기 때 우리는 애착관계를 필요로 하고 그 관계가 잘 형성되야만 괜찮게 성장할 수 있다. 상대방이 누구든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정서적 폐해를 겪게 된다.
애착은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모든 것(배고픔, 불편함 등)을 포함한 신뢰, 정서적 안정이다. 이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 소개한 실험에서도 알 수 있다.
"유아기의 원숭이들은 우유를 든 금속재질의 가짜 어미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스킨십과 관련된 모든 과학이 탄생했다. 수많은 장면이 촬영된 그의 섬뜩한 실험은 우리의 인생에서 근접성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중
대부분 애착관계 상대방은 '엄마'이다. 엄마와의 애착관계, 대부분 비교적 괜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알든 모르든, 인식하든 않든 억압되고 거부되고 사랑받지 못했던 경험이 각자에게 있을, 것이다.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에 대한 많고 적음은 각자의 자아상과 정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작가가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의 유년시절과 맞닥뜨린 순간 순간, 그녀가 진실한 얘기를 한다. 계속, 계속 반복된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기억하고 생각한다. 어린시절의 자신을 다독인다. 엄마를 이해, 한다. 다시 반복이다.
계속 반복되는 작가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유년시절과 맞닥뜨리게 된다.
지하 5층인지 10층인지, 100층인지도 모를 아득한 지하, 심지어 자물쇠를 걸어 열쇠도 태평양에 슝 버린 그 어느 방. 그런 방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왔음을, 이 책 <사람 풍경>을 통해 기억해 냈다. 어렵고 힘들게 그 방을 찾아...냈다. 빛도 없고 공기도 습하고 탁한, 구석지고 아주 작은, 있는 거라곤 온통 시꺼먼 암흑 속에 어린시절의 내가, 있었다.
가련하고 불쌍했다. 슬펐다. 긴 세월동안 고통도 無痛이 되버린 암흑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힘들었을까.
가녀린 어깨를 웅크리고 구석에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고 있는 나를, 가만히 본다.
다가간다.
내가 고개를 올려 나를 본다.
서로의 눈만 봤을 뿐인데, 내가 울고 나도 운다.
무릎을 세워 팔을 두르고 있는 나를, 그대로 가만히 안는다. 같이 운다.
왜 이제야 왔냐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수많은 말들은 눈물이 되어 흩어진다.
그저 눈물이 되어 흩어진다.
나도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훌륭한 책은 체험을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해 다독이고 감싸안음으로써 (갑자기 변한 나를 만나지는 못하지만) 변화의 작은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이 훌륭하게 싹을 피워 자라기를, 작가의 말이 내 말이 되기를.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을 돌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삼는 이타주의 방어기제를 포기했다. 외부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훈련을 했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내면에서 맞닥뜨리는 질투나 시기심도 있고, 계속 소설을 쓰는 행위 뒤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건강한 자기애란 바로 그 병리적 자기애를 인식하고 그것을 의식 속으로 통합하는 행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애라고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에 병이 들어올 때 몸을 보살피는 것이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햇빛 속을 오래 걷고, 슬픔이 밀려오면 한증막에 가서 땀을 빼고, 무력감이 찾아오면 야산을 뛰어오른다."
알게 모르게 시작된 집에서 하는 1시간 요가. 몸을 보살핌으로써 마음도 건강하게 됨을 느낀다. 삶을 즐긴다.
까마득한 지하에 있었던 나는 음....지금 지상에 있나, 지하 1층에 있나.
그래도 가녀린 어깨를 가진 그녀를 잊지 않고 있다.
읽은 날 2008. 11. 10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