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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허삼관 매혈기, 위화>
1960~70년의 중국 어느 마을.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 의지하던 가난한 촌부 허삼관은 허옥란을 만나 일락을 낳고 이락과 삼락을 낳으며 가정을 꾸린다.
가진 것이 몸뚱이 뿐인 허삼관은 피를 팔아 결혼을 하고,
타인의 아들로 밝혀진 일락이 벌인 일로 피를 팔아 보상금을 치르고,
유부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락의 공장장 접대를 위해, 일락을 치료하기 위해 피를 판다.
가진 거라고는 뽑으면 다시 생겨나는 피인지라 한 번에 두 사발 (400㎖ 정도의 양) 밖에 팔지 못하면서도 피의 양을 늘이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우린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물만 몇 사발 마셨을 뿐이오. 지금 또 몇 사발 마시고. 성안에 드어가서 또 몇 사발 들이켜고… 계속 마셔서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많이 마시면 몸속 피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지.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서…”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면, 피가 묽어지지 않을까요?”
“묽어지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래야 피가 많아지지 않겠나. 그리고 지금 오줌을 누면 물 몇 사발 마신 게 다 허사가 된다네. 몸의 피도 줄어들고 말거야.”
피를 판다는 것이 몸 속의 힘과 온기를 팔아 버리는 일임을 알면서도 가난한 촌부가 선택할 수 있는 매혈 외엔 없다.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이렇게 끝없는 고생 와중에 허삼관이 마지막으로 피를 팔러 가는 이야기는 못내 뭉클하다.
“제가 석 달 동안 피를 세 번 팔았거든요. 매번 두 사발씩 말입니다. 병원 사람들 말로는 사백 밀리리터라고 하대요. 그렇게 몸속의 힘을 싹 팔아버려서 몸에는 그저 온기만 남았는데, 그저께 린푸에서 두 사발을 팔고 오늘 또 두 사발을 팔았으니 온기마저도 다 팔아버린 셈이죠…”
나흘 후, 허삼관은 쑹린에 도착했다. 그때쯤 허삼관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몸이 바짝 말라 사지에 힘이 없는 데다, 머리도 어질어질해 귓가에서 웽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뼈마디도 쑤시고, 두 다리는 걸을 때마다 뼈가 없는 듯 흐느적거렸다.
“자네 오줌이나 싸보고나서 얘길 하라고. 얼굴이 누렇게 떠 가지고 말야. 말할 때조차 그렇게 헐떡거리니 그 몸으로 피를 팔겠어? 자네야말로 얼른 가서 수혈 좀 받아야겠는걸.”
허삼관은 병원 밖으로 나와 바람 한 점 없는 길가 구석에 앉아 얼굴과 온몸에 햇볕을 쬐었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얼굴이 햇볕에 충분히 그을었다고 생각한 그는 몸을 일으켜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방금 그를 내쫓았던 혈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네 피골이 상접해서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날아가겠네만, 얼굴 혈색 하나는 참 좋군. 까무잡잡한 게 말이야. 그래, 얼마나 팔려나?”
어이없는 혈두에게 두 사발의 피를 팔고, 허삼관은 쇼크로 쓰러진다. 쑹린의 병원이 허삼관에게 700㎖ 피 값에 응급실 비용까지 청구하자, 허삼관은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병원에 사백 밀리리터를 팔았고 병원에서 다시 저한테 칠백 밀리리터를 팔았잖아요. 제 피가 다시 돌아온 건 받겠지만 남의 피 삼백 밀리리터는 싫다구요. 돌려드릴 테니 가져가세요.”
인생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연명한 허삼관, 그도 이젠 아들 3형제가 번듯하게 자리 잡고 그럭 저럭 생활을 꾸리며 나이를 먹어간다. 한번도 거부할 생각조차 없었던 가장의 삶을 산 그가 이렇게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여보, 내가 늙어서 앞으로는 피를 팔 수가 없다네. 내 피는 아무도 안 산다는 거야. 앞으로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1960~70년대 중국 서민의 삶이 <허삼관 매혈기>처럼고달펐으리라. 목숨을 담보로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렸을 수많은 필부필모들... 머리가 아닌, 피가 원래 있었던 것처럼 끊임없는 가족애와 가슴으로 느끼는 가장의 직무로 그들은 피를 팔았으리라. 태어나 받은 보살핌, 가르침 등 거창한 것과 상관 없이, 대지의 아들로 딸로 태어나 그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을, 가족을 품었겠지.
어쩌면 대지(자연)의 아들과 딸인 수많은 이름 모를 그들에 의해 세상은 그나마 아름답다 (생각 될만큼) 유지되는 게 아닐까.

읽은 날 2009. 11. 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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