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김두식>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샀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법'을 생각하는 건 먼 일이
지만, <헌법의 풍경>이라면 친근한 대상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예상대로 이 책을 통해 헌법
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었다.
법학의 출발은 국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 한다. 국가는 언제
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의 정신 실현에서 법률가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대부분의 법률가들이 국가
권력의 통제를 생각하기보다 국가 권력을 누리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없이 자란다. 오랜 고시공부 끝자락, 자신이 바퀴벌레
나 파리처럼 느껴지는 싯점에 합격 소식을 듣는다. 겸손한 척 하는 법도 배우지만 자신과 주위
의 달라진 시선 속에 '나는 남과 다르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특권의식은 가랑비처럼 소리 없이
그들 삶에 젖어든다. 그 후 바로 나타나는 마담 뚜 아줌마들, 그들은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다'
며 한탄하기도 하지만, 은연 중에 '나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싹터갔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들만의 세계인 법조계의 3가지 내부논리, 재미있다.
"법조계 내부의 제1논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판검사 임용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제1논리와
함께 가는 것은 '옳은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는 제2논리구요.
'일단 부장이 될 때까지만 참아 봐. 그 다음에는 정말 자네 마음대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날
이 온다네!' 이런 충고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자녀들 사교육비로 엄청난 돈을 지출해야
하는 중년의 남성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조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쓸데없이 튀지 마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쥐꼬리만한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변호사들, 무료 상담을
자원하는 사람들도 법조계 내부의 눈으로 보면 그저 '튀려고 하는 사람들, 그렇게 떠서 국회의원
하려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저 공부를 못해서 판검사 임용을 못 받고(제1논리),그러다 보니
실력도 못갖춘 사람이(제2논리), 어떻게든 뜨려고 발버둥치는(제3논리)!"
저자, 김두식은 33회 사법시험을 합격해 검사, 교수 경력과 함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
원이다. (13년차 참여연대 회원인 나로서는 왠지 더 반갑다.)
법조계 논리로 저자 김두식은 '실력 없이 어떻게든 뜨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이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저자 역시 합격 이후 자신도 모르게 특권의식을 쌓았을텐데, 그는 어떻게 지금의 이력을 갖게 되
었을까?
다수가 젖어 살고 있는 논리를 벗어나게 한 그만의 힘은 무엇일까?
이 책에 언급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궁금하다.
이 책의 또다른 내용으로, 판단에 정답이 없기에 절차에 참여하는 주체가 진실을 만들어가야 한
다, 막강한 검찰의 권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정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다양한 얘기가
있는데, '그 중 말하지 않을 권리'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무죄 추정주의, 수사 절차상 피의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 한
다. 이는 우리나라가 근본적으로 탄핵주의를 택하고 있기에 피의자는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경찰서에서 어떤 혐의에 대한 피의자로 연락을 받게 되면, 아마 나는 준비도
없이 정신을 우주선에 태워 급 이륙을 시켜 급 추락하게 만들거 같다. 법과 권력 앞에서 나도 모
르게 위축되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한다. 영장이 없다면 그냥 입을 다물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지금까지 조사받으신 조서에 도장은 찍고 가셔야죠?' 이 말을 듣더라도 한 마디만
하면 된단다.
'싫은데요!'
우,와! 놀,랍다.
이러한 무죄 추정주의 적용도 차별이 있다. 우리가 늘상 TV에서 봤던 장면인데, 국회의원이나 장
관 등은 정장 쫙 빼입고 포토라인에 서서 도도한 자세를 취하지만, 경찰서에 잡힌 일반 피의자들
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옷으로 가리거나 등등 잔뜩 비굴하고 굴욕적인 자세로 찍힌다.
국회의원급이나 일반인이나 무죄 추정주의 원칙을 똑같이 적용받아야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
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그러려니 해왔다.
사실 그 동안 법을 권력자들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왔다. 그건 법률가들이 의식, 무의식간에 쌓
은 특권의식이 법을 권력편에 서게 한 것이다.
그들이 만든, 우리가 만들게 한 특권의식이 저자의 다양한 대안대로 차츰 무너지길 희망한다.

읽은 날 2011. 3. 2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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