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네모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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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데스몬드 모리스>

 

사람은 사람이다. 인간이다. 만물의 영장이다. 신을 닮은 존재이다....

태어나 이렇게 학습했고 주위도 이런 시각 일색이었다.

어린 시절, 온 세계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 '사람도 동물이야~'라는 말을 듣게 되면

놀라 펄쩍 뛰곤 한다. 어떻게 사람이 동물과 같을 수 있냐며 손사래를 친다. 그 후 학교를 통

한 학습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문화, 역사, 과학 속에만 존재할 뿐 46억년 지구 생물체 중 '하

나'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구를 거쳐간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가 아닌, 지금 현재 유일

한 존재 '하나'가 익숙한 개념이다. 신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 <털없는 원숭이> 는 사람이 동물임을, 46역년 지구 생물체 중 '하나'임을, 그리고 우리

또한 지구를 거쳐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임을, 그리고 언젠가 지구에서 사라질지도 모르

는 유한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건만, 이 책이 출간됐을 때(1967년) 파장은 매우 컸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털 없는 원숭이>가 판매 금지되었고, 교회는 이 책을 몰수해 불태

웠다. 인간 진화론은 조롱 거리가 되었고, 이 책은 소름 끼치는 악취미의 농담으로 여겨졌다.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종교적 선전물이 홍수처럼 나에게 밀려 들어왔다.

나는 종교적. 성적 금기를 깨뜨렸을 뿐 아니라, 인류가 선천적인 강력한 충동에 지배를 받는

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을 짐승처럼 만들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이 책의 장점은 유인원, 진화.....교과서에서나 보는 딱딱한 단어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듣기

편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 털 없는 원숭이는 곤충을 잡아먹는 원시적인 식충류에서 출발해 일부는 초식동물이 되

고 일부는 곤충 외에 먹을거리를 넓혀갔다. 유인원 단계에서 숲은 나무와 풀이 우거져 안락

고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그들에게 에덴 동산이었다.

그러나, 기후 변동으로 약 1500만년 전 숲이 크게 줄어들자 일부는 숲 속 요새를 고수하거나

일부는 숲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성공이었다. 대성공을 이끈 밑바탕에는 뛰어난 '두뇌'의 힘이 매우 컸다.

다른 종보다 이미 크고 발달한 두뇌를 가졌고, 갑자기 숲이 아닌 지상에서의 암담한 현실에 맞

닥뜨렸으나 필요는 두뇌를 더 발달시켰고.......

급기야 그는 정말로 에덴 동산을 떠났고 생물학을 벗어나 문화의 영역으로 일찌감치 들어왔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이 외에도 '가능한 한 섹시하게' 편을 통해 사람이 한 쌍의 암수관계를 강화

하기 위해 진화한 얘기를 해주고 있다. - 이 모든 것이 단지 암수관계 강화만 위한 것이라 보기

엔 거부감이 있지만 -

"입술, 귓볼, 젖꼭지, 젖가슴과 생식기처럼 분화한 신체기관에는 말초신경이 풍부하게 분포되

어 있어서 성적 자극에 극도로 민감하다. 사실 귓볼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서만 진화한 것처

럼 보인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앞으로 툭 튀어나온 통통한 코도 해부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신체기관이다. 해부학자들은 코를 '기능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군살의 일

종'이라고 불렀다."

 

이 외에도 동물과 다른 감각기관 및 신호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못 흥미롭다. 사람의 겨드랑이와

생식기에 냄새 분비샘이 집중되 있는 이유에 이르면, 누가 내 독서를 지켜보고 있을지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때로는 서사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이 책의 주제는 시종일관 동일하다.

우리는 웅대한 사상과 오만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우리도 한갖 동물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으며, 우리는 생물학적 통제를 초월해 있다는 기묘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향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흥미로운 동물들이 과거에 수없이 멸종했듯,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조만간 우리는 사라질 테고,

다른 동물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우리는 자신을 생물학적 표

본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읽은 날 2009. 7. 2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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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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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한 15 여년전쯤 공석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넷이 지금같지 않던 시절, 내가 아는 얼굴이 맞는지

집에 가서 책을 열어보고 '와우~ 맞구나',  주섬주섬 책을 챙기고, 싸인을 받을까 말까, 책을 내

밀까 말까....몇 번 봤지만, 결국 책을 내밀지 못했다.

내게 매우 드문 저자와의 추억, 그는 '성석제'이다.

 

문학 평론집 668쪽, 알랭 드 보통, 진중권....이후에 이 책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만났다.

과거의 희미한 추억과 버거운 책 읽기 후에 만나서인지 이 책의 글은 입안에 착착 감겼다. 감칠맛

으로 계속 손이 가는 주전부리였다.  우리 글이 이렇게 편안했는지, 푸근했는지 술술 읽히는 가독

성에 마음도 편해졌다.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은 글도 글이지만, 단연 눈에 띄는 '황만근' 덕분이었다.  단편으

로 구성된 이야기 중 주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계를 하는 '쾌할냇가의

명랑한 곗날'도 기억에 남지만, 뭐니 뭐니해도 '만그이'(황만근)이 제일이다.

 

만근이를 소개한다.

"황만근은 또한 책에 나오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

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

찍는 일 또한 황만근이 동네 사람 누구보다 많이 했다.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세

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 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댓가는 없거나(동네 일인 경우),  반값이거나(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하는 경우), 제값이면(경운기와 함께 하는 경우) 공치사가 따랐다."

 

동네 일, 궂은 일 모두 도맡아 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공치사.

 

"만근아,  너는 우리 동네 아이고 어데 인정없는 대처 읍내 같은 데 갔으마 진작에 굶어죽어도 죽

었다. 암만 바보라도 고마와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아나 어른이나 너한테는 다 고마운 사람인께

상 찡그리지 말고 인사 잘하고 다니라. 아이?"

 

그래도 만근이는 싱글벙글, 춤을 추듯 흥겹게 굽신 굽신 인사를 한다.

우리의 만근이는 천하에 공평무사한지라 다툼이 생기면 모두들,

"만그이한테 물어보자."

물어보나마나한 일이 생기면 모두들,

"만그이도 알 끼다."

그야말로 우리의 만근이다.

 

이런 만근이가 사라졌다. 사라진지 하루만에 동네 모든 사람이 그의 부재를 알게 됐다. 다른 동네

사람이 집을 비워도 모두가 알게 되는 게 아니지만, 우리의 만근이는 달랐다.

언제나 곁에 있어도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르다 없어져야 알게 되는 존재감, 그는 그런 존재였다.

 

 

 

이 글의 마지막, 만근이와 한때 같은 동네사람이었던 누군가가 그를 회상하며 글을 남겼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아, 만근이는 어쩌면 '깨달은 자' 였을지도 모르겠다.

아, 만근이는 어쩌면 그 깨달음을 한 번도 자랑스레 여긴 적 없는 '도인'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억 어디쯤, 흔히 있을 수도 있는 만근이.

어쩌면 우리는 많은 도인을 모른채 지나쳐 왔을지도 모르겠다.

 

읽은 날 2011. 5. 6   by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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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경제학 (개정증보판)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4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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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경제학, 스티븐 레빗>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 노력하지만, 경제.경영 분야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다시 시작한

독서생활 5년차, 연차가 많아질수록 더더욱 그래진다.

민주주의보다 우리 삶을 더 옥죄는 경제, 그 경제를 알고 이해하고 자신의 포지션을 설정하려면

먼저 '알아야' 함에도  쉽사리 '알고자'하는 마음이 안 생기는 건  아마도 경제.경영 분야가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일게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무수히 많은 표식을  '경제'로 이해하고 설명하기에  '경제'라는 그릇이

작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현실'에 발 붙이고 있으므로 '경제'를 언제까지나 나몰라라 할 순 없다.

 

<괴짜 경제학> 저자는 야심차게 말한다.  이 책이 '아주 특별한 시각'으로 쓰여졌다고.

그의 특별한(?) 시각을 보자.

첫째, 인센티브는 현대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이다. 폭력범죄에서 스포츠 부정행위, 온라인 데이

트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다.

둘째,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 통념 가운데는 잘못된 것들이 많다.

셋째, 전혀 예상치 못한 극적인 결과는 흔히 거리가 멀고 미묘한 요인을 원인으로 한다.

넷째, 범죄학자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전문가'들은 정보의 우위라는 강점

을 자기 자신의 아젠다를 위해 사용한다.

 

먼저 둘째, 셋째는 그닥 놀랍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주제면서 소개하는 사례 또한 공감하기 힘든

그네들 -미국 -의 것이다. 1990년대 치솟은 범죄율, 돈이 선거의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은 것 등

이 그 예이다.

 

그렇다면, 첫째 - 인센티브는 어떨까.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에는 '인센티브'라는 보이지 않는 초석이 있다. 저자 말대로 경제적, 사회

적, 도덕적 인센티브가  상당수의 행동을 결정하는 동인이 되곤 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언제나

인센티브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때로는 경제, 사회, 도덕적인 부분에서  마이너스 인센티브라

하더라도 결정과 실행을 하는, 감성도 지닌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를 '인센티브' 측면에서 해석한다는 건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게 아닐까!

그 동전의 한 면조차 가끔 보이는 논리 왜곡이 읽기를 방해한다.

 

"한두 건의 린치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랜 기간 고분고분한 복종을 이끌어내는 효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강력한 인센티브에 가장 잘 반응하며, 무작위적인 폭력보다 더 강력

한 인센티브는 없다. 테러리즘이 그토록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지막 넷째, 전문가가 정보의 우위를 자신의 아젠다를 위해 사용한다.

이 부분은 충분히 공감가는 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이 아는 정보를 이용해 당신에게 손해를 입힌다고 생각하는가? 불행히도,

당신 생각이 옳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아는 정보를 당신이 모른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는 족속

다."

 

<괴짜 경제학>이라지만, 무엇이 괴짜인지 모를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을 한 부분은 경제와 무관한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부모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여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 양육 책을 집어드는 그 시기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라는 점이다.  사실 중요한 것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누구와 결혼을 했으며, 어떤 삶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만일 당신이

머리가 좋고, 근면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봉급도 많고,  당신만큼이나 운이 좋은 사람과  결혼했

다면,  당신의 아이들도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고 정직, 사려 깊음, 사랑, 세상에 대

한 호기심 등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는 그

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이 책, 나름 베스트셀러다. 베스트셀러라 읽기도 하고 안 읽기도 하는 나로서는, 이 책은 안 읽었

어야 하는 책이었다.  책값을 지불했기에  의무감으로 간신히 읽었다. 베스트셀러와 내 독후감이

이렇게 괴리를 보이기도 하고,  '역시 많은 이가 공감할만한 책이야~' 하는 감탄을 하는, 그 보이

지 않는 원리는 무엇일까. 종종 궁금하다.

 

다음에는 경제라는 작은 그릇보다 여러가지를 담은 큰 그릇의 경제분야 책을 만나고 싶다.

 

 

읽은 날  2010. 8. 1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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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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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김두식>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샀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법'을 생각하는 건 먼 일이

지만, <헌법의 풍경>이라면 친근한 대상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예상대로 이 책을 통해 헌법

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었다.

 

법학의 출발은 국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 한다. 국가는 언제

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의 정신 실현에서 법률가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대부분의 법률가들이 국가

권력의 통제를 생각하기보다  국가 권력을 누리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없이 자란다.  오랜 고시공부 끝자락,  자신이 바퀴벌레

나 파리처럼 느껴지는 싯점에 합격 소식을 듣는다.  겸손한 척 하는 법도 배우지만 자신과 주위

의 달라진 시선 속에 '나는 남과 다르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특권의식은 가랑비처럼 소리 없이

그들 삶에 젖어든다. 그 후 바로 나타나는 마담 뚜 아줌마들, 그들은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다'

며 한탄하기도 하지만, 은연 중에 '나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싹터갔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들만의 세계인 법조계의 3가지 내부논리, 재미있다.

 

"법조계 내부의 제1논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판검사 임용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제1논리와

함께 가는 것은 '옳은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는 제2논리구요. 

'일단 부장이 될 때까지만 참아 봐.  그 다음에는 정말 자네 마음대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날

이 온다네!'  이런 충고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자녀들 사교육비로 엄청난 돈을 지출해야

하는 중년의 남성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조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쓸데없이 튀지 마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쥐꼬리만한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변호사들, 무료 상담을

자원하는 사람들도 법조계 내부의 눈으로 보면 그저 '튀려고 하는 사람들, 그렇게 떠서 국회의원

하려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저 공부를 못해서 판검사 임용을 못 받고(제1논리),그러다 보니

실력도 못갖춘 사람이(제2논리), 어떻게든 뜨려고 발버둥치는(제3논리)!"

 

저자, 김두식은 33회 사법시험을 합격해 검사, 교수 경력과 함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

원이다. (13년차 참여연대 회원인 나로서는 왠지 더 반갑다.)

법조계 논리로 저자 김두식은 '실력 없이 어떻게든 뜨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이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저자 역시 합격 이후 자신도 모르게 특권의식을 쌓았을텐데, 그는 어떻게 지금의 이력을 갖게 되

었을까?

다수가 젖어 살고 있는 논리를 벗어나게 한 그만의 힘은 무엇일까?

이 책에 언급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궁금하다.

 

이 책의 또다른 내용으로, 판단에 정답이 없기에  절차에 참여하는 주체가 진실을 만들어가야 한

다, 막강한 검찰의 권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정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다양한 얘기가

있는데, '그 중 말하지 않을 권리'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무죄 추정주의, 수사 절차상 피의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 한

다.  이는 우리나라가 근본적으로 탄핵주의를 택하고 있기에  피의자는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경찰서에서 어떤 혐의에 대한 피의자로 연락을 받게 되면, 아마 나는 준비도

없이 정신을 우주선에 태워 급 이륙을 시켜  급 추락하게 만들거 같다.  법과 권력 앞에서 나도 모

르게 위축되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한다. 영장이 없다면 그냥 입을 다물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지금까지 조사받으신 조서에 도장은 찍고 가셔야죠?'  이 말을 듣더라도 한 마디만

하면 된단다.

'싫은데요!'

우,와! 놀,랍다.

 

이러한 무죄 추정주의 적용도 차별이 있다. 우리가 늘상 TV에서 봤던 장면인데, 국회의원이나 장

관 등은 정장 쫙 빼입고 포토라인에 서서  도도한 자세를 취하지만, 경찰서에 잡힌 일반 피의자들

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옷으로 가리거나 등등 잔뜩 비굴하고 굴욕적인 자세로 찍힌다.

국회의원급이나 일반인이나 무죄 추정주의 원칙을 똑같이 적용받아야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

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그러려니 해왔다.

 

사실 그 동안 법을 권력자들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왔다. 그건 법률가들이 의식, 무의식간에 쌓

은 특권의식이 법을 권력편에 서게 한 것이다.

그들이 만든, 우리가 만들게 한 특권의식이 저자의 다양한 대안대로 차츰 무너지길 희망한다.

 

읽은 날  2011. 3. 23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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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불타고 있다 - ‘테러와의 전쟁’에 숨겨진 미국의 에너지 패권 전쟁
유달승 지음 / 나무와숲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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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은 불타고 있다, 유달승>

 

이스라엘과 미국, 그 둘의 관계를 알기 위해 <라피끄> <해적과 제왕>을 읽었으나 여전히 안개

였다.  그러던 차 우연히 들른 인터넷 서점 메인에 이 책 <중동은 불타고 있다> 가 있길래 얼른

읽었다. <라피끄>가 입문서였다면, 이 책은 본판이었다.

중동 각 나라와 미국의 에너지 패권정책에 대한 얘기가 쉽게 설명되 있었다.

 

미국, 참 부지러전한 나라다.

광대한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를 안전하게 통제하기 위해 핵심지역인  아프가

니스탄을 호시탐탐 노리다 9.11 테러, 그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습을 감행했다.

또한 친미와 반미로 양분된 중동 질서를 친미연합전선으로 확대하고 이스라엘 입지를 강화하

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미디어를 통해 왜곡하고 선전도, 참 바쁘

다.

 

미국의 에너지정책과 실제는 이렇다.

대외적으로는 석유 중심의 에너지 구조에서 탈피해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 산업

을 적극 육성해 저탄소 정책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전통적인 에너지 기업들이 반발할 뿐만 아니라  '석유'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여 중동 각 지역에서 반미, 친미에 따라 전쟁과 당근으로 부지런히 개입, 간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과거 19세기 중앙아시아의 각축은 영국과 러시아가 주역이었다. 그 후 각축장의 바통을 미국

이 이어받고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인도, 이란 등 새로운 주역들이 가세해 New Great Game

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TAPI 송유관 사업을 추진해  러시아의 에너지 지정학을  약화시키고

중국을 위협한다. 이러한 미국과 나토에 대항해 상하이 협력기구 SOO 가 2001년 6월 출범해

반미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숨, 가쁘고 치열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각국의 양보할 수 없는 에너지 싸움에 주역이 되기에 모자란, 즉 이스라엘 같은 국가의 정치적

이해와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중동 비극의 한 축인 이스라엘은 1917년 밸푸어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밸푸어 외무장관이 국제사회 동의 없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해 버

린 후 아랍인들과 어떤 협상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유대인들을  아랍으로 보내면서 길고 긴

비극이 시작됐다.

그 후 국제 사회 권력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하여  이스라엘은 국가 존립을 위해 미국 편에

서고...한때 친미였던 이란은 이슬람 혁명 후 반미 대표세력이 되고...

 

어찌 보면 미국만 욕할 일이 아니다.

미국이 가진 힘과 권력을 중국이,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이 또는 우리나라가 가졌다면 지금 양

상이 달라졌을까?

국가 내 개인간의 다툼인 경우 국가를 위시한 법과 도덕, 일말의 개인적 양심이 가이드 라인이

되주지만,  국가의 존립을 놓고 다투는 경우에는  누가 무엇이 공평하고 절대적인 가이드 라인

이 되어줄까?

국가에게 정의 혹은 양심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일까?

 

이 책을 통해 중동이 왜 불타고 있는지, 미국과 이스라엘이 왜 그런지도 제법 알게 됐다.

한편으로 질문이 생겨난다.

시온주의는 무엇인가?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고 왜 유럽과 미국은 이를 묵인하는가?

이 책에서 기원전 1300~1200년부터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오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서구는 왜 이슬람에 대해 공포를 갖고 있을까? 기원전 1400년 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부정

적인 이미지는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자료출처 : 한겨례 기사

 

읽은 날    2011.8.3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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